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43화 (43/175)

# 43

더 소울(The Soul) - 유적 [2]

“호오, ‘유적’이라…….”

유적이란 말에 철민은 흥미롭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적은 매우 희귀한 곳이었다.

모든 종류의 소울러들이 관심을 가지는 장소.

그래서 한 번 등장하면 한동안 경계의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큰 장소.

물론 유적에도 등급이란 게 존재하긴 했지만 아무리 등급이 낮은 유적이라고 해도 소울러들에겐 수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동안 천리안에 너무 쓰레기 같은 정보들만 보내줘서 짜증 났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하나 물어왔네.”

“명색이 VIP 정기회원인데 이 정도는 물어다 줘야죠. 우리가 걔들한테 매달 주는 돈이 얼만데요.”

“하긴 그동안 돈값을 너무 못하긴 했어.”

천리안은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회사였다.

고급 정보를 고객들에게 팔고 돈을 받는 회사…… 경계엔 이러한 회사들이 몇 개 더 존재했다.

“가실 거죠?”

“진짜 ‘유적’이라면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아직 확실히 확인된 건 아니라며?”

“며칠 안으로 확인될 것 같다네요. 걔들 말로는 유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데요. 그러니 우리도 일단 준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그렇다면 준비를 좀 하긴 해야겠네. 우선 어느 정도 수준의 유적인지 확인되진 않았으니까 대충 사 등급 수준의 유적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 보자.”

유적은 제일 아래 등급인 7등급부터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까지 총 7가지 등급이 존재했다.

물론 1등급 이상은 모두 그냥 1등급으로 취급했다. 사실상 1등급은 전설 급 유적이라고 따로 불리며 매우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어쨌든 발견되는 유적 대부분은 7~4등급이었기 때문에 철민은 적당히 4등급 유적에 대비한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압축식량을 준비할게요. 저번엔 정말 죄송했습니다.”

연희가 슬쩍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짓는 건 대략 2년 전 있었던 5등급 유적 탐사 때 큰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알면 됐다. 저번에 그 압축식량은 진짜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영양과 효율만 따지다가 그렇게 됐었어요. 이번엔 무조건 시식도 해보고 맛도 충분히 고려해서 준비할게요.”

“그래, 그런 건 네가 알아서 잘해라.”

유적 탐사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최소 일주일에서 최대 한 달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유적이란 장소가 매우 특별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적은 당연히 경계였다.

그것도 그냥 경계가 아니라 교묘하게 일그러져 있는 미로형태의 경계였다.

보통 유적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커다란 마이너스 에너지를 지닌 어떤 존재 때문이었다.

그 존재는 대부분 흔히 소울러와 맹약을 맺는 그 영혼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영혼들이 봉인된 영혼주 때문이었다.

영혼주는 그 자체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봉인된 영혼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마이너스 에너지를 끌어당기곤 했다.

그렇게 끌려온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에너지가 아주 가끔 이유를 알 수 없는 변형을 일으키며 커다란 ‘일그러진 경계’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유적이었다.

물론 모든 영혼주가 유적을 만드는 건 아니었다.

사실상 유적이 만들어지는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다.

어떤 영혼주는 불과 9등급밖에 되지 않는데도 유적을 만들었고 또 어떤 영혼주는 4등급이면서도 유적을 만들지 않았다.

이처럼 유적은 거의 무작위에 가깝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우 희귀했다.

그리고 이 희귀한 유적에 모든 소울러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유적에는 무조건 그 유적의 핵(核)이 되는 영혼주가 존재했다.

영혼주는 아무리 등급이 낮아도 그 값어치가 상당했기 때문에 수많은 소울러가 노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마이너스 에너지가 변형을 일으키며 만들어낸 ‘일그러진 경계’에는 마이너스 에너지의 과도한 비틀림에 끌려 온 수많은 수마와 암괴가 존재했다.

심지어 극히 드물었지만 혼마도 그 일그러진 경계에 휘말려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유적을 최고의 사냥터로 여겼다.

영혼주와 사냥감들.

이 두 가지만으로 정상적인 소울러라면 모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추가하자면 유적엔 경계에서만 발견되는 수많은 희귀물질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아무래도 희귀물질들이라는 게 대부분 마이너스 에너지가 현실의 물질을 오염시켜서 만들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이너스 에너지가 엄청난 밀도로 쌓여 있는 유적에서 그런 희귀물질이 많이 발견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영혼주와 사냥감들 거기에 희귀물질까지…… 유적은 말 그대로 소울러들에게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존재였다.

물론 그만큼 위험한 곳이기도 했지만 원래 위험과 보상은 비례하는 존재였기에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다.

“근데 사장님…… 건이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데려가실 거예요?”

“흐음…… 아직 좀 부족한 게 많지만, 유적이 자주 나타나는 곳도 아니고 다른 건 몰라도 생명력 하난 끈질긴 녀석이니 데려가자.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잠시 고민하던 철민은 건을 데리고 가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건의 실력으로 유적은 꽤 위험했지만, 위험을 감수하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네, 그럼 건이 것도 준비할게요.”

가볍게 대답한 연희는 곧장 유적 탐사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 *

건은 거의 스무 시간 동안 계속 치료 캡슐에 누워 있었다. 연희는 어느 정도 건의 몸에 있던 심각한 상처들이 아물자 건을 캡슐에서 꺼내 카페 바 뒤쪽에 펼쳐놓은 간이침대에 눕혀 놓았다.

이제부턴 진짜 순수하게 건의 자생력을 통해 회복하는 게 가장 빨랐다.

어차피 치료 캡슐이 치료해 줄 수 있는 건 큰 상처들뿐이었기 때문에 거기 오래 눕혀 놓는다고 해서 크게 좋을 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이 영혼의 조각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오히려 건의 자가 치유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대략 네 시간 정도가 흐르자 드디어 건이 정신을 차렸다.

“으음…….”

건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났어?”

건 옆에서 물건 정리를 하고 있던 연희는 건을 슬쩍 보면서 얘기했다.

“크으……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거예요?”

“정확히 스물네 시간 지났네.”

“헐,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일주일 전 정신을 잃었을 땐 그래도 열여섯 시간 정도 만에 정신을 차렸었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정신을 잃은 시간이 여덟 시간이나 늘어나 있었다.

“스물네 시간 만에 일어난 게 더 기적적일 정도로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어. 첫 번째 대련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내가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제발 몸 좀 사려라. 사장님은 절대 적당히 하지 않는다니까…… 그러니 너라도 몸을 좀 사려야지.”

연희는 진심으로 건을 걱정했다.

물론 철민이 누구보다 대련 강도를 잘 조절할 것이란 사실도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워낙 건이 심각한 부상을 계속 입자 조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 죄송해요. 저도 어지간해선 적당히 하고 싶은데…… 막상 대련을 시작하면 그게 제 마음대로 조절이 안 돼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혼력을 사용하면서부터는 건의 정신은 척준경과 동기화되었기 때문에 절대 적당히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척준경은 ‘적당히’란 단어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에휴, 하긴 척준경이라면…… 대충 이해가 되긴 한다.”

건은 연희에게도 자신이 누구와 맹약을 맺은 지 얘기해 주었었기 때문에 연희는 건의 상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휴, 뭐 별수 있나요. 그냥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강해져서 더 잘 버텨야죠.”

“그래,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다.”

연희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윽, 어쨌든 전 조금만 더 쉴게요. 이거 아직 몸 상태가 영 엉망이네요.”

“알았어. 푹 쉬어. 아, 참! 쉬면서 들어. 너 이번에 나랑 사장님이랑 유적에 가게 되었어. 그러니까 몸 좀 회복되면 나랑 제대로 얘기 좀 하자.”

“유적이라뇨? 그게 뭐예요?”

“지금 그걸 다 설명할 순 없고…… 그냥 아주 크고 위험한 사냥터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자세한 건 네가 좀 회복되면 알려줄게.”

“네, 알겠어요.”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우선 자신의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건식수련법을 최대출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유적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일단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건이 몸을 회복하는 동안 연희는 철민이 시킨 대로 유적 탐사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녀는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식량부터 유적 탐사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장비들을 정확히 세 사람 분량만큼 준비했다.

그렇게 연희가 유적 탐사를 준비하는 사이 건은 빠르게 몸을 회복시켰다.

이미 큰 상처들은 캡슐에서 다 치료했기 때문에 건의 회복속도는 더 빨라졌다.

건식수련법은 이제 나름의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회복력만큼은 최상위권의 영혼단련법들과 비견되었다.

건은 그러한 건식수련법을 이용해 거의 여섯 시간 만에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몸을 회복시켰다.

정확히 얘기하면 대략 완벽한 몸 상태를 100%라고 하면 거의 70% 수준까지 몸 상태를 회복한 것이었다.

이 정도만 돼도 할 일을 하는데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나머지 30% 정도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회복하는 게 더 나았기 때문에 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잔뜩 굳어 있는 몸을 스트레칭을 하며 풀었다.

건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잠깐 카페 지하에 내려갔던 연희가 1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일어났네? 어때? 좀 괜찮아?”

“네, 이제 천천히 움직이면서 회복하면 될 것 같아요.”

“다행이네.”

“그나저나 아까 하셨던 유적 얘기나 좀 더 해주세요. 유적이 도대체 뭐예요?”

건은 조용히 몸을 회복하면서도 계속 유적이 뭔지 궁금했었다.

그렇기에 연희를 만나자마자 그것부터 물어본 것이었다.

“하하,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네. 알았어. 설명해줄 테니 거기 앉아봐.”

연희는 그런 건을 보며 천천히 유적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건에게 유적의 기본적인 정보와 조심해야 할 것 그리고 유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유적으로 보이는 곳이 발견되었고 만약 그곳이 유적으로 확실히 확인되면 철민과 자신 그리고 건까지 셋이서 유적 탐사를 떠나게 되었다고 얘기해주었다.

연희에게 유적에 관한 얘기를 들은 건은 상당히 흥미롭단 표정을 지었다.

“진짜 저도 같이 가는 거예요?”

“얘가 속고만 살았나. 그렇다니까. 사장님이 특별히 허락하셨어.”

“으하! 대박! 진짜 고마워요.”

“고맙긴 어차피 결정은 사장님이 하신 거야.”

“그래도 고마워요. 으흐흐.”

건은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웃었다.

그는 유적이라는 흥미로운 장소에 갈 수 있다는 사실도 즐거웠지만,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것은 철민과 연희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근데 지금 그렇게 즐거워만 하고 있을 땐 아니야. 너 나랑 만물상에 한 번 다시 가자.”

“만물상이요? 거긴 왜요?”

“방금 얘기할 때 못 들었어? 유적 탐사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탐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내가 준비했지만, 너도 최소한의 개인 장비는 챙겨야 할 거 아니냐.”

“아!”

연희의 말에 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모아둔 돈 좀 있지? 개인 장비까지 우리가 사줄 순 없다.”

“당연하죠. 저도 염치가 있는데 제 개인 장비까지 사장님과 누님에게 신세를 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아주 좋은 자세야.”

연희 역시 필요한 개인 장비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곧장 건을 데리고 만물상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