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54화 (54/175)

# 54

더 소울(The Soul) - 심안(心眼) [2]

* * * *

연희는 철민과 함께 정확히 세 시간 만에 산청읍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건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크게 안도했다.

무너지는 유적에 건을 두고 나온 지 딱 한 달이 흐른 상태였다. 당연히 그 한 달 동안 연희와 철민은 생각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건은 경계의 틈에서 하루 정도만 머물렀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현실에선 무려 한 달이나 시간이 흘러 있었다는 걸 듣고 상당히 놀라는 중이었다.

“한 달이라니…… 전 기껏해야 며칠 정도밖에 안 흐른 줄 알았는데.”

“경계의 틈바구니는 현실과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온 거지? 거기에 갇혔다가 돌아온 이들은 극히 드문데…….”

“하하, 드물다는 건 결국 빠져나온 사람도 있다는 거잖아요? 저도 재수가 좋아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건은 자세한 걸 얘기할 순 없었기 때문에 그냥 대충 재수가 좋아서 탈출했다고 얘기했다.

“뭐가 됐건 어쨌든 다행이다.”

연희와 철민은 굳이 건이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건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점뿐이었다.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말고 올라가자.”

“아, 올라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고 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건은 지금 배가 너무 고팠다.

세 사람은 산청읍에서 대충 밥을 챙겨 먹은 후 곧장 카페 헤븐으로 돌아왔다.

건은 카페 헤븐으로 돌아온 후 곧장 몸부터 추슬렀다.

여전히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건은 일단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건은 몸을 회복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우선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안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학교였다.

무려 한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번 학기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결국, 건은 좀 아쉽더라도 이번 학기는 대충 마무리하고 휴학을 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오랫동안 대학교를 졸업하는 게 꿈이긴 했지만, 이제는 건이 처한 현실이 너무 많이 바뀌며 그 꿈이 별로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건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 졸업이란 꿈을 대신할 다른 꿈을 생각해 보았다.

‘프로 헌터’

건은 이젠 정말 진심으로 프로 헌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막연히 프로 헌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아주 구체적으로 프로 헌터가 될 계획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얘길 철민과 연희에게도 했다.

당연히 두 사람은 건의 결정을 기분 좋게 반겨주었다. 그와 함께 프로 헌터가 되는 길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얘기도 해주었다.

연희도 프로 헌터가 되기 위해 몇 년간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물론 건은 연희와 달랐다.

연희와 철민은 모두 건이 앞으로 일 년 정도만 더 노력하면 프로 헌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만큼 건이 지닌 재능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프로 헌터는 재능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건 역시 연희가 그랬던 것처럼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했다.

“앞으로는 수련 시간을 더 늘린다. 그리고 연희에게 여러 종류의 외물(外物) 사용법을 배워라.”

철민은 프로 헌터가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건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외물이란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물건을들 의미했다.

그중에는 특히 과학과 경계의 힘이 만나 탄생한 것들이 많았는데 철민은 프로 헌터라면 그런 장비들 역시 완벽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프로 헌터가 되려면 적어도 통혼을 절반 이상 완성하는 건 물론이고 짧게나마 강신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제일 까다로운 승천은 어차피 통혼과 강신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와야 가능한 것이니까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만 최소한 통혼만큼은 무조건 절반 이상 완성해야 한다.”

통혼을 절반 이상 완성한단 얘긴 일단 척준경이 지닌 힘들은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과 같았다.

이건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힘을 완벽하게 사용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용하는 것과 완벽하게 사용하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당장 건이 사용할 수 있는 세 가지 능력인 ‘전투본능’, ‘무쌍투기’, ‘금강야차’만 해도 전투본능은 대략 50%, 무쌍투기는 대략 20% 그리고 마지막 금강야차는 겨우 10%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했다.

이 힘들을 완벽하게 100%로 사용한단 얘긴 결국 통혼을 완성했다는 뜻이고 또한 통혼을 완성했다는 건 맹약을 맺은 영혼을 완벽하게 지배하며 마스터(Master) 등급의 소울러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물론 철민이 건에게 마스터 등급의 소울러가 되라고 얘기한 건 절대 아니었다.

철민이 건에게 제시한 최소한의 조건은 대략 숙련자(엑스퍼트:Expert) 등급을 만족하는 최소한의 조건과 같았다.

숙련자 등급도 자세히 보면 최하급에서 최상급까지 아주 다양한 등급이 존재했지만 어쨌든 최하급 숙련자(엑스퍼트) 등급만 되어도 프로 헌터가 되는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하게 한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상 숙련자 등급만 되어도 소울러들 중 상위 40% 안에는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절대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철민의 말에 대답했다.

어차피 철민이 말한 것들은 건 역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는 프로 헌터가 되기로 한 이상 어설프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건은 단순히 프로 헌터가 되는 걸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최고의 프로 헌터가 되는 걸 목표로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정말 이를 악물고 더욱 노력할 생각이었다.

* * * *

“경계의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외물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그 외물들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나뉘게 돼.”

연희는 철민의 말대로 건에게 본격적으로 외물에 대해 알려주는 중이었다.

“크게 두 가지요?”

“그래,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흔히 과학이라 불리는 현실 세계의 학문이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힘과 결합해 만들어진 ‘영혼공학(靈魂工學)’의 외물이야.”

“영혼공학…… 이름만 들어도 대충 감이 오네요.”

“맞아. 그 이름 그대로 영혼의 힘과 과학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물건들이야. 예를 들자면 전에 네가 보았던 ‘소울 슈트(Soul Suit)’나 내가 직접 만들었던 ‘반혼탄(半魂彈)’ 같은 것들이 바로 영혼공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남은 두 번째 것은 뭔가요?”

“두 번째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체 오랫동안 이 세상을 떠도는 고대의 유물들…… 소울러들은 그걸 ‘영혼유물(靈魂遺物)’이라고 부르지.”

“영혼유물이요? 그런 것도 있나요?”

“응, 있어. 다만 상당히 희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네가 보질 못했던 거야. 네가 알만한 걸 예로 들자면…… 아더왕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Excalibur) 같은 게 바로 영혼유물이야.”

“허어…… 그런 물건이 실존하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다만 아쉬운 건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수많은 영혼유물은 오래전 ‘치욕의 시대’ 때 엄청나게 약탈을 당했다는 점이야.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영혼유물이 희귀해졌지.”

“치욕의 시대는 또 뭐예요?”

“아…… 넌 아직 경계와 현실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지.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 하나…… 일단은 짧게 핵심만 얘기해줄게.

“네.”

“우선 넌 혹시 경계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알고 있어?”

“아뇨. 모르고 있어요.”

“그래, 당연히 모를 거야. 왜냐하면, 나도 모르거든.”

“네? 그건 무슨…….”

“아무도 몰라. 경계가, 소울러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다만 그동안 이런저런 연구가 있었고 그런 연구 끝에 아주 오래전부터 경계가 존재했을 것이란 예상만 있을 뿐이야.”

“아주 오래전이란 건 얼마나 오래되었다는 건가요?”

“적어도 이 세상에 인간들이 인간으로써 살아가면서부터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간다…… 막연한 개념이긴 한데 아주 오래된 것 같기는 하네요.”

“오래되었지. 어쨌든 결국 경계는 현실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가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그리고 현실이 그러했듯이 경계의 세상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발전하고 또 더욱 커져 왔어. 아마도 예전에는 경계의 세상이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젠 외인들까지 경계의 세상에 들어오게 되며 더욱 커진 상태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계속 경계의 세상이 커지면 종국엔 현실과 경계가 서로 뒤섞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를 할 정도야.”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경고네요.”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쨌든 지금은 그 얘길 하자는 게 아니라 경계와 현실의 상관관계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그쪽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러한 경계의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영혼석(소울 스톤)’이야.”

“영혼석이요? 그건 소울러들과 영혼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 아닌가요?”

“그래, 영혼석은 소울러들과 영혼을 연결해주지. 그뿐 아니라 강력한 힘을 지닌 영혼과 계약을 맺고 그 영혼을 이 세상에 계속 남아있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어.”

“아, 그런 것들 때문에 영혼석이 경계의 세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신 거군요.”

건은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연희는 그런 건의 대답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이런 것들은 그저 영혼석의 부수적인 역할이 뿐이야.”

“네? 부수적은 역할이요? 그렇게 중요한 역할이 부수적이라고요?”

“그래, 부수적인 거야. 영혼석의 진짜 역할은 바로…… 흔히 국가(國家)라는 아주 큰 개념의 영역을 지키는 것…… 그게 바로 영혼석의 진짜 역할이야.”

“국가를 지킨다고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간단해. 세상엔 수많은 영혼석이 있고 그 영혼석들은 각각 소속된 국가를 수호하고 있어. 참고로 영혼석은 기본적으로 불멸(不滅)이었지만 실제로는 불멸이 아니야. 왜냐하면, 소울러들이 영혼석을 없앨 수 있거든.”

“소울러들이 영혼석을 왜 없애요?”

“간단해. 너 대충 이 세상의 역사를 알고 있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를 정복했어. 그런데 그거 알아? 사실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현실에서 그 국가의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영혼석을 파괴하는 거야. 영혼석을 파괴하지 못하면 완전히 그 나라를 정복한 게 아니란 뜻이지.”

“그러니까 소울러가 영혼석을 없앤다는 게 다른 나라의 소울러가 파괴한다는 뜻이었나요?”

“당연하지. 자신이 소속된 영혼석은 기본적으로 공격조차 할 수 없어.”

“근데 영혼석이 파괴되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요?”

“간단해. 영혼석이 파괴되면 더는 그 국가에서는 소울러가 탄생하질 않아. 맹약을 이어줄 매개체가 없어지는 거니까 당연한 일이지. 물론 기존에 존재하던 소울러들은 그대로 있겠지만 새로운 소울러가 유입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지. 새로운 물이 유입되지 않으면 아무리 큰 저수지라고 해도 언젠가는 완전히 말라버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야.”

“근데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는데…… 영혼석이 없어지는 것과 국가가 망하는 게 무슨 관계가 있죠?”

“넌 소울러가 단순히 경계의 세상에서만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거야?”

“아니었나요?”

“당연히 아니지. 넌 외인(外人)이 왜 생겨났는지도 모르는구나? 경계는 이미 현실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실제로 많은 사람이 소울러의 능력이나 경계의 힘을 이용해 현실에서 많은 걸 이뤄내고 있고…… 반대로 현실에서 경계와 전혀 상관없이 많은 걸 이뤄낸 이들은 자연스럽게 경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당연히 그들은 경계의 힘을 탐냈지. 그래서 외인이 생겨난 거야.”

“아…… 외인이 그렇게 생겨났군요.”

“외인은 경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고리라고 할 수 있지. 어쨌든 그런 식으로 경계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고 그런 이유로 경계를 유지하는 영혼석이 파괴되면 그 국가는 자연스럽게 국가를 유지할 힘을 잃게 되는 거야.”

“근데 아무리 그대로 그건 좀 억지 아닌가요? 경계의 세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래 봤자 현실에선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반대로 생각해보는 건 어때? 넌 혹시 네가 가진 경계의 힘이 현실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작은 차이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모르겠어?”

건은 연희의 말을 듣는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학교 행사가 생각났다.

다 진 축구 경기를 혼자 힘만으로 이기게 하였던 그 상황. 그걸 떠올린 건은 연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차이가 절대 아니었군요.”

“그래, 경계의 힘은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결정지을 만큼 대단히 중요해.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확실히 경계의 힘이 강력한 국가는 현실의 국력도 강한 게 보통이야.”

“그럼 반대로 경계의 힘이 약하면 국력도 약하겠군요?”

“보통은 그렇지. 뭐, 이건 백 프로 정확한 건 아니야. 가끔은 예외도 있거든.”

“좋습니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럼 새로운 국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들은 영혼석이 없는데 어떻게 국가를 만든 거죠?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국과 같은 나라는 애초에 영혼석이 존재할 수가 없는 국가잖아요?”

“내가 중요한 걸 하나 얘기하지 않았구나. 영혼석은 파괴도 가능하지만, 거기에 추가로 흡수와 약탈도 가능해.”

“네?”

“아주 간단한 거야. 네가 제일 처음 물어보았던 ‘치욕의 시대’…… 그게 언제일 것 같아?”

“설마…….”

“맞아. 일제강점기야. 그때 일본은 우리의 영혼석을 흡수하기 위해 별짓을 다 했었어. 혼력의 흐름을 끊으려고 한반도의 혈(穴)을 찾아 쇠말뚝을 박고…… 수많은 소울러를 잡아서 고문했지. 덕분에 당시 소울러들 중 많은 수가 독립운동을 했었어. 너도 잘 알고 있을 도마 안중근 선생님 같은 분도 아주 유명한 소울러였지.”

“허어…….”

건은 연희에게 치욕의 시대의 정확한 진실을 듣곤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했는데 그게 정말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