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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소울(THE SOUL)-44화 (44/175)

# 44

더 소울(The Soul) - 유적 탐사 [1]

@ 유적 탐사.

늘 그렇듯 만물상에는 오늘도 경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필요한 걸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혼자 둘러볼 수 있지? 필요한 거 다 사서 저번에 거기서 만나자.”

“네.”

어차피 연희와 건은 서로 쇼핑하는 구역이 달랐기 때문에 만물상에 들어오자마자 헤어졌다.

연희와 헤어진 건은 만물상으로 오며 생각했던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건이 사려는 물건은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명 강화전투복이라 불리는 다양한 용도를 지닌 한 벌의 옷이었다.

이 강화전투복은 아주 대단한 성능을 지닌 물건은 아니었다. 그저 여러 가지 무기들을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옷 전체에 다양한 형태의 수납공간이 존재했고 거기에 재질 자체가 특수 재질로 만들어져서 방검(防劍) 효과와 함께 약간의 방탄(防彈) 효과도 지니고 있는 옷이었다.

물론 그래 봤자 기본은 전투복이었기 때문에 방어력 자체가 아주 뛰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건은 이러한 전투복이 한 벌도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물건은 몇 개의 개인화기였다.

사실 건에겐 흑룡아라는 최고의 무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건은 만약을 위해 보조 무기들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건이 생각하는 보조무기들은 대략 권총 두 자루에 단검 몇 자루 정도였다.

마음 같아선 여러 종류의 개인화기를 다양하게 갖추고 싶었지만 그걸 다 살 정도로 돈이 넉넉하게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개인장비만 준비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물건은 일명 포션(Potion)이라 불리는 경계의 세상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응급 약품이었다.

영혼의 조각과 가루를 이용해 만드는 이 포션은 등급에 따라 효과도 천차만별이었지만 상처에 뿌리거나 혹은 그걸 마셨을 때 상당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포션 중 가장 비싸고 구하기조차 어려운 최상급 포션 같은 경우는 중상(重傷)을 입은 사람도 단번에 치료할 수 있을 정도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경계에서 소비되는 포션은 대부분 하급~중급 포션들이었다.

하지만 이 하급~중급 포션만 해도 어지간한 상처는 모두 치료해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포션을 사용했다.

다만 이 포션은 오로지 경계의 세상에서 입은 상처에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다친 후 경계의 세상에 들어와 포션을 사용해봤자 효과를 기대할 순 없었다.

어쨌든 포션은 헌터들에겐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건은 돈이 아깝단 이유로 포션을 사용하지 않았었지만, 유적 탐사에선 돈을 아끼는 게 더 어리석어 보였기 때문에 구매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략 하급 포션 4~5개와 중급 포션 1~2개를 구매할 생각이었다.

강화전투복, 개인 화기, 포션.

이렇게 세 가지가 건이 만물상에서 구매할 것들이었다.

건은 만물상의 D구역과 C구역을 모두 살펴보았다.

그는 최대한 싸면서도 질이 가장 좋은 물건들을 찾아 아낌없이 발품을 팔았고 그 결과 나름 만족스러운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건 막판에 돈이 좀 모자라서 두 개 정도는 사려고 했던 중급 포션을 하나밖에 사지 못한 것이었지만 어차피 아예 못산 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강화전투복은 경계에선 나름 유명한 병기제작업체인 ‘더 헤머’에서 샀다.

나름 신상품이었는데 ‘K-PA004’라는 제품명을 지닌 옷이었다.

통기성이 좋아 전신을 감싸는 형태임에도 전혀 덥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한 양팔에 방검 효과를 극대화해주는 간단한 외부장갑을 덧붙여 실용성도 높인 전투복이었다.

거기에 세트로 함께 나온 다목적 전투화까지 같이 샀기 때문에 건은 꽤 만족하는 중이었다.

개인화기는 그냥 무난하게 글록18(G18) 두 자루를 구매했다.

사실 G18은 건이 사용하기엔 너무 장난감 같은 총이었지만 어차피 건은 보조용 무기를 구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권총에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

탄창도 33발이 들어가는 탄창 4개와 17발이 들어가는 탄창 6개만 구매했다.

거듭 얘기하지만, 권총은 건의 주력 병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구색만 맞춘 수준이었다.

대신 건은 단검을 꽤 좋은 걸로 구매했다.

예전 연희가 사주었던 ‘미스릴’이 섞인 단검 수준은 되지 않아도 그것에 바로 아래 수준은 될만한 단검 세 자루를 샀다.

연희가 주었던 단검까지 합치면 총 네 자루.

이 정도라면 건이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강화전투복과 개인화기를 사들인 건은 마지막으로 포션을 구매했다.

하급 포션 다섯 병과 중급 포션 한 병.

제조사는 모두 믿을만한 포션 제작회사인 ‘리커버리’였다.

이로써 건의 쇼핑은 모두 끝났다.

이젠 더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했다.

이미 건은 그동안 수마와 암괴를 사냥하며 틈틈이 벌어두었던 돈을 대부분 써버린 상태였다.

건은 조금 아깝긴 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돈을 모두 사용했다.

* * * *

만물상에서 쇼핑을 모두 끝낸 건과 연희는 다시 카페 헤븐으로 돌아왔다.

준비는 모두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진짜 유적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과 확인이 되면 바로 그곳을 향해 출발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천리안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유적’ 확인. 4등급 혹은 3등급 유적으로 보임. 장소는 경기도 파주 월롱산 근역.

“4등급에서 3등급이라…… 생각보다 유적의 규모가 큰데요?”

천리안에서 전해진 정보를 본 연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근래에 이 정도 규모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네.”

4~3등급으로 예상되는 유적이라면 단순히 소울러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이 아닌 단체가 대규모로 움직일 게 분명해 보였다.

“다 오겠죠?”

연희 역시 그걸 예상하고는 철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이번에도 역시 충돌이 일어나겠네요.”

“그것도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근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충돌이 예상되더라도 거의 모든 소울러가 유적에 올 거다.”

“휴, 이거 오랜만에 가볍게 유적 탐사를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겠네요. 그나저나 건이를 데려가도 될까요? 분명 백련김가에서도 올 텐데…….”

“누나, 이 상황에서 절 놓고 가시려고요? 절대 안 돼요. 전 그럴 수 없어요.”

연희의 말에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건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건은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유적에 못 가게 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됐다. 건이 말처럼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는데 같이 안 가는 게 더 이상할 거 같다. 그리고 설사 백련김가 쪽 사람들이 와도 대놓고 수작을 부리진 못할 테니 일단 처음 계획대로 같이 가는 걸로 하자.”

철민도 연희가 뭘 걱정하는진 알았지만, 이 상황에서 다시 건을 데리고 가지 않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주의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적어도 사장님하고 누나한테 폐가 되진 않을게요.”

건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너도 그렇게 많이 준비했는데 못 가면 실망이 크겠네. 그래 같이 가자.”

잠시 건을 걱정하며 얘기했던 연희도 이내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짐 챙겨서 바로 출발하자. 유적으로 들어가는 선(線)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서두르자.”

천리안에게서 받을 수 있는 정보는 유적이 생성될 것으로 보이는 예상 지역뿐이었다.

거기서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선을 찾는 건 오로지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야 했다.

“네, 바로 준비할게요.”

어차피 준비는 미리 모두 해놨기 때문에 챙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건도 미리 준비했던 강화전투복을 입고 전투복에 권총 두 자루와 단검 두 자루 그리고 탄약들을 챙겨 넣었다.

모든 준비가 빠르게 끝나고 드디어 철민과 연희 그리고 건은 파주를 향해 출발했다.

천리안에서 전해준 정보에 따라 파주 월롱산 인근에 도착한 세 사람은 우선 조심스럽게 월롱산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유적에 들어가려면 유적과 현실을 나누고 있는 선을 찾아야 했는데 유적의 본질은 결국 기묘하게 일그러진 경계였기 때문에 보통 경계처럼 쉽게 선을 찾을 수 없었다.

만약 건이 혼자 이곳에 왔다면 그는 며칠을 돌아다녀도 선을 못 찾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한 건이었지만 아직 진짜 상급 소울러들과는 실력차이가 존재했다.

실력이 뛰어난 상급의 소울러들은 당연히 선을 더 쉽게 찾았다.

그들이 가진 감각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었고 또 한 번이라도 유적(일그러진 경계)을 경험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의 차이는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일까?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선을 찾아낸 건 당연히 철민이었다.

철민은 월롱산 주변을 돌아다닌 지 대략 일곱 시간 만에 선을 찾아냈다.

이미 월롱산에는 눈에 확 띄진 않았지만 수많은 소울러들이 은밀히 선을 찾고 있었다.

소울러들은 서로 알아봤음에도 암묵적으로 무시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유적으로 들어가는 선을 찾는 것이었기에 쓸데없이 부딪치는 것도 최대한 피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누가 언제 어디서 선을 찾아서 유적에 들어갔는지는 서로 아무도 몰랐다.

어차피 본격적인 갈등은 유적 안에서 일어날 것이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서로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그래서 철민 역시 선을 찾았지만, 자신이 몇 번째로 선을 찾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이 정도라면 상당히 빠르게 선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선을 찾은 철민은 바로 유적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바로 옆에 있었다고 해도 연희와 건은 계속 선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는 그 두 사람이 선을 볼 수 있게 옆에서 최대한 도와주었다.

그 결과 연희는 그로부터 한 시간 만에 겨우 선을 찾을 수 있었고 건은 세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야 간신히 선을 찾을 수 있었다.

철민이 선을 찾을 수 있도록 섬세하게 기운까지 유도해줬기 때문에 찾은 것이지 아니었으면 연희, 특히 건은 죽었다 깨어나도 선을 못 찾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건까지 선을 찾게 되자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유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으으으.

경계와 현실을 구분 짓는 선을 넘어 유적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

그들 중 건은 유적이란 곳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한 표정이었다.

파아아아!

일그러진 경계이기 때문일까?

건은 선을 통과하는 순간 거대한 마이너스 에너지의 압력을 느끼며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러한 압력은 금방 사라졌다.

대신 전신을 바늘로 아주 살짝 콕콕 찌르는 듯한 따끔거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뭐죠?”

건은 옆에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던 연희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아, 너 유적은 처음이었지. 이건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가 네 몸에 침투하려고 하면서 느껴지는 감각이야.”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가 제 몸에 침투할 수도 있나요?”

“하하, 당연히 못 하지. 정상적인 소울러라면 누구나 맹약의 가호를 받기 때문에 심각하게 변형되어 마이너스 에너지와는 완벽히 다른 성질을 지닌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는 절대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해. 그래서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는 우리 몸 주변을 맴돌며 계속 우리 몸속으로 파고들려는 시도만 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따끔거리는 느낌이 나는 거야.”

연희는 자세하게 따끔거리는 느낌이 왜 나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럼 유적엔 외인(外人)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겠네요.”

“아니, 그들도 들어올 수 있지. 애초에 그들은 마이너스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육체이기 때문에 소울러와는 다른 의미로 유적의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가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거든.”

“아…….”

연희의 설명을 들은 건은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참고로 수마나 암괴 같은 존재들은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그래서 유적 안에 존재하는 수마나 암괴들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해. 물론 강력한 만큼 보상도 더 커지긴 해.”

“그것 때문에라도 헌터들은 더욱 유적을 포기할 수 없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건의 말에 연희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앞쪽에 있던 철민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이거 오자마자 바로 시작이군. 잡담은 그만하고 전투 준비를 해라. 사냥 시작이다.”

콰아아아.

철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 전방에 아주 위험해 보이는 기운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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