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59화 (59/175)

# 59

더 소울(The Soul) - 백련사웅(百鍊四雄) [1]

@ 백련사웅(百鍊四雄)

촤아아아.

해가 지고 바다가 서서히 어둠에 휩싸일 시간.

어두운 밤바다를 뚫고 한 척의 작은 배가 이름 없는 무인도로 접근 중이었다.

그 무인도는 현재 헌터 자격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섬 중 하나였다.

시험 중 섬에 접근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감시해야 하는 감독관이 오히려 길을 열어준 것이었기 때문에 헌터 협회는 배가 섬에 접근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당연히 작은 배가 접근 중인 무인도는 건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 16번 무인도였다.

지금은 건이 16번 섬에 들어간 지 8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정상적이었다면 건은 이미 오래전에 자격시험을 끝내고 호출기를 통해 감독관을 호출하였겠지만…… 일단 호출기부터 고장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아예 호출 자체를 할 수가 없었고 거기에 혼마를 상대하고 나아가 이어질 위기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시험을 끝낼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아직 시험이 끝나려면 4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4시간 이후엔 감독관과 진행요원들이 혹시라도 위험에 처했을지 모르는 건을 구하기 위해 섬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그 얘긴 결국 아직 4시간 정도 더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여유는 건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지금 16번 섬으로 향하고 있는 이들에게 있는 것이었다.

사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들은 건을 상대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목표는 건이 아니라 건을 잡아먹었을 혼마였다.

그들은 일명 백련사웅(百鍊四雄)이라 불리는 백련김가의 정예 소울러들이었다.

백련사웅은 건이 망가트렸던 김동철과는 다르게 진짜 실력이 있는 소울러들이었다.

사실 김동철은 정식 후계자이긴 했지만 그래 봤자 이제 갓 소울러가 된 애송이일 뿐이었다.

그에 반면 백련사웅은 오래전부터 백련김가에서 키워온 소울러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실력 면에선 동철이 따라올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비록 그들은 헌터가 아니었지만, 그들 넷이 모이면 마객급 혼마 정도는 별 무리 없이 잡을 수 있었다.

쿠웅.

어쨌든 백련사웅을 태운 작은 배는 16번 무인도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건 16번 섬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다시 자신들이 타고 온 배를 타고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시간은 충분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최대한 빨리 정리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 한 시간…… 그 안에 혼마를 찾아서 제거한 후 흔적을 깔끔하게 지우고 돌아가는 걸로 하자.”

백련사웅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김동혁이 조용히 얘기했다.

“형님, 흩어져서 찾을까요?”

백련사웅의 일원이자 김동혁의 사촌 동생이기도 한 김동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동혁에게 물었다.

“뭐, 그리 크지는 않은 섬이니까 금방 찾을 거 같긴 한데…… 일단 나랑 동민이 그리고 동명이랑 동훈이 이렇게 둘씩 흩어져서 찾아보자. 명심할 건 아무리 마객급 혼마라고 해도 절대 쉽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불러라.”

“네, 알겠습니다.”

동혁의 말에 나머지 세 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꾸물거리지 말고 바로 수색을 시작하자.”

솔직히 김동혁은 이번 임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후 사정도 대충 들었고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는 되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것이었다.

‘천하의 백련김가가…… 언제부터 이렇게 편협한 복수를 했던 건가? 후우, 정말 답답하구나.’

백련김가는 가뜩이나 요즘 가세(家勢)가 많이 기운 상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백련사웅 이후 제대로 된 소울러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련사웅이 소울러가 된 게 벌써 거의 이십 년 전이었다.

백련사웅도 이젠 사십 대 후반의 아저씨들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김동철이라는 말도 안 되는 후계자가 탄생했고 그 이후엔 백련김가가 더욱더 망가져 갔다.

김동혁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 문제는 알고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피라는 아주 단단한 매개체로 묶여 있는 백련사웅은 탈출조차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어쩌겠는가…… 가문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내가 수라(修羅)가 되어서라도 그 길을 걷는 수밖에…….’

이미 동혁은 어느 정도 포기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임무도 거절할 수도 있음에도 거절하지 않고 수락한 것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누군가는 대시 할 게 뻔한 일이었다.

현재 백련김가의 사정을 고려하면 오히려 그 과정에서 꽤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게 뻔히 보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수라가 되어 이 말도 안 되는 복수를 거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동혁은 건을 직접 제거하는 게 아니라 건을 잡아먹었을 혼마를 제거하는 임무란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혹시라도 건이 혼마에게 잡혀먹히지 않았으면 자신들의 손으로 건을 제거해야 했지만, 동혁은 건이 동철과 비슷한 애송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믿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연히 16번 무인도에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존재는 혼마가 아니었다.

혼마한테 잡아먹힌 게 아니라 오히려 혼마를 쓰러트리고 살아남은 건.

그가 오래전부터 계속 백련사웅, 아니 정확히는 혼마 이후에 올 적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네 명…… 정확한 건 모두 상당한 수준의 소울러로 보인다.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조건 피해야겠네.’

건은 무인도에 가운데 있는 약간 높은 언덕 위에서 심안을 이용해 백련사웅을 관찰했다.

그는 무조건 또 한 번의 적이 무인도로 찾아올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저들이 흩어진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백련사웅이 두 무리로 흩어지는 걸 본 건은 이 순간을 놓치면 오히려 자기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들은 날 죽이려고 한다. 피에는 피…… 지금은 독해져야 할 순간이다.’

건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척준경의 영혼 때문에 피에 대한 공포심이 없어졌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만약 백련사웅이 건을 죽이려 한다면 건도 역시 백련사웅을 죽여야 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결국 그게 독이 되어 나중에 건에게 치명적이게 다가올 수 있었다.

건 역시 그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척준경의 영혼이 오랜 세월 피로 만들어진 길을 뚫으며 깨달은 본능이 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중이라 할 수 있었다.

‘……암괴나 혼마가 배고픔에 나를 잡아먹으려고 한다면 저들은 겨우 사람과 사람의 관계 때문에 나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저들은 암괴나 혼마보다 못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건 어설픈 자기 합리화 같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건은 단지 복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백련김가가 혼마나 암괴보다 훨씬 역겨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건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상황까지 왔는데 적이 누군지 모를 수는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백련김가.

건은 적어도 지금 자신을 이렇게 집요하게 노릴 곳은 그곳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냥을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마음속에 존재하던 약간의 망설임마저 모두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그에게 이번 전투는 사냥이었다.

혼마나 암괴 같은 마(魔)에 물든 괴물들보다 못한 쓰레기들을 잡는 사냥.

그렇기에 망설임 따위를 가질 이유는 없었다.

* * * *

건은 동혁과 동민 쪽보단 동명과 동훈 쪽을 먼저 노렸다.

심안으로 자세히 살핀 결과 넷 중 동혁이 가장 까다롭게 느껴졌기 때문에 우선 상대하기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동명과 동훈 쪽을 노린 것이었다.

건은 이미 적들이 올 것에 대비해 몇 가지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츠츠츳.

멀리서 동명과 동훈을 바라보던 건은 흑룡아를 변형시켰다.

원래 흑룡아는 하루에 세 가지 정도의 모양으로만 변형시켰었지만, 오늘만큼은 무리해서라도 네 번째 변형을 해야 했다.

건이 그렇게 무리를 줘가면서까지 흑룡아를 변형을 시킨 이유는 원거리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연희처럼 저격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G18 같은 권총은 사실상 원거리 무기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건은 활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큰 대궁(大弓)이 필요했다.

본래 척준경은 모든 병기를 자유자재로 쓰는 인물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 특출나게 잘 쓴 병기를 꼽으면 그중에 활은 무조건 들어갔다.

그동안 꾸준히 활을 사용하는 연습은 했지만 정작 실전에선 사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활보다 더 좋은 병기를 찾기가 힘들었다.

적들은 아직 건이 살아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저격하기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스윽, 드드드드드득!

건은 미리 나무를 깎아 만들어놓은 한 개의 화살을 흑룡아(대궁)의 시위에 얹어 놓고 힘껏 뒤로 당겼다.

비록 급조한 화살이라 화살 자체는 조금 조잡했지만, 이 화살에 혼력을 담는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었다.

츠츠츠츳!

건은 화살에 혼력까지 담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건의 오른쪽 눈동자는 황금색의 심안으로 변해 건에게 목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중이었다.

건은 동명과 동훈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 그리고 현재 섬이라는 특성상 세차게 불고 있는 바람의 세기까지 모두 고려한 후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위치로 화살을 날렸다.

피이잉!

파아아아아아아앗!

허공을 꿰뚫는 나무 화살.

겉모습은 조잡한 나무 화살이었지만 그것에 실린 힘은 현실 세계에서 쓰이는 어지간한 저격용 라이플에서 쏘아진 탄환의 힘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지만 상대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동명과 동훈은 헌터로 치면 골드 등급에 약한 못 미치는 최상급 실버 등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건이 날린 혼력이 맺혀 있는 나무 화살이 허공을 꿰뚫고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한 순간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위험해!”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외치며 서로 몸을 비틀었다.

그렇지만 건은 이미 그들의 그런 반응까지 예측하고 화살을 날린 상태였다.

퍼억!!

“크아악!”

나무 화살은 오른쪽에 있던 동훈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건이 노린 건 정확히 심장이었지만 아무리 움직임을 예상했다고 해도 상황이란 건 그때마다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화살? 뭐, 뭐지? 누가 우릴 노리는 거야?”

동명은 동훈의 어깨에 꽂힌 화살을 보며 재빨리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쪽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건은 화살을 날리고 움직인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건을 발견할 순 없었다.

“끄으으으…….”

한편 동훈은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 화살을 붙잡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화살에 담겨 있던 혼력은 이미 동훈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란 것이었다.

화살이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 것 때문에 동훈은 오른팔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었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사실상 심장을 꿰뚫리지 않았을 뿐이지 동훈은 이 한방으로 상당히 큰 충격을 입은 상태였다.

동명은 동훈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곧장 십오 분 전쯤에 자신들과 헤어진 동혁과 동민을 호출하려고 가지고 있던 주머니 속에 있던 경계용 휴대전화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는 그 휴대전화를 꺼낼 수 없었다.

다시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쐐애애액!

먹잇감을 노리고 낙하하는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나무 화살도 아주 매섭게 동명을 노리며 날아왔다.

그렇지만 동명도 이번엔 그냥 당하진 않았다.

그는 곧장 통혼을 완성하며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했다.

동명은 강화계열보다는 몇 가지 특수한 힘을 사용하는 특질계열 소울러였다.

그런 그가 가장 자신 있게 사용하는 특수한 힘은 일명 ‘영혼 거미줄’이라 불리는 끈적끈적하고 질긴 특수한 실과 같은 물질을 양손으로 뿜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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