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더 소울(The Soul) - 눈에는 눈, 피에는 피 [1]
@ 눈에는 눈, 피에는 피.
사냥을 시작한 건은 백을 이용해 수마와 암괴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건에게는 최상급을 제외한 수마들은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그나마 건이 어느 정도 힘을 써야 하는 상대는 중급 또는 상급의 암괴들 뿐이었다.
헌터 협회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수마와 암괴가 섬에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지만, 건은 대충 다른 응시자들의 수준을 파악한 후 그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 만에 자격시험을 클리어하는지 눈여겨본 후 그런 경우들을 모두 종합해서 섬에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의 괴물들이 있는지 예측을 해놓았었다.
‘중급에서 상급 암괴는 두세 마리…… 그리고 하급 암괴나 상급 수마들로 열 마리 정도를 채운 후 나머진 중급 이하의 수마들로 서른 마리 정도를 채워놓은 것 같다.’
재미있는 건 건의 이러한 예측이 생각보다 정확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측은 맞았는데 정작 건이 사냥을 시작한 16번 섬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 예측이었다.
지금의 16번 섬은 다른 모든 섬과 달랐다.
그 이유는…… 감독관인 김세원이 백련김가로부터 받아서 몰래 가져다 놓은 심각하게 오염된 9등급 영혼주 때문이었다.
그것은 간신히 외부 봉인으로 영혼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영혼주였다.
혼마가 탄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소울러가 영혼과 맹약을 진행하다 오히려 영혼에게 잡아먹혀서 혼마가 되는 경우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혼주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어둠에 오염되어 스스로 영혼주의 봉인을 깨고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였다.
사실 둘 중 더 무서운 건 첫 번째 경우였다.
그 경우엔 영혼이 소울러를 잡아먹으면서 탄생한 혼마는 혼마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그대로 계승하며 동시에 소울러의 육체마저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知性)은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마(魔)의 기운에 물든 악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경우로 탄생하는 혼마는 보통의 혼마와 다르게 ‘진혼마(眞魂魔)’ 불렀다.
진혼마는 소울러의 영혼을 잡아먹어야 한다는 그 특성상 그리 자주 나타나질 않았는데 혹시라도 진혼마가 나타나면 보통의 혼마보다 한 등급 정도는 더 위로 취급되었다.
그 얘긴 마병급 진혼마는 마객(魔客)급의 혼마와 같았고 마객급의 진혼마는 마군(魔君)급 혼마와 같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보통 대부분의 혼마는 이러한 첫 번째 경우보단 두 번째의 경우로 더 많이 탄생했다.
아무래도 세상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영혼주들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 경우보단 두 번째 경우처럼 몇 가지 이유로 어둠에 물들어 영혼이 스스로 영혼주를 깨고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영혼이 어둠에 물들어 스스로 영혼주를 깨고 나올 경우는 아무래도 세상과 연결되는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육체가 없었기 때문에 전생에 지녔던 인간의 지성은 지닐 수 없었다.
하지만 대신 오로지 파괴만을 추가하는 마성(魔性)은 훨씬 더 강력해져서 진혼마보다 더 파괴적인 성향이 있는 괴물이 되었다.
김세원이 16번 섬에 던져 놓은 영혼주도 바로 이 두 번째 상황에 해당하는 영혼주였다.
간혹 이렇게 영혼주가 깨지기 전에 소울러가 오염된 영혼주를 발견하면 외부봉인이라는 방법을 통해 영혼주가 깨지며 혼마가 탄생하는 걸 막기도 했다.
김세원, 아니 백련김가는 그러한 영혼주를 16번 섬에 던져 놓은 것이었다.
당연히 외부봉인은 제거한 상태였다.
그렇게 외부봉인이 사라진 상태로 경계의 세상 안에 던져졌으니 당연히 급격히 혼마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9등급의 혼마라면 마병(魔兵)급 혼마였다.
하지만 마병급 혼마라도 혼마는 암괴와는 절대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력한 존재였다.
드드드드드드!
콰지직!
경계에 존재하는 마이너스 에너지를 가득 흡수한 영혼주는 결국 박살이 나버렸다.
그와 동시에 영혼주에서 흘러나온 한 줄기의 혼기(魂氣)는 자연스럽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혼기는 순식간에 육체를 소유했고 그 얘긴 혼마가 태어났다는 뜻이었다.
키는 대략 5m 정도에 한 개의 커다란 뿔을 가진 도깨비처럼 생긴 얼굴과 두꺼운 갑주를 입은 것 같은 몸.
그리고 그 갑주 같은 몸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가시들…….
거기에 놈은 자기 몸만큼이나 커다란 대검을 들고 있었다.
전생에 어떤 영혼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무예를 익힌 장군(將軍)급의 영혼이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보통 이렇게 혼마가 탄생하면 주변에도 영향을 미쳤다.
혼마가 탄생하며 흘러나온 어둠의 기운이 새로운 수마나 암괴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역시 몇 마리의 암괴와 수마가 혼마가 탄생한 곳에서 같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놈들은 만들어지는 그 즉시…… 모조리 혼마에게 잡아먹혔다.
크아아아아아아!
콰드드득!
혼마는 암괴와 수마들을 통째로 씹어먹었다.
그리곤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놈이 찾는 건 또 다른 먹잇감이었다.
방금 탄생한 혼마의 먹성은 마치 굶주린 암괴들이 가진 먹성과 비슷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놈은 주변에 아주 괜찮은 먹잇감이 하나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
먹잇감을 발견한 놈은 곧장 그 먹잇감을 향해 움직였다.
적어도 지금 당장 놈에게 가장 중요한 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주인님, 방금…….”
백은 건을 향해 뭔가를 다급히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건은 그런 백의 말을 끊었다.
“알아. 위험하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
건은 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것은 건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뭐지? 분명 암괴는 아닌 거 같은데…….’
갑작스럽게 느껴진 굉장히 위험한 느낌의 기운.
건은 그 이질적인 기운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휘릭, 철컥! 철컥!
건은 두 자루의 G18을 뽑아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정체 모를 적을 향해 겨누었다.
우지직! 콰앙!
바로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적이 커다란 나무들을 모조리 쓰러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건은 놈이 나타나자마자 놈을 향해 사정없이 반혼탄을 난사했다.
타타타타탕!
하지만 놀랍게도 반혼탄은 모조리 막혔다.
놈이 특별히 반혼탄을 막은 것도 아니었다.
반혼탄은 전부 그냥 놈의 몸을 맞고 튕겨 나왔다.
티티티티티팅!
건은 반혼탄으로는 놈에게 손톱만큼의 타격도 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곤 곧장 G18을 다시 허리춤에 꽂았다.
‘반혼탄이 이렇게 무기력하다는 건 확실히 놈이 암괴가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결국 저 녀석은…….’
건은 반혼탄을 이용해 일종의 실험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혼마라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거의 확실한 것 같았다.
왜 헌터 협회의 자격시험을 보는데 혼마가 등장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게 더 먼저였다.
건은 놈이 혼마라는 걸 확인한 순간 미련없이 협회에서 자신에게 주었던 비상 호출기를 눌렀다.
분명한 건 혼마 사냥은 절대 자격시험에 포함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빠르게 협회를 호출하는 게 옳았다.
건은 호출만 하면 금방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딸각, 딸각.
건은 가지고 있던 호출기를 열심히 눌렀지만 정작 호출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협회에서 알려준 대로라면 붉은색 불빛이 반짝이며 특유의 신호음이 울려야 했고 이걸 세 번 이상 길게 눌러야 했는데 정작 붉은색 불빛도 그리고 특유의 신호음도 없었다.
그냥 계속 먹통이었다.
‘이건 또 뭐야?’
건은 호출기가 먹통이란 걸 확인한 순간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혼마가 나타나고 비상 호출기는 먹통이다.
이 모든 걸 우연으로 생각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뭔가가 있다.’
건은 모든 걸 정확하게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란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는 건가?”
지금 이 순간에도 혼마는 건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건은 혼마를 사냥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유적에서 철민과 연희와 함께 혼마와 싸워본 적은 있었지만 그땐 말 그대로 한 손을 거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우선 눈앞에 있는 혼마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건은 혼마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
크어어어엉!
혼마는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검을 건을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건은 몸을 돌리며 그 검을 피했다.
꽈과광!
아슬아슬하게 건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검은 땅바닥을 찍었다.
건은 혼마의 공격을 피하던 그 순간 이미 가슴 언저리에 꽂혀 있던 단검 한 자루를 뽑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을 피한 그 순간 곧장 혼마를 향해 단검을 날릴 수 있었다.
파팟!
혼력이 담긴 단검히 혼마의 미간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혼마는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자신의 뿔로 그 단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내버렸다.
따다당!
‘역시 혼마라는 건가?’
건은 그 모습을 보며 곧장 뒤쪽으로 몸을 빼냈다.
그렇지만 혼마도 그걸 그냥 보고만 있진 않았다.
크어엉!
혼마는 다시 한 번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건을 향해 따라붙었다.
그리곤 또다시 대검(大劍)을 휘둘렀다.
건의 옆구리를 향해 정확히 휘둘러진 대검.
이걸 피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쩌저저정!
그래서 건도 피하는 것 대신 막는 걸 선택했다.
어느새 흑룡아를 대도(大刀) 형태로 바꾼 건은 그 대도의 도면(刀面)으로 혼마의 대검을 막았다.
주르르륵.
막긴 막았지만, 워낙 혼마의 힘이 강해 옆으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건은 옆으로 밀리는 와중에도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강화 계열인 건가?’
건은 겉모습과 함께 지금 방금 직접 경험한 대검의 공격에 실린 힘을 봤을 때 자신을 공격한 이 혼마가 강화 계열에 속하는 놈이란 걸 알아냈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었다.
만약 상대가 특수 계열이나 혹은 변화 계열 같은 건이 상대하기 까다로워하는 계열의 혼마였다면 상황은 더 최악이었을 게 분명했다.
상대가 강화 계열 쪽이란 걸 확인한 건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투본능(戰鬪本能) 발동(發動)!
츠츠츠츳
건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전투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무쌍투기(無雙鬪氣) 개방(開放)!
그리고 동시에 양팔과 흑룡아(대도)에 무쌍투기를 주입했다.
심안(心眼) 발동(發動)!
마지막으로 심안까지 활성화 시켰다.
모든 준비를 끝낸 건.
그는 황금색으로 변한 오른쪽 눈동자로 혼마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번 싸워보자.”
담담한 표정의 건.
적어도 그는 상대가 혼마라고 해서 겁을 먹거나 긴장을 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