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66화 (66/175)

# 66

더 소울(The Soul) - 격변급 의뢰 [2]

“제로 임팩트?”

“그런 게 있어.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 줄게. 지금은 우선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게 공항으로 가야 해.”

“이 장비들을 다 들고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나요?”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 중에는 한국에서는 휴대 자체가 불법인 것들이 다수 있었다.

이걸 들고 비행기를 탔다가는 그 자리에서 테러범으로 잡힐 수도 있었다.

“응, 물론 일반 비행기는 아니고…… 현재 협회에서 하루에 두 번씩 제주도행 비행기를 띄우고 있어. 당연히 보안 검색 같은 것도 없지. 우린 그걸 타고 제주도에 갈 거야.”

“아, 그런 게 있었군요.”

“당연하지. 이번 경우는 협회에서 비행기를 띄어서 그나마 다행인 거야. 만약 우리가 일반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면 이 장비들에 전부 인식변환술법을 걸어야 했거든.”

“인식변환술법이요?”

“응, 예를 들어 내가 어깨에 메고 있는 이 저격 소총이 골프채로 보인다거나 네 옆구리에 꽂혀 있는 권총이 바나나로 보이게 하는 그런 술법이지. 유지 시간이 존재하는 술법이라 매번 걸고 다니기가 좀 귀찮고 술법 자체에 들어가는 재료도 제법 비싸서 늘 유지하긴 조금 힘든 술법이야.”

“그런 게 있었군요.”

“그래서 보통은 인식변환술법 대신 유령항공을 이용하곤 해. 그게 훨씬 싸거든.”

“유령항공은 또 뭐예요?”

“간단해 경계의 세상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우리만의 비행사라고 보면 돼.”

“별것이 다 있네요.”

“말했잖아. 경계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세상이라니까.”

건은 연희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알수록 더 대단해 보이는 경계의 세상.

이런 것만 보면 확실히 건은 아직 경계의 세상에선 초짜인 게 분명했다.

* * * *

헌터 협회는 전국 각지에서 비행기를 띄우며 적극 헌터들을 제주도로 실어날랐다.

그 결과 며칠 사이에 제주도에 상당수의 헌터들이 모여들 수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헌터들에게 한 의뢰는 간단했다.

제주도의 경계에 속한 괴물들이 변형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을 찾으란 것이었다.

검은 안개와 괴물들이 무리를 이루어 공격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정보는 헌터들에게 전달된 상태였다.

남은 건 이제 검은 안개의 출처와 변형을 일으킨 괴물들을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협회는 출처를 알아내는 쪽에 더 많은 보상을 걸었다.

하지만 변형을 일으킨 괴물들을 잡는 것도 평소보다 훨씬 괜찮은 보상을 걸었기 때문에 헌터들은 닥치는 대로 제주도에 존재하는 수마나 암괴들을 잡기 시작했다.

최초 어둠의 왕이 검은 안개를 세상에 풀었을 때는 단 사흘 만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권속들을 만들었지만, 다시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자 권속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검은 안개로 변형되는 괴물들의 숫자보다 헌터들이 제거하는 괴물들의 숫자가 더 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둠의 왕도 자신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는 걸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어둠의 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왕의 옆에는 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마객급 혼마가 서 있었다.

조선 시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검객(劍客)의 모습을 했지만 대신 마치 흑백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온몸이 검은빛으로 물든 그 혼마는 바로 왕이 직접 타락시킨 김광택이었다.

이제는 혼마가 되어버린 김광택.

정확히는 그냥 혼마가 아닌 각성한 진혼마가 된 김광택은 확실히 다른 혼마들과는 달라 보였다.

“아무래도 외부의 개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개입? 누가 내 일을 방해한다는 거지?”

“한때 제가 인간과 맹약을 통해 묶여 있을 때 얻은 기억을 토대로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소울러라 불리는 특별한 힘을 지닌 놈들의 소행일 것 같습니다.”

“소울러? 경계와 현실을 오고 가며 이상한 힘을 쓰는 녀석들을 말하는 게냐?”

“네, 맞습니다. 그들입니다.”

“흐음…… 언젠간 방해가 될 것으로 생각하긴 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귀찮게 하는군.”

“아무래도 현재 경계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건 그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반응한 것 같습니다.”

“그런가? 뭐, 어쨌든 한 번쯤은 부딪쳐야 하는 놈들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이곳 제주도를 완벽하게 나의 땅으로 만든 후 싸우고 싶었는데…… 그게 틀어졌구나.”

“괜찮습니다. 아직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지 못할 겁니다. 그들이 대비하기 전에 미리 움직이면 제주도를 장악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긴 오히려 이게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나.”

뭔가를 떠올린 어둠의 왕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나서서 놈들을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라.”

김광택의 말에 어둠의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경계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집어삼킨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적이라 할 수 있는 소울러들과의 싸움이었다.

당연히 쉽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둠의 왕은 별로 걱정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모든 건 결국 어둠으로 귀결될 것이다!’

자신만만한 어둠의 왕.

확실히 어둠의 왕은 단순히 암흑마기만 준비한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게 무엇이든지…… 일단 지금은 헌터들의 역습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김광택도 그들의 그러한 기세를 한 번쯤은 꺾어야겠다고 판단하고 움직인 것이었다.

* * * *

김광택의 역습에 첫 번째 희생양이 된 건 헌터 팀 ‘블랙 소드’였다.

블랙 소드는 다섯 명의 프로 헌터들이 뭉쳐서 만든 헌터 팀이었는데 그 중 리더인 김연욱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모두 최상급 실버 등급의 프로 헌터였다.

그나마 리더인 김연욱도 하급 골드 등급의 프로 헌터였지만 그 역시 아주 뛰어난 실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9등급의 영혼과 맹약을 맺은 소울러들이었기 때문에 실력 자체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그나마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며 맞춰온 호흡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 스스로로도 다른 건 몰라도 호흡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부족한 실력을 서로 힘을 합쳐서 극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쨌든 블랙 소드는 최초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수마와 암괴를 깔끔하게 사냥하며 협회의 의뢰 내용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들은 애초에 목표를 크게 잡지 않았다. 그저 변형된 괴물들을 적당히 잡고 빠지는 게 목표였다.

그들이 부족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오랫동안 똑같은 멤버로 헌터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자신들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그들의 특징이 전혀 소용없어졌다.

그들이 빠지기 전에 적이 먼저 그들을 습격했다.

이건 블랙 소드에겐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휘잉! 따다당!!

연욱은 반투명한 보호막을 양팔에 집중시켜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자루의 검을 간신히 막아냈다.

“크윽.”

하지만 단순히 막아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폭풍처럼 쏟아진 공격 때문에 연욱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혼마…… 그것도 최소 마객급은 되어 보이는 혼마다…….’

어쩌면 마객급 이상일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혼마는 혼자가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만의 병사들을 이끌고 블랙 소드를 공격했다.

스무 마리의 암괴들과 백 마리에 가까운 수마들은 블랙 소드의 헌터들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그나마 조금 더 실력이 좋았던 연욱이 혼마에게 정신없이 공격당하며 밀리던 그 순간 이미 나머지 네 명의 헌터들은 암괴와 수마들에게 사지가 뜯기고 있었다.

‘크으으으…… 이런 괴물들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연욱은 제주도에 있는 괴물들이 경계에 있는 보통의 괴물들과 다르다는 소식은 이미 협회로부터 전해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규모와 조직력을 가진 괴물 떼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연욱은 자신 역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눈앞에 있는 괴물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연욱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찍어누르고 있는 혼마를 바라보았다.

두 자루의 검을 귀신같이 사용하고 있는 그림자처럼 생긴 혼마…… 연욱은 적어도 그 혼마만큼은 자신의 저승길 동료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 난 오늘 여기서 죽는다. 하지만…… 너만큼은 함께 저승으로 데려가겠다!’

파아아앗!

연욱은 자신이 한계 수치를 훨씬 뛰어넘도록 혼력을 끌어왔다.

그는 사실 공격보다는 방어에 특화된 소울러였다.

그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영혼방패’는 아주 강력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방어가 아닌 공격에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혼방패는 확실히 공격보단 방어에 사용할 때 위력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지!’

확실히 영혼방패는 공격보단 방어에 사용할 때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했지만 유일하게 딱 한 가지 예외가 존재했다.

츠츠츠츳!

연욱은 자신이 가진 모든 혼력을 가슴 앞으로 끌어모았다.

그러자 그의 가슴 앞에 붉은빛을 띤 작은 방패가 하나 만들었다.

‘피의 방패…… 이것에 내 마지막 모든 걸 건다!’

피의 방패는 연욱이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기술이었다.

그것을 사용한다는 의미는 연욱이 살기를 포기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영혼방패에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혼력을 강제로 집어넣어 폭발시키는 기술이었다.

당연히 아주 큰 무리가 따르는 기술이었고…… 자칫 연욱 자신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기술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충격을 견딜만한 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피의 방패에 혼력을 쏟아부으면 거의 연욱은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전력을 다해 피의 방패를 구사했다.

“같이 가자…… 저승길!!”

파앗!

그 말과 함께 연욱은 피의 방패를 가슴에 품고 전방에 있는 혼마를 향해 뛰어들었다.

혼마는 위험을 느끼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그보단 연욱이 피의 방패를 폭발시키는 게 더 빨랐다.

꽈르르릉, 콰과과과과광!

피의 방패가 폭발하며 순식간에 연욱은 물론이고 그 주변을 모두 집어삼켰다.

연욱이 목숨까지 내놓으며 완성한 피의 방패는 강력했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 있던 암괴나 수마들은 모조리 그 폭발에 휘말려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정작 연욱이 저승길 동료로 삼고자 했던 혼마는 재가 되지 않았다.

스으으으.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혼마.

그는 두 자루의 검은 십자로 교차시킨 상태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흐음…… 이번 건 예상을 완벽하게 뛰어넘은 공격이었다.”

그 혼마는 당연히 김광택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닌 가장 특별한 세 가지 검술 중 하나인 십자태극검(十字太極劍)을 이용해 간신히 피의 방패가 일으킨 폭발을 버텨냈다.

“소울러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예외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군.”

김광택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피고 일어났다.

스릉, 철컥.

그리곤 두 자루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폭발 때문에 암괴와 수마들이 절반 이상 소멸하였지만, 김광택은 크게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사실 지금 소멸된 암괴나 수마들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복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연욱이 자폭을 하면서 김광택이 얻으려고 했던 걸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녀석들 중에는 가장 쓸만해 보였는데…… 아쉽군.’

김광택은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래도 네 개의 핵(核)을 얻었으니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질이 떨어지는 핵이라고 해도 분명 그것은 어둠의 군단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애초에 김광택이나 어둠의 왕이 이번 승부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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