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64화 (64/175)

# 64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역습 [2]

“그래서 결국 그냥 호출기가 고장이 난 것 정도로 일을 정리해서 하급 브론즈라는 최하 성적을 받게 된 거예요.”

건은 혼마의 등장에 이은 백련사웅과의 전투까지 모든 걸 연희에게 설명해주었다.

“……결국, 예상대로 그 녀석들이 움직였구나.”

모든 얘기를 들은 연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백련김가가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대충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만 예상했었어. 하지만 사장님이 이것 역시 결국 네가 넘어야 할 하나의 시험이라고 하셔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

연희는 건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뭐, 맞는 말이네요. 어차피 누나나 사장님이 도와주실 문제는 아니었어요. 이건 분명 제가 풀어야 할 실타래가 맞아요.”

“근데 너 진짜 혼마를 혼자 잡은 거야?”

“네, 혼자 잡았어요.”

“헐…… 난 사장님한테 인정받고도 한참 뒤에나 단독으로 혼마 사냥을 할 수 있었는데…….”

“하하, 천재 소울러의 충격적인 데뷔라고 생각하세요.”

“지랄이 풍년이구나.”

“천재들은 언제나 주변의 시샘을 받곤 하죠. 후훗.”

건은 잔뜩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봤자. 넌 결국 하급 브론즈일 뿐이야. 그거 알아? 하급 브론즈 등급의 헌터는 프로 헌터들 사이에서 애송이 중의 애송이로 분류되고 있어. 이제 내 위치를 알겠지? 애송이!”

“쳇, 그깟 등급은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무슨 소리야. 프로 헌터에게 등급은 말 그대로 자신의 실력을 인증하는 증표 같은 건데 그게 왜 안 중요해. 실제로 프로 헌터들에게 의뢰가 주어질 때 가장 먼저 참고하는 게 헌터 등급이라고. 최상급 골드 등급인 내가 받는 의뢰와 하급 브론즈인 네가 받는 의뢰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잊지 마.”

“그럼 그 등급은 어떻게 올릴 수 있는 거예요?”

“간단해.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는 거 말고 한 번에 등급을 올리는 방법은 없나요?”

“없어.”

“그럼 전 한동안 계속 브론즈 등급을 유지해야 하는 건가요?”

“응, 그러니까 까불지 말라고!”

“크으…….”

연희 앞에서 까불던 건은 제대로 역공을 맞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사장님은 안 계신 가봐요?”

“아, 볼 일이 있으시다고 나가셨어.”

“그래요? 그럼 지하 수련장 좀 써도 되죠?”

“수련장? 수련이라도 하게?”

“아, 수련도 수련인데…… 이번에 살짝 깨달은 게 하나 있어서…… 까먹기 전에 그걸 좀 더 다듬어 보려고요.”

“헐, 또 무슨 깨달음. 너 너무 빨리 달리는 거 아니야?”

“하하하. 천재라면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어후, 또 지랄 시작이다. 알았다. 지랄은 지하 수련장 가서 혼자 떨어라.”

연희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손을 들었다.

* * * *

제주도.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왔다갔다하는 그곳에도 경계의 세상은 존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주도의 경계의 세상도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의 경계의 세상과 비교해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적어도 오늘까진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상황이 점점 바뀌고 있었다.

스으으으으.

평범한 경계의 세상.

잠시 생겨났다고 금방 사라질 그런 지극히 평범한 경계의 세상에 갑자기 검은색 안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검은색 안개는 경계 전체에 동시에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다.

스르르르르.

놀랍게도 검은색 안개는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잡귀(雜鬼)는 물론이고 수마와 암괴까지…… 모든 괴물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리곤 곧장 그 괴물들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는 일종의 마이너스 에너지였다.

물론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마이너스 에너지와는 조금 달랐다.

그것은 마치…… 유적 안에 존재하는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와 비슷한 성질을 지닌 기운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보다는 조금 기운의 순도가 떨어지는 기운이었지만 어쨌든 지닌 성질은 비슷했다.

지닌 성질이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와 비슷했기 때문일까?

그 기운은 잡귀와 수마 그리고 암괴를 변형시켜 각성체로 만들었다.

다만 기운이 지닌 힘이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보다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괴물들을 완전한 각성체가 아닌 절반 정도만 각성한 불완전한 각성체로 변형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각성체라고 해도 각성을 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각성의 과정에 검은색 안개가 깊숙이 관여하면서 괴물들의 머릿속에 맹목적인 한 가지 절대명령이 각인되었다.

‘모든 어둠을 지배하는 왕을 위하여!’

이 절대명령은 결국 그들을 ‘어둠의 왕’이 부리는 권속으로 만들었다.

왕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해도 절대복종하는 어둠의 권속들.

더 충격적인 건 이러한 어둠의 권속들이 지금 이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주도에 존재하는 경계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검은색 안개.

바로 이 검은색 안개가 어둠의 권속들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가고 있는 주원인이었다.

검은 안개는 당연히 어둠의 왕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유적에 존재했던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방해서 어둠의 왕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일그러진 마이너스 에너지.

어둠의 왕은 이것을 ‘암흑마기(暗黑魔氣)’라 불렀고 그는 꽤 오랫동안 이 암흑마기를 계속 만들어냈다.

그는 그렇게 암흑마기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았다.

그가 선택한 장소는 바로 이곳, 제주도였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가진 장소.

그래서 그는 곧장 제주도로 이동한 후 제주도에서 원하는 만큼 암흑마기를 잔뜩 모았다.

어둠의 왕은 지루함을 꾹 참고 암흑마기를 충분히 모았다.

그가 이렇게까지 암흑마기를 모으는 이유는 최대한 빠르게 제주도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둠의 왕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왕국을 세우려 하면 분명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막으려 할 것이란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빨리 자신의 왕국을 완성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나중에 혹시 다른 누군가와 싸우게 되어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의도 때문에 그는 모든 걸 참고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 암흑마기만 모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원하는 만큼 모을 수 있었다.

암흑마기를 충분히 모은 그는 망설이지 않고 왕국 건설을 실행에 옮겼다.

어둠의 왕은 암흑마기를 제주도 전역에 풀어놓으며 자연스럽게 모든 경계를 오염시켰다.

단순히 모았던 암흑마기만 풀었을 뿐인데 이미 그는 제주도에 존재하는 경계 중 절반 이상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게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둠의 왕은 의도했던 대로 정말 빠르게 제주도를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당연히 모든 게 그의 뜻대로만 되어주진 않았다.

츠츠츠츳!

조현광는 양손에 가볍게 혼력을 모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백 마리의 수마들…… 현광은 지금까지 수많은 수마를 사냥했었지만, 지금처럼 많은 수의 수마 떼를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수마들이 떼를 이루어 소울러를 공격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천성이 포악한 수마들은 자기들끼리도 잡아먹기 바쁜 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광 앞에 나타난 수마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오로지 목표는 현광 뿐이라는 듯 그를 포위하고 조금씩 다가왔다.

‘그리고 이 녀석들 평범한 수마와는 느낌이 다르다.’

현광은 한눈에 자신을 포위한 수마들이 평범함과 거리가 먼 놈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정확히는 암흑마기의 영향으로 반쯤 각성을 한 놈들이었지만 현광도 거기까진 눈치채진 못했다.

크르르르.

‘일단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겠군.’

보통의 소울러라면 수백 마리의 수마들에게 포위당하면 긴장부터 했겠지만 현광은 전혀 긴장한 표정이 아니었다.

현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살짝 흔들리며 그 몸에서 혼력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그렇게 흘러나온 혼력은 아주 빠르게 형체를 갖추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의 앞에 그와 똑같이 생긴 분신(分身)이 만들어졌다.

마치 쌍둥이처럼 현광과 똑같이 생긴 분신이었다.

너무나 똑같이 생겨서 누가 진짜 현광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현광은 그렇게 혼력을 이용해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든 후 가볍게 입을 열었다.

“쓸어버려라.”

아주 간단한 명령.

그런데 그 명령이 떨어진 순간 현광의 분신이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파팟!

놀라운 속도로 전방을 향해 파고든 분신은 망설이지 않고 수마를 낚아챘다.

그리곤 양손으로 수마를 찢어버렸다.

콰드드득!

엄청난 괴력……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콰광! 우드드득!

현광의 분신은 엄청난 속도로 수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무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거기에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분신은 가장 확실하게 수마들을 제거했다.

몸을 찢어버리거나 혹은 머리를 박살 내거나…… 그것도 아니라며 아예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현광의 분신은 그 자체가 완벽한 병기처럼 보였다.

현광은 조용히 자신의 분신이 주변의 수마들을 모조리 도륙하는 걸 지켜만 보았다.

그가 이렇게 여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다섯 명의 다이아몬드 등급 헌터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루젼(Illusion)이라고 불리는 조현광.

환상계열이면서 동시에 강화계열에 속하는 능력을 지닌 그에게 이 정도의 수마들은 전혀 위협이 되질 않았다.

콰득, 쿠쿵.

현광의 분신은 드디어 마지막 수마의 목을 꺾어버렸다.

분신이 수백 마리의 수마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말 순식간에 주변을 초토화시킨 것이었다.

현광은 자신의 분신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그의 분신은 그 소리와 함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스르르르르.

분신을 사라지게 한 현광은 빠르게 주변을 돌며 수마들이 남긴 것들을 거둬들였다.

수마들은 새카맣게 변해버린 이상한 영혼의 가루를 남겨놓았다.

많은 경험이 있는 현광이었지만 이런 색의 영혼의 가루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네.”

작게 중얼거리는 현광.

그는 다이아몬드 등급의 프로 헌터답게 단번에 제주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가 제주도에 온 건 순수하게 우연이었다.

그저 일주일 정도 동안 편하게 쉬고 싶어서 제주도에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게 되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이 상황에서 가만히 쉬는 건 직무유기였다.

적어도 다이아몬드 등급 정도가 된 프로 헌터라면…… 무조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게 당연했다.

“젠장 안 봤으면 모를까…… 하필 우연히 걸어들어온 경계에서 저딴 걸 봐서 한 방에 휴가를 날려버리게 됐네.”

현광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최근 상당히 어려운 의뢰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몇 달을 고생했던 그였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일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쉬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제주도를 찾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달콤할 것만 같던 휴가는 시작부터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괴상한 수마 떼와 이상하게 변색 된 영혼의 가루.

분명한 건 이 두 가지라면 충분히 일루젼 조현광이 움직일만하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 헌터 팀 중 하나인 ‘헬(Hell)’의 수장인 이상…… 이런 걸 그냥 모른 척 지나갈 순 없었다.

만약 재수가 좋아 협회가 ‘격변(激變)’급으로 지정할만한 의뢰라도 먼저 선점할 수 있다면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현광은 자신의 휴가를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휴가를 포기했으니 그만큼 더욱 확실하게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일루젼 조현광의 난입.

이것은 당연히 왕의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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