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62화 (62/175)

# 62

더 소울(The Soul) - 끝장 승부 [2]

건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한 번 양발과 왼팔을 휘두르며 동혁을 마구 몰아쳤다.

쩌정, 쩌저저정!

하지만 동혁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확실하게 건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이쯤 되자 건도 뭔가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건이 놓치고 있는 건 바로 천혼벽을 만들고 있는 40개의 천혼주를 제외한 나머지 30개의 천혼주였다.

동혁이 소울러로 활동한 시간은 무려 이십 년이 넘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활동하며 자신의 약점을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됐다.

당연히 동혁은 자신이 근거리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그 약점을 최대한 없애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그 결과 그는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천혼혈(天魂穴)’이라 불리는 동혁의 비장의 한수였다.

천혼혈의 원리는 간단했다.

바로 천혼주를 이용해 육체 능력을 강제로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지금 동혁의 육체에는 총 30개의 천혼주가 각기 중요한 부위에 모두 박혀 있었다.

그렇게 주요 부위에 박힌 천혼주는 자신이 지닌 혼력을 이용해 강제로 동혁의 육체 능력을 강화했고 그 결과 동혁은 마치 강화 계열 소울러처럼 움직이며 반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억지스러운 기술이었다.

사실 그래서 이 기술을 동혁의 육체가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동혁은 천혼혈을 대략 삼십 분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강화 계열의 소울러들처럼 강인한 육체 능력을 지니지 못한 동혁은 삼십 분 이상 천혼혈을 사용할 경우 힘의 폭주가 일어나 아주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동혁도 이 승부를 절대 길고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동혁은 차분하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건의 공격을 막으며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준비를 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결정적 한 방은 ‘천혼룡(天魂龍)’이었다.

천혼룡은 동혁이 천혼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었다.

동혁은 천혼주를 하나로 뭉쳐 한 마리의 용을 만든 후 그 용을 이용해 전방을 쓸어버리는 이 기술을 제대로 건에게 맞추기만 하면 무조건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기회는 온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리자.’

쩌저저정, 쩌정!

동혁은 침착하게 건의 공격을 막으면서 계속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기회를 기다리는 자와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몰아치는 자.

동혁과 건의 싸움은 그렇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대략 십오 분 정도가 더 흘렀다.

여전히 건은 일방적으로 동혁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고 동혁은 힘겹게 그 공격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건이 무척이나 유리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끼어들지 말라는 얘길 몇 번이고 들어서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동민마저 끼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동혁이 마지막에 얘기한 백련사웅의 긍지 때문에 꾹 참고 있었지만, 만약 동혁이 진짜 위험해진다면 그런 긍지 따윈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만큼 동혁이 힘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겉에서 볼 때의 얘기일 뿐이었다.

실제로 건과 동혁의 상황은 많이 달았다.

건이 기세 좋게 밀어붙이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게 아주 일방적인 건 아니었다.

공격을 계속 성공한 게 아니라면 당연히 공격하는 쪽이 방어하는 쪽보다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건의 공격은 거의 모두 동혁의 방어에 막혔다.

간혹 방어를 뚫고 동혁의 몸에 공격이 꽂히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천혼주가 생성한 방어막에 힘이 대부분 소진된 후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위력적인 공격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거의 이십 분 가까이 공격을 일방적으로 공격을 쏟아부은 건은 살짝 지친 표정이었다.

그에 반면 오히려 방어에 집중한 동혁은 아직 여유가 있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 순간.

동혁은 드디어 자신이 기다리던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지금이다!’

지금까지는 마치 거북이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모든 공격을 막기만 했던 동혁.

하지만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하자 그의 움직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바뀌었다.

파파파팟!

동혁은 천룡주를 연속해서 건을 향해 튕기며 재빨리 있는 힘껏 자신의 왼팔을 단단히 휘감고 있는 쇠사슬을 흔들었다.

철컹!

사실 엄밀히 따지면 쇠사슬은 동혁만 붙잡고 있는 게 아니었다.

건 역시 쇠사슬을 놓을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건도 쇠사슬에 붙잡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동혁은 지금까지 아껴놓았던 힘을 모두 사용하며 건의 균형을 무너트리려고 쇠사슬을 힘껏 흔들었다.

그러자 쇠사슬과 함께 건의 몸도 살짝 흔들렸다.

확실히 그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살짝 균형을 잃은 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천혼주들을 피하고자 몸을 뒤로 한껏 젖히며 동시에 다소 짧게 잡고 있던 쇠사슬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며 뒤로 물러났다.

촤르르륵.

당연히 그렇게 큰 동작으로 공격을 피하면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빈틈이 생기고 동시에 거리도 어느 정도 벌어졌다.

동혁이 쇠사슬을 흔들고 천혼주를 날린 이유도 이러한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됐다!’

동혁은 빈틈이 만들어지자 망설이지 않고 조금 전 건에게 날린 열 개 정의 천혼주를 제외한 모든 천혼주를 빠르게 자신의 앞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자신의 몸에 흡수되어 있던 천혼주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자신의 앞에 한 마리의 용을 만들었다.

60개의 천혼주로 만들어진 한 마리의 푸른색 용.

이게 바로 동혁이 가진 천혼주의 공격 기술 중 가장 강력한 기술인 ‘천혼룡’이었다.

천혼룡은 건이 허리를 잔뜩 뒤로 젖히며 천혼주를 피하고 다시 몸을 돌려서 일어나는 순간 정확하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동혁은 천혼룡이 완성되자마자 건을 향해 그것을 날렸다.

“가라! 천혼룡!!”

파아아아아, 크어어어어!!

한 마리의 커다란 청룡이 마치 승천이라도 하듯 크게 울부짖으며 건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과과과!

확실히 천혼룡은 강력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아무리 건이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완벽하게 빈틈을 찔렸다고 생각되었던 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천룡혼을 보며 순간적으로 아주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분명 그것은 웃음이었다.

그리곤 천룡혼이 동혁의 손을 떠난 순간 건은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자신의 오른손과 동혁의 왼손을 연결하고 있던 흑룡아(쇠사슬)를 거둬들였다.

흑룡아는 거둬들여 지는 것과 동시에 다시 대도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동혁이 천혼룡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동혁이 반응하고 뭐할 것도 없었다.

건은 그렇게 대도를 만들어 양손으로 잡은 후 망설이지 않고 도를 세로로 휘둘렀다.

츠츠츠츳!

조금 전까진 피곤하고 힘든 표정을 지었던 건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방금 무리한 회피 동작으로 몸의 균형이 흔들리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모든 게 연기였다는 것처럼 건은 아주 빠르고 간결하게 월영참을 완성했다.

촤아아아아!

이번 월영참은 건이 아껴두었던 힘을 모두 사용해 펼쳐낸 것이었기 때문에 동명과 동훈을 잡을 때 사용했던 월영참보다 훨씬 더 선명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붉은빛이 도는 반투명한 초승달 모양의 혼강은 동혁이 날린 천혼룡과 부딪쳤다.

카아아아아아앙!

용과 초승달의 충돌.

하지만 뜻밖에 그 충돌의 결과는 금방 나왔다.

쩌저저저저적!

놀랍게도 월영참이 천혼룡을 세로로 갈라버렸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월영참이 천혼룡보다 더 강력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소환물이라 할 수 있는 천혼룡이 버티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동혁은 건이 지쳐서 제대로 방어조차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천혼룡을 날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건은 방어를 넘어서 아예 역습을 해버렸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금 전까지 건이 보여주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건은 최초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을 했을 때 대충 동혁의 의도가 뭔지 이미 예측을 하고 있었다.

건은 척준경의 영향 때문에 전투에 관해서 만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감각이 발동되었다.

이러한 감각은 특별한 이름을 가진 능력은 아니었다.

그저 척준경의 영혼에 각인(刻印)되어 있는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건은 꾸준히 척준경의 영혼과 동기화하며 자연스럽게 이 감각을 조금씩 익혀나갔고 지금에 와서는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였다.

어쨌든 이러한 감각 덕분에 건은 동혁의 꿍꿍이를 예측할 수 있었고 결국 그걸 역으로 이용하려고 일부러 지친 표정을 지으며 빈틈까지 보여준 것이었다.

당연히 그걸 몰랐던 동혁은 덥석 그 빈틈을 물었고 그 결과 이렇게 건에게 불의의 역습을 당했다.

“헉!”

동혁은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가 역습을 당했기 때문에 역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애초에 천혼룡이 반으로 갈라진 그 순간 동혁은 할 수 있는 건 겨우 남은 열 개의 천혼주로 월영참을 막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너무 당황해서 그것도 잘 하지 못했다.

쩌저저정, 촤아아아!

“크아악!”

동혁은 황급히 남은 열 개의 천혼주로 월영참을 막으려고 했지만, 월영참은 그 남은 열 개의 천혼주마저 파괴하며 동혁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동혁의 몸에서 선명한 붉은색 피가 솟구쳤다.

그나마 천혼룡과 남은 열 개의 천혼주가 월영참의 위력을 현저히 약화시켰기 때문에 몸이 두 동강 나진 않았지만, 동혁의 가슴에 세로로 새겨진 선명한 상처는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혀, 형님!”

계속 망설이고만 있다가 난입할 타이밍마저 놓쳐버린 동민은 크게 당황하며 동혁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 역습 자체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동민은 재빨리 피를 뿌리며 바닥에 팽개쳐진 동혁을 향해 달려갔다.

“형님! 괜찮으신가요?”

“……으…… 괜찮다. 호들갑 떨지 마라.”

물론 실제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동혁은 자신의 가슴에 난 상처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크윽.”

동혁은 혼자 힘만으로 일어나려고 했는데 상처가 워낙 심각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형님, 그냥 누워 계세요.”

“아니다. 날 좀 일으켜 세워줘라.”

동혁의 말에 동민은 어쩔 수 없이 동혁을 부축해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한편 건은 굳이 그런 동혁을 추가로 공격하진 않았다.

애초에 공격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이번 공격 한 번으로 이미 승패는 갈려진 상황이었다.

“그 몸으로 다시 싸우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크크크, 내가 못 싸울 것 같으냐?”

“싸울 수야 있겠지. 하지만 결과는 뻔하지 않겠어?”

건도 이번 마지막 월영참에 혼력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많이 힘이 빠진 상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동혁의 상태보단 훨씬 좋았다.

“건방진 놈…….”

동혁은 인정하긴 싫었지만, 건의 말이 맞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승부가 났으니 이제 결산만 남은 건가? 서로 걸었던 목…… 각오는 되어 있겠지?”

“닥쳐라! 어디 한 번 나와도 싸워보자!”

건의 말에 발끈한 건 동민이었다.

그는 도저히 이대로 결과를 승복할 수가 없었다.

“동민아, 물러나라. 내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백련사웅의 긍지를…… 잊지 말자.”

“하, 하지만 형님…….”

동혁이 얘기했음에도 동민은 쉽사리 뒤로 물러나질 못했다.

“분명 아까 넌 내 목을 원한다고 했지? 그러니까 내 목만 가져가고 이 녀석들의 목은 놔두어라.”

동혁은 전신이 피로 물든 상태에서도 아주 당당하게 건을 향해 외쳤다.

이십 년 전 그는 협(俠)과 의(義)를 중시하는 패기 넘치는 백련김가의 젊은 소울러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세가를 위해 더러운 피를 묻히는 신세가 되었다.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동혁은 차라리 여기서 죽고 싶었다.

오히려 이렇게 당당하게 싸운 후 결과에 승복하며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여기까지였어…… 오늘이…… 그리고 여기가…… 내 마지막이야.’

천천히 걸을 향해 걸어나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혁.

그는 그렇게 결과에 승복하고 자신의 목을 내놓았다.

동민은 그런 동혁을 말리고 싶었지만, 워낙 동혁의 눈빛이 진중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편 건은 그런 동혁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한 손으로 자신의 대도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목을 걸었으니 목을 취해야 하는 게 맞았다.

휘이잉!

대도가 허공을 가르며 동혁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 순간 동혁은 눈을 감았다. 순간 동혁의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 기억들이 한순간에 펼쳐졌고 동혁은 이게 바로 주마등이란 걸 알았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동혁이 내린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은’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듯 건의 대도도 그의 코끝을 스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피잇!

순간 코끝이 갈라지며 피가 흘러나왔지만, 동혁은 그것보다 왜 건이 자신의 목을 치지 않았는지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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