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67화 (67/175)

# 67

더 소울(The Soul) - 암혼(暗魂) [1]

@ 암혼(暗魂).

헌터 팀이라고 하기엔 조촐한 규모였지만 그 어떤 헌터 팀보다 월등한 파괴력을 지닌 건 일행은 다른 헌터들처럼 무난하게 변형된 괴물들을 사냥했다.

오히려 그들은 단순히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괴물들이 왜 제주도에 다수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이와 유사한 괴물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말고도 상당수의 헌터들이 이러한 괴물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 경험은 그들에게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타앙, 퍼퍼펑!

광혼탄으로 가볍게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암괴 머리를 날려버린 연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건과 철민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괴물들을 다 정리하고 괴물들이 남긴 것들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진짜 계속 똑같은 것들뿐이네요.”

건은 색이 검게 변해 버린 영혼의 조각 하나를 주우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랬잖아. 확실하다고…….”

연희 역시 눈앞에 떨어진 검게 색이 변한 작은 영혼의 조각을 주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도대체 왜 그때 그 유적에서 나타났던 그 녀석들이 갑자기 제주도에 나타난 거죠? 그 유적이 제주도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건 일행은 이미 파주의 유적에서 이와 똑같은 형태의 괴물들과 싸워본 적이 있었다.

당시 철민은 그 괴물들에 대한 보고서를 협회에 올렸었다.

어쩜 협회가 이렇게 빨리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민을 비롯한 그 유적에서 살아남은 헌터들이 줄줄이 올린 보고서 때문일지도 몰랐다.

“결과가 이렇다는 건 당시 문제가 유적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뜻이겠지.”

연희와 건의 말을 듣고만 있던 철민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얘기했다.

“역시 사장님도 저랑 같은 생각이시군요.”

“음, 지금 저만 같은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건가요?”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건은 철민과 연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후후, 간단해. 그때 그 괴물들이 유적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결국 유적이 아닌 유적 외적인 문제란 뜻이고 그게 지금 제주도에서 또다시 나타났다면…… 뭔가가 존재한다는 뜻이 되는 거야. 바로 이 괴물들을 만들어내는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외부의 존재 말이야.”

“거기에 조금 더 추가하자면 그 원인은 파주에서 제주도까지 이동할 수도 있고…… 동시에 마구잡이로 힘을 남발하는 게 아니라 힘을 조절해 원하는 때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얘긴 그 원인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 된다. 즉, 이 모든 걸 합쳐보면 지금 이 괴물들을 만들어내는 존재는 살아 있는 지성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지.”

철민은 연희의 말에 몇 가지 예상을 추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누님과 사장님의 말은 이 모든 사건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뜻이군요?”

“그래, 맞아. 이번 일은 모든 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계획된 사건이다. 그 얘긴 어쩌면…… 이제 곧 괴물들의 반격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철민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지금 헌터들은 괴물들을 사냥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근래에 이렇게 많은 괴물이 떼를 이루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늘 사냥감에 목이 말랐던 헌터들은 아주 신이 나서 괴물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헌터들은 지금 자신들을 양 떼 속에 뛰어든 늑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민이 보기엔 지금 헌터들이 사냥하는 괴물들은 절대 양 떼가 아니었다.

“이놈들은 양의 탈을 쓴 사냥개다. 언제 양의 탈을 벗고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그런 놈들이지.”

“협회 측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연희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보고는 할 생각이지만…… 문제는 헌터들이 절대 고분고분한 녀석들이 아니란 것이지.”

“하긴 협회의 말이건 뭐건 일단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이 먼저인 게 헌터들이죠.”

헌터는 수호자보단 유령들과 비슷한 성향이 있는 소울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협회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협회는 협회일 뿐 자신들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게 헌터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역습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고해도 그것을 토대로 협회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린 후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에게 전파하기까지 최소 하루는 걸릴 텐데…… 어쩌면 그 안에 뭔가 큰일이 터질지도 모른다.”

“으음, 그럼 어쩌죠?”

“일단 보고를 안 할 순 없으니 보고부터 하고…… 그다음 괴물들을 사냥하기보단 제주도 전역을 빠르게 돌면서 정확한 상황파악을 해보자.”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연희 역시 철민의 의견에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지금은 사냥이 중요할 것 같진 않았다.

“전 뭘 할까요?”

“뭘 하긴 후딱 바닥에 떨어진 조각이나 가루들이나 거둬들여.”

연희는 크게 미소 지으며 건을 향해 얘기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는 전리품이라도 열심히 주워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처럼 건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조각이나 가루를 줍는 것이었다.

* * * *

철민의 예상은 그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

이미 어둠의 왕은 역습을 시작했다.

그 역습의 선봉에는 혼마가 된 김광택이 있었다.

김광택은 원래 마객급 혼마였지만 진혼마라는 특이점을 지닌 것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 어둠의 왕이 적극 힘을 나누어주어 각성까지 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지닌 힘은 평균적인 마군급 혼마보다도 더 강했다.

그런 그가 수십 마리의 각성한 암괴와 수백 마리의 각성한 수마를 이끌고 약한 헌터들을 골라서 공격했으니 당연히 헌터들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광택은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놈은 아주 교활하게도 어둠의 왕이 제주도 전역에 깔아놓은 검은 안개를 이용해 헌터들의 대략적인 능력을 파악하고 그걸 토대로 자신이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헌터들만 골라서 습격했다.

그 결과 그는 단 12시간 만에 오십 명의 헌터들을 제거했다.

정확히는 오십 명의 헌터들을 잡아먹었다.

그들을 잡아먹고 거둬들인 핵이 마흔여섯 개였다.

그 중 조금 질이 떨어지는 열 개를 제외한 나머지 서른여섯 개는 분명 어둠의 왕에게 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었다.

김광택의 목표는 큰 도움이 될만한 쓸만한 핵을 마흔 개 모으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목표는 네 개.

김광택은 마지막으로 한 개의 헌터 팀을 습격한 후 잠시 공격을 멈출 생각이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자칫 위기를 감지한 헌터들이 역습에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이득을 봤으면 빠지는 게 옳았다.

어차피 마흔 개의 쓸만한 핵이라면 정말 새로운 어둠의 군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렇단 얘긴 그때부턴 더 과감하게 헌터들과 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둠의 왕과 김광택이 믿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들은 핵을 이용해 새로운 어둠의 군단을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수마나 암괴 같은 이미 어둠에 물들어 있는 괴물들을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었던 어둠의 왕. 하지만 그는 그렇게 어둠에 속해 있는 괴물들만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어서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바꿨다.

자신이 김광택의 영혼을 직접 타락시켜서 혼마로 만들었던 것처럼…… 어둠에 물들지 않은 고대의 영혼들을 직접 혼마로 만들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재료라고 할 수 있는 고대의 영혼이 필요했다.

김광택이 모으고 있는 핵이란 게 바로 이 고대의 영혼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핵은 바로 소울러의 심장이었다.

김광택은 살아 있는 소울러에게서 심장을 뜯어내 특별한 어둠의 술법을 이용해 그 심장을 계속 뛰게 하였다.

그 결과 심장에 맺혀 있던 고대의 영혼들은 맹약을 맺은 소울러가 죽었음에도 여전히 심장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어둠의 왕이 오랫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동안 어둠의 왕은 은밀하게 소울러들을 잡아서 실험했고 그 실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어둠의 왕은 정확히 소울러를 노렸다기보단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인 고대의 영혼들을 노린 것이었다.

사실상 그에게 소울러는 그저 고대의 영혼들을 담고 있는 그릇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소울러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들의 심장에 담겨 있는 고대의 영혼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그 고대의 영혼들을 강제로 어둠에 물들게 해서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비록 자신이 직접 몸을 갈아타며 탄생시킨 김광택처럼 완벽한 혼마로 만들 순 없었지만 적어도 암괴보단 훨씬 뛰어난 괴물을 만들 순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려는 괴물은 대략 암괴보단 뛰어나고 혼마에는 살짝 모자라는 정도의 힘을 지닌 전혀 새로운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어둠의 왕은 이미 그 괴물의 이름도 정해 놓았다.

‘암혼(暗魂)’

이게 바로 어둠의 왕이 소울러들의 심장을 이용해 만들려는 괴물의 정체였다.

김현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 자신의 팀을 이끌고 제주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는 중급 골드 등급의 헌터였고 그가 데리고 있는 여섯 명의 헌터는 모두 상급 실버 등급의 헌터들이었다.

충청도에서는 나름 이름이 있는 헌터팀 중 하나였던 그들이었기에 이번 협회의 긴급 의뢰도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분수를 아는 그들이었기에 많은 걸 원하지도 않았고 아무리 괴물들이 떼로 나온다고 해도 수마나 암괴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예상은 조금 전 모두 깨져버렸다.

파파파팟!

“크으윽!”

다시 한 번 두 개의 검이 김현호의 몸을 파고들었다.

김현호는 혼력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해 그 검을 피한다고 피했지만 완벽하게 피할 순 없었고 결국 몸 여기저기에 꽤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김현호를 그렇게 찍어 누르고 있는 이는 바로 김광택이었다.

김현호는 육체 강화가 특기인 중급 골드 헌터였지만 마군급 이상의 힘을 지닌 혼마 김광택을 막을 순 없었다.

더 절망적인 건 그의 동료들인 여섯 명의 상급 실버 헌터들이 정확히 마흔네 마리의 암괴와 백육십 마리의 수마에게 이미 조각조각 찢겨버렸다는 점이었다.

남은 건 혼자였는데…… 자신마저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당연히 김현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김광택을 상대로 자폭을 선택했던 연욱처럼 김현호도 끝을 직감했다.

‘젠장……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마음 같아선 그도 연욱처럼 폭주와 함께 저승길 동무들을 다수 만들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만한 기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버티다가 죽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경계의 세상에서 지닌 힘이 약해 죽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으으, 젠장!!”

김현호는 크게 소리치며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냈다.

그는 죽을 땐 죽더라도 발악이라도 하고 죽으려고 했다.

김광택은 그런 김현호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도 이젠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다.

마지막을 생각하는 김현호와 김광택.

둘 다 똑같이 마지막을 생각했지만 두 사람의 생각하는 마지막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일어났다.

휘리리리릭! 콰과과광!

김현호와 김광택의 사이를 파고드는 한 자루의 대검.

그것은 흑룡아(대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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