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더 소울(The Soul) - 프로 헌터 [2]
무신혼은 간단히 말하자면 대무신 척준경이 지녔던 무공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건은 이제 겨우 무신혼을 개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압!”
촤아아!!
건은 짧고 강한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두 줄기의 날카로운 강기(罡氣)의 조각이 튀어나와 허공을 꿰뚫고 앞으로 날아갔다.
이것이 바로 건이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신혼의 무공인 ‘혼강편(魂罡片)’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수련을 꾸준해서 두 조각을 날리는 거지 처음엔 한 조각도 겨우 날리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두 개의 혼강편은 곧장 트윈헤드우르클의 두 개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눈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콰득, 콰드득!!
두 개의 혼강편은 정확하게 트윈헤드우르클의 두 머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충격파에 휘말려 쓰러졌던 트윈헤드우르클은 단지 몸을 살짝 일으켰을 뿐이었는데 그 순간 혼강편이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트윈헤드우르클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이 한 방에 무너졌다.
혼강편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다.
건은 무신혼을 익힌 그 순간 무신혼의 패시브 효과라고 할 수 있는 무신패기(武神覇氣)를 얻은 상태였다.
무신패기는 척준경의 고유한 힘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마이너스 에너지의 상성과 같은 힘이었다.
그렇기에 혼강편에 자신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두 눈을 꿰뚫린 트윈헤드우르클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쿠쿵.
깔끔한 마무리.
건은 불과 몇 분 만에 상급 암괴를 잡았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프로 헌터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역시 아직 파천신력과 무신혼은 한참 더 다듬어야 해.’
결과는 완벽한 성공이었지만 건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파천신력은 더욱더 완벽하게 상대방을 제압했어야 했고 혼강편은 지금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뿌렸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무신혼만큼은 혼강편 말고도 하나 정도는 더 다른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
혼강편도 좋은 무공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물론 건은 무신혼의 무공이 아니라고 해도 척준경이 지녔던 기본 무공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본일 뿐이었다.
진짜 척준경이 익혔던 무공의 정수는 모두 무신혼에 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무조건 무신혼을 더 완성해야 했다.
* * * *
이제 상급 암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요리할 수 있던 건은 종종 경계를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다.
그럼에도 철민은 아직 건을 완전한 프로 헌터로 인정하지 않았다.
연희가 볼땐 충분히 프로 헌터가 될만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 같았지만 역시나 철민은 특유의 빡빡한 기준을 고수하는 중이었다.
“사장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가 볼 땐 어지간한 프로 헌터들보다는 훨씬 나을 거 같은데요.”
“어지간한 프로 헌터로 만들 거였음 애초에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에휴, 당연히 잘 알긴 하죠. 덕분에 헌터 협회의 정식 프로 헌터 자격시험을 통과했음에도 사장님 밑에서 이 년을 더 배운 거였잖아요.”
“헌터 협회의 자격시험은 너무 느슨해. 그러니까 개나 소나 다 프로 헌터가 돼서 헌터 망신은 다 시키고 있잖아.”
“휴, 그래도 헌터가 수호자(가디언)나 유령(고스트)보단 훨씬 되기 어렵잖아요.”
“걔들은 그냥 그쪽 세력에서 활동만 하면 되는 건데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지. 차라리 암살자(어쌔신) 얘들하고 비교하는 게 낫겠다.”
“그렇게 따지면 암살자도 특별히 자격시험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왜 없어? 있어. 다만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자격시험이라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이야.”
“그래요? 뭐,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장님의 그 빡빡한 기준에 맞춰서 프로 헌터가 되는 건 너무 힘들어요.”
“너는 했잖아.”
“제가 해봤으니까 이런 얘길 하는 거죠.”
“걱정하지 마. 내가 볼 때 건은 너보다 훨씬 빨리 내 조건을 충족시킬 것 같아. 오히려 지금 너 때보다 더 높은 기준을 세우고 있는데…… 이 녀석 성장 속도가 장난이 아니야.”
“켁, 제가 배울 때보다 높다고요? 사장님 도대체 프로 헌터를 키우시려는 거예요? 아니면 다이아몬드등급의 프로 헌터를 키우시려는 거예요?”
“글쎄…… 난 그저 뭐가 되건 평범하진 않을 녀석이라고만 예상하는 중이다.”
“어휴, 진짜 사장님은 도저히 못 말리겠네요.”
“조급해할 거 없다. 어차피 이 녀석은 내가 없었었도 괴물이 될 녀석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겼을 뿐이야.”
“아무리 제가 말을 해도 들으실 것 같진 않지만 일단 다른 건 몰라도 이번 프로 헌터 자격시험은 치르게 하죠.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인데…… 내년까지 기다리게 하는 건 좀 아닐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신청서를 보내놨다.”
철민 역시 자격시험은 올해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건의 성장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내년까지 자격시험을 미룰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요? 그럼 건이도 알고 있는 거예요?”
“당연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쪽으로 떠났다.”
“네? 진짜요? 아…… 그래서 어제 급하게 저한테 반혼탄 천 발을 또 사간 거였군요.”
“그랬어? 뭐, 준비를 철저히 해서 가라고 하긴 했는데 반혼탄을 그렇게 많이 챙겨 갔을지는 몰랐네.”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적어도 반혼탄을 할인해 줄 수는 있었는데…… 근데 괜찮을까요? 아직 백련김가 쪽에선 건이를 포기하지 않은 것 같던데…….”
“이번 년도 자격시험 일정이 워낙 급하게 나와서 너한테 말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어젯밤에 출발했고 그래서 지금 너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백련김가 문제는 어차피 이제는 건이기 스스로 풀어야 한다. 난 그것 역시 녀석의 성장을 돕는 하나의 요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걔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요.”
철민과 달린 연희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뭘 짓을 하던지 그걸 이겨낼 수 있어야지.”
“으으으, 사장님 밑에서 프로 헌터가 되려면 목숨이 한 세 개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네 자랑하는 거지? 이런 내 밑에서 프로 헌터가 된 최초가 너잖아.”
“솔직히 저도 사장님 밑에서 진짜 많은 위기가 있긴 했지만…… 지금 사장님이 건이에게 하는 걸 보니 전 그나마 많이 봐주신 거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그래? 하긴 널 가르치면서 생각했던 여러 가지를 건에게 적용시키다 보니 조금 빡빡해진 건 사실이다.”
“이건 조금 빡빡한 게 아니라 엄청나게 빡빡한 거라고요.”
“그만큼 건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자격시험은 모레 있을 예정이다.”
“모레요? 어디서 하는데 벌써 출발한 거예요?”
“이번엔 남해에 있는 협회 소유의 제법 큰 무인도들이라고 하던데…… 나도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꽤 머네요. 저는 설악산이었는데…….”
“지원자가 좀 많았나 봐. 한국 헌터 협회 창설 이래 가장 많은 지원자라고 하더라고.”
“에이, 그건 늘 그랬어요. 경계의 세상이 점점 커지니까 당연히 헌터 지망생도 늘어나죠. 그래서 최다 지원자는 매년 갱신되고 있어요.”
“그래? 나 때는 정말 지원자가 적었는데 차이가 제법 큰 가보네.”
“소울러가 늘었으니 당연히 그만큼 헌터 지망생도 늘어나죠. 똑같은 원리로 수호자들이나 유령은 물론이고 암살자들도 늘었어요.”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증가 폭이 큰가 보네.”
“특히 요즘 더 많이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흐음, 이것도 나중에는 문제가 좀 되겠네.”
“하지만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긴 그렇지.”
경계의 세상이 넓어지고 소울러가 늘어나는 건 연희 말처럼 일개 소울러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흐름이었고 그 흐름은 일방적이었기에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
남해의 이름 모를 무인도.
정확이는 대략 수십 개의 작은 무인도들이 모여 있는 이름 없는 군도(群島)였다.
헌터 협회는 그러한 섬들에 각각 수많은 결계석을 설치해서 모든 섬을 일정의 시험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건은 지금 그곳에 있었다.
정확히 상당히 큰 유람선에 탑승한 상태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설마 이런 시험일 줄은 몰랐네.’
건은 연희에게 헌터 자격시험이 어떤 시험인지 대충은 들었었지만 매년 시험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에 큰 참고가 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나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헌터 자격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시험의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차례대로 준비된 무인도에 들어가서 12시간을 버티면 되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버틴다는 표현보다는 사냥한다는 표현이 맞았다.
경계 안에는 수마와 암괴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것들은 프로 헌터가 되려는 수준의 소울러라면 무난히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격시험은 그 수마와 암괴들을 협회가 정해놓은 일정 기준 이상으로 제거하면 되었다.
어차피 최대 상급 암괴까지만 등장했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할 일도 별로 없었다.
포인트는 결국 정해진 시간에 누가 더 많은 괴물을 사냥할 수 있느냐였다.
만에 하나 정말 자신이 위험하다 생각되면 미리 지급한 비상 호출기를 통해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헌터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응시자들은 대부분 이 정도 상황 정도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건은 응시 번호 44번이었다.
이번 자격시험엔 무려 80명에 가까운 소울러들이 응시한 상태였다.
늘 그렇듯 역대 최고 응시 인원을 갱신했는데 작년 응시 인원이 50명이었던 걸 보면 올해가 얼마나 유독 응시 인원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건은 그런 사정을 잘 몰랐다.
그는 그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만 느끼며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렇게 유람선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 지 하루.
드디어 건의 차례가 돌아왔다.
건이 시험을 치를 섬은 16번 섬.
그곳은 특별한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평범한 작은 무인도였다.
건은 보트를 타고 섬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는 시험 감독관이라 할 수 있는 협회 관계자가 이런저런 주의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다.
그저 뭘 조심하고 어떤 게 실격 사유인지 알려줬을 뿐이었다.
건은 대충 그가 해준 말을 머릿속에 담아놓고 담담한 표정으로 보트에서 내려 무인도에 상륙했다.
건을 내려준 보트는 곧장 유람선으로 돌아갔다.
그 보트를 다시 만나려면 12시간을 기다리든지 아니면 그 전에 무인도에 존재하는 수마와 암괴를 모두 잡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구조 요청을 하는 것뿐이었다.
“야, 일어나. 이제부터 시간은 금(金)이다. 바로 사냥을 시작하자.”
건은 배낭 안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던 백을 흔들어 깨우며 얘기했다.
자격시험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내는 게 이득이었다.
섬 안에 있는 수마와 암괴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랐지만, 건은 무조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안에 모든 괴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럴 자신도 있었고 실력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건을 내려주고 유람선으로 돌아가는 보트 위.
거기에 타고 있던 이번 자격시험 시험관 중 한 명인…… 김세원.
그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뭔가 굉장히 찝찝한 것 같은 표정……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치 어쩔 수 없다는 것 같은 표정을 동시에 짓고 있었다.
‘이건 그저 자격시험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십육 번 섬에서 갑작스럽게 혼마가 등장한 건…… 어디까지나 사고일 뿐이다.’
그는 애써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켰다.
협회의 감독관으로써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협회의 감독관이기 이전 백련김가의 장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가문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 녀석이 사라지고 혼마만 조용히 처리하면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러면 난 대충 사고로 이번 일을 무마시키면 되는 거야. 정말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야.’
계속되는 자기 합리화.
김세원은 그렇게 자신이 16번 섬에 놓고 온 심각하게 오염된 9등급 영혼주(靈魂珠)에 대해 잊기로 했다.
당장에 혼마로 변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던 그 영혼주.
아마 어쩜 지금쯤이면 이미 혼마가 탄생했을지도 몰랐기에 그는 더욱 16번 섬에 관한 관심을 끊기로 했다.
관심을 끊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적어도…… 앞으로 12시간 동안은 그 누구도 그 섬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할 예정이었다.
백련김가의 치밀한 함정.
건은 그 함정에 정확하게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