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49화 (49/175)

# 49

더 소울(The Soul) - 난전(亂戰) [2]

그 말을 들은 건은 곧장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자 연희는 망설이지 않고 벌컨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벌컨포에서 쏘아진 빛의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허공을 꿰뚫고 수마들에게 쏟아졌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벌컨포의 위력은 굉장했다.

이게 바로 연희가 아끼는 그녀의 세 개의 특수병기 중 하나인 ‘빛의 심판’이었다.

빛의 심판은 대공용 벌컨포를 연희가 자신에게 맞게 개조한 후 공혼도문에서 몇 년을 넣어두고 변형시킨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무기였다.

그 크기는 연희의 덩치보다 훨씬 컸지만, 연희는 아주 능숙하게 뒤쪽 손잡이를 잡고 벌컨포를 난사했다.

그 결과 연희의 앞쪽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중급 수마와 상급 수마는 빛의 심판을 피하거나 막으려고 했지만 애초에 지닌 파워가 달랐다.

빛의 심판이 쏟아낸 빛의 덩어리들은 그냥 일반적인 광혼탄이 아니었다.

연희가 만들어낸 광혼탄은 빛의 심판을 통해 강화되었기 때문에 파괴력은 일반 광혼탄보다 더 높았다.

그런 강화된 광혼탄이 초당 10발씩 쏟아졌으니 당연히 수마들은 그 공격을 버틸 수가 없었다.

정확히 2분.

연희가 빛의 심판을 이용해 전방에 있는 상급 수마와 중급 수마를 모두 쓸어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바로 2분이었다.

스으으으으으으.

빛의 심판에 의해 전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버렸다.

그동안 바닥에 엎드려 빛의 심판에서 쏟아지는 빛의 덩어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은 빛의 심판이 작동을 멈추자 고개를 흔들며 천천히 일어났다.

“누나…… 이건 도대체 뭐예요?”

“헉…… 헉…… 빛의 심판. 내가 가진 ‘스페셜 웨폰(Special Weapon)’ 중 하나야.”

연희는 굉장히 지친 표정이었다.

사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빛의 심판을 2분 동안 연속해서 사용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2분 동안 그녀가 쏘아낸 광혼탄은 총 1,200발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녀가 한순간에 엄청난 양의 혼력을 소모했다는 뜻이었다.

“괜찮아요?”

“어, 괜찮아.”

철컥, 드르르르르륵.

연희는 열려 있던 공혼도문의 문을 닫으며 빛의 심판도 그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사장님을 도와드리자.”

건과 연희는 둘 다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철민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결정적으로 이미 철민은 상급 암괴 세 마리를 상대하면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과연 다이아몬드 등급을 획득한 헌터다운 위용이었다.

비록 강신과 승천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철민은 신화력으로 만든 도(刀)와 진뇌력으로 만든 검(劍)을 휘두르며 상급 암괴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뇌전은 암괴들의 움직임을 제한했고 도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은 암괴들에게 데미지를 주었다.

“난 저격으로 사장님을 도울게.”

스륵, 철컥.

연희는 등에 메고 있는 PSG-1을 꺼내 들며 건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현재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간단한 저격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으음…… 전 이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될 게 없을 거 같은데요.”

건은 연희처럼 먼 거리에서 도와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철민과 상급 암괴들 싸움에 끼어드는 건 오히려 철민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었다.

“그럼 저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반혼탄이라도 주워서 네 권총에 넣어서 쏴.”

사실 더 좋은 건 연희가 던져놓은 돌격소총 HK416을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그 총은 연희에게만 작동되도록 개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건은 어쩔 수 없이 반혼탄을 주워서 자신이 가진 G18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건은 G18의 33발짜리 탄창을 꺼내서 거기에 있던 보통 총알을 다 빼버리고 대신 반혼탄을 채워넣었다.

그 사이 연희는 본격적으로 철민을 돕기 시작했다.

타아앙!

그녀가 한 발씩 저격할 때마다 상급 암괴들은 더욱 움직임이 제한되었고 그 결과 철민의 공격에 더 많은 데미지를 입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확실히 연희의 저격은 철민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 사이 건은 바닥이 나뒹굴던 반혼탄을 이용해 G18의 33발짜리 탄창 4개를 모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준비를 끝낸 건은 양손에 33발짜리의 긴 탄창을 끼운 G18을 들고 재빨리 옆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양팔을 앞으로 뻗으며 상급 암괴들을 겨냥했다.

‘어차피 이 반혼탄으로 저 녀석들에게 거의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귀찮게 할 수 있을 거다.’

반혼탄은 상급 수마에게도 별로 통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당연히 상급 암괴에겐 더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상급 암괴를 노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스윽.

건은 총구가 향하는 방향을 살짝 바꿨다.

그가 노리는 건 상급 암괴가 아니었다.

탕, 탕, 탕!

건은 상급 암괴가 아니라 상급 암괴 근처에 있던 커다란 나무들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의도를 더욱 정확히 얘기하자면 상급 암괴들 옆쪽의 커다란 나무들을 쓰러트려 상급 암괴들의 움직임을 더욱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쩌저적.

건의 총격 때문에 커다란 나무는 밑부분이 너덜너덜해지며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보통의 탄환이었다면 이렇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반혼탄은 보통의 탄환보다 더 파괴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만드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다.

드드드드득! 쿠쿠쿠쿵!

결국, 나무가 쓰러졌다.

그 나무는 건이 의도도 한대로 교묘하게 상급 암괴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렇게 되자 상급 암괴들은 더욱 귀찮아졌다.

아주 치명적인 건 아니었지만 무시하기도 힘든 연희의 저격은 언제 날라올지 몰랐고 철민의 진뇌검(震雷劍)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뇌전은 계속해서 상급 암괴들의 움직임을 제한시켰다.

그 사이 신화도(神火刀)에서 쏟아져 나온 화염은 꾸준히 상급 암괴들에게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상급 암괴들 입장에서는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철민이 뿌리는 뇌전 때문에 반격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뒤로 완전히 빼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이거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파지지지지직!

끄르르르르.

쿠쿠쿠쿵.

드디어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상급 암괴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로써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건 일행과 정체 모를 괴물 무리와의 싸움이 완전히 끝났다.

힘든 싸움이었지만 세 사람 모두 어디 한군데 다친 곳 없이 끝을 낼 수 있었다.

다만 철민을 제외한 건과 연희가 조금 많이 지치기는 했지만 지친 건 충분히 시간을 두고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는 것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후우, 도대체 이 녀석들은 뭐죠? 수마와 암괴가 무리를 이루어 공격하다니…… 거기에 보통 수마나 암괴들과는 전혀 다른 힘을 지니고 있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놈들이네요.”

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아무리 자신의 기억을 뒤져봐도 이런 비슷한 경우가 경계에서 일어났다는 정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이 유적이 지금까지의 유적들과는 다른 건지…… 아니면 뭔가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건지…… 그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연희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철민 역시도 이번 상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경우가 없는 건가요?”

건은 애초에 경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생소했기 때문에 이번 일도 그다지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없지. 암괴가 수마들하고 같이 무리를 이룬다고?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야. 암괴의 주식 중 하나가 수마인데 끝을 모르는 배고픔 때문에 늘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암괴가 수마를 그냥 놔둔다는 건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방금은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철민과 연희가 지금 더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방금 쓰러트린 수마나 암괴들이 남긴 영혼의 조각들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남긴 조각은 보통의 조각과 달랐다.

보통의 조각들은 반투명한 푸르스름한 색을 지녔는데 이 녀석들이 남긴 조각은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과연 이 조각이 원래 영혼의 조각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그대로 낼지도 의문이었지만 더 큰 의문은 왜 조각이 이렇게 변한 것인지였다.

“어차피 여기서 우리고 고민한다고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조금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서 쉬면서 다음 일을 상의하자.”

철민은 거둬들인 검은색 영혼의 조각을 따로 챙기며 건과 연희에게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은 고민보다는 휴식이 필요할 때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들의 휴식을 원하지 않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쩌저저적, 쿠쿠쿵!

커다란 나무들을 쓰러트리며 등장한 그 존재는 키가 거의 15m에 가까운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놈은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었다.

몸 전체가 마치 돌덩어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생긴 놈은 말 그대로 만화나 영화 같은 곳에 나오는 바위괴물처럼 생겼다.

몸의 형태는 분명 인간, 아니 거인과 유사했지만 정확한 모습은 커다란 검은색 바위들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손과 팔 그리고 다리, 머리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달려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연희는 그런 괴물을 바라보며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혼마…… 정확하진 않지만 마객급 이상의 혼마다.”

연희와 달리 철민은 바위괴물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이런…… 하필 지금…….”

그 얘길 들은 연희는 입술을 꽉 물며 중얼거렸다.

“더 큰 문제는 왠지 저 녀석에게서도 방금 우리가 잡은 녀석들에게서 느낀 묘한 이질감 같은 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럼 저 녀석도…….”

“그래, 아마도 방금 싸운 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닌 힘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녀석을 것 같다.”

“크으으으.”

연희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동시에 건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잔뜩 굳은 표정이 되었다.

이 전투는 피하는 게 좋았다.

아무리 아직 철민은 크게 지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연희와 건이 너무 지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전투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얘긴 거의 철민 혼자 이 바위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철민도 지친 건 아니었지만 분명 조금 전 전투로 어느 정도 힘이 빠진 상태였다.

크어어어어어엉!

하지만 바위괴물은 마치 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이 세 사람을 향해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곤 자신의 마구 몸을 흔들었다.

드드드드드드.

그러자 그의 몸에서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튀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쿵쿵…….

땅을 파고드는 열 개의 바윗덩어리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쩌저저적.

땅속으로 파고들었던 열 개의 바윗덩어리들이 마구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 상태에서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드득.

키는 1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지금 눈앞에 있는 바위괴물을 축소해놓은 것처럼 똑같이 생긴 바위 괴물이 10마리나 생겨났다.

그렇게 탄생한 작은 바위 괴물들은 망설이지 않고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최초 나타난 거대한 바위 괴물도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산 넘어 산이구나.”

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뒤에 있는 덩치 큰놈은 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어렵다더라도 앞에 있는 작은놈들을 맡아라.”

철민은 그렇게 말하곤 곧장 뒤쪽에 있는 거대한 바위 괴물을 향해 달려나갔다.

상황이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연희와 건이 지친 상태라고 해도 이렇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건아 어쩔 수 없다. 쟤들을 막아줘. 내가 뒤에서 지원할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기 때문에 연희는 다시 한 번 PSG-1을 들며 소리쳤다.

건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닫곤 곧장 흑룡아를 다시 한 번 창 형태로 변형시켰다.

츠츠츠츳.

그나마 건은 철민이 세 마리의 암괴를 쓰러트릴 때 거의 혼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힘을 회복한 상태였다.

‘모두 열 마리…… 한 마리도 뒤로 보내면 안 된다.’

건과 다르게 연희는 계속해서 혼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 세 사람 중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멀리서 간간이 저격을 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 얘긴 한 마리라도 연희에게 접근하면 그녀가 위험해질 수도 있단 뜻이었기에 건은 단 한 마리도 연희에게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꽈악.

건은 흑룡아(창)를 있는 힘껏 잡았다.

쉽지 않은 싸움.

하지만 이겨내야 하는 싸움.

그렇게 건은 힘든 싸움을 계속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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