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선택, 그리고…… [1]
@ 어둠의 선택, 그리고…….
일곱 명의 최상급 소울러들은 어둠의 왕이 예상한 대로 순식간에 왕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수많은 암괴와 수마가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애초에 암괴와 수마는 그들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혼마급은 되는 괴물들이 있어야 했다.
물론 어둠의 왕의 권속 중에는 혼마도 존재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는 그 혼마들이 없었다.
꽈광!
커다란 문을 박살 내며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일곱 명의 최상급 소울러들…… 그들은 앞쪽에 보이는 커다란 권좌에 앉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어둠의 왕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저놈이군.’
똑같은 생각을 하는 소울러들.
그들은 모두 동시에 어둠의 왕이 자신들이 찾는 그 존재라는 걸 알아차렸다.
어둠의 왕에게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암흑마기만 봐도 그가 이 모든 걸 만들어낸 존재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제 왔군.”
어둠의 왕은 소울러들을 바라보며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후, 우릴 기다리기라도 한 건가?”
고명운은 어둠의 왕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에게는 어둠의 왕도 단지 한 마리의 괴물일 뿐이었다. 사냥해서 멱을 따버려야 하는 괴물…… 그렇기에 그 괴물의 생각 따위는 별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기다렸지.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왕국에 들어온 만큼 내가 직접 반겨주는 게 예의 아니겠어?”
“푸하하하, 미친 거 같군. 어디서 혼마 나부랭이가 예의를 운운해? 꼴에 진혼마 정도는 된다고 자랑하는 건가?”
고명운은 어둠의 왕이 진혼마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춘 괴물.
하지만 아무리 지성이 있다고 해도 괴물은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고명운은 어둠의 왕이 예의 운운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우리가 예의란 걸 아는 게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둠의 왕은 그런 고명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마이너스 에너지에 휘둘려 파괴밖에 모르는 괴물이 된 주제에 뭔 예의를 찾아. 그냥 너희가 가진 본성대로 행동해. 차라리 그게 더 보기 좋아.”
“본성? 크크크…… 넌 그깟 파괴 본능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그럼 아니야? 너흰 동족끼리도 잡아먹는 아귀 새끼들이잖아.”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네가 알고 있는 그 녀석들은 각성하지 못한 덜떨어진 놈들이고…… 이곳 내 왕국에 있는 내 권속들은 그 녀석들과 전혀 다르다.”
“다르긴 개뿔.”
고명운은 끝까지 어둠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긴 내가 너희에게 이걸 이해시킬 이유는 없겠지.”
어둠의 왕도 굳이 고명운을 이해시키려고 하진 않았다.
“맞아. 어차피 난 네 멱만 따버리면 끝이니까 쓸데없는 대화는 여기까지 하자고. 실례가 안 된다면 저 녀석은 제가 상대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고명운은 다른 소울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하지만 다른 소울러들은 절대 고명운에게 양보를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은근슬쩍 메인 요리를 혼자 먹겠다고 나서면 우리가 고개를 끄덕여줄 것으로 생각한 건가?”
“다른 놈도 아니고 그래도 이번 임무의 끝판 왕인데…… 그렇게 쉽게 양보할 수는 없죠.”
당장에 조현광과 천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어둠의 왕을 혼자 상대하려고 한 고명운에게 태클을 걸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쳇, 역시 제비뽑기인가?”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저 녀석을 상대할 사람들도 아니고…… 그럼 결국 제비뽑기밖에 없지.”
“아무래도 모두의 의견은 제비뽑기인 것 같군요.”
소울러들의 생각이 대충 정리되자 묵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끄덕이며 묵뢰칠검을 동시에 땅바닥에 꽂았다.
퍼퍼퍼퍼퍼퍽!
그리곤 가볍게 정신을 집중해 그 중 하나의 검에 자신이 가진 특유의 기운인 묵뢰기(墨雷氣)를 주입했다.
“여기 꽂힌 일곱 자루의 검 중 하나에 제가 방금 묵뢰기를 주입해 다른 검과 살짝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씩 검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전 당연히 마지막에 남는 검을 고를 겁니다.”
묵뢰는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빠르고 간편한 제비뽑기 방법을 제안했다.
묵뢰가 묵뢰기를 다시 바꿔치기하는 것쯤은 이곳에 모인 소울러들이라면 얼마든지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공정성이 있는 제비뽑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가장 어이가 없는 이는 따로 있었다. 소울러들이 서로 싸우겠다고 제비뽑기까지 하는 그 모습을 본 어둠의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무시할 줄은 몰랐었다.
“……너희 지금 뭘 하고 있는 게냐?”
어둠의 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비뽑기를 하는 일곱 명의 소울러들을 바라보았다.
“보면 몰라? 너와 싸울 사람을 뽑으려는 거잖아.”
이번에도 역시 왕의 말에 대답을 한 사람은 고명운이었다.
“크크크크크…… 크크크크크크…….”
그 대답을 들은 어두의 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을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뭘 쳐 웃어. 금방 결정되니까 기다려봐.”
고명운은 그렇게 말을 하곤 맨 끝 쪽에 있던 한 자루의 묵뢰칠검을 뽑았다.
스르릉!
파아앗!
그러자 그가 뽑은 검에서 검은색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오! 당첨이다!”
고명운은 그게 묵뢰기라는 걸 알아보곤 기분 좋게 외쳤다.
“건방진 놈들! 너희에게 진정한 어둠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고명운이 검을 뽑은 바로 그 순간.
어둠의 왕도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어둠의 왕에게서 엄청난 어둠의 기운이 폭발하듯 쏟아져나왔다.
소울러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어둠의 기운.
하지만 그럼에도 소울러들의 표정 변화는 거의 없었다.
생각보다 어둠의 왕이 가진 힘이 크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보고 매우 놀라진 않았다.
그들은 노련한 이들이었다.
여기서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생각보다 강하군.’
‘이거 어쩌면 저 건방진 고명운이 큰코다칠 수도 있겠는걸?’
‘혼마와는 조금 다른 느낌…… 도대체 정체가 뭐지?’
‘혹시 산 채로 잡을 순 없을까? 그러면 박사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텐데…….’
소울러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 어둠의 왕과 그를 향해 달려드는 고명운을 바라보았다.
* * * *
어둠의 왕과 일곱 명의 소울러들이 만난 그 순간.
원래는 당연히 어둠의 왕을 지켜야 할 그의 진짜 심복들은 경계 밖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김광택을 포함한 세 마리의 혼마.
그들은 모두 각성한 마객급 혼마였다.
물론 그 중 가장 특별한 건 각성한 마객급 진혼마인 김광택이었지만 나머지 두 마리 혼마도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더욱이 어둠의 왕을 겹겹이 지키던 각성한 최상급 암괴들을 각각 열 마리씩 데리고 탈출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실상 이들이야말로 어둠의 왕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전력이었다.
만약 어둠의 왕이 이들과 함께 소울러들과 싸웠다면 아무리 소울러들의 힘이 강해도 전투가 쉽게 끝나진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둠의 왕은 그 싸움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치밀한 계산 끝에 그 싸움이 치열할 수는 있어도 결국 자신들이 패배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 전투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걸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그 누구도, 심지어 그와 가장 가까웠던 김광택마저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무려 왕인 자기 자신을 미끼로 만들어낸 치밀한 계획.
그렇기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계획…… 그건 그가 어둠의 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물론 이 계획도 100%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 서로 다른 방향으로 탈출하는 세 마리의 혼마들도 안전하게 경계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둠의 왕은 가능 가능성이 높은 이걸 선택했다.
그 얘긴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어둠의 왕은 셋 중 최소 하나 정도는 경계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일단 계획은 절반은 성공하는 것이었다.
어둠의 왕이 얘기했듯이 어둠은 절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빛이 존재한다면 어둠은 그 빛의 반대편에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둠이 약해질 순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약해질지언정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둠의 왕은 이미 아주 오랫동안 보잘것없는 어둠의 한 조각으로 살아온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선택을 하면서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마지막에 웃을 수만 있다면 당장의 굴욕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파파팟!
빠른 속도로 경계 밖으로 달려가는 그림자들.
그 그림자들의 선두에는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머리에 황소처럼 두 개의 커다란 뿔이 나 있고 온몸이 희미한 불꽃에 휩싸여 있는 한 괴물이 있었다.
놈은 바로 황진기라 불리는 혼마였다.
그는 비록 김광택처럼 진혼마는 아니었지만 나름 각성한 마객급 혼마였다.
그는 조선 영조시대에 선전관을 지낸 인물로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역적으로 몰렸던 인물이었다.
그 뒤 영조는 그를 잡기 위해 수많은 병사를 풀었었지만, 그는 뛰어난 무공과 지략으로 끝끝내 잡히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돌아다녔다고 알려졌었다.
혼마가 되기 전에는 7등급의 고대 영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한 마리의 괴물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놈은 진혼마가 아니라 그냥 혼마였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 놈의 머릿속엔 오로지 두 가지 밖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첫 번째는 바로 왕의 명령에 따라 경계를 탈출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경계를 탈출한 뒤 ‘그것’이 각성할 때까지 지키는 것이었다.
어둠의 왕은 그들에게 그 두 가지 명령을 마지막으로 내렸고 당연히 맹목적으로 왕을 따르는 혼마들은 그 명령대로 움직였다.
그나마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김광택을 제외한 두 혼마는 진짜 기계처럼 그 명령을 받고 그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황진기는 은밀히 이동하기보단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앞에 누구라도 나타나 자신을 막으면 그냥 쓸어버리고 나아가겠다는 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황진기는 후발대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피하질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콰광!
황진기를 멈추게 한 한 번의 폭발.
그것은 바로 염혼뢰(炎魂雷)라 불리는 일정의 경계용 지뢰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누…… 구…… 냐…….”
황진기는 최상급 암괴들을 멈추게 한 후 주변을 빠르게 돌아보았다.
“워워, 누나…… 이거 아무리 봐도 월척이 걸린 거 같은데요?”
황진기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남자.
그는 바로 건이었다.
당연히 염혼뢰를 설치한 건 연희였다.
연희는 주변 지역에 염혼뢰는 다수 설치한 후 괴물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다.
“진짜 월척이네…… 이놈 전에 네가 상대했던 녀석하고 아주 비슷해 보이는 기운을 지녔는데?”
건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 연희였다.
“저도 확실히 느끼고 있어요.”
“주인님, 그때 그 녀석은 아니지만, 그 녀석의 형제 정도는 될 수 있는 놈인 거 같아요. 기운의 향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요.”
모두가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귀여운 아기 돼지 백은 여전히 건이 메고 있는 배낭 속에 몸을 숨긴 상태로 뛰어난 레이더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백의 말을 들은 건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황진기를 바라보았다.
“네놈들…… 죽인다…….”
황진기는 건과 연희가 자신의 적(敵)이란 걸 확실히 인지했다.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 바로 전투 상태에 들어섰다.
파파파팟!
화르르륵!
황진기 몸을 감싸고 있던 미약한 불꽃이 갑자기 커지며 동시에 황진기의 몸도 화염만큼이나 커졌다.
이게 바로 혼마 황진기의 진짜 모습이었다.
“크으으으…….”
키가 거의 4m 정도로 커진 황진기는 천천히 손바닥에서 한 자루의 검을 뽑았다.
스르르르륵!
그것은 화염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대검(大劍)이었다.
한편 건 역시 그런 황진기를 바라보며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