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37화 (37/175)

# 37

더 소울(The Soul) - 흑룡아(黑龍牙) [2]

백은 단번에 카페에 흐르고 있는 기운의 흐름을 읽어냈다.

영혈, 그것은 바로 자연스럽게 영기가 고이는 장소를 의미했다.

오래전 한반도는 영혈이 많기로 유명한 땅이었다.

하지만 과거 몇 가지 좋지 않은 일들 때문에 한반도의 영혈들은 상당히 많이 소실되었다.

백은 그 과정을 직접 경험했었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호오, 대단하네. 너 진짜 정체가 뭐야? 이곳에 설치된 결계 때문에 영기를 읽은 게 쉽지가 않았을 텐데…… 건아, 쟤 어디서 주워온 거야?”

연희는 백의 얘길 듣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저 녀석 특기가 기운을 읽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저리 보여도 쟤 말로는 원래 대단한 영수였데요. 여러 일 때문에 지금은 영기를 다 잃은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에요.”

건은 연희에게 간단하게 백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되네. 그래서 저렇게 말도 잘하는 것이었군. 호오, 그럼 건이 넌 진짜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네. 저 정도의 영수는 원래 죽는 것보다 속의 계약으로 묶이는 걸 더 싫어하거든.”

“크흐흑, 드디어 제 진정한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분을 만났군요.”

연희의 말에 백은 진짜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얘기했다.

“그런가요? 복권이라…….”

건은 연희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백을 바라보았다.

흰색의 귀여운 아기 돼지.

귀찮은 혹이라고 생각했던 그 녀석이 복권이란 얘길 듣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주인님 우리 여기에서 살면 안 되나요? 여기에서라면 정말 빠르게 예전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 백에게 영혈은 너무나도 필요한 장소였다.

카페 헤븐에 오기 전까진 어차피 속의 계약으로 건에게 묶였기 때문에 영혈을 찾는 걸 포기했었지만, 이제는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사는 건 안 되지만 어차피 사는 것만큼이나 자주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복권이란 얘길 들어서일까?

건은 전보단 다소 부드럽게 대답해주었다.

“오오, 감사합니다.”

백은 속의 계약 때문에 건에게서 일정 거리 이상을 떨어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건이 가지 않는 장소는 그도 가지 못했다.

사실 건은 아무 생각 없이 속의 계약을 했지만, 속의 계약은 건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계약이 아니었다.

특히 영수로선 자신의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계약이었기 때문에 절대 함부로 속의 계약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연희의 말처럼 속의 계약을 거부하고 소멸을 선택하는 영수도 많았다.

아직까진 자신이 맺은 속의 계약의 진정한 힘을 알지 못하는 건. 하지만 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속의 계약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었다.

* * * *

오늘도 카페 헤븐에서 열심히 일한 후 늦게까지 연희와 수련을 한 건은 새벽 3시 즈음에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백은 꾸역꾸역 열심히 영기를 먹었지만, 여전히 그가 회복해야 하는 영기의 양은 아주 많이 남아 있었다.

대신 영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몰라도 고시원에 와서 다시 먹을 걸 찾진 않았다.

고시원에 돌아온 건은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고시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물론 수련은 이미 연희와 실컷 해서 오늘은 그만 할 생각이었다.

그가 옥상에 올라온 건 수련과 별개로 연습할 게 하나 있어서였다.

오른팔에 잠들어 있는 흑룡.

이제는 ‘흑룡아(黑龍牙)’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 기운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었다.

건은 연희에겐 이 흑룡아를 보여주지 않았다.

숨기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아직 흑룡아를 사용하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연습한 후 연희를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다.

옥상에 올라온 건은 조심스럽게 오른손 바닥을 위로 들어 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한 마리의 흑룡이 그 손바닥 위로 솟아올랐다.

건은 그렇게 올라온 흑룡을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흑룡은 건의 주변에서 느린 속도로 날기 시작했다.

이미 건은 백에게 흑룡아가 가지고 있을만한 한계들을 제법 들은 상태였다.

물론 백의 말이 전부 맞는 건 아니겠지만 들어보니 전부 맞을 것 같은 얘기들이었다.

‘백은 이 흑룡아를 부릴 수 있는 한계 범위가 대략 나를 중심으로 반경 십 미터 정도 안일 것이라고 했지?’

백이 얘기한 한계들은 범위와 시간 같은 것들이었다.

백은 범위는 대략 십 미터가 한계일 것이라 했다.

그리고 시간은 연속해서 사용한다면 두 시간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고 대략 삼십 분 안쪽 간격으로 쉬면서 사용하면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그 얘길 떠올린 건은 조심스럽게 흑룡아를 자신의 앞쪽으로 움직이게 해보았다.

스르르르.

천천히 허공을 유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흑룡아.

그렇게 건과 흑룡아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2m, 3m, 4m…… 8m, 9m, 10m, 11m…….

드득.

놀랍게도 건과 흑룡아의 떨어진 거리가 대략 11m가 되었을 때 즈음 갑자기 흑룡아가 멈춰 섰다.

마치 건과 흑룡아 사이에 팽팽한 끈이라도 묶여 있는 것처럼 흑룡아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략 십일 미터인가? 호오, 이거 백 그 녀석…… 제법 정확하게 맞췄잖아?’

정말 백의 말대로 대략 십 미터 정도가 흑룡을 부릴 수 있는 한계 범위인 것 같았다.

‘그럼 다음은 물리적인 능력을 확인해볼까?’

한계 범위를 확인했으니 다음은 물리적인 능력을 확인할 차례였다.

건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옥상에 가져다 놓은 커다란 아령을 발견했다.

건은 흑룡아를 움직여 그것을 공격했다.

파팟!

이번엔 좀 빠르게 움직이라고 명령하니 실제로 흑룡아도 제법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며 곧장 아령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콰득!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아령을 물어버렸다.

흑룡아의 공격에 아령의 손잡이 부분이 끊어졌다.

철로 만들어진 아령이었건만 흑룡아의 이빨은 아령의 약한 부분을 끊어버릴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현실에서 이 정도라면 경계 안에선 아령을 박살 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호오, 생각보다 물리적인 능력이 괜찮네?’

건은 흑룡아의 움직임과 공격력 모두 만족스러웠다.

아직은 흑룡아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동시에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게 되면 제법 흑룡아를 본체인 흑룡 상태로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좋아, 좋아.”

건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흑룡을 다시 자신 쪽으로 불러들였다.

한계 범위도 확인했고 물리적인 능력도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건 흑룡아를 진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다음 고시원에 내려가 한계 시간까지만 체크하면 대충 기본적인 건 다 확인하는 것이었다.

우선 건은 흑룡아를 무기로 변형시키기에 앞서 가볍게 통혼을 통해 척준경의 혼력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척준경의 힘이 필요했다.

츠츠츳.

많은 양의 혼력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척준경이 가지고 있던 무예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무예들은 사용할 수 있었다.

혼력을 받아들여 준비를 끝낸 건은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흑룡아를 바라보며 무슨 무기를 변형할지 고민했다.

‘검? 도? 창?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을 하던 건은 문득 가장 무난하고 보편적인 검으로 변형하기로 했다.

츠츠츠츳!

건이 결정을 내리고 의지를 전달하자 흑룡아의 모습이 천천히 변화했다.

스르르륵.

흑룡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검의 모습.

건은 침대 위에서 만들었던 검과는 또 다른 모양의 검으로 흑룡아를 변형시켰다.

이번에는 좀 더 검신(劍身)을 길게 만들어 보았다.

그러자 대검(大劍)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검신이 긴 검 한 자루가 건의 손에 들여 있었다.

건은 그 검으로 척준경의 혼력을 통해 전해진 기본검술 하나를 펼쳐보았다.

파파팟!

허공을 가르는 먹빛의 검.

그 검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자 아주 잠깐이지만 허공에 절단면(切斷面)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공간을 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건이 펼치는 검술은 척준경이 실전에서 익힌 이름조차 없는 검술이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어느 검술보다 더 강렬했다.

피이잉!

대략 이십 분 정도 열심히 허공에 검을 휘두르던 건은 마지막으로 크게 검을 휘두르곤 제자리에 멈춰 서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아.”

건은 손에 들고 있는 먹빛의 검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건이 마음에 든다는 건 척준경이 마음에 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미 건은 통혼을 통해 척준경과 감각을 공유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생각도 하나로 일치되었다.

통혼을 통해 혼력을 받으면 건은 척준경이 되고 척준경은 건이 되었다.

누가 누구에게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교묘하게 두 사람의 감각과 생각이 합쳐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동기화(同期化)라고 불렀는데 제혼력이 높은 소울러일수록 이 동기화가 완벽했다.

동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울러와 맹약을 맺은 영혼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었고 그 틈은 혼력의 힘을 약화시켰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계 시간만 확인하면 되겠군.”

이미 건이 흑룡아를 몸 밖으로 꺼내놓은 지 삼십 분은 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한계 시간은 확인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 이상은 더 꺼내놓아야 했다.

‘방으로 내려가서 기다려보자.’

건은 흑룡아를 데리고 방으로 내려갔다.

어차피 흑룡아는 몸 밖으로 나오면 마치 영수인 백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을 데리고 다녀도 별문제가 없었다.

두 시간 십육 분.

이게 흑룡아를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자 흑룡아는 명령하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건의 오른팔로 다시 흡수되었다.

건은 한계 시간까지 모두 확인하며 흑룡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은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아직은 흑룡아를 사용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흑룡아는 건에게 상당한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을 보였다.

특히 척준경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병기를 모두 잘 다뤘기 때문에 흑룡아를 얻은 척준경은 마치 날개를 얻은 호랑이와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호랑이가 날개를 얻었다고 해도 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결국 이 날개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건이 노력해야 했다.

건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흑룡아를 다루는 연습을 했다.

어차피 건은 강의 시간 중에도 흑룡아를 꺼내 놓고 미세하게 조종하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까지 해오던 다른 수련들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했다.

부단한 노력.

건은 그렇게 계속 수련에 매진했다.

* * * *

“후우…… 이제야, 완전히 적응되는군.”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한 남자.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6등급 소울러의 몸이었건만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워낙 기존에 가지고 있던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생각보다 오래 걸린 것은 맞았다.

‘이제 이 녀석의 기억과 힘은 모두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난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소울러가 지닌 힘…… 이 힘이라면 어쩜 난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둠 속의 남자는 바로 어둠의 왕이었다.

녀석은 소울러였던 비검(飛劍)의 육체와 비검과 계약한 김광택의 영혼을 흡수하며 전과 또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비검의 육체와 김광택의 영혼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대신 그는 그 시간 동안 정말 중요한 걸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먹어치운 소울러가 지닌 힘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대단한 힘을 계속 먹을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존재…… 모든 어둠을 지배하는 걸 넘어서 빛마저 삼켜버릴 수 있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크크크크, 그럼 우선…… 나의 권속(眷屬)들부터 만드는 걸로 시작해볼까?”

어둠의 왕은 천천히 어둠을 벗어나며 즐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사람들은 그를 어둠의 왕이 아닌 비검으로 알아보겠지만 이미 비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비검의 육체를 차지한 어둠의 왕뿐이었다.

세상으로 다시 나온 어둠의 왕.

그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걸 차근차근…… 하나씩 이뤄내며 완벽한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갈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