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38화 (38/175)

# 38

더 소울(The Soul) - 에이스(ACE) [1]

@ 에이스(ACE).

강의실, 카페, 고시원.

건은 매일 같이 이렇게 세 곳을 왔다갔다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무조건 수련을 했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지만 건은 별로 지겨워하지 않았다.

이미 이것보다 훨씬 지겨운 삶을 오랫동안 반복해봤던 건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특히 건은 수련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강해질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어쨌든 그렇게 일정한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 끈질겼던 꽃샘추위도 완벽하게 물러난 봄이 찾아왔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 중순.

건은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강의를 듣기 위해 학교에 왔다.

개강한 지 두 달이 넘게 흘렀지만, 건은 여전히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저 가볍게 인사나 하고 지내는 이들만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거리감을 약간 불편해했을지 모르지만, 건은 별로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듯 언제까지 홀로 지낼 수만은 없었다.

특히 한국대학교에선 매년 1학기 중간에 학생들 간의 단합을 위해 대규모 체육대회를 열곤 했었다.

이 체육대회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열외를 할 수 없었다.

그 얘긴 건 역시 이번엔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저도 최소한 두 가지 종목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죠?”

건은 한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학년 대표인 정주현의 얘길 전부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예, 이게 거의 반강제적인 거라…… 불편하시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정주현은 건의 나이가 자신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깎듯이 존댓말을 사용했다.

“학교방침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제가 평소 운동을 즐긴 편이 아니라서…….”

정주현이 건에게 얘기해준 종목은 총 네 개였다.

축구, 농구, 야구, 계주.

모두 건에게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건은 이런 운동을 즐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는 이런 운동을 즐길 시간이 없었다.

아르바이트할 시간도 부족했던 건에게 이런 운동은 사치였다.

“어차피 참여에 의의를 두는 거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마세요. 저희 과는 여학생들도 많아서 선배들도 체육대회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어요.”

한국대학교의 체육대회는 오로지 1학년만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응원은 전체 학년이 전부 했지만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1학년들뿐이었다.

그렇기에 몇몇 학과에서는 이 체육대회 우승에 많은 기대를 걸기도 했었다.

어떤 곳은 아예 합숙훈련까지 시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영어영문과는 체육대회에 큰 의미를 두는 과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체육대회에서 힘을 못 쓰는 과이기도 했지만, 특히 요 몇 년 사이에 연속해서 삼 년 동안 꼴찌를 하면서 급격히 체육대회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사실 3년 연속 꼴찌를 했단 얘긴 지금 2~4학년의 선배들이 모두 꼴찌를 경험했던 이들이란 얘기였기 때문에 그런 이들이 후배들에겐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건 너무 뻔뻔한 일이었다.

“그럼 축구랑 야구 이렇게 할게요.”

건은 그나마 네 종목 중 가장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운동인 축구와 야구를 골랐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자신이 못해도 덜 민폐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축구랑 야구…… 명단에 올려놨어요. 별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대회를 대비해 연습하자는 문자가 갈 수도 있어요. 그럼 최대한 참여 좀 부탁할게요.”

체육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보름.

원래라면 지금부터 열심히 연습해야 했지만 적어도 영어영문과는 연습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기대 자체를 하지 않으니 연습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건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설사 진짜로 연습하자는 문자가 와도 연습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시간에 수마 한 마리를 더 잡는 게 중요했던 건이었기 때문에 체육대회는 그저 참여에 의의를 두는 귀찮은 학교 행사일 뿐이었다.

* * * *

“주인님,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쉬면 안 되나요?”

백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건을 향해 물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쉬고 싶으면 혼자 가서 쉬라니까.”

물론 백은 속의 계약 때문에 건의 옆을 떠날 수 없었다.

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꾸 백이 귀찮게 해서 이런 식으로 얘기한 것이었다.

“자꾸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빨리 기운이나 읽어봐. 어느 쪽인 거 같아?”

카페 헤븐에서 일을 끝내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던 건은 마이너스 에너지가 쌓여 경계가 만들어진 지역을 발견하곤 곧장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경계 안으로 들어와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북동쪽에서 위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건은 요즘 백을 마치 사냥감을 찾는 레이더처럼 사용하는 중이었다.

백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읽는 능력은 상당히 탁월한 편이었기 때문에 백을 이용하면 더 쉽고 빠르게 사냥감을 찾을 수 있었다.

“북동쪽이면 이쪽인가? 가자!”

건은 백이 방향을 알려주자 그쪽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건이 달리기 시작하자 백은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작은 쇳덩어리처럼 자동으로 건에게 이끌려 끌려갔다.

백은 건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었지만, 속의 계약 때문에 이렇게 건의 몸에 무임승차를 해서 편안하게(?) 끌려갈 수 있었다.

건은 그렇게 대략 5분 정도를 전속력으로 달리자 드디어 사냥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4m에 가까운 커다란 덩치에 머리는 개의 머리와 같았고 몸통과 꼬리는 악어를 닮았으며 손과 발은 도마뱀과 유사한 놈.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본능에 따라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마이너스 에너지는 상당히 강렬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최소 상급은 될 것 같은 암괴(暗怪)군.”

최소 상급이었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 얘긴 잡았을 때 상당한 보상이 기대되는 사냥감이란 뜻이었다.

물론 그와 함께 잡기가 쉽지 않은 사냥감이란 뜻도 가지고 있었다.

“주인님…… 상대가 별로 안 좋아 보입니다.”

백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상급 암괴라면…… 나도 지금까지 잡아본 적이 없으니까.”

건이 지금까지 잡아본 사냥감 중 가장 강했던 녀석은 일주일 전쯤 잡았던 중상급 암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상급 암괴와 상급 암괴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상당히 컸다.

“그럼 아직 저 녀석이 우릴 발견하지 못한 것 같으니 이쯤에서 사냥을 포기하시는 게…….”

백은 천성적으로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했었다.

그는 위험한 곳엔 가지도 않았고 위험한 일은 생각지도 않았으며 위험한 대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처럼 안전만 생각하던 백이었기 때문에 사냥은 그에게 최악의 일이었다.

크르르!

백이 조심스럽게 건에게 후퇴를 권하던 그 순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 보이던 암괴가 건 쪽을 바라보았다.

건이 사냥감을 찾는다면 놈은 먹잇감을 찾았다.

그리고 건이 놈을 사냥감으로 생각했듯이 놈은 건을 먹잇감으로 생각했다.

둘 중 누가 옳은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어쨌든, 놈이 건을 발견한 순간 둘의 상반된 의견은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거 어쩌지? 후퇴하긴 이미 늦은 거 같은데?”

처음부터 건은 후퇴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백과는 반대로 건은 승부를 즐겼다.

크어어어엉!

쿵, 쿵, 쿵, 쿵!

암괴는 건을 발견하자마자 크게 흥분하며 건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백은 어렴풋이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최대한 멀리 물러나 있어.”

건은 백에게 경고한 후 빠르게 통혼을 통해 혼력을 끌어왔다.

츠츠츠츳!

이제 건은 통혼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아직도 통혼을 완성하려면 한참을 노력해야 했다.

어쨌든 건은 통혼을 이루며 자신과 척준경 사이에 이어진 링크를 통해 혼력을 받았고 그 혼력을 다시 온몸으로 퍼트렸다.

전신으로 혼력이 퍼져 나가자 건은 자연스럽게 척준경과 동기화가 되며 ‘전투본능’을 얻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암괴가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광!

건은 가볍게 뒤로 물러나며 암괴의 공격을 피했다.

순간 암괴라 내려찍은 바닥이 내려앉으며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지만 늘 그렇듯 맞지 않은 공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카아앙!

개의 머리를 달고 있어서일까?

암괴의 움직임은 흔히 말하는 투견(鬪犬)들의 그것과 유사했다.

다만 다른 건 투견들처럼 네발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두 발로 움직인다는 것이었지만 그것만 다를 뿐 사실상 움직임은 거의 비슷해 보였다.

카앙, 카아앙!

암괴는 건을 향해 달려들며 입으로는 건을 물어뜯으려고 했고 동시에 두 팔로는 건을 할퀴려고 했다.

건은 그런 암괴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계속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암괴의 육체 능력은 소울러들보다 한 수 위였다.

그나마 건은 전투본능이라는 희대의 사기 능력 덕분에 이렇게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건도 버틸 뿐이지 반격을 할 기회를 잡진 못했다.

확실히 상급의 암괴는 중상급과는 상당히 큰 차이가 느껴졌다.

‘젠장, 말 그대로 폭풍과 같은 공격이네.’

계속 뒤로 물러나며 간신히 암괴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건은 어떻게 해서라도 반격의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무쌍투기를 사용할까?’

이제 건은 무쌍투기를 아무런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아주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진 않았다.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겨우 손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쌍투기는 무쌍투기였다.

당연히 사용할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반전을 일으킬만한 힘이었다.

‘우선은 무쌍투기보단 흑룡아를 사용하자.’

암괴의 공격이 매섭게 이어졌지만, 그 상황에서도 건은 굉장히 침착했다.

전투본능을 희대의 사기 능력이라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 침착함이었다.

건은 전투본능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늘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건은 흑룡아를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곧장 흑룡아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흑룡아를 조종하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아직 부족한 것도 많긴 했지만 그래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까진 끌어올려 놓았다.

스르르르.

건의 의지가 흑룡아에게 전해지자 흑룡아 곧바로 건의 오른손 바닥을 통해 천천히 튀어나왔다.

건은 흑룡아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다시 변형시켰다.

츠츠츠츳!

순식간에 건의 오른손에 방패 하나가 나타났다.

따다다당!

건은 그 방패를 이용해 암괴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리곤 암괴가 방패를 때리는 탄력을 이용해 뒤로 멀찌감치 거리를 벌렸다.

건은 그렇게 뒤로 거리를 벌리면서도 곧장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방패를 부메랑처럼 앞으로 날렸다.

파앗, 휘리리릭!

그 방패는 아주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 암괴의 미간에 정확히 꽂혔다.

꽈광!

캬아아아악!

암괴의 공격을 막으면서 그 탄력을 이용해 거리를 벌린 후 방패를 날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암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방패를 막지 못했다.

크게 울부짖으며 암괴의 고개가 뒤로 획 젖혀졌다.

그 순간에도 암괴와의 거리를 더 벌린 건은 조용히 오른손을 앞쪽으로 뻗었다.

휘리리릭, 탁!

그러자 방패가 진짜 부메랑처럼 돌아와 건의 손에 잡혔다.

건은 흑룡아가 자신과 11m 이상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이용해 너무나 간단하게 방패를 다시 거둬들인 것이었다.

한편 미간에 방패로 변한 흑룡아가 정확히 꽂혔던 암괴는 크게 괴로워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방금 공격은 분명 놈에게 상당한 충격을 입혔다.

‘지금까진 네 공격 순서였지만 이제부턴 내 공격 차례다.’

건은 그런 암괴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흑룡아를 변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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