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선택, 그리고…… [2]
그러자 그의 오른팔에 새겨진 흑룡 문신이 손바닥을 통해 흘러나오며 동시에 한 자루의 대도(大刀) 형태로 바뀌었다.
“네놈이 그 녀석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그 녀석에게 받았던 굴욕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게 아주 기쁘다.”
건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
물론 상대가 만만한 건 절대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마객급은 되어 보이는 혼마였다.
거기에 주변에 있는 놈들 역시 상당히 강력해 보이는 암괴들이었다.
당연히 연희와 단둘이 상대하기에는 다소 벅찰 수도 있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건은 그럼에도 별로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철민과 함께한 50일간의 수련.
그 수련이 건에게 이러한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누나, 시작해볼까요?”
연희를 향해 외치는 건.
그러자 연희 역시 빠르게 자신의 커다란 저격용 라이플을 꺼내 들었다.
철컥, 철컥!
“오케이, 어디 한 번 네 마음껏 날뛰어봐라.”
연희는 건을 믿었다.
그렇기에 건에게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그를 지원할 준비를 했다.
이처럼 건이 연희를 믿고 또한 연희도 건을 믿기에 두 사람의 호흡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
그 순간 먼저 공격을 시작한 건 황진기였다.
놈은 화염으로 만들어진 대검을 휘두르며 당장에라도 건을 찢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놈과 함께 움직이던 10마리의 최상급 암괴들도 건과 연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건은 그들을 보면서 가볍게 흑룡아(대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대도에서 뻗어나온 한 줄기의 날카로운 기운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츠리리릿!
무신혼의 두 번째 무공인 월영참이었다.
건이 월영참을 뿌린 이유는 황진기와 나머지 열 마리의 최상급 암괴들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파파파팟!
그리고 당연히 월영참은 그가 의도한 대로 그들의 진형을 무너트렸다.
좌우로 흩어지는 최상급 암괴들.
건은 그 암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녀석들은 연희가 맡아주기로 되어 있었다.
“누나 부탁해요!”
“걱정하지 말고 너나 조심해라. 그 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다.”
연희는 그렇게 얘길 하며 곧장 또 한 자루의 저격소총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최상급 암괴 그것도 각성한 최상급 암괴 열 마리를 상대하려면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당연히 건을 지원할 순 없었다.
그 얘긴 건은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황진기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각성한 마객급 혼마 황진기.
이는 거의 황진기가 마군급에 가까운 힘을 지닌 혼마라는 뜻이었다.
‘최소한 플래티넘 등급은 되어야 단독으로 사냥할 수 있다는 마군급 혼마. 비록 완전한 마군급 혼마는 아니지만…… 분명 그 수준과 비슷한 녀석이다. 한 마디로 살 떨리는 전투가 될 것이란 뜻이지.’
건은 손에 들고 있던 흑룡아(대도)를 고쳐 잡으며 살짝 웃었다.
분명 쉬운 전투가 아니었고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감각은 분명 약간의 설렘이었다.
과거 척준경이 이런 승부를 즐겼던 것처럼 건도 어느새 척준경처럼 이런 살 떨리는 승부를 즐기게 된 것이었다.
“자, 놀아보자!”
파팟!
건은 그 말과 함께 과감히 황진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한 마리의 커다란 불꽃의 거인(巨人)되어 버린 황진기를 그런 건을 향해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휘둘렀다.
화르르륵!
하지만 건은 흑룡아(대도)를 비스듬히 세우며 그 대검을 흘려보냈다.
드드드드득!
그 순간 황진기가 내뿜는 열기(熱氣)가 건의 온몸을 휘감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열기만으로 숨이 막혀서 제대로 호흡하지도 못할 수 있었지만, 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열기마저 대검과 같이 흘려버렸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꾸준히 익혀온 오행발현술 덕분이었다.
건은 오행발현술로 인해 오행에 대한 내성이 아주 강해진 상태였고 거기에 온몸에 퍼져있는 금강야차의 기운은 내성을 뚫고 몸속으로 침투한 미약한 열기마저 완벽하게 차단했다.
이렇듯 황진기가 내뿜는 열기가 문제가 되지 않자 건은 좀 더 수월하게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온몸을 두르고 있는 화염을 제외하곤 전형적인 강화형 혼마인 것 같군.’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그 사이 건은 심안을 통해 대략 황진기의 힘을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전투에서 상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크어어어어!”
황진기는 상대가 자신의 열기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자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괴성을 질렀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싸웠던 상대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곤혹스러워했었다.
그런데 건은 달랐다.
마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오히려 더 황진기 쪽으로 파고들며 날카롭게 도를 휘둘렀다.
이렇게 되자 황진기는 살짝 건을 상대하는 방법을 바꿨다.
황진기가 괴성을 지르자마자 황진기의 몸에서 수십 개의 화염의 줄기들이 뻗어 나왔다.
화르르륵!
당연히 그 화염 줄기들은 곧장 건을 향해 쏟아졌다.
‘헛, 단순한 강화형이 아니었던 건가?’
건은 이번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살짝 당황하며 몸을 비틀어 화염 줄기들을 피했다.
파파파파팟!
건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염 줄기들.
하지만 워낙 창졸간에 날아온 화염 줄기들이었기 때문에 모든 줄기를 피할 순 없었다.
휘리릭, 드득!
결국, 두 줄기의 화염이 건의 왼팔에 휘감겼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황진기는 화염 줄기를 통해 아주 강력한 열기를 건 쪽으로 쏟아냈다.
화르르르륵!
건은 이번 공격은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무쌍투기를 왼팔에 집중시키며 동시에 금강야차의 기운도 왼팔 쪽으로 몰아넣었다.
드드드드드!
순간적으로 건의 왼팔에 엄청난 열기가 집중되면서 건의 왼팔 자체가 마치 고열에 가열된 강철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건은 무쌍투기와 금강야차를 이용해 그 열기를 딱 왼팔에 한정시켰다.
그뿐 아니라 그 열기를 견뎌내기까지 했다.
“크윽!”
물론 단지 견디기만 한 것이었다.
아무리 불에 대한 내성이 강한 건이라고 해도 이번 열기는 차원이 다른 열기였다.
진짜로 지옥(地獄)이 존재한다면 그 지옥의 밑바닥을 흐르는 용암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건의 왼팔은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보였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건은 이대로 계속 열기를 받아내다간 진짜 왼팔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떨쳐버려야 해!’
건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있는 힘껏 왼발을 굴렀다.
쩌저저저저적!
그러자 그의 왼발로부터 강력한 충격파가 땅바닥을 타고 앞쪽으로 퍼져 나갔다.
파천신력이었다.
건은 파천신력을 이용해 황진기의 중심을 흔든 후 그 순간 자신의 왼팔을 꽉 붙잡고 있는 화염 줄기를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진기는 파천신력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자 곧장 두 다리를 땅바닥에 깊숙이 박으며 그 자리에서 버텼다.
화르륵, 콰콰과과!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였다.
콰아앙!
파천신력은 강하게 황진기의 몸을 때렸지만, 황진기는 그걸 힘으로 버텨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황진기도 충격을 입었지만, 놈은 지금 뭐가 가장 중요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건은 자신의 의도가 완전히 막혀버리자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더욱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에도 건의 왼팔에 집중되고 있는 열기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진짜로 황진기는 최소한 건의 왼팔 정도는 완전히 녹여 없애버릴 작정인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리 쉽게 당할 것 같으냐!’
건은 황진기가 파천신력의 충격파를 버티려고 두 다리를 땅바닥에 박는 그 순간 또 다른 틈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틈의 핵심은 바로 역공이었다.
“하압!”
꽈광!!
건은 다시 한 번 파천신력을 두 다리에 맺히게 한 후 그 상태에서 아주 강하게 두 다리로 땅바닥을 찍으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파천신력이 만들어낸 충격파는 건에게 엄청난 빠르기의 추진력을 선사했다.
물론 이것 역시 철민과 50일 동안 수련을 하며 몸으로 터득한 파천신력을 응용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건은 황진기에게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황진기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지금 황진기가 스스로 자신의 두 다리를 봉쇄했기 때문이었다.
건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황진기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그 상태에서 오른팔에 들고 있던 흑룡아(대도)를 들어 올려 황진기를 향해 내리찍었다.
츠츠츠츳!
황진기는 생각지도 못한 역습에 깜짝 놀라며 재빨리 몸을 비틀며 흑룡아(대도)를 피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건이 진짜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황진기를 향해 내리쳐지던 흑룡아(대도)가 갑작스럽게 직각으로 꺾였다.
그리곤 그대로 건의 왼팔을 꽉 붙잡고 있던 화염의 줄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파아앗!
애초에 건이 노린 건 황진기 아니라 이 화염의 줄기였다.
만약 처음부터 이 화염의 줄기를 노렸다면 황진기가 화염 줄기를 움직여 피했겠지만, 지금은 황진기도 완벽하게 걸려들었기 때문에 화염 줄기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건은 왼팔을 녹여버릴 것 같던 열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염의 줄기를 끊어낸 건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여전히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는 왼팔을 가볍게 휘둘렀다.
‘까딱했으면 왼팔을 잃을 뻔했네.’
잠깐의 방심이 부른 화였다.
“……역시 평범한 혼마는 아니라는 건가?”
건은 다시 심안을 발동시켜 황진기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단순히 강화형의 혼마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그 얘긴 자신이 심안으로 파악한 것 이상으로 강하다는 뜻이었다.
한편 황진기는 최소한 건의 왼팔 정도는 없애버리려고 했는데 그것이 무산되자 상당히 화를 내고 있었다.
“크르르…… 크으으으…….”
황진기는 천천히 두 다리를 땅바닥에서 빼내면서 건을 노려보았다.
“당연히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역시 대단하네.”
치이이익.
이제 건의 왼팔은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죽인다…….”
화르르륵.
분노는 황진기를 더욱 불타오르게 하였다.
황진기에게 분노는 아주 훌륭한 에너지원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이용해 이렇게 더 큰 불꽃을 만들 수 있었다.
‘이건 또 뭐야? 화를 내니까 기운이 좀 더 커졌잖아?’
아직 심안을 유지하고 있던 건은 황진기의 기운이 조금 더 커졌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냥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화를 내면 더 강해진다는 건가?’
이건 거의 산 넘어 산의 느낌이었다.
츠리리리릿!
황진기는 원래 들고 있던 대검과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대검을 자신의 몸에서 뽑아냈다.
양손에 커다란 화염의 대검을 들고 있는 불꽃 거인.
이게 바로 지금의 황진기였다.
그 순간 건의 머릿속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러면 이럴수록 나 역시 더 불타오르지!’
스윽.
건은 대도를 가볍게 아래쪽으로 늘어트리며 웃었다.
위기에 순간 그는 더 큰 떨림을 느꼈다.
약간 어이가 없을지 몰라도 건은 이 살 떨리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