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52화 (52/175)

# 52

더 소울(The Soul) - 삼족오의 인장 [2]

“으으음.”

군림광휘에 제압당하며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건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건에 대한 모든 걸 파악한 담덕은 조용히 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 빛은…… 뭐였죠?”

“군림광휘. 내가 가진 몇 가지 능력 중 하나다.”

“군림광휘?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건은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군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난 고담덕이라고 한다.”

“고담덕? 고담덕이 누구…… 아…… 설마…….”

건은 고담덕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아주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금방 그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광개토대제?”

“호오, 날 아는군.”

담덕은 건이 자신을 알아보자 재미있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건이 담덕을 알아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고담덕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만큼 광개토대제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었다.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겁니다.”

“하하하, 열심히 흔적을 남긴 보람이 있군.”

“그런데 당신이 왜 여기에 계신 거죠?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 거죠?”

건은 왜 자신이 광개토대제와 만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여긴 내가 경계의 틈에 직접 만든 사신영웅진 안이다.”

“아까부터 계속 사신영웅진이란 얘길 하시는데…… 그게 뭔가요?”

“사신영웅진은 내가 만든 진법이다. 사신의 힘을 이용해 경계의 틈에 영원히 존재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만족하게 하는 이들을 그 틈으로 끌어당기도록 설계된 진법이지. 범위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이고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겠군.”

“그럼 제가 그 조건이란 걸 만족했기 때문에 이곳으로 끌려들어 온 것인가요?”

“아니, 내가 원하는 조건에 턱없이 부족하다.”

“네? 그럼 제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거죠?”

“일단 그걸 설명하려면 내가 왜 사신영웅진을 만들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오래전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 덕분에 모든 세상을 내 발아래 둘 수 있었지.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힘을 지닌 나라고 해도 결국 끝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랐을 무렵 난 남들과 다르게 끝 이후에 일들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

담덕은 천천히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난 영혼석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결국 그 영혼석이 나에게 영혼의 계약을 제시할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지. 그런데 난 영혼의 계약을 맺는 것까지는 좋은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 나를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게 하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 그래서 난 내가 가진 힘을 이용해 나와 맹약을 맺을 사람을 내가 선택하기로 했지.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사신영웅진이다.”

“아…….”

담덕의 얘길 들은 건은 사신영웅진이 어떤 것인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왜 사신영웅진에 끌려들어 왔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신영웅진이 어떤 건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 조건을 만족하게 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곳으로 끌려들어 온 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넌 조건을 만족하지도 못했으면서 이곳으로 끌려들어 왔고 거기에 사신영웅진의 마지막 관문인 사신대문도 아무렇지도 않게 열었다. 왜 그랬을 것 같나?”

담덕은 오히려 건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제가 그걸 알면 이렇게 답답해하고 있겠습니까?”

“후후후, 잘 생각해 봐라. 이유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그리고 넌 이미 그 이유를 직접 경험하고 보기까지 했다.”

“제가 이유를 경험하고 보았다고요? 그게 무슨…….”

건은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문양 때문에 말을 멈췄다.

“삼족오…….”

자신의 어깨에도 있었고 사신대문에도 있었던 삼족오의 문양. 문득 건은 담덕이 얘기하는 그 이유라는 게 이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봐라. 내가 간단하다고 했지 않느냐. 맞다. 삼족오. 정확히는 삼족오의 인장이 널 이곳으로 인도했다.”

“삼족오의 인장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건의 예상은 맞았다.

삼족오의 인장이 바로 건과 담덕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였다.

“네 어깨에 있는 그 삼족오 문양. 그것을 삼족오의 인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삼족오의 인장이라는 게 뭐죠? 왜 제 어깨에 이런 게 있는 것이고 또 이게 담덕님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삼족오의 인장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가장 특별한 힘의 표식이다.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후대로 전해지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 역시 그 인장을 가졌었다는 사실이다.”

“담덕님이요?”

“그렇다. 나 역시 네 몸에 새겨진 그 인장과 똑같은 인장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 인장을 통해 그 누구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힘을 지녔었다.”

“특별한 힘이요? 그건 뭐죠?”

“후후후, 그건 나에게 듣기보단 네가 직접 알아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자면 나 이전에 그 인장을 가졌던 위대한 영웅이 한 명 있었다.”

“그게 누구죠?”

“그걸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사실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고…… 만약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예상이 맞는다면 넌 언젠가 분명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또 무슨 뜻이죠?”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어차피 운명이 널 자연스럽게 이끌어줄 것이다.”

담덕은 건이 이해하기 힘든 말을 계속했다.

“좋습니다. 그럼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빠져나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나요?”

“당연히 있다.”

“그게 뭐죠?”

“나와 맹약을 맺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신영웅진은 널 경계의 틈 밖으로 밀어내며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전 당신과 맹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건은 이미 척준경과 맹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담덕과 맹약을 맺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건이 알기엔 그랬다.

보통의 소울러들은 자신이 맹약을 맺은 영혼보다 더 높은 등급의 영혼을 얻을 기회가 오면 특별한 의식을 통해 맹약을 해지한 후 다시 맹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이 특별한 의식은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또한 맹약을 맺고 있는 영혼이 5등급 이상이면 워낙 영혼의 힘이 강력해 의식으로도 해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건은 척준경과의 맹약을 절대 해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담덕과 맹약을 맺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넌 맹약을 맺을 수 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너는 가능하다.”

“왜 저는 가능한 거죠?”

“왜냐하면…… 네가 삼족오의 인장을 지녔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는 삼족오의 인장으로 귀결되는군요. 하지만 정작 전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후후후, 어차피 넌 아직 삼족오의 인장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다. 그 얘긴 곧 나와 맹약을 맺어도 넌 내가 지닌 힘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란 뜻과 같다.”

“그러니까 이것도 결국 제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문제겠군요?”

이젠 건도 담덕이 말하는 의도를 대충 읽고 있었다.

“그래, 이 모든 건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내가 너에게 미리 답을 알려주면 오히려 넌 더 큰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충 이해는 했습니다. 그럼 이제 전 담덕님과 맹약을 맺으면 되는 건가요?”

“아, 그 전에…… 잠깐 네가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또 뭐가 남았나요?”

“가장 중요한 것이지. 이 시점에 삼족오의 인장이 나타났다는 건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인장’들도 나타났다는 뜻이다.”

“다른 ‘인장’들은 또 뭔가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인장들이 존재한다. 삼족오의 인장도 그 중 하나지. 물론 감히 삼족오의 인장을 따라올 수 있는 인장은 존재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다양한 인장들은 모두 나름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동시에 세상에 나타나는 건가요?”

“그래, 인장들은 모두 같은 시대에 나타난다. 나 역시 과거에 수많은 인장의 주인들과 싸웠었지. 참고로 인장의 주인은 인장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인장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인장은 인장을 끌어당겨 서로 경쟁을 하게 만든다. 이건 태곳적부터 내려온 천명(天命)과 같은 것이라 거부할 수 없다. 아마 너도…… 네가 가진 인장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나면 내가 말한 천명이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뭔가 되게 거창하네요.”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 어차피 인장의 주인이 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뭘 물어도 답을 해주실 것 같지 않으니…… 맹약을 맺고 끝내죠.”

“포기가 빠르구나.”

“포기가 빠른 게 아니라 적응이 빠른 겁니다.”

“그런가? 하하하, 알았다. 적응이 빠른 거로 하자.”

어차피 맹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기에 담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 고담덕 너와의 맹약을 원한다.”

건은 담덕이 내민 손을 붙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백건. 저도 당신과 맹약을 원합니다.”

맹약의 선언이 완성되자 손을 붙잡은 두 사람의 몸이 강하게 빛나게 시작했다.

“백건, 이제부터 너와 나는…….”

번쩍!

빛의 폭발과 함께 들려오는 마지막 한 마디.

“하나다!”

이 한 마디로 맹약이 완성되었다.

놀랍게도 건은 담덕이 말한 대로 척준경과의 맹약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또 다른 맹약을 맺었다.

삼족오의 인장을 가진 이에게만 허락된 매우 특별한 권능.

그 권능으로 건은 두 번째 맹약을 맺을 수 있었다.

* * * *

“크크크크크크크크.”

암흑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한 남자.

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웃고 있었다.

“대단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아주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던 남자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견훤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이 영혼 아주 마음에 들어.”

남자는 바로 어둠의 왕이었다.

비검의 육체와 김광택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어둠의 왕.

그런데 놀랍게도 어둠의 왕은 어느새 김광택의 영혼 대신 견훤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육체는 여전히 비검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이 달랐다.

견훤은 무려 5등급의 영혼이었다.

그것도 거의 4등급에 가까운 5등급의 영혼이었다.

어둠의 왕은 그런 영혼을 어둠으로 물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견훤의 영혼이 유적의 핵이었기 때문이었다.

핵을 지키는 수호마들도 어둠의 권속으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던 어둠의 왕은 결국 유적의 핵이었던 견훤의 영혼을 발견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는 견훤의 영혼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자신이 가진 모든 어둠의 힘과 유적에 존재하는 막대한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이용해 그 영혼을 타락시켰다.

그리곤 동시에 현재 자신의 영혼을 대신하고 있던 김광택의 영혼과 그 타락한 견훤의 영혼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소울러들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어둠의 왕은 너무나 쉽게 두 영혼을 교환했다.

그 결과 어둠의 왕은 견훤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김광택의 영혼은 한 마리의 혼마로 만들 수 있었다.

그것도 그냥 혼마가 아닌 각성한 혼마였다.

어둠의 왕이 유적에서 얻은 것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비록 유적이 그렇게 급속도로 붕괴할 것을 예상하지 못해 자신이 거둬들인 모든 권속을 데리고 나오진 못했지만 적어도 각성한 마객급 혼마 둘을 데리고 나왔다.

김광택까지 합치면 각성한 마객급 혼마만 셋이나 데리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왕 본인은 강력한 5등급 영혼인 견훤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둠의 왕은 유적에서 너무나 많은 걸 얻은 상황이었다.

“이제 이 정도라면 슬슬 내 왕국을 건설해도 되겠군.”

이렇게 많은 걸 얻었지만, 여전히 어둠의 왕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는 진짜 왕이 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만의 왕국이 필요했다.

“우선 이 녀석들이 부릴만한 어둠의 병사들을 만들어야겠군.”

유적에서 얻었던 권속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면 훨씬 수월할 수 있었지만, 그 순간 그들을 모두 챙길 순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병사들을 만들어야 했다.

“쳇, 이건 좀 귀찮겠군.”

하급 수마들 정도는 얼마든지 어둠의 힘으로 찍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 어둠의 왕이 원하는 병사들은 그런 허약한 것들이 아니었다.

어둠의 왕이 원하는 병사는 중급에서 상급 암괴들 수준의 것들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만족할 수 있었다.

어둠의 왕은 마객급 혼마 세 마리가 각각 암괴와 수마 군단을 이끄는 식으로 세 개의 군단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 정도라면…… 자신의 왕국을 지키는 최소한의 병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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