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더 소울(The Soul) - 눈에는 눈, 피에는 피 [2]
“배가…… 고프다…….”
건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는 혼마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허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있는 먹잇감을 통째로 먹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먹잇감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따다다다당!
건은 혼마가 휘두른 검을 다시 한 번 막았다.
‘크윽.’
막긴 막았는데 흑룡아(대도)를 타고 전해지는 강력한 힘은 건의 손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봐도 완전한 강화계열 혼마인게 확실하네.’
혼마와 대략 10분 정도밖에 싸우지 않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상대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특별한 기술은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검에 실린 기운이나 대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은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완전한 강화계열의 혼마란 사실은 건에게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었지만 그렇다고 혼마가 갑자기 암괴급으로 내려가는 건 절대 아니었다.
혼마는 혼마였기 때문에 당연히 건은 혼마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너무 빠르고 강력하다. 이래서는 내가 반격할 틈이 나오질 않아.’
따당, 따다다당!
건은 다시 한 번 대검을 막으며 뒤로 뒷걸음질쳤다.
혼마가 휘두르는 대검이 워낙 빨랐고 거기에 강력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이처럼 간신히 막거나 혹은 피하는 게 전부였다.
반격하지 못한단 얘긴 결국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계속 밀리기만 하면 무조건 내가 불리하다.’
전투가 장기전이 되면 당연히 건보다는 혼마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혼마는 적어도 자신이 지닌 영혼의 정(情)이 소멸하기 전까진 얼마든지 날뛸 수 있었지만 소울러인 건은 자신이 가진 혼력을 다 쓰면 더는 싸우기가 힘들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쩌저저정, 꽝!
주르르르륵.
그런 생각을 하던 건은 혼마가 아주 힘차게 휘두른 대검을 아슬아슬하게 흑룡아(대도)로 막아냈다.
하지만 역시나 대검에 실린 힘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뒤로 한참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크윽.”
건은 이대로라면 막으면서 누적된 충격 때문에 쓰러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
‘어쩔 수 없다. 무리해서라도 주도권을 내 쪽으로 가져와야 한다!’
건은 뒤로 밀려나면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자마자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하압!”
앞쪽으로 손을 내밀며 강하게 기합을 넣는 건.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서 강력한 충격파가 허공을 꿰뚫고 혼마에게 쏟아졌다.
드드드드드드!
순간적으로 혼마를 휘감는 충격파.
파천신력이라 불리는 이 힘은 혼마를 쓰러트릴 정도로 대단히 완성도 있는 힘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혼마를 휘청이게 할 정도는 되었다.
어차피 건도 지금 자신이 지닌 파천신력의 힘으로 혼마를 쓰러트려서 제압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파천신력은 혼마의 공격 흐름을 잠시나마 끊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다행히 건의 의도는 정확하게 성공했다.
파천신력 덕분에 잠시 시간을 번 건은 잠시 해제해두었던 심안을 다시 발동시켰다.
번쩍!
건의 오른쪽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바뀌자 당연히 건이 보는 시야도 완벽히 달라졌다.
‘역시 아까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기운이 대검과 상체 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 얘긴 상대적으로 하체 쪽이 약하단 뜻이지.’
파팟!
건은 혼마를 향해 뛰어들며 대도를 한 손으로 잡고 아주 낮게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남은 한 손으로는 혼강편을 쏘아냈다.
피이잉!
지금의 건은 최대 세 발의 혼강편을 동시에 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 한 발만 쏘아냈다.
쐐애애액!
순식간에 허공을 꿰뚫고 혼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파천신력 때문에 잠시 휘청거렸던 혼마는 본능적으로 혼강편이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놈은 아주 놀라운 반응속도로 혼강편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번쩍! 쩌저저정!
혼마는 놀랍게도 대검을 휘둘러 혼강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러나 이건 모두 건이 의도한 것이었다.
건은 혼강편을 미끼로 던져주고 오히려 다른 걸 노렸다.
츠츠츠츳!
혼마의 두 다리를 휩쓸고 지나가듯 휘둘러지는 건의 흑룡아(대도).
물론 혼마도 이 공격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혼강편이 더 위험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혼강편을 막은 것이었다.
이건 선택의 문제였다.
혼강편에 실린 힘이 흑룡아(대도)에 실린 힘보다 더 강력했기에 당연히 혼마는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혼강편을 먼저 막았다.
하지만 건은 아주 명확하게 이걸 노리고 있었다.
분명 혼강편에 실린 힘이 흑룡아(대도)에 실린 힘보다 더 강력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건은 단순히 공격에 실린 힘만 중요하게 생각하질 않았다.
공격의 연속성.
건은 이 연속성 때문에 하단 공격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꽈과광!
혼마는 자신의 하체를 쓸고 들어오는 흑룡아(대도)를 그냥 몸으로 막았다.
혼마의 몸은 마치 강철과 같이 단단했기 때문에 흑룡아(대도)가 놈의 다리를 절단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놈의 다리에 강한 충격을 주어 조금이나마 놈을 뒤흔들 순 있었다.
건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어차피 건도 이 한 방으로 혼마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건이 원한 건 주도권이었다.
건은 이번 공격을 통해 주도권을 자신에게로 가져왔다.
“타핫!”
그는 한 번잡은 주도권을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짧고 강하게 기합을 넣으며 흑룡아(대도)를 교묘하게 움직였다.
분명 대도 형태로 변해 있는 지금의 흑룡아는 짧은 거리에서는 효율이 높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은 그 짧은 거리 안에서 아주 교묘하게 팔을 움직여 대도를 위로 쳐올렸다.
너무나 교묘한 움직임이었기에 혼마는 그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혼마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몸으로 공격을 막았다.
꽈과광!
휘청~!
두 번 연속해서 몸으로 공격을 막아서일까?
그렇게 단단하게 버티던 혼마도 조금은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드디어 빈틈이 생겼다!’
그 순간 건은 자신이 기다리던 완벽한 반격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란 걸 곧장 알아차렸다.
츠츠츠츠츳!
반격의 기회를 포착한 건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심안은 물론이고 무쌍투기마저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리도 동시에 흑룡아를 다른 형태로 변형시켰다.
채앵!
흑룡아는 순식간에 대도 형태에서 짧은 두 자루의 단검 형태로 바뀌었다.
건은 양손으로 그 두 자루의 단검을 거꾸로 잡고 아주 빠르게 혼마의 가슴을 향해 마구 찍어갔다.
파파파파파팟!
혼마는 건이 이렇게 빠르게 반격을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방어하진 못했다.
하지만 놈도 그냥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건의 공격을 몸으로 막긴 했지만 대신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의 손잡이로 건의 머리를 내리쳤다.
혼마의 선택은 정확했다.
건은 흑룡아(단검)을 이용해 혼마의 몸에 몇 개의 구멍을 낼 수 있었지만, 더 많은 걸 원하다간 자신의 머리가 박살 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곤 곧장 고개를 젖히며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공격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건은 몸을 돌리면서 동시에 흑룡아를 다시 한 번 변형시켰다.
츠츠츠츠츳.
촤르르르륵!
순식간에 두 자루의 단검 형태를 유지하던 흑룡아가 손가락 굵기만 한 쇠사슬로 변형되며 혼마의 양팔을 휘감았다.
그렇게 혼마의 양팔을 붙잡은 건은 망설이지 않고 들고 있는 두 줄의 쇠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만약 혼마가 건이 이러한 행동을 예측했다면 절대 쉽게 당겨지지 않았겠지만 혼마는 당연히 이걸 예측하진 못했다.
그렇기에 놈은 생각보다 쉽게 중심을 잃으며 건 쪽으로 당겨져 왔다.
건은 쇠사슬을 이용해 혼마의 중심을 흐트러트리며 그와 동시에 곧장 무쌍투기를 자신의 오른 주먹에 집중시켰다.
고오오오오오!
건의 무쌍투기는 이제 어느 정도 경지를 넘어선 상태였다.
살아생전 척준경은 무쌍투기를 세 단계로 구분했는데 그 첫 번째는 유형의 형태로 만들어져 힘을 가지는 형(形)의 단계였고 두 번째는 세상의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는 파(破)의 단계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만물(萬物)을 찍어 눌러 압살(壓殺)하는 천붕(天崩)의 단계였다.
건은 아직 완벽하진 않았지만 거의 파의 단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의 오른 주먹에 모여든 무쌍투기의 힘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가 않았다.
그 상태에서 건은 오른발로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콰광, 쩌저저저저저적!
그러자 다시 한 번 파천신력이 방출되며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혼마를 일순간에 휘감았다.
드드드드드드드!
이번은 아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이미 혼마는 살짝 중심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파천신력으로 만들어진 충격파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긴 힘들어 보였다.
“크아아아아!”
휘이잉, 콰광!
혼마는 손에 들고 있던 대검으로 땅바닥을 강하게 내려찍으며 강제로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건이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이미 건은 심안을 통해 혼마가 가진 힘 중 60% 이상이 대검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검만 봉쇄할 수 있다면…… 분명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건은 혼마가 대검을 땅에 꽂는 그 순간 잔뜩 당겼던 흑룡아(쇠사슬)을 놓으며 정말 번개와 같은 속도로 앞으로 튕겨져나갔다.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의 속도였다.
건과 혼마 사이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혼마의 앞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건은 그렇게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쌍투기가 가득 담긴 오른 주먹을 혼마의 명치에 꽂아넣었다.
꽈과광, 콰드득!
혼마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드는 건의 오른 주먹.
‘제대로 들어갔다.’
건은 오른 주먹을 꽂아넣는 그 순간 자신의 공격이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무쌍투기는 단순히 힘만 강화시키는 그런 기운이 아니었다.
‘폭(爆)!’
혼마의 몸속에 주먹을 꽂아넣은 건은 그 안에서 폭자결을 이용해 무쌍투기를 폭발시켰다.
무쌍투기가 외부에서 폭발한 것도 아니고 몸속에서 폭발했다. 당연히 그 때문에 발생한 충격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과광!
혼마는 폭발과 함께 뒤로 멀찌감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쿠쿠쿠쿵!
이 한방이 결정타였다.
분명 혼마는 객관적으로 따지면 건보다 강력했다. 하지만 건이 혼마의 단순한 본능을 읽고 그걸 이용해 강제로 빈틈을 만든 후 그 미세한 빈틈 사이에 결정타를 꽂아 넣으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혼마가 특별히 방심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건이 기가 막히게 빈틈을 만들고 또한 그 빈틈을 너무나 완벽하게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이 한방을 기점으로 모든 주도권과 기세는 건에게 완전히 넘어왔고 건은 그렇게 잡은 주도권과 기세를 이용해 더욱 사납게 혼마를 몰아쳤다.
혼마는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끈질기게 버텼지만 이미 승세는 건에게로 많이 기운 상태였다.
단지 혼마는 그렇게 버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강함을 조금이나마 증명하는 게 전부였다.
건은 결국 두 시간 동안 이어진 혈투 끝에 혼마를 쓰러트렸다.
혼력은 거의 바닥이 나고 몸 여기저기 상처도 입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겨서 살아남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건은 그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혼마가 나타난 게 절대 우연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일단 몸을 최대한 빨리 회복시키면서 이어질 수 있는 몇 가지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했다.
건은 적어도 살아서 카페 헤븐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방심이란 걸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걸 아주 꼼꼼히 살피면서 앞으로 찾아올 위기에 대해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위기가 이어질 것이란 사실이었다.
건은 바로 그걸 대비하는 중이었다.
‘배후에 누가 있건 그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누군가 나를 노린다는 사실이고 난 이 위기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은 대충은 배후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잊지 마라. 이 싸움은 너희가 시작한 거다.”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전의(戰意)를 불태웠다.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한번 싸움을 시작하면 무조건 끝을 볼 생각이었다.
‘눈에는 눈, 피에는 피.’
건은 언젠가 연희가 해주었던 그 말을 떠올리며 조용히 적들에게 피를 돌려줄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