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더 소울(The Soul) - 생활은 곧 수련. 수련은 곧 생활 [2]
“근데 그 카페 사장님이란 분은 어떤 분이에요?”
학교에서 나와 카페로 가는 지하철 안.
문쪽에 서 있는 건을 향해 백이 잔뜩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나도 자주 뵌 건 아니라서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는데……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산(山)과 같은 분이지.”
“산이요?”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고 동시에 마주하면 한없이 높아 보이는…… 그런 느낌이거든.”
“으음, 대충은 무슨 느낌인지 알겠네요.”
“너도 아마 직접 만나보면 내 말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건은 카페 헤븐에서 일한 지 꽤 됐지만, 여전히 강철민은 어려웠다.
보통 사람들은 금강철벽(金剛鐵壁) 강철민보다 아이스퀸 이연희가 더 가까워지기 어렵다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건이 보기에 진짜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은 연희가 아니라 철민이었다.
연희는 겉으로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얘기를 하거나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굉장히 따뜻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철민은 겉으로는 시원시원하고 전혀 어렵게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속마음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나마 건도 대략 1년 가까이 철민을 알고 지내면서 아주 열심히 노력해서 이 정도로 친해진 것이었지 만약 건이 노력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로 친해지기도 어려웠을 게 분명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사람이긴 하네.’
어찌 보면 건은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몰랐다.
철민과 건 사이엔 연희라는 훌륭한 다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건은 생각보단 더 쉽게 철민과 친해진 것이었다.
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강철민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은 카페 헤븐이 있는 역에 도착했다.
건은 재빨리 지하철에서 내려 카페 헤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이 카페 헤븐에 도착하자 연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오, 일찍 왔네? 역시 잔뜩 기대하고 있었구나?”
“아무래도…… 누나한테 들은 말들도 있고……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잖아요.”
“하긴 그렇겠지. 근데 기대만큼 각오도 하는 게 좋을 거다.”
“각오요?”
“그래, 각오. 길게 얘기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 짧게 한마디만 할게. 내가 제일 처음 사장님한테 가르침을 받고 나서 정확히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그 정도인가요?”
“뭘 상상하던지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야.”
연희는 계속 재미있단 표정으로 얘기했다.
“이거 시작도 하기 전에 너무 겁부터 주시는 거 아닌가요?”
“좀 그런가?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준비하고 가야 좀 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농담으로 듣지 말고 진짜 마음 단단히 먹어.”
연희는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충고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강철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수련에서 건이 철민에게 제대로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어쩜 철민에게 가끔 가르침을 또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소울러 열 명을 뽑으면 꼭 명단에 들어가 있는 인물이 바로 금강철벽 강철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아주 큰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네, 명심할게요.”
건은 연희의 진심 어린 조언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 이제 내려가 봐. 기다리고 계셔.”
건은 연희의 말을 듣고 곧장 카페 지하로 내려왔다.
카페 지하에선 철민이 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건은 철민을 보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치며 허리를 잔뜩 숙여서 인사했다.
철민은 그런 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은 무슨…… 어차피 오늘 네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네가 가진 그릇의 크기에 따라 결정될 거다.”
철민은 작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바로 시작하자.”
철민은 그 말과 함께 오른손을 들어 지하 수련장에 적용되고 있는 결계석의 효과를 차단했다.
파아아아앗!
그러자 놀랍게도 결계의 힘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지하 수련장 전체가 경계의 세상으로 변화했다.
“헛!”
건은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랄 거 없다. 원래 이 수련장은 이렇게 사용하려고 만든 곳이다.”
그동안 건은 연희와 그냥 수련장을 이용하기만 했었지 이렇게 결계를 풀고 경계를 열어본 적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카페 헤븐의 결계를 풀 수 있는 건 오로지 철민뿐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철민만 이 지하수련장의 진짜 모습을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것도 가능했군요.”
건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되지. 경계의 세상에선 이것보다 더 신기한 일도 많이 일어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역삼동에 있는 일성(一星) 그룹의 본사빌딩을 한 번 찾아가봐라. 네가 볼 수만 있다면 일성 그룹 놈들이 무슨 미친 짓을 해놨는지 볼 수 있을 거다.”
“일성 그룹도 경계의 세상과 관계가 있었나요?”
“인제 보니 너 연희한테 아직도 한참 더 배워야겠구나. 세상에 최상위권에 있는 녀석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경계의 세상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경계의 세상을 알기에 거기까지 올라온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경계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그렇군요.”
건은 몰랐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쪽 세상에 계속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들이다.”
철민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건 쪽으로 걸어왔다.
“자, 이제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고 할 걸 해야지. 네 옆에 꼬마 돼지는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놔라. 미리 얘기하는데…… 적당히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냥 지금 그만둬라.”
철민의 말을 듣는 순간 건은 연희가 왜 그렇게까지 겁을 줬는지 대충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한편 백은 철민이 따로 얘길 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자신이 떨어질 수 있는 최대 거리로 도망쳐 꼭꼭 숨었다.
백은 철민에게 따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미 철민이 가진 기운을 읽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파악한 상태였다.
‘세상엔 이런 괴물들도 있구나.’
안전제일주의자였던 백은 아무리 대련이라고 해도 절대 이런 싸움엔 휘말리기가 싫었다.
“그만둘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건은 충분히 각오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얘기했다.
“각오가 좋군. 그럼 시작하자.”
철민은 그 말과 함께 제자리에 서서 건을 바라보았다.
순간 건은 철민에게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건은 그러한 기세에 위축되지 않았다.
이미 건은 통혼을 통해 척준경의 혼력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건은 흔히 불굴의 의지라 불리는 척준경이 지닌 고유의 특성을 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절대 철민의 거대한 기세에 겁먹지 않았다.
“하압!”
오히려 건은 망설이지 않고 철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파팟, 꽈과광!
건은 무쌍투기를 통해 강화한 오른 주먹을 전력을 다해 철민을 향해 뻗었다.
정말 빠르고 강력한 스트레이트 공격이었지만 철민은 놀랍게도 그 공격을 두 손가락만으로 막아냈다.
뒤로 밀려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몸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정말 완벽하게 두 손가락만으로 건의 공격에 담겨 있던 강력한 힘을 모두 흡수했다.
‘장난이 아니네.’
건은 그런 철민의 모습을 보며 살짝 어이없단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하지만 건은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이미 두 번째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각도에서 튀어나오는 건의 오른발.
이번에도 역시 오른발은 무쌍투기로 강화되어 있었다.
꽈과광!
이번 공격은 첫 공격보다 더 빠르고, 강력했지만 철민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이번 공격 역시 막혔다.
그것도 첫 번째 공격과 똑같이 두 손가락만으로 너무나 쉽게 막았다.
두 번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혔지만, 건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철민이 이 정도의 공격은 아주 쉽게 막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진짜 건이 준비한 공격은 세 번째 공격이었다.
두 번의 공격으로 살짝 간을 보고 세 번째 공격에 전력을 다하는 방식이었다.
“으아아압!”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팟!
건은 자신의 발차기가 막히자마자 몸을 비틀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두 다리로 강하게 바닥을 찍으며 전력을 다해 두 주먹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이제 두 주먹을 동시에 무쌍투기로 강화시킬 정도의 여력이 되었던 건은 무쌍투기로 강화된 두 주먹을 전방을 향해 빠르게 내질렀다.
워낙 빠르게 쏟아낸 연속 스트레이트 공격이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마치 건의 팔이 20개 정도로 늘어나 동시에 주먹을 내지른 것처럼 보였다.
건은 이 기술을 천수관음권(千手觀音拳)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아직 제대로 완성하려면 아직 한참 남은 미완성 권법이었다.
하지만 미완성이라고 해도 한 번에 수십 개의 권영(拳影)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철민이라고 해도 이번 공격에는 양손 정도는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애초에 건의 목적은 철민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그를 최대한 곤란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단 지금 수준에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건의 예상은 그냥 예상으로만 끝났다.
땅, 따다다다다다당!
마치 강철과 부딪친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건이 내지른 수십 개의 권영은 모조리 사라졌다.
그 권영을 쳐낸 건 이번에도 역시 철민의 두 손가락이었다.
철민은 두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건의 미완성 천수관음권을 완벽하게 막았다.
그리고 이번엔 단순히 막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철민이 건의 공격을 모두 막는 그 순간 철민의 두 손가락은 정확히 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곤 그 순간 건의 가슴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튀었다.
파지지직!
꽈광!!
스파크는 곧장 폭발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건은 폭발에 휘말려 뒤로 튕겨져나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스파크와 폭발.
사실 이게 바로 철민이 지닌 두 가지 대표적인 힘 중 하나였다.
철민은 4등급 영혼인 고려 시대의 명장 강감찬과 맹약을 맺은 소울러였다.
문곡성(文曲星)과 염정성(廉貞星)의 기운을 동시에 타고났던 강감찬의 영혼과 맹약을 맺은 철민은 일명 신화력(神火力)과 진뇌력(震雷力)이라 불리는 두 가지 절대적인 힘을 사용했는데 방금 일어난 스파크는 철민이 진뇌력을 사용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물론 전력을 다해 진뇌력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철민이 전력을 다해 진뇌력을 사용하면 지금 건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철민은 조금 약하게 진뇌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뇌력이 지닌 힘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약하게 사용했다고 해도 그 위력은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철민은 이 한 방으로 건이 어느 정도는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두 힘을 이번 대련에선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생각은 불과 몇 초 만에 깨져버렸다.
“크으…… 짜릿하네요.”
당연히 잠깐이라도 정신을 잃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건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놀랍게도 건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충격도 어느 정도 완화했다.
진뇌력이 작은 뇌전의 구슬을 만들고 그것을 폭발시켰던 그 순간 건은 정말 놀라운 반응속도로 자신의 오른팔에 숨겨져 있던 흑룡아를 방패형태로 만들어 가슴에 밀착시켰다.
스파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난 건 불과 1초 정도만의 일이었는데 그 순간 건은 흑룡아를 방패형태로 만들어 방어한 것이었다.
철민이 놀라는 게 당연할 정도의 반응속도와 대처였다.
하지만 진뇌력이 워낙 강력한 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방어했음에도 건은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호오…… 그 짧은 순간에 반응했다고? 이거 정말 예상을 뛰어넘는군.”
철민은 건이 어떻게 방어했는지보다 그 짧은 순간에 방어해냈다는 걸 더 대단하게 생각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을 떠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건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천수관음권이 막히는 순간 건이 지닌 ‘전투본능’은 순간 아주 미세하게 위험신호를 건에게 보내왔다.
그걸 느낀 순간 건은 이미 흑룡아를 몸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었다.
그렇기에 진뇌력에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었으면 절대 이렇게 반응할 수가 없었다.
“운도 실력이다. 이거 아무래도 너에 대한 내 평가를 조금 수정해야겠구나.”
철민은 재미있단 표정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에겐 좋은 것이겠죠?”
“후후후,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이제부턴 조금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화르륵, 파지지직.
철민은 건의 능력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확인하곤 망설임 없이 신화력과 진뇌력을 각각 왼손과 오른손에 유형화시켰다.
“……이건 좀 위험해 보이는 걸요?”
“하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죽진 않을 거다.”
건은 죽진 않을 것이란 철민의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늘 그렇듯 건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이게 바로 건이, 아니 척준경이 지닌 가장 위대한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