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47화 (47/175)

# 47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왕 [2]

“누나, 제 정신력이 저 녀석의 마안(魔眼) 정도에 휘둘릴 정도로 약하진 않다고 했잖아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란 말 몰라? 혹시 몰라서 그런 거니까 너무 투덜거리지 마.”

“후후, 그래도 다음엔 한 번 믿어봐요.”

“그건 다음에 다시 생각할게. 일단 이 녀석부터 마무리하자.”

사실상 최상급 암괴 수준의 힘을 지닌 디올라였다.

그런데 놈은 그런 힘을 지는 것에 비해 너무나 허무하고 쉽게 잡혀버렸다.

이 모든 건 건과 연희가 디올라를 멀리서 꽤 오랫동안 관찰하고 아주 정확하게 모든 걸 예상한 후 만들어낸 함정 덕분이었다.

철민과 연희 그리고 건이 유적에 들어온 지도 벌써 보름이 흘렀다.

그들은 흔히 ‘코어’라고 불리는 지역에 매우 근접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틀째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보다 유적에 있는 암괴들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이젠 슬슬 연희와 건의 콤비 사냥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나마 지금 잡은 디올라도 온종일 관찰을 한 후 둘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계획을 짠 후에 간신히 잡은 것이었다.

그 얘긴 상급 암괴 이상은 사냥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오, 진짜 잡았나 보네?”

임시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철민은 건과 연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오자 살짝 미소 지으며 얘기했다.

“제가 잡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연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휴, 힘들었어요. 제가 볼 때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아요.”

건은 그런 연희와 다르게 약간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더 강한 적을 쓰러트리고 싶었기 때문에 디올라를 잡으며 한계를 느낀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이제부턴 너희의 단독사냥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앞쪽에 나오는 놈들인 진짜 괴물 중의 괴물이라 할 수 있는 놈들이라서 따로 행동하는 건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철민은 이미 건과 연희가 디올라 사냥에 성공한다고 해도 앞으로는 단독사냥을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코어에 매우 가까워지면서 굉장히 위험한 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셋이 같이 다녀야 했다.

사실 세 사람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소울러들은 대부분 열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팀을 짜서 움직이고 있었다.

“크으, 아쉽다. 그동안 진짜 쏠쏠하게 벌었는데.”

철민의 말을 들은 연희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마라. 아직 코어에 도착한 것도 아니니 앞으로 더 벌 수 있을 거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이곳은 삼 등급을 넘어서 거의 이 등급에 가까운 유적이 확실하다. 그렇단 얘긴 이 앞에 더 많은 사냥감이 있다는 뜻이지.”

“진짜 전 이 유적의 핵이 어떤 것일지 그게 제일 궁금해요. 우리가 차지하기엔 무리가 있겠죠?”

“그건 좀 힘들 거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미 이 유적에 ‘백호가(白虎家)’와 ‘청룡가(靑龍家)’는 물론이고 ‘골드드래곤(Gold Dragon)’과 ‘유령연합’까지 들어와 있는 걸로 파악되고 있어. 핵을 차지하려고 쟤들하고 경쟁하는 것보단 차라리 우린 그 시간에 다른 이득을 얻는 게 훨씬 나을 거다.”

철민은 무리한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가능성이 낮은 핵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신 다른 걸 얻을 생각이었다.

“휘유, 이거 뭐 대한민국 경계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곳은 다 왔네.”

“대충 저 정도라는 거지 아마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많을 거다.”

“하긴 만약 진짜 초월급 이상의 영혼주라도 있으면…… 난리가 나겠네요.”

“그러겠지. 하지만 어차피 우린 핵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무슨 난리가 나도 상관없다.”

“후후,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속은 굉장히 편해지네요.”

“하지만 핵을 노리지 않는다고 해서 여유로울 거라곤 생각하지 마라. 핵은 노리지 않지만, 수호마(守護魔)는 잡을 생각이니까…….”

“켁, 수호마를 잡으신다고요?”

연희는 수호마 얘기가 나오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못 잡을 건 없지. 어차피 핵을 노리는 녀석들이 뚫고 들어가고 남은 방향에 있는 수호마를 잡는 것이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수호마는 핵을 지키는 마지막 관문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유적에는 수호마가 존재했다.

그리고 유적의 등급에 따라 수호마의 힘이 결정되었다.

보통 3등급 이상의 유적에서는 혼마급의 괴물들이 수호마였다.

물론 녀석들은 대부분 9~8등급의 마병(魔兵)급 혼마였지만 놈들은 유적 안에서만큼은 거의 7~6등급의 마객(魔客)급 혼마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유적은 3등급을 넘어서 거의 2등급에 가까운 유적이었다.

그 얘긴 자칫 마병급 혼마가 아닌 마객급 혼마가 수호마로 있을 수도 있단 얘기였고 그 얘긴 결국 거의 5등급인 마군(魔君)급에 가까운 힘을 지닌 혼마가 수호마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혹시라도 마객급 혼마가 등장하면…… 골치 아프지 않을까요?”

“상관없다. 난 오히려 마객급 혼마였으면 좋겠다.”

“괜찮을까요? 건이도 있고 저도 사실 마객급, 아니 마군급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혼마를 상대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마군급에 가까운 힘을 지녔을 뿐인지 본질은 마객급 혼마일 뿐이다. 오히려 너희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로 생각한다.”

철민은 실제로 마군급 혼마를 단독으로도 사냥해본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이아몬드 등급의 헌터였기에 마군급 혼마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이곳이 유적 안이라는 점이었다.

유적에선 철민이 가진 모든 힘을 개방(開放)하는 게 쉽지 않았다.

유적에 가득 차 있는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는 소울러의 몸속으로 침투하진 못했지만, 강림(降臨)이나 승천(昇天) 같은 고대의 영혼이 소울러의 몸과 합쳐지는 현상은 얼마든지 방해했다.

무리한다면 강림과 승천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의 간섭으로 자칫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었다.

강림과 승천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철민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100%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과 같았다.

연희는 그걸 알기에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철민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 마군급 혼마와 마군급 혼마에 필적하는 힘을 지닌 마객급 혼마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차이는 마치 진품과 모조품의 차이와 같았다.

그만큼 차이가 크다는 뜻이었다.

“근데 수호마가 뭐예요?”

철민과 연희의 대답을 한참 듣고 있던 건은 조심스럽게 연희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정작 건은 수호마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연희는 그런 건을 바라보며 작게 웃은 후 건에게 수호마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나마 연희는 수호마 사냥이 어떤 건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건은 수호마가 뭔지도 몰랐다.

그 얘긴 사실 지금 상황에서 더 위험한 건 연희가 아니라 건이란 뜻이었다.

* * * *

수많은 소울러가 핵을 향해 전진하고 있을 그때.

다른 소울러들과 달리 혼자 유적을 돌아다니고 있는 소울러가 한 명 있었다.

팀을 이루고 있어도 버티기 힘든 유적이었지만 그 소울러는 마치 유적이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편안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그러한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한 건 한 마리의 암괴였다.

커다란 근육질의 거인 몸에 개의 머리를 올려놓은 것 같은 모습을 지닌 이 암괴는 ‘크루’라고 불리는 상급 암괴였다.

한눈에 봐도 지금 이 상황은 꽤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크루 앞에 서 있는 소울러는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여유로웠다.

오히려 그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앞으로 뻗었다.

당장에 크루에게 상반신이 뜯겨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크루는 그의 상반신을 물어뜯지 않았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았음에도 그저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버림받은 어둠의 자식…….”

그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측은한 표정으로 크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크루는 마치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스스로 머리를 숙였다.

크르르르르.

포악한 성격으로 아주 유명했던 크루가 이렇게 얌전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크루가 머리를 숙이자 남자는 크루의 머리 위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그 순간 남자의 몸에서 빛이라곤 티끌만큼도 허용되지 않는 완벽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와 크루와 그를 감쌌다.

그랬다.

그는 바로 비검의 육체와 김광택의 영혼을 잡아먹고 스스로 자신을 ‘어둠의 왕’이라 칭한 존재였다.

“이 어둠을 받아들여라. 그리하여 만신창이가 된 너의 혼을 채워라! 그렇다면 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의 왕은 자신이 가진 어둠을 크루에게 나누어주었다.

사실 어둠의 왕은 유적에 들어온 후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가 유적에 들어오게 된 건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비검의 육체를 차지하고 나서 곧장 비검이 현실과 경계의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었다.

경계의 다른 소울러들은 그를 비검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그에게 정보를 전해주었고 그 결과 그는 유적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비검의 지식을 통해 유적이 어떤 곳인지도 정확히 이해한 그는 호기심 때문에 유적을 찾아오게 되었다.

유적에 가까이 오자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쉬웠다.

마이너스 에너지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어둠의 왕은 아주 쉽게 선을 찾았고 누구보다 빨리 유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유적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유적에 가득 차 있던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는 그에게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엔 당황했던 어둠의 왕이었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오히려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는 그냥 몸으로 쏟아져 들어온 후 강제로 몸속에 자리를 잡는 게 보통이었다.

수마나 암괴들 심지어 혼마들도 대충 그렇게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어둠의 왕은 달랐다.

그는 왕이었다.

모든 어둠을 지배하는 왕.

그래서 그는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자기 뜻대로 움직여 하나의 몇 개의 커다란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리곤 그걸 이용해 우선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재구성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어둠의 왕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적은 끊임없이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생성했기 때문에 이 안에선 얼마든지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다.

그는 그걸 이용해 유적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수마와 암괴들은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권속으로만 만든 게 아니라 그들이 공통적인 특징이었던 구멍 난 혼에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채워넣어 강제 각성(覺醒)을 시켜버렸다.

그 결과 수마와 암괴들은 전과는 전혀 다른 괴물들이 되었다.

이건 단순히 등급이 올라가거나 등급이 올라간 것만큼 힘이 증가한 게 아니었다.

어둠의 왕은 그것을 각성체(覺醒體)라고 불렀다.

강제 각성을 겪고 각성체가 된 그의 권속들은 한결같이 전보다 강해졌다.

하지만 강해진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한결같이 어둠의 왕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한다는 점이었다.

어둠의 왕이 내리는 명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해도 수행했다.

죽으라고 하면 죽었고 막으라고 하면 막았다.

심지어 스스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으라고 명령해도 그걸 최대한 수행하려고 노력하며 죽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완벽한 복종이었다.

어둠의 왕이 유적에 들어온 지 보름이 지났는데 그는 그동안 수마 89마리를 각성시키고 암괴 22마리를 각성시켰다.

그 각성체들은 모두 어둠의 왕의 명을 기다리며 유적 곳곳에 조용히 숨죽이고 숨어 있었다.

어둠의 왕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방금 상급 암괴인 크루를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어둠의 왕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더 강한 녀석들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적으로부터 나를 지킬…… 아주 강력한 녀석들이 필요하다.’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흡수해 더욱 강해진 어둠의 왕이었지만 여전히 그는 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없는 욕심.

어쩌면 이게 그가 가진 가장 큰 힘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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