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더 소울(The Soul) - 난전(亂戰) [1]
@ 난전(亂戰).
소울러들이 유적에 들어온 지도 벌써 20일이 흘렀다.
현재 소울러들 중 상위권 그룹에 속하는 소울러들은 슬슬 코어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코어 가장 안쪽엔 수호마라는 강력한 적이 있었지만, 코어 바깥쪽에 있는 암괴들도 굉장히 상당히 강했다.
물론 상위권 그룹의 소울러들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보단 쉽게 길을 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위권 그룹에는 건 일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재 가장 앞서 나가는 그룹보다는 약간 뒤에 처져 있는 상태였다.
애초에 핵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앞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이제 슬슬 가장 앞쪽에 있는 상위권 그룹이 수호마를 상대할 때가 되어 갔다.
그 얘긴 이 유적을 클리어할 순간이 가까워졌단 뜻이었다.
* * * *
그 일은 모든 소울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 일이 일어난 순간 자체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동시다발적으로 코어 안쪽으로 들어온 소울러들을 습격한 한 무리의 괴물들.
겉으로 보기엔 수마와 암괴들 같아 보였지만 정작 놈들이 가진 힘은 수마와 암괴가 가진 힘을 훨씬 더 능가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건 단체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 놈들이 똘똘 뭉쳐서 소울러들을 공격했다는 점이었다.
같은 종류의 수마나 암괴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수마와 암괴였다.
거기에 수마와 암괴가 서로 섞여 있었다.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장면이었다.
원래 암괴는 수마를 잡아먹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수마들은 암괴들을 피해 다녔다. 심지어 수마와 암괴는 같은 수마나 암괴도 힘의 차이에 따라 잡아먹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군단(軍團)이라도 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소울러들을 공격했다.
비교적 약한 수마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가장 약해 보이는 소울러들을 공격했고 조금 강한 수마들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후방에서 지원하는 소울러들을 공격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한 암괴들은 소울러들과 정면 대결을 했다.
완벽한 진형과 전략이었다.
소울러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싸우는 수마와 암괴들을 만난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수마와 암괴를 상대로 이런 전투를 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 상황은 현실이 되었고 소울러들은 사냥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마치 수마와 암괴들이 소울러들을 사냥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소울러 그룹과 마찬가지로 건과 철민 그리고 연희도 이 어처구니 없는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건아, 왼쪽을 막아!”
연희는 건에게 소리치며 재빨리 양손에 들고 있던 돌격 소총을 허공을 향해 난사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
퍼퍼퍼퍼퍽! 퍼펑!
연희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던 한 마리의 수마가 허공에서 광혼탄 세례를 받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그 사이 건은 왼쪽을 파고드는 또 한 마리의 수마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휘리리릭!
퍼퍽!
단검은 정확하게 수마의 머리에 꽂혔지만 그럼에도 수마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돌진했다.
“젠장!”
분명 혼력을 담아 던진 단검이었지만 이미 각성체가 되어버린 수마의 단단한 외피를 뚫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건은 흑룡아를 방패 형태로 만들어 놈의 돌진을 막았다.
꽈과광!
같은 수마였지만 방금 연희가 허공에서 터트린 놈은 마치 마구 복제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하급 수마였고 지금 건이 막은 이 수마는 최소 상급으로 보이는 수마였다.
문제는 하급이고 상급이고 모두 하나같이 분수에 맞지 않게 강하다는 점이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이곳이 유적이라고 해도 하급 수마 정도면 반혼탄 한 방이면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혼탄으로 거의 타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연희가 열심히 만들어온 반혼탄은 모두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급 수마가 그 정도였으니 상급 수마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수마들이 이 정도였으니 암괴들은 더욱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파지지지직!
콰과과과광!
사방으로 강력한 뇌전이 퍼져 나가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로 상급 암괴들은 다시 한 번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세 마리의 상급 암괴를 이런 식으로 철민이 혼자 막고 있었기에 연희와 건이 나머지 놈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만약 철민이 무너졌다면 무조건 연희와 건도 무너졌을 게 분명했다.
휘리릭!
드드드드드드드!
어쨌든 연희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하급 수마를 처리한 후 가볍게 손안에서 두 자루의 돌격소총을 돌린 후 왼쪽을 향해 마구 사격했다.
목표는 당연히 건이 저지한 상급 수마였다.
하지만 상급 수마는 그런 연희의 공격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하급 수마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미치겠네. 도대체 얘들 정체가 뭐야? 수마가 어떻게 저따위로 움직일 수 있는 거냐고!”
연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 지금은 이놈들 정체를 궁금해할 때가 아닌 거 같아요. 사장님이 상대하는 암괴 세 마리를 제외하고 얼마나 남은 거죠?”
건은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남은 적을 확인했다.
큰 위협은 되지 않지만 언제라도 마구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하급 수마 10마리.
마치 차륜전을 펼치듯 교묘하게 치고 빠지며 건과 연희를 괴롭히는 상급 수마 5마리.
그러한 상급 수마를 도와 연희와 건의 반격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중급 수마 5마리.
그리고 철민을 상대하고 있는 상급 암괴 3마리.
마치 복제품처럼 보이는 하급 수마 10마리와 철민이 상대하고 있는 상급 수마 3마리를 제외하면 나면 일단 건과 연희에게 위협이 되는 건 상급 수마 5마리와 중급 수마 5마리였다.
그나마 중급 수마 두 마리와 상급 암괴 한 마리 그리고 하급 수마 10마리를 제거해서 이 정도가 남은 것이었다.
벌써 이십 분 가까이 이어진 전투.
아직 적은 많이 남았지만 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우리가 더 먼저 나가떨어지겠다. 아무래도 이놈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바꿔야겠어.”
연희는 언제라도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자신들을 노려보는 수마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다른 방법이요?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좋은 방법은 없어. 다만…….”
건의 물음에 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적어도 이 지지부진한 대치 상황을 끝낼 방법은 있어.”
연희는 그 말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돌격 소총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곤 양손을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
“건아, 삼 분만 저 녀석들의 공격을 막아줘.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 알았지?”
“네? 그, 그게 무슨?”
연희는 건의 대답 같은 건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자신이 하려던 것을 행하였다.
그녀가 말한 그 방법이란 건 바로 그녀가 가진 세 번째 능력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전우치의 영혼을 통해 얻은 세 가지 능력 중 그 마지막 능력.
초월감각과 영혼도술에 이은 세 번째 능력, 그것은 바로 ‘공혼도문(空魂道門)’이라 불리는 능력이었다.
공혼도문은 전우치가 가지고 있던 도술 능력 중 가장 강력한 능력이었다.
이 능력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도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물건들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꺼낼 수 있는 문을 만들어내는 도술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단순히 물건을 보관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었다.
그 공간에 특정한 물건을 담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은 혼력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기 시작하는데 이 변형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면 원래 담았던 물건과 유사하긴 하지만 실제로 지니고 있는 본질은 전혀 다른 물건이 되었다.
실제로 전우치는 과거 이 공간에 108개의 검을 담고 다녔는데 그가 뽑은 108자루의 검들은 그 성질이 모두 각양각색이었다고 알려졌었다.
이처럼 공혼도문은 아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문제는 공혼도문을 여는 시간이었다.
전우치처럼 단순히 검 한 자루를 꺼낼 수 있는 문을 여는 건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연희가 꺼내려는 건 그런 검 한 자루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건에게 벌어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그그그그.
그녀가 양팔을 벌리자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 둥글게 검은색 아지랑이가 생겨났다.
그리곤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렇게 공혼도문을 열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눈치를 보던 수마들은 귀신같이 지금이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놈들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연희를 향해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것은 건이었다.
분명 연희가 삼 분만 버텨달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선 일 분을 견디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젠장!”
하지만 건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연희가 버텨달라고 했으니 버텨줄 수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된 이상 찬밥, 더운밥을 가릴 수 없었던 건은 일단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츠츠츠츳!
초월감각은 건의 근력과 감각을 극대화했고 무쌍투기는 검이 들고 있는 흑룡아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 전에 얻은 금강야차는 건의 몸을 강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회복력까지 증가시켰다.
모든 준비를 끝낸 건은 흑룡아를 창 형태로 변형시켰다.
아무래도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엔 창 형태가 제일 좋았다.
처억!
건은 흑룡아를 창으로 변형시킨 후 오른손으로 창 중단을 잡고 뒤쪽 창끝을 겨드랑이에 끼운 상태로 앞을 바라보았다.
“와라!”
그리곤 전방을 향해 자신 있게 소리치며 창을 넓게 휘둘렀다.
창에 스며든 무쌍투기가 날카로운 예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창날에 걸리는 모든 걸 갈라버렸다.
드드득!
흑룡아(창)는 순식간에 가장 앞장서서 달려들던 하급 수마 두 마리를 네 조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절대 수마들의 공세를 저지할 수 없었다.
건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급 수마 두 마리가 눈앞에서 조각나며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수마들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빠르게 건과 연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건은 그런 수마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후으으.”
그것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었다.
이건 순간적으로 주변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자신 쪽으로 끌어오는 그런 호흡이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일갈(一喝)!
“으아압!”
건은 그 일갈과 함께 창을 앞쪽으로 강하게 찔러넣었다.
치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꿰뚫고 앞쪽으로 뻗어 나가는 창. 놀랍게도 그 창은 갑자기 허공에서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수십 개의 창은 다시 또 똑같이 하나, 하나가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 결과 불과 몇 초 만에 창은 샐 수도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허공을 뒤덮은 창의 그림자.
이것이 바로 척준경의 독문 무공 중 하나인 천수관음권(千手觀音拳)을 창법으로 변형시켜 만든 천수관음창(千手觀音槍)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늘어난 창들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 하나가 모두 강력한 위력을 지닌 찌르기 공격이었다.
창들은 가장 앞장섰던 남은 8마리의 하급 수마들을 모두 꿰뚫었다.
당연히 하급 수마들은 모두 몸이 터져나가며 한 줌의 혈수(血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깔끔하게 하급 수마들을 모두 먹어치운 천수관음창은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계속 앞으로 뻗어 나갔다.
다음 목표는 중급 수마들.
하지만 중급 수마들은 하급 수마들과 달랐다.
놈들은 하급 수마들이 당하는 그 짧은 순간에 위험을 감지하고 곧장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연히 중급 수마들 뒤에 있던 상급 수마들도 공격을 멈추고 잠시 뒤로 물러났다.
콰과과과과광!
그 결과 천수관음창은 애꿎은 허공과 바닥만 때리며 천천히 사라졌다.
“허억…….”
사실 이번 공격은 건에겐 크게 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천수관음창을 펼쳤다.
원래 여유 있게 천수관음창을 펼치면 이 정도의 위력까진 나오지 않았었다.
워낙 상황이 급했고 일단은 버티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건은 뒤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한 번에 쏟아부으며 전력으로 천수관음창을 펼친 것이었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마들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다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강력한 위력을 보여준 천수관음창이 그들을 저지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진짜 위험한 놈들은 그대로 남았는데…….’
연희가 시킨 대로 막긴 했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분명 건은 무리해서 힘을 사용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단 얘긴 앞으로의 전투에선 건이 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누나는 이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하려는 거지?’
건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오른 그 순간.
그 물음의 대답을 해줄 사람인 연희가 드디어 공혼도문을 완성했다.
철컥철컥, 드르르르르르륵!
공혼도문이 완성되며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놀랍게도 아주 커다란 벌컨포였다.
공혼도문에서 튀어나온 벌컨포를 뒤쪽에서 양손으로 잡은 연희는 건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엎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