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더 소울(The Soul) - 암혼(暗魂) [2]
급한 대로 흑룡아(대검)을 날려 전투를 막은 건은 빠르게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연히 건과 함께 연희와 철민도 전장으로 뛰어들며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암괴와 수마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드드드드드드!
화르르륵!
두 자루의 기관총에서 쏟아져나온 광혼탄이 마치 소나기처럼 수마들에게 쏟아졌고 동시에 철민의 뿌린 거대한 화염 줄기가 암괴들을 휩쓸었다.
세 사람의 난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괴물들이 그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는 없었다.
키에엑!
크르르륵!
순식간에 암괴와 수마 무리들이 거의 20%가량 제거되었다.
그들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과였지만 그만큼 연희와 철민의 기습이 위력적이란 뜻이기도 했다.
그 순간 건은 김광택의 앞으로 가로막으며 자신이 던졌던 흑룡아(대검)을 다시 잡았다.
한편 세 사람의 난입은 마무리 일격으로 김현호를 쓰러트리고 인제 그만 철수를 하려고 했던 김광택에겐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광택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아저씨, 이곳을 벗어나요.”
건은 흑룡아(대검)을 들어 김광택을 가리키며 뒤에 있는 김현호에게 얘기했다.
김현호는 지금은 자신이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오히려 자신을 도와주러 온 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인지하고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나 경계를 벗어났다.
철민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아니, 괴물들은 오히려 그 예상보다 더 빨리 역습을 시작했었다.
건 일행은 제주도를 빠르게 돌면서 헌터들이 당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흔적들을 역으로 추적한 결과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느끼고 각기 세 방향으로 흩어지며 서로 빠르게 나눈 역할을 수행한 것이었다.
사실 실력으로 보면 철민이 김광택을 맡고 연희가 암괴를 맡고 마지막으로 건이 수마를 맡는 게 맞았지만, 건이 가진 힘이 다수를 일거에 쓸어버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1:1 대결에 특화된 힘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역할이 나뉘었다.
‘이 녀석 굉장히 위험한 힘이 느껴진다. 헌터 시험을 치를 때 만났던 혼마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힘이다.’
건은 눈앞에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는 검은 그림자 인간과 같은 괴물이 굉장히 강력한 괴물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마객급 혼마? 아니야.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볼 때 거의 마군급 혼마는 충분히 되는 것 같아.’
정말 상대가 마군급 혼마라면 건은 놈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건의 재능이 특출나고 성장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빠르다고 해도 아직 마군급 혼마를 상대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일단 난 버티는 게 최선이겠구나.’
상대방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한 건은 적을 쓰러트리겠다는 욕심 같은 건 가볍게 포기했다.
건은 어차피 철민과 연희가 사방에 깔린 수많은 괴물을 모두 정리하면 자신을 도우러 올 게 분명했기 때문에 잘 버티기만 하면 승산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녀석들이구나.”
건이 김광택의 힘을 단번에 알아봤듯이 김광택도 건과 철민 그리고 연희의 실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김광택이 계속 피하려고 했던 실력 있는 소울러들.
바로 그들이었다.
‘이 녀석들과 싸우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겠군.’
세 사람의 실력을 알아본 김광택은 혼마답지 않게 아주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본래 혼마라면 상대가 강하건 약하건 일단 상대방에게 달려들고 보는 게 기본이었다.
설사 보통 혼마와 다르게 뚜렷한 지성을 가진 진혼마라고 해도 몸속에서 끓어올라오는 마성 때문에 절대 도망가려는 생각을 먼저 하지 않았다.
이건 혼마라면 등급이나 종류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본성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김광택은 달랐다.
그는 분명 혼마였지만 다른 혼마들과 다르게 몸속에서 흘러넘치는 마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존재했다.
그건 바로 어둠의 왕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었다.
그 충성심이 마성을 억제했다.
그렇게 마성이 억제되니 자연스럽게 혼마면서도 냉철한 판단이 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여러모로 김광택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혼마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후퇴를 결정한 김광택은 아직 거둬들이지 못한 핵에 대한 미련도 깔끔하게 버렸다.
대신 그는 자신을 가로막은 건을 뚫고 경계를 빠져나갈 생각만 했다.
스윽!
김현호를 끝장내려고 검을 들어 올렸던 김광택의 머릿속엔 이제 김현호 대신 건이 들어왔다.
피잉!
그리 그 순간 김광택의 몸이 마치 섬광(閃光)처럼 앞으로 폭사 되었다.
번쩍!
건은 갑작스러운 김광택의 공격에 당황했지만 당황한 것과 별개로 몸은 이미 그 공격에 반응하고 있었다.
촤아아!
김광택의 두 자루 검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건을 향해 찌르고 들어왔다.
오른쪽의 검은 머리를 그리고 왼쪽의 검은 옆구리를 노렸다.
순간 건은 흑룡아(대검)을 왼쪽 어깨 쪽으로 눕히며 머리 쪽으로 향하는 검을 막고 동시에 몸을 살짝 비틀며 옆구리를 향하는 검을 피했다.
따다당, 파파팟!
한 자루의 흑룡아(대검)에 막히고 한 자루의 검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놀라울 정도로 기민한 대응이었지만 김광택은 마치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건을 스치고 지나갔다.
“헛!”
건은 김광택이 계속 공격을 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가 알기론 김광택이 혼마라면 무조건 공격을 계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광택은 공격을 이어가지 않고 그대로 건을 지나쳐 경계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다급해진 것은 건이었다.
살짝 당황한 건은 재빨리 김광택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츠츠츳, 파아앗!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서 한 조각의 혼강편이 방출되었다.
혼강편은 김광택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혼마가 도망을 친다는 게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건은 이대로 김광택을 도망치게 놔둘 순 없었다.
휘리릭!
따다다당!
아무리 김광택이라고 해도 혼강편을 무시할 순 없었기 때문에 뒤로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둘러 혼강편을 쳐냈다.
그렇게 김광택이 잠시 멈칫한 순간 건은 김광택을 따라잡으며 흑룡아(대검)를 있는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아아, 쩌저저저저정!
흑룡아(대검)에는 당연히 무쌍투기가 실려 있었다. 그러한 흑룡아(대검)를 머리위로 높게 들어 올린 후 있는 힘껏 내리친 것이었기 때문에 위력은 굉장히 강력했다.
하지만 김광택은 가볍게 두 자루의 검을 십자로 겹치며 흑룡아(대검)을 막아냈다.
그가 가진 특별한 세 가지 검술 중 하나인 태극십자검. 그것이 건이 전력을 다해 내리찍은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었다.
그는 건의 공격을 막은 후 곧장 두 자루의 검을 양손에서 가볍게 돌린 후 건을 향해 검을 뿌렸다.
정확히는 검을 던졌다.
놈이 던진 검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움직이며 건의 급소를 향해 날아왔다.
건은 재빨리 흑룡아(대검)를 휘둘러 검을 쳐냈다.
따다당, 따당!
하지만 튕겨져나간 두 자루의 검은 허공에서 잠시 멈추며 중심을 잡고 다시 한 번 건을 향해 날아왔다.
건은 그 두 자루의 검을 보는 순간 김광택이 무슨 무공을 펼치고 있는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
검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이기어검술을 김광택이 펼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김광택이 자랑하는 특별한 세 가지 검술 중 하나인 쌍검비행술(雙劍飛行術)이었지만 어쨌든 그 검술의 기본이 되는 무공이 이기어검술인 것은 맞았다.
비록 이기어검술의 최고 경지인 심어검(心馭劍)에는 한참 부족한 양손으로 검을 조종하는 수어검(手馭劍)이었지만 그래도 이기어검술은 이기어검술이었다.
한때 조선시대 최고의 검객이라 불렸던 김광택이 불패의 전설을 만드는데 일조한 이 검술은 만약 김광택이 그냥 평범한 혼마였다면 사용하지 못했을 검술이었다.
워낙 세밀한 정신력이 있어야 하는 검술이었기 때문에 마성에 지배당하는 혼마의 특성이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 펼치기가 불가능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광택은 이 검술을 펼칠 수 있었다.
김광택은 양팔을 어지럽게 휘두르며 두 자루의 검을 조종했다.
그러자 두 자루의 검은 정말 폭풍처럼 건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일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두 자루의 검은 마치 수백 자루의 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 건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따다당, 따다다다당!
건은 간신히 흑룡아(대검)의 넓은 도면으로 그 공격들을 막아냈지만, 워낙 정신없이 공격이 쏟아졌기 때문에 모든 정신을 공격을 막는 것에만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김광택은 건이 뜻밖에 너무 잘 버티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울러들은 아주 자주 내 예상을 뛰어넘는군.’
그가 본 건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보다는 지금 암괴와 수마들을 거의 다 정리한 철민과 연희가 훨씬 더 강해 보였다.
그렇기에 그는 건을 금방 떨쳐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버텼다.
이쯤 되자 김광택도 더는 시간을 끌 순 없었다.
자칫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되면 암괴와 수마를 정리한 두 명의 소울러가 가세해 더욱 강력한 압박을 넣을 게 뻔했기 때문에 이젠 정말 이곳에서 탈출해야 할 때였다.
결정을 내린 김광택은 양손을 천천히 하나로 모아 깍지를 꼈다.
그러자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붓던 두 자루의 검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천천히 하나로 겹쳐졌다.
츠츠츠츳.
두 자루의 검은 겹쳐지는 것과 동시에 서로 뒤엉키며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두 자루의 검은 그냥 검이 아니었다.
이것은 김광택이 지닌 마기(魔氣)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을 하나로 합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아앗!
두 자루의 검이 합쳐지자 건이 들고 있는 흑룡아(대검)보다 더 큰 한 자루의 검은색 대검이 허공에 나타났다.
김광택은 그 대검이 나타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깍지를 낀 양손을 빠르게 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검은색 대검이 곧장 건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아!
놀라운 속도와 위력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검은색 대검.
건은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그 대검을 본 순간, 이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지 직감할 수 있었다.
건은 몰랐지만, 이것은 김광택이 지닌 특별한 세 가지 검술 중 마지막 검술인 ‘천왕검(天王劍)’이었다.
당연히 천왕검은 강력했다.
더군다나 이것은 그냥 천왕검도 아닌 마기로 만들어진 천왕마검(天王魔劍)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위력은 천왕검보다도 더 강력했다.
“젠장!”
건은 재빨리 흑룡아를 들어 올리며 자신이 지닌 혼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게 절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지잉,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결국, 천왕마검은 건이 있는 서 있는 곳에 정확히 떨어지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은 몇 마리 남지 않긴 했지만, 주변에 있던 암괴와 수마마저 모조리 쓸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폭발의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철민과 연희도 재빨리 방어 기술을 사용하며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이 폭발의 중심에 휘말린 건을 걱정했지만 일단 지금은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쿵!
폭발의 여파가 주변을 휩쓸고 지나간 후 천천히 폭발이 만들어낸 참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폭발에 휘말린 암괴와 수마는 모조리 죽었기 때문에 철민과 연희는 마무리를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그것보단 폭발에 완벽하게 휘말린 건의 안위를 걱정하며 건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으…… 젠장!!”
크게 분노하는 건.
비록 그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비싸게 주고 산 강화 전투복이 모조리 찢기고 몸 여기저기에 수없이 많은 상처가 나 온몸에 피범벅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 건 정도 되는 소울러에겐 그리 큰 상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다쳐서가 아니었다.
그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천왕마검의 폭발과 함께 김광택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망할 놈이…… 날 이 꼴로 만들고 그냥 이대로 도망쳤다는 건가?’
건은 완벽하게 김광택에게 패배했다.
그런데 오히려 승자인 김광택이 도망쳤다.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하면 김광택이 너무나도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건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일이었다.
“건아, 괜찮아?”
연희는 건을 향해 달려오며 물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놈을 놓쳤어요.”
건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얘길 했다.
실력이 모자란 건 둘째치고 이렇게 실컷 농락만 당하고 놓치기까지 하니 더욱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알아. 우리도 폭발 때문에 순간 놈의 기운을 놓쳤는데 다시 찾았을 땐 완벽하게 기운을 숨긴 후였어. 그런데 그 녀석 혼마 아니었어? 어떻게 혼마가 이렇게 도망칠 수 있는 거지?”
연희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범한 혼마가 아니란 뜻이겠지. 아마도 방금 도망친 그 녀석이 우리가 찾고 있는 그 근본적인 원인과 아주 가까운 존재인 것 같다.”
“하아, 이거 갈수록 태산이네요. 어디서 그런 어처구니 없는 혼마가 탄생한 거지.”
연희는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철민은 그런 연희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거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략적인 뜻은 같았지만 좀 더 핵심을 보고 있었다.
스윽.
철민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축구공만 한 검은 구슬을 들어 올리며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안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기운에 둘러싸여 있는 뭔가가 있었다.
두근!
바로 그 순간 철민은 그 뭔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진짜 태산은 따로 있는 것 같구나.”
“네?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냥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놈들은 양의 탈을 쓴 사냥개의 몸에 숨어 있는 아귀(餓鬼)였다.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제주도가 문제가 아니라 경계의 세상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하는 철민.
그 얘길 하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검은 구슬 안쪽에 숨겨져 있던 한 개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냥 심장이 아닌 고대의 영혼이 담겨 있는 심장.
철민은 그것만 보고도 어둠의 왕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