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더 소울(The Soul) - 전투의 끝
@ 전투의 끝.
예상대로 전투는 너무나 힘겨웠다.
거대한 바위 괴물을 둘째 치고 일단 건과 연희가 상대하는 작은 바위 괴물만 해도 거의 중급 암괴와 비슷한 힘을 지닌 놈들이었다.
그냥 중급 암괴가 아니라 유적의 영향으로 강해진 상태에서 또 한 번 각성까지 한 괴물들이었다.
당연히 놈들은 강했다.
철민이 어렵게 거대한 바위 괴물을 상대하는 사이 건은 열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을 상대했다.
그는 한 마리도 연희에게 보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작은 바위 괴물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연희가 뒤쪽에서 저격으로 건을 도왔지만 이미 연희는 계속되는 광혼탄 사용 탓에 거의 한계 상태까지 혼력을 쓴 소모한 상태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수는 없지만 그나마 그녀 역시 힘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 계속 광혼탄으로 작은 바위 괴물들을 저격해주었기 때문에 건이 놈들을 좀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거의 사십 분 동안 전투가 이어졌고 건은 열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 중 무려 7마리를 쓰러트렸다.
건과 연희의 상태를 고려하면 정말 기적 같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겨운 전투를 펼쳤는지는 현재 건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헉…… 헉…….”
거침 숨을 내쉬는 건은 여전히 흑룡아(창)을 꽉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상태는 굉장히 좋지 않았다.
혼력은 이미 무쌍투기는 물론이고 초월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바닥난 상태였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다리에 생긴 큰 상처에서는 꽤 심각한 출혈이 있어서 오른 다리 자체를 제대로 쓰질 못하는 상태였다.
또한, 창을 들고 있는 오른팔 말고 반대쪽 왼팔 역시 뼈에 금이 간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만신창이란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망가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건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세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을 막고 있었다.
‘젠장…… 몸이 너무 무겁다.’
이제 건은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줄 수도 없었고 강력한 공격을 펼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와중에도 건식수련법은 계속해서 건의 몸을 회복시키려고 노력 중이었기 때문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공급되는 혼력을 통해 간신히 버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주인님, 도망가셔야 해요. 이대로 버티는 건 자살행위에요.”
한편 지금까지 쭉 건의 등 뒤의 배낭 안에서 꼭꼭 숨어 있었던 백은 계속해서 건에게 도망가라고 얘기했다.
어찌 보면 그나마 건이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건 전투 중에 백이 계속 적들의 기운을 상세히 읽어줬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도망가라고? 내가? 후후후, 차라리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도망은 안 간다.”
건은 이미 척준경과 동기화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망이란 말은 그에게 절대 통용될 수가 없었다.
“에휴…….”
이미 너덜너덜한 걸레처럼 변한 배낭에서 끈질기게 매달려 버티고 있던 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백은 건이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백이 건을 도울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수의 힘 태반을 잃어버린 백이었기에 직접 전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운을 읽고 그걸 건에게 얘기해주는 게 전부였다.
“난 괜찮으니까 저 녀석들의 움직이나 읽어줘…… 무조건 막는다.”
여전히 건은 남은 세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을 막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 같은 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적을 막는다.’
이 한 가지만으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집중시켰다.
정말 놀라운 집중력이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우가아아아!
세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이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건을 향해 동시에 돌진했다.
쿵쿵쿵!
“놈들이 동시에 와요. 아무래도 힘으로 돌파할 생각인 것 같아요.”
백은 재빨리 놈들의 기운을 읽고 소리쳤지만 이미 건도 놈들의 모습만 보고서도 녀석들의 의도를 읽은 상태였다.
‘힘으로 날 짓밟고 지나가겠다…… 이거지?’
어쩌면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하고 좋은 것일 수 있었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건이었기에 이 돌진을 막을만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
“건아, 피해!”
한편 건의 뒤에서 저격을 준비하던 연희 역시 작은 바위 괴물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건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건은 그녀의 외침을 무시했다.
그녀의 말대로 하면 위험한 것은 건이 아니라 연희였다.
그래서 건은 피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압!”
건은 있는 힘껏 기합을 내지르며 마지막 남은 모든 혼력을 흑룡아(창)에 집중시켰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일단 온 힘을 다해 막아보자고 생각한 건. 그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힘을 모두 쥐어짜 최후의 초식을 펼쳤다.
특별한 초식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찌르기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그 평범한 찌르기 공격엔 건이 마지막으로 쥐어짜 낸 모든 힘이 담겨 있었다.
꽈과과광!
창은 세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 중 가장 앞장섰던 바위 괴물과 부딪쳤다.
그리곤 놀랍게도 그 작은 바위 괴물의 몸을 꿰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 찌르기였는데 그 안에 담긴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창은 그렇게 첫 번째 바위괴물을 꿰뚫고 두 번째 바위 괴물과 부딪쳤다.
쩌저저적!
이번엔 바위 괴물을 꿰뚫진 못했다. 하지만 대신 바위 괴물의 몸에 꽂히며 그 바위 괴물을 뒤로 밀어냈다.
그 결과 바로 뒤따라오던 세 번째 바위 괴물은 두 번째 바위 괴물과 부딪쳤다.
꽈과광!
주르르르륵.
그렇게 두 마리의 바위 괴물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믿기 어려웠지만, 건은 바위 괴물들의 돌진을 막아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건은 말 그대로 자신이 지닌 힘을 모두 쥐어짜 냈다. 그 결과 그는 정신을 유지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건.
그는 결국 이렇게 마지막 한 초식에 모든 걸 쏟아 부은 후 바닥에 쓰러졌다.
쿵!
“건아!!”
연희는 그런 건을 보며 소리쳤지만, 건은 연희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건은 이번 공격으로 남은 세 마리의 바위 괴물을 모조리 쓰러트리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론 겨우 한 마리의 괴물만 쓰러트릴 수 있었다.
아직 두 마리의 바위 괴물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흑룡아마저 건이 정신을 잃자 자연스럽게 검은색 안개 형태로 변하며 건의 오른팔로 돌아와 버렸다.
두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이 살아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잃은 건도 그리고 연희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희는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일단 건을 보호하기 위해 건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동시에 두 마리의 바위 괴물도 다시 한 번 건과 연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이번엔 진짜 확실히 짓밟아서 마무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대로는 건도 그리고 연희도 너무나 위험했다.
뭔가 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살아남기가 힘들어 보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런데 바로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지이이이잉!
우르르르릉, 콰과과광!!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충격파가 코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퍼져 나가며 동시에 유적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저적!
땅바닥이 마구 갈라졌고 동시에 그 위에 있던 거대한 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갑자기 유적 자체가 붕괴하는 느낌이었다.
연희는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핵을 강제로 취했다!’
유적을 유지하는 건 핵이었다.
그 핵이 없어지면 당연히 유적도 사라졌다.
핵을 올바른 절차에 따라 거둬들이면 유적의 붕괴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면 당연히 유적 안에 있던 사람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유적이 붕괴하기 전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핵을 올바른 절차를 무시하고 무작정 강제로 취하면 유적은 급속도로 붕괴하였다.
이러면 유적을 탈출할 시간이 매우 촉박해졌다.
재빨리 유적이 붕괴하며 만들어지는 틈을 찾은 후 그 틈을 통해 탈출해야 하는데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탈출해야 해!’
이렇게 되자 이제 바위 괴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유적이 완전히 붕괴 되기 전에 탈출하지 못하면 영영 무너진 유적의 잔해와 함께 경계의 틈에 끼어버릴 수가 있었다.
바로 그때 연희의 등 뒤에서 익숙한 외침이 들렸다.
“내가 틈을 찾을 테니 건이를 데리고 와.”
철민이었다.
철민은 유적의 붕괴를 느끼자마자 곧장 거대한 바위 괴물에게 전력을 다해 강한 한 방을 꽂아넣어 뒤로 밀어낸 후 건과 연희를 향해 달려온 것이었다.
“네!”
철민이 왔으니 틈을 찾아 탈출하는 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연희가 건을 구해서 철민에게 가는 것뿐이었다.
연희는 철민의 말을 듣자마자 재빨리 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적의 붕괴 때문에 잠시 멈칫했던 두 마리의 바위 괴물이 다시 건을 향해 다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젠장!’
연희는 녀석들보다 빨리 건을 구출해야 했다.
전력을 다해 건을 향해 달리는 연희.
그녀는 건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 역시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최대한 빨리 건을 향해 달렸다.
파파파팟!
그러한 노력 때문일까? 다행히 연희는 작은 바위 괴물들보다 빨리 건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건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3m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손을 뻗어서 건을 낚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 그녀와 건을 향해 날아왔다.
크어어어어엉!
철민이 잠시 뒤쪽으로 밀어냈던 그 거대한 바위괴물이 분노에 찬 모습으로 건과 연희를 향해 아주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던졌다.
워낙 커다란 바윗덩어리였기 때문에 이대로는 건과 연희 모두 바위에 깔려 버릴 것 같았다.
파지지직!
연희가 잠깐이나마 마지막을 생각했던 그 순간 다시 한 번 변화가 일어났다.
한 줄기의 뇌전이 허공을 꿰뚫고 날아와 연희와 건에게 날아가던 바윗덩어리에 꽂힌 것이었다.
콰과광!
바윗덩어리가 허공에서 폭발하며 연희와 건은 다행히 그것에 깔려 죽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철민이 황급히 바윗덩어리를 폭발시키긴 했지만, 워낙 급하게 폭발시킨 것이라 완벽하게 가루로 만들진 못했다.
그 결과 커다란 돌조각들이 연희와 건 사이에 쏟아졌고 연희는 그걸 피해 잠시 옆으로 몸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쿵, 쿠쿠쿵!
바닥에 쏟아지는 돌조각들.
연희가 몇 초만 더 빨랐어도 건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 몇 초가 모자라 일단 옆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연희는 다시 일어나 곧장 건을 잡으려고 했다.
건을 데리고 철민에게로 돌아가면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다시 한 번 그들에겐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우르르르릉, 쩌저저저저저저적!
또 한 번 강하게 뒤흔들리는 유적.
그리고 그 흔들림과 함께 생긴 땅바닥의 커다란 균열.
문제는 그 균열이 건을 향해 뻗어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돼!!”
연희는 목청이 터질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건을 잡기 위해 있는 힘껏 뻗은 그녀의 손.
하지만 그녀의 손은 건의 몸에 닿질 못했다.
콰과과과과광!
결국, 균열은 건을 집어삼켰다.
“안돼!!!!!!!!!!!!!!!!!!!!!!!”
그 모습을 본 연희는 절규하며 소리쳤다. 그리곤 당장 균열 안으로 뛰어들어서라도 건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막은 건 철민이었다.
꽈악!
철민은 균열을 향해 달려나가려는 연희를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늦었어. 포기해야 해.”
“하, 하지만 사장님…….”
눈물을 흘리는 연희. 그녀는 건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우리도 죽는다. 틈을 찾았으니 일단 탈출부터 하자.”
철민 역시 건을 구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나 가슴 아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건과 함께 죽을 순 없었다.
그는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연희를 강제로 어깨에 들쳐메고 곧장 자신이 찾은 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유적은 그렇게 그들이 틈을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과광!
갑작스러운 유적의 붕괴가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유적 붕괴의 참사로 상당히 많은 소울러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안타깝게도 건은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적어도…… 밖에서 보기엔 그러했다.
* * * *
낑낑…….
질질질질…….
빛이 보이지 않은 어두운 공간.
그 공간에서 움직이는 두 개의 그림자.
그 중 하나는 돼지였다. 그것도 작은 새끼 돼지.
작은 새끼 돼지, 아니 백은 온 힘을 다해 건을 끌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크으, 죽겠다…….”
놀랍게도 백과 건은 살아 있었다.
물론 유적을 탈출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백은 일단 아주 미약하지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정신을 잃고 있는 건을 끌고 가는 중이었다.
어차피 어떻게 된 거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뭔가 있는 것 같은 방향으로 가보는 게 제일 낫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특히 그 이상한 기운이 특별히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그쪽으로 가보는 중이었다.
“정말 속의 계약 한 번 잘못했다가 이게 뭔 고생이야.”
백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었어도 속의 계약이란 패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어차피 그는 건과 속의 계약으로 묶여 있었고 건이 살아야 그도 살 수 있었다.
“일단 가보자.”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은 백은 건을 물고 열심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뭐가 됐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백은 멀리 보이는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빛을 발견하자 백은 더 힘을 내서 그쪽으로 건을 끌고 갔다.
그리고 결국 백은 그 빛의 근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문이었다.
그 문에 새겨진 신비로운 문양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 문양은 하나의 동물처럼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새 같은…… 그것도 다리가 세 개 달린…… 신비로운 새 같은 문양이었다.
물론 백은 이게 무슨 문양인지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문양과 똑같은 문양이 건에 어깨에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다.
이것은 바로…… 삼족오의 문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