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40화 (40/175)

# 40

더 소울(The Soul) - 생활은 곧 수련. 수련은 곧 생활 [1]

@ 생활은 곧 수련. 수련은 곧 생활.

삐이익!

공이 중앙선에 놓인 후 다시 한 번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또 한 번 영어영문학과가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어영문학과는 불과 일 분 만에 공격권을 화학공학과에 빼앗겼다.

화학공학과는 영어영문학과를 완전히 박살 낼 생각으로 초반부터 굉장히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 이번에도 역시나 영어영문학과의 수비진은 힘없이 뚫리고 말았다.

영어영문학과의 수비진은 상대가 거칠게 나오자 오히려 더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들은 정말 자동문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다시 한 번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두 명의 공격수.

상황은 몇 분 전 선제골을 넣었을 때와 똑같았다.

건은 또다시 자신을 달려오는 두 명의 공격수를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리 혼력을 통해 감각과 육체 능력을 강화시켰다고 해도 슈퍼맨이 된 건 아니었다.

물론 객관적인 운동능력만 따지고 본다면 지금 건은 프로레벨의 축구선수들도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건이 그들처럼 전문적으로 그리고 오랫동안 축구를 배운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운동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난 운동선수가 될 수 있긴 했지만, 그 사이엔 상당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건은 운동능력을 제외한 순수한 축구 실력을 따지면 평균 이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은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

건은 이미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 난 축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축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건은 이번에도 공을 가진 공격수를 향해 빠르게 뛰어나갔다.

그 순간 그 공격수는 슬쩍 웃으며 다시 공을 옆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했다.

몇 분 전에 건은 이런 식의 패스에 농락당했다.

그러나 이젠 달랐다.

‘……모자란 축구 실력은 힘으로 극복하면 된다!’

파파팟!

앞으로 달려나가던 건은 순간 몸을 비틀며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신의 옆을 지나가려던 공을 낚아챘다.

정말 너무나 순간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에 패스를 한 선수도 그리고 패스를 받으려 한 선수도 모두 깜짝 놀라며 건을 바라보았다.

기술이 부족하면 힘으로 찍어 누른다.

이게 바로 건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완벽한 공격 찬스를 막아낸 건은 공을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운동장 밖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의 움직임 때문에 화학공학과와 영어영문학과 가릴 것 없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건은 공을 막아내고 난 후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들고 있던 공을 앞쪽에 있는 동료 선수에게 던져 주었다.

정작 이번 건의 선방으로 가장 놀란 건 건과 함께 경기를 뛰고 있는 같은 학년 동기들이었다.

그들은 설마 건이 이걸 막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과가 어찌 되었건 어쨌든 결국 점수는 1:0이 유지되었고 공격권은 다시 영어영문학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된 영어영문학과의 공격.

하지만 영어영문학과의 형편없는 공격력은 다시 화학공학과의 거친 수비에 가로막혔다.

너무나도 쉽게 공을 빼앗은 화학공학과는 다시 한 번 총공세를 펼쳤다.

이번엔 화학공학과의 날카로운 중거리 슛이 건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화학공학과가 아무리 날카로운 슛을 날려도 건은 너무나 쉽게 그 슛들을 막았다.

사실 건이 지금 가지고 있는 육체 능력을 고려하면 대학교 체육대회 수준에서 나오는 중거리 슛은 그에게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화학공학과는 건과 1:1 찬스는 물론이고 2:1 찬스까지 얻었지만, 그것 역시 건의 정확한 판단과 감각적인 움직임 때문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말 그대로 건은 철벽(鐵壁)이었다.

절대 뚫을 수 없는…… 상대에게 점점 큰 좌절만 안겨주는…… 그런 철벽이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전반전이 끝냈지만, 점수는 여전히 1:0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당연히 건을 보며 뭐라 한마디씩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영어영문학과의 학생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환호했고 화학공학과의 학생들은 혹시 현역에서 뛰고 프로 지망생 대학 선수를 부정 선수로 데리고 온 것 아니냐며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했다.

하지만 정작 건은 사람들의 관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 전반전에 상황들을 복기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이걸 그냥 장난으로 치부될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건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경계도 아닌 현실에서 전력으로 혼력을 사용했다.

적어도 지금까진 현실에서 혼력을 사용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전력을 다해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건은 방금 전반전의 경기가 끝나고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 자신의 제혼력이 전보다 상승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효과가 있다. 오히려 수련이란 생각을 관두고 경기에 집중한 게 주요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이건 좀 더 알아볼 가치가 있겠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괜찮은 수련법을 찾은 건은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생활 속의 수련.

이건 건이 늘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러한 운동 경기에서도 가능하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일단 후반전도 전력을 다해보자. 그러고 나서…… 종합적인 평가를 하면 되겠지.’

경기는 이제 겨우 절반이 흘렀을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후반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후반전의 경기 흐름은 전반전과 너무나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몰아붙이면서도 단 한 골을 넣지 못했다.

마치 영어영문학과의 골문이 완전히 막혀 있는 느낌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노력해도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골키퍼 건을 넘지 못했다.

심지어 공격수가 네 명이 건과 4:1 기회를 잡았는데도 너무나 허무하게 공격이 막혔다.

더 황당한 것은 건의 축구 실력이 경기 중에도 계속 빠르게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건은 점점 더 효율적으로 공을 막는 법을 터득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건은 스스로 그 요령을 익혀나갔다.

심지어 건은 화학공학과의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조차 모두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이쯤 되자 화학공학과의 학생들은 절대 건을 뚫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의 패스는 모두 건에게 읽혔고 슛은 힘없이 건의 손에 잡혔다.

심지어 페널티 킥도 두 번이나 얻었지만, 그것마저 모조리 막혔다.

뭘 해도 안 되자 화학공학과 쪽은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이제 남은 시간도 불과 몇 분 정도밖에 없었다.

물론 이대로 끝난다고 해도 결국 승리는 화학공학과의 것이었지만 화학공학과 입장에선 이런 경기를 1:0으로 끝낸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경기가 이대로 1:0의 스코어로 마무리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파팟, 타악!

다시 한 번 화학공학과의 공격수가 골대 구석을 향해 힘껏 찬 슛을 가볍게 한 손으로 막아낸 건은 그 공을 들고 잠깐 옆을 힐끗 쳐다보았다.

옆쪽에 적혀 있는 점수판에는 여전히 1:0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대로는 우리가 지는 건가?’

건은 이번 축구 경기를 전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실컷 전투에서 이겼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지는 것이었다.

“……그건 좀 그렇지.”

전장에서 장수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승리.

결국, 장수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휙, 데구루루.

건은 손에 들고 있던 공을 앞으로 던졌다.

‘전투도 이기고…….’

그리곤 곧장 공을 앞쪽으로 가볍게 치며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전쟁에서도 이긴다!’

이 운동장을 전장으로 생각하기로 한 이상 건은 무조건 승리를 위해 진격했다.

물론 화학공학과의 학생들은 건이 자신의 골문 앞에서 드리블을 시작하자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건을 향해 마구 달려들었다.

너무나도 당연할지 모르지만, 건은 패스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다른 영어영문학과의 선수들을 별로 믿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건은 패스 대신 혼자 힘만으로 화학공학과의 선수들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서 거칠게 태클을 하고 들어오는 한 명과 왼쪽에서 그 태클 이후 공이 조금이라도 건에게서 멀어지면 커트하려는 또 한 명.

건은 고도로 발달한 감각을 이용해 이들의 움직임을 읽어낸 후 그것을 기반으로 그들의 의도를 읽었다.

그렇게 그들의 의도를 읽은 건은 다음엔 그들이 예상하거나 반응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그들의 의도를 농락했다.

바로 지금처럼.

파팟!

건은 공을 가볍게 허공으로 쳐올리며 동시에 자신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이 한 수로 건은 자신을 행해 날카롭게 들어오던 거친 태클을 피했다.

태클을 피한 것뿐만 아니라 태클 이후에 기회만 엿보고 있던 또 다른 한 명도 제쳤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두 명을 제친 건은 공과 함께 바닥에 착지하며 다시 앞으로 달려나갔다.

사실 건의 이러한 움직임은 프로 레벨의 경기에서도 좀처럼 보기힘든 것이었다.

건은 특별히 연습한 것도 아닌데 벌써 공을 자신의 발에 최대한 가까이 두며 드리블하는 요령을 터득한 상태였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습득력이었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여전히 건의 앞에는 9명의 선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9명의 선수는 무조건 건만 막으면 된다는 표정으로 건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건은 그런 그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막바지로 치닫는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를 결정지을 최후의 전투.

건은 이 상황에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좋아, 이 정도의 긴장감이라면 이런 운동 경기를 종종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도전을 즐길 줄 모르는 이는 결국 제자리에 멈춰설 수밖에 없다는 게 평소 건의 지론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적당한 긴장감은 그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다시 이어지는 건의 드리블.

아무도 이 무모한 드리볼의 결과를 희망적으로 보진 않았다.

그러나 세상엔 간혹 말도 안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결국 건은 11명의 상대 선수를 모두 돌파했다.

이 드리블은 훗날 한국대학교에 두고두고 회자 될 ‘전설의 11인 돌파’가 되었고 그날 영어영문학과는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血戰) 끝에 화학공학과를 승부차기에서 3:0으로 꺾었다.

당연히 그날 영웅(英雄)은 오로지 한 명뿐이었다.

그 누구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나이 많은 늦깎이 신입생 백건.

그가 오늘 하루 한국대학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 * * *

화학공학과와 영어영문학과의 충격적인 축구 경기 내용은 순식간에 한국대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건의 이름은 수많은 한국대학교의 학생들에게 언급되었다.

그 와중에 건이 사실은 프로 축구 선수 출신인데 뒤늦게 공부에 뜻을 두고 다시 대학에 입학한 것이란 얘기부터 얘기가 입에서 입을 통해 전달되면서 너무 심하게 부풀려 졌단 얘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오늘의 영웅인 건은 이미 한국대학교를 빠져나와 있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뒤풀이에 가자며 건을 붙잡았지만, 건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얘기한 후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중요한 가족모임이 있다고 해도 붙잡힐 정도로 굉장히 집요하게 거의 모든 사람이 건을 붙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풀이를 가면 갈 수도 있었던 건이었지만 굳이 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괜히 과도하게 관심이 집중되며 쓸데없는 질문 공세를 받는 게 귀찮았고 또 하나는 진짜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오늘은 특별히 강철민이 건의 수련을 도와주기로 한 날이었다.

지금까지 연희와는 계속 수련을 했었지만 정작 강철민과는 한 번도 수련을 한 적이 없었다.

연희의 말에 따르면 강철민과 하루만 수련해도 자신과 한 달동안 수련한 것만큼이나 많은 걸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건은 절대 그 수련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