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51화 (51/175)

# 51

더 소울(The Soul) - 삼족오의 인장 [1]

@ 삼족오의 인장.

삼족오 문양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거대한 문을 바라보던 백은 그 문을 열기 위해 있는 힘껏 밀어보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백은 어쩔 수 없이 문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건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건의 몸 상태는 최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건이 익히고 있는 건식수련법은 꾸준히 그 몸을 회복시키는 중이었다.

특히 그의 몸은 이 정도의 부상을 이미 몇 번이고 경험했었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회복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엔 외부에서 회복을 도와주질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백은 건 옆에서 그가 회복되는 걸 지켜만 보았고 건은 조금씩 몸을 회복시켜나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 백이 문앞에 도착한 지 30시간 정도가 되었다.

그쯤 되자 건의 몸은 상당히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물론 아직은 정상적인 몸 상태와는 거리가 멀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활동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상태였다.

“으으음…….”

오랜 기다림 끝에 건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건 옆에서 배고픔을 참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백은 재빨리 건의 몸 위로 올라가 건의 얼굴을 마구 핥기 시작했다.

“……으으…… 그…… 만 핥아.”

건은 손으로 백을 저지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오오, 일어났네요!”

“후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고?”

“설명하려면 길어요.”

“길어도 상관없으니까 설명해봐.”

건은 우선 정확한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세 마리의 작은 바위 괴물을 막은 것뿐이었다.

“네, 설명해드릴게요.”

건과 다르게 모든 상황을 생생히 경험한 백은 건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건은 지금 자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여기에 와 있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백의 얘기가 모두 끝나자 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연희 누나랑 사장님은 무사하신 거야?”

“네, 아마도 두 분은 무사하실 거예요. 계속 주인님을 구하려고 노력하다 시간이 지체되어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분들의 실력을 고려하면 분명 탈출했을 거예요.”

“다행이네.”

두 사람이 무사할 것이란 얘길 들은 건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근데 도대체 여긴 어디야? 난 탈출도 못했다며? 근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지?”

건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며 백에게 물었다.

“사실 저도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저도 그냥 미약하게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문을 발견했죠.”

백도 그 물음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경계의 틈에 갇힌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뭐라 얘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문? 아, 이 문을 얘기하는…….”

백이 문 얘길 하자 건은 그때야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에 있는 거대한 문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 문을 바라본 순간 건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문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한 개의 문양.

그 문양은 건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이건…….”

건은 그 문양, 아니 삼족오 문양을 보는 순간 자신의 영혼 속 저 깊은 곳에서 아주 묘한 끌림이 흘러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러세요?”

백은 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건은 백의 물음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영혼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끌림은 자연스럽게 건이 문쪽으로 움직이게 하였다.

스윽.

건은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주인님, 그 문 안 열려요.”

백은 그런 건을 말렸지만 역시나 건은 백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건은 그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특별히 힘을 줘서 밀진 않았다.

건은 그저 문에 손을 올려놓아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

“헉!”

백은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그그그그그그긍

마치 자동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점점 뒤로 밀려나며 열리는 거대한 문.

그 문 뒤쪽엔 동서남북 사방에 사신도(四神圖) 그려진 커다란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빛 덩어리가 존재했다.

바로 그 빛 덩어리가 건의 영혼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건은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빛 덩어리를 향해 걸어갔다.

“주, 주인님!”

백은 우선 그 빛 덩어리의 정체를 고민해본 후 다가가자고 하려고 했지만 이미 건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스윽.

빛 덩어리에 가까이 간 건은 망설이지 않고 그 빛 덩어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마치 빛 덩어리가 폭발이라도 하듯 사방으로 강력한 빛이 방출되었다.

번쩍!

그리곤 이어진 잠깐의 정적.

그 빛은 사신도가 그려진 커다란 석실 전체를 집어삼켜 버린 후 그 공간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오로지 하얀 빛만 존재하는 공간.

그 공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뭐야? 잔뜩 기대했는데…… 겨우 이런 풋내기 꼬맹이라니…….”

먹빛의 검은 갑주를 입고 있는 남자.

겉모습만 봐서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군림(君臨) 기세는 건으로 하여금 당연히 존댓말을 사용하게 하였다.

“누구시죠? 그리고 여긴…… 어디죠?”

“하아, 사신(四神)의 힘까지 사용해 만든 안배였는데…… 왜 결과가 이 모양인 거지? 뭐가 잘못된 거지?”

그는 뭔가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누구십니까? 도대체 여긴 어딘가요?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건은 계속 극존칭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이건 건이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검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에게서 흘러나온 기세가 그에게 강요한 것이었다.

척준경과 맹약을 맺으며 정신력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졌던 건이었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지금 이 기세는 도저히 저항하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 보다 네가 누군 지부터 알아야겠다. 넌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지? 이 공간으로 끌려들어 올 수 있는 이들은 내가 정한 분명한 기준을 통과하는 해야 하는데…… 넌 아무리 봐도 그 기준에 한참 부족한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럴 일은 절대 없지만…… 설사 우연히 끌려들어 왔다고 치더라도 어떡해 사신대문(四神大門)을 연 거지? 그 문은 진짜 명확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절대 열 수 없는 문이었을 텐데…….”

“그냥 열렸습니다.”

“뭐? 그냥 열렸다고?”

“네.”

“도대체 뭐지? 사신영웅진(四神英雄陣)이 잘못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설계하고 내가 완성한 진법인데 실수가 있었을 리가 없잖아?”

검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는 계속 혼자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정적으로 방금 사신대문은 강제로 열리지 않았다. 그렇단 얘기는 저 녀석이 내가 정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건데…… 아무리 봐도 풋내기인데.”

그는 다시 한 번 건을 쳐다보았다.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건이 지닌 모든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게 바로 그가 가진 ‘전능안(全能眼)’의 위력이었다.

건은 도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의 정체도 궁금했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검은색 갑주를 입은 남자는 당장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는데 문이 열렸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저 녀석이 내 전능안으로도 알 수 없는 뭔가를 지녔다는 건가?”

남자는 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전능안은 거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무결(完全無缺)한 건 아니었다.

전능안도 분명 한계는 있었다.

물론 그 한계가 좀 터무니없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네가 무엇을 가졌는지 좀 더 자세히 봐볼까?”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며 천천히 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며 건을 휘감았다.

이것은 전능안과 함께 그가 가진 여러 힘 중 하나인 ‘군림광휘(君臨光輝)’였다.

군림광휘는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었다.

그렇기에 건은 그 지배의 힘에 휘감기며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몸의 통제권을 빼앗겼다.

군림광휘로 건을 제압한 남자는 아주 능숙하게 건의 영혼을 들여다보았다.

정확히는 영혼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건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스스스슷!

그 과정에서 그는 당연히 건과 맹약을 맺은 척준경도 볼 수 있었다.

‘호오, 상당히 강력한 혼과 연결이 되어 있었군. 혹시 이 영혼 때문에 문이 열린 건가? 아니야…… 아무리 이 영혼이 지닌 힘이 대단해도 그것은 맹약을 통해 이어진 힘이기 때문에 내가 설정한 조건을 만족하게 할 수가 없어.’

남자는 살짝 의심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스르르.

계속해서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남자.

그런데 문득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녀석 영혼…… 왜 이렇게 한없이 깊지? 이미 맹약을 맺은 영혼과의 연결고리를 지나친지도 한참 지났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건 정말 이상한 것이었다.

보통 맹약을 맺은 영혼과의 연결고리는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얘긴 곧 그 연결고리를 발견했으면 거기가 바로 영혼의 끝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건은 달랐다.

연결 고리를 지나쳐 한참을 더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深淵)과 같았다.

‘설마…….’

그 순간 남자는 뭔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떠올린 순간 그는 더욱 빠르게 건의 영혼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스스스스슷!

계속 더 안쪽으로 파고드는 남자.

그리고 그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건의 영혼 속 깊은 곳에서 그것을 보았다.

‘허어!!!!’

조금 전 살짝 예상하긴 했었지만, 설마 진짜 그것을 이곳에서 볼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것이었나…… 그래서 이 녀석이 사신영웅진으로 끌려들어 오고 사신대문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열린 것이었나?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겠군.’

남자는 이제야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건에게는 조건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조건을 초월한 ‘그것’을 지니고 있었기에 사신영웅진이나 사신대문이 그렇게 반응한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신영웅진과 사신대문을 그를 조건에 들어맞는 대상으로 본 게 아니라 그냥 자신들을 만들어낸 주인으로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건이 지닌 ‘그것’…….

바로 ‘그것’이 지금 건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가 오래전 가졌던 힘의 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연(因緣)이란 것이 이런 건가? 난 단순히 나와 맹약을 맺을 존재를 내 손으로 찾으려 했던 것뿐인데…… 그것이 나를 인장의 주인과 만나게 하다니…… 이런 게 바로 운명이란 건가?’

남자는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그에게 세상을 평정할 힘을 주었던 그것.

‘삼족오의 인장.’

놀랍게도 건은 그 삼족오의 인장을 지니고 있었다.

‘신은 나 고담덕에게 무엇을 원하는 건가?’

남자, 아니 고담덕은 이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세상의 모든 걸 자신의 발아래 두었던 광개토대제(廣開土大帝).

건이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바로 그 광개토대제 고담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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