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왕 [1]
@ 어둠의 왕.
‘전투본능’과 ‘무쌍투기’ 이것은 현재 건이 사용할 수 있는 척준경의 능력 두 가지였다.
적어도 지금까진 이 두 가지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다.
애초에 큰 무리를 하질 않았고 워낙 전투본능과 무쌍투기가 대단한 능력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힘을 더 완벽하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해질 수도 있었기에 다른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적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건은 처음으로 두 가지 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제 척준경이 가진 다섯 가지 능력 중 세 번째 능력인 ‘금강야차(金剛夜叉)’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금강야차는 육체의 강도와 회복력을 극대화 시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었다.
이 힘을 극성으로 펼치면 몸이 흔히 말하는 금강불괴(金剛不壞) 수준으로 강해지고 동시에 팔이 부러지거나 몸에 구멍이 나는 수준의 부상은 얼마든지 견디며 금방 회복시키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 힘을 극성으로 펼친단 얘긴 곧 척준경의 힘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아직 머나먼 얘기일 뿐이었지만 일단 금강야차를 얻기만 해도 몸의 강도와 회복력은 상당히 높아질 수 있었다.
건이 금강야차를 얻으려 하는 이유는 철민과 연희를 따라 조금씩 유적 안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투본능과 무쌍투기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한계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현재는 전투본능은 대략 50% 무쌍투기는 대략 20%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수준에서 발전속도가 급격히 느려졌기 때문에 그 두 힘을 좀 더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강해지는 건 더욱 힘들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세 번째 능력인 금강야차를 얻는 것이었다.
건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금강야차를 얻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조금만이란 게 약간은 추상적인 수치라 건도 정확히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지 얘기할 순 없었다.
그저 아마도 이렇게 계속 전력을 다해 사냥하면 일주일 안에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스르르륵.
높이가 거의 20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고목들이 쭉쭉 뻗어 있는 원시림.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그 원시림의 밑에서 한 개의 커다란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몸통은 뱀처럼 생겼지만, 머리 쪽으로 올수록 사람의 모습과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녀석은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거의 9m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람의 모습과 유사한 상체도 자세히 살펴보면 비늘로 덥힌 피부와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새카만 눈동자와 아주 날카로운 손가락을 지닌 커다란 손까지…… 전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이름은 ‘디올라’.
상급 암괴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놈이었다.
상급 암괴들부터는 암괴들의 종류에 따라 특정한 이름이 붙었는데 디올라는 상급 암괴들 중에서도 혈사독(血蛇毒)과 환마안(幻魔眼)으로 유명한 놈이었다.
사실상 상급 암괴부터는 뚜렷한 자아(自我)를 지니고 있었고 그 자아를 바탕으로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능력까지 습득하고 있었다.
비록 인간과의 대화는 최상급 암괴 이상은 되어야 가능했지만, 상급 암괴는 말만 못할 뿐이지 상황 판단 같은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놈들의 그러한 능력은 소울러들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상급 암괴부터는 프로 헌터, 또는 프로 헌터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일반 헌터들이 사냥을 했다.
샤아아아.
특히 지금 이곳에 있는 디올라는 유적의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의 영향으로 최상급 암괴를 능가해 혼마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놈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거대한 고목들 사이를 누비는 중이었다.
녀석이 이 유적으로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거대한 마이너스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져 유적 근처로 가까이 왔다가 유적의 인력(引力)에 끌려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엔 매우 당황했었지만 이내 몸속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마이너스 에너지(실제로는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느끼며 크게 즐거워했다.
어쨌든 그렇게 전과는 다른 힘을 지니게 된 디올라는 이곳 원시림에 자리를 잡았다.
마음 같아선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안쪽엔 자신보다 더한 괴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중이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디올라.
놈이 유적으로 끌려 들어온 지 100년 정도가 흘렀지만, 놈의 이런 여유로운 하루는 늘 계속되는 중이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여유가 100년 만에 깨져버렸다.
꽈앙!
디올라의 관자놀이를 때리는 한 줄기의 빛.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쏟아진 그 빛은 디올라의 관자놀이에 강하게 충돌하며 디올라의 머리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디올라가 순간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보호막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만약 보호막이 없었다면 그 빛은 무조건 디올라의 머리를 관통했을 게 분명했다.
캬아아아!
디올라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크게 분노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정작 주변엔 적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다시 한 번 섬광이 번쩍였다.
이번에는 디올라도 그냥 맞아주진 않았다.
놈은 보호막을 유지하면서 양팔을 들어 재빨리 섬광의 경로를 막았다.
꽈광!
주르륵.
오른팔에 막힌 섬광. 그렇지만 섬광의 위력은 조금 전보다 더 강해져서 디올라는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났다.
디올라는 분명 섬광을 봤지만, 그 섬광이 어디서 날아온 건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다.
워낙 먼 거리에서 빠르게 날아온 섬광이라 위치 파악이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섬광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빠르고 강력한 섬광이 연속해서 날아왔다.
이쯤 되자 디올라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인지했다.
만약 디올라가 유적 밖에서 지금의 상황을 맞이했다면 상황은 아주 최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나마 지금의 디올라는 자신을 지킬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다.
섬광이 위력적이긴 했지만, 아직까진 디올라의 보호막도 뚫지 못했다.
키아아아아아아!
디올라는 크게 포효하며 자신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환마안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디올라 주변에 푸른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그의 보호막이 더욱 강력해졌다.
쩌저저저정!
보호막이 강해지자 섬광은 보호막에 막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보호막을 강화해 섬광의 공격을 방어한 디올라는 본격적으로 섬광이 날아온 곳을 찾기 시작했다.
환마안은 그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증폭시켜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적에게 환각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만약 적의 위치만 찾을 수 있다면 환마안을 통해 적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와중에도 섬광은 계속 날아왔다.
하지만 디올라는 보호막을 통해 그 섬광을 모두 막아냈다.
쩌저정, 쩌저저정!
계속해서 섬광이 날아오는 방향을 바라보던 디올라는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하게 반짝이는 섬광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캬아아아!
디올라는 그걸 발견하자마자 전속력으로 그쪽을 향해 돌진했다.
스스스스슷!
디올라의 매끈한 몸뚱어리가 S자 형태로 빠르게 꾸물거리자 놈은 아주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자신이 찾은 섬광의 근원지로 돌진하는 디올라.
이대로라면 디올라는 다음 섬광이 방출되기 전에 그 근원지를 급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캬르르르!
디올라는 드디어 적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기쁜 표정으로 목표 지점을 향해 뛰어들었다.
꽈광!
그곳은 작은 언덕 위였다.
딱 몸을 숨기기 좋아 보이는 장소.
디올라는 적이 그곳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두 번째 특기인 혈사독(血蛇毒)을 전방을 향해 뿌렸다.
치이이이익!
강력한 부식효과를 지니고 있는 혈사독이 넓게 뿌려지자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파파파팟!
혈사독이 사방에 떨어지며 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정작 디올라가 목표로 한 적은 그곳에 없었다.
마치 디올라의 공격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곳에서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키익!
디올라는 살짝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디올라의 발밑에서 생각지도 못한 폭발이 일어났다.
번쩍! 꽈과과광!
폭발이 일어나며 만들어진 화염이 순식간에 디올라를 집어삼켰다.
물론 디올라는 여전히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 폭발은 그냥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폭발이 아니었다.
이 폭발을 일으킨 것은 ‘염혼뢰(炎魂雷)’라고 불리는 일종의 지뢰였다.
당연히 이것을 만든이는 연희였다.
연희는 자신의 혼력과 약간의 C4 폭약을 혼합해 염혼뢰를 만들었다.
염혼뢰는 따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C4 폭약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폭탄이었다.
폭발력은 순수하게 혼력만으로 만드는 광혼뢰(光魂雷)보단 떨어졌지만 대신 광혼뢰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고 강력한 화염이 발생하며 시야 차단 효과는 물론이고 화염으로 말미암은 지속적인 손상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꽤 위력적이었다.
어쨌든 염혼뢰의 폭발에 휘말린 디올라는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적을 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자신이 함정에 빠졌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폭발과 화염 때문에 디올라의 보호막은 상당히 약해졌다.
특히 염혼뢰의 화염은 지속해서 충격을 주며 계속 보호막을 약해지게 했다.
이대로 있다간 보호막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디올라는 화염에서 탈출하기 위해 뒤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함정에 빠졌으니 일단 뒤로 빠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놈은 그렇게 일단 뒤로 물러나서 방금 입은 몸을 추스른 후 다시 한 번 적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스스스슷!
재빨리 화염에서 빠져나오는 디올라.
하지만 디올라의 그러한 안일한 판단은 다시 한 번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놀랍게도 디올라가 뒤로 물러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한 사람이 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건은 반갑게 웃으며 디올라는 맞이했다.
그리고 동시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흑룡아를 사슬 형태로 변형시켰다.
촤르르르륵!
바닥에서 검은색 사슬이 솟아오르며 순식간에 디올라의 몸을 마구 휘감았다.
캬아아아!
디올라는 보호막을 이용해서라도 사슬이 자신의 몸을 완전히 휘감는 걸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보호막은 무쌍투기까지 서려 있는 흑룡아(사슬)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촤르르륵, 철컹! 철컹!
결국, 디올라는 너무나 허무하게 흑룡아(사슬)에게 온몸이 결박되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캬아아아아아아!
디올라는 온몸에서 혈사독을 내뿜으며 흑룡아(사슬)를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건은 자신이 가진 무쌍투기를 모조리 흑룡아(사슬)에 쏟아부으며 혈사독을 견뎌냈다.
건과 디올라의 거리는 정확히 10m였다.
그렇기에 디올라는 혈사독을 건에게 뿌리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멀었다.
혈사독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자신의 주변에만 독을 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자 디올라에게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환마안.
디올라는 그것이라면 충분히 건의 정신을 뒤흔든 후 이 이상한 결박을 풀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캬아아아아!
디올라가 환마안을 극성으로 펼치기 시작하자 그의 검은색 눈동자에 붉은색 실선이 생겨났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앙! 번쩍!!
피이이잉! 콰드득!!
한 줄기의 섬광이 놀라운 속도로 디올라의 오른쪽 눈을 파고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눈을 관통해버렸다.
연희의 광혼탄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디올라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보호막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아까처럼 낚시용 저격이 아닌 광혼탄을 이용해 제대로 된 저격을 하자 당연히 디올라는 그걸 막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