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75화 (75/175)

# 75

더 소울(The Soul) - 왕의 최후

@ 왕의 최후.

콰광!

“크윽.”

고명운은 붉게 변한 두 팔로 간신히 어둠의 왕이 뿌린 커다란 검은색 구체를 막아냈다.

일단 공격을 막긴 막았지만, 현재 고명운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혈살기라 불리는 기운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하거나 그 혈살기를 직접 뿌려서 혈살강기(血殺罡氣)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싸우는 소울러였다.

그가 맹약을 맺은 고대의 영혼은 조선 전기의 무신(武臣)으로서 세종 때 북방의 6진을 개척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함길도 도절제사 등을 지냈던 이징옥이었다.

훗날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난(亂) 중 두 번째로 큰 반란까지 일으켰던 이징옥은 6등급의 영혼이었다.

어쨌든 혈살기는 그런 이징옥이 가진 유일한 힘이었는데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어쨌든 고명운은 이 혈살기를 통해 학살자란 별칭을 얻었다.

그 얘긴 그가 혈살기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고명운과 그가 가진 혈살기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의 왕은 강했다.

플래티넘 등급에서 최상급에 속하던 고명운이 놈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 얘긴 어둠의 왕이 가진 힘이 최소 마공(魔公)급 혼마 정도는 된다는 뜻이었다.

“헉…… 헉…….”

고명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이제야 어둠의 왕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괴물이라는 걸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자존심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묵뢰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이곳에 모인 소울러들의 실력을 고려해 그들이 의견대로 움직였었다.

하지만 어둠의 왕이 가진 힘을 확실히 확인한 지금은 그렇게 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흐음…… 확실히 고집을 부릴 수 있을 상황은 아니겠네.”

뒤쪽에서 지켜보던 조현광도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다른 소울러들도 모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이렇게 고개를 끄덕인다는 뜻은 어둠의 왕이 가진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부턴 빠르게 저 녀석을 제거하겠습니다. 모두 협조해주세요.”

묵뢰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주변의 소울러들에게 얘기했다.

“쩝, 아쉽지만 유흥은 여기까지인 건가?”

서원태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묵뢰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전투준비를 했다.

“이 정도 되는 소울러들이 힘을 합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군요.”

스르르릉.

천검도 허리에 차고 있던 자신의 검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폭룡도 같이 움직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조현광과 강철민도 전투를 준비했다.

한편 고명운을 사정없이 두들기던 어둠의 왕은 지금까지 구경만 하던 소울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크크크, 진작에 이랬어야지…….”

어둠의 왕은 자신에게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에도 오히려 즐거워했다.

그는 애초에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최후는 이곳에 있는 모든 소울러들과 마지막까지 싸워서 어둠의 힘을 그들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다. 어둠이 가진 진정한 힘을 너희에게 보여주마!”

어둠의 왕은 그 말과 함께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그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 가진 모든 힘을 이번 한 번의 전투에 모두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마지막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둠의 폭주.

당연히 그것은 아주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 * * *

일곱 명의 정예 소울러들이 어둠의 왕과 치열한 전투를 시작한 그 순간 건은 이미 불꽃 거인과 아주 치열한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 연희는 열 마리의 최상급 암괴중 세 마리를 쓰러트렸지만, 여전히 일곱 마리의 최상급 암괴가 남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희는 건을 도울 여유가 없었다.

결국, 불꽃 거인, 아니 황진기는 건이 혼자 힘만으로 쓰러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휘잉, 화르륵!

황진기가 커다란 화염의 대검을 휘두르자 그곳에서 마치 커다란 공처럼 생긴 화염의 구슬이 건을 향해 날아왔다.

건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비틀며 그 화염 구슬을 피했다.

콰과광!

건을 스치고 지나가 그의 바로 뒤에서 폭발하는 화염의 구슬.

건은 비록 화염의 구슬은 피했지만, 폭발로 만들어진 충격파는 건을 살짝 뒤흔들었다.

“큭!”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황진기는 놀라운 속도로 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론 두 자루의 거대한 화염의 대검을 건의 머리와 허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건도 공격을 그냥 허용하진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손에 들고 있던 흑룡아(대도)를 봉(棒)형태로 바꾸며 머리와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화염의 대검을 차례대로 쳐냈다.

따당, 따다당!

물론 쳐내긴 쳐냈는데 황진기의 힘이 워낙 거세고 강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건의 균형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황진기는 마치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거세게 건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특히 놈은 두 손으로 휘두르는 커다란 화염의 대검과 함께 놈의 몸에서 뻗어나온 수십 개의 화염의 촉수는 언제라도 건의 몸을 휘감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건은 전투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심안까지 동원해 화염의 촉수를 계속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대검은 막고 화염 촉수는 피하고…… 이래저래 건은 정신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놈은 지치지도 않네.’

벌써 거의 한 시간 동안 황진기와 싸웠지만, 황진기는 조금도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지친 쪽은 건이었다.

많이 지친 건 아니었지만 분명 건은 아까보다 힘이 조금 빠져 있었다.

혼력도 혼력이지만 아무래도 건의 육체가 가진 기본적인 체력 자체가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저쪽은 체력 같은 게 의미 없는 괴물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정말 승부를 내야 한다.’

어차피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았던 것이었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크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을 넘기면 이런 선택도 하지 못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려는 것이었다.

‘그걸 쓰자!’

결국, 건은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그것’을 쓰기로 결정 내렸다.

그것은 건이 철민과의 지옥 같은 50일 수련과정의 막바지에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다.

이건 사실 철민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이게 척준경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꿰뚫어보는 심안…… 그 심안은 대제(大帝)가 나에게 준 열쇠였다!’

번쩍!

그 순간 건의 심안에서 황금색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또한, 그것과 동시에 건의 등 뒤에 새겨져 있던 삼족의 세 다리 중 하나가 붉게 달아올랐다.

심안(心眼) 각성(覺醒)!

심안에서 뻗어나온 황금색 빛은 그대로 건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그의 영혼 속 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절대자(絶對者)의 영혼에게 닿았다.

그렇게 건과 절대자, 아니 광개토대제의 영혼은 다시 연결되었다.

심안의 이 황금색 빛이 바로 광개토대제와 건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물론 아직은 이제 겨우 연결에만 성공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연결만으로도 건은 벌써 한 가지 대단한 능력을 얻었다.

‘문(門)을 연 너에게 나의 힘을 허(許)한다.’

건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대제의 목소리. 그와 함께 황금색 빛을 통해 한 줄기의 기운이 건의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오래전 광개토대제가 천하(天下)를 발아래 두었을 때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먹빛의 갑옷.

사람들은 그것을 묵룡갑(墨龍鉀)이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 갑옷이 그냥 평범한 갑옷이 아니라 영혼의 힘으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갑옷이란 사실이었다.

건의 몸으로 흘러들어온 기운은 다시 건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며 순식간에 건의 전신을 감쌌다.

그 기운은 완벽한 먹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 그대로 건의 몸에 휘감기에 일정한 형태를 갖추었다.

드드드드드드득!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등장한 묵룡갑.

광개토대제의 상징과 같았던 그 갑옷이 건의 몸에 완벽하게 달라붙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득, 우드드득!

묵룡갑은 단순한 갑옷이 아니었다.

그 갑옷은 건의 몸속으로 수천 개의 철심(鐵心)과 같은 것을 박아넣으며 건의 몸 자체를 강제로 각성시켰다.

이게 바로 묵룡갑이 가진 첫 번째 효과인 ‘육체 각성’이었다.

순간 건의 몸은 엄청난 육체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무쌍투기로 몸 전체를 강화시킨 것 비슷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쌍투기와 다른 건 이건 단순히 혼력을 이용해 몸을 강화한 게 아니라 몸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능력 자체를 각성시킨 것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또 혼력을 통해 강화하는 게 가능했다.

즉, 건이 마음만 먹으면 이 상태에서 다시 무쌍투기를 이용해 또 한 번 육체를 강화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콰득, 드드득.

“크으윽!”

다만 문제는 이게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점이었다.

묵룡갑이 소환되어 건의 육체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초도 되지 않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통을 느끼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건이 묵룡갑을 소환한 그 순간 당연히 황진기가 그것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리는 없었다.

황진기는 오히려 건의 몸에 뭔가 변화가 느껴지자 더 거세게 공격을 퍼부었다.

건을 향해 쏟아지는 황진기의 공격들.

건은 그 공격을 바라보며 곧장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쩌정, 쩌저저저정!

그러자 놀랍게도 건의 두 손에 황진기가 휘두른 두 자루의 화염의 대검이 잡혔다.

묵룡갑은 머리는 물론이고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모든 전신을 감싸는 완벽한 전신 갑옷이었다.

그렇기에 이미 건의 손은 먹빛의 갑옷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건이 맨손으로 황진기의 대검을 막은 것은 대단해 보였지만 문제는 황진기의 공격은 대검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파파파팟, 휘리릭!

틈을 놓치지 않고 황진기의 몸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화염 촉수가 건의 전신을 휘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위험한 건이 위험한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황진기도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크어어엉!”

그래서 더욱 사납게 울부짖으며 화염 촉수를 통해 강력한 열기를 건을 향해 내뿜었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건의 전신을 휘감는 엄청난 열기!

한 시간 전쯤 건의 왼팔을 붙잡았을 때보다 더 강한 열기였다.

수십 개의 화염 촉수가 내뿜는 열기는 공기마저 태워버릴 정도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건의 몸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며 세상을 전부 녹여버릴 것 같은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

황진기는 이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건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콰직!

무력하게 열기에 휘감겼다고 생각한 건이 움직였다.

건은 양손에 붙잡고 있던 화염의 대검을 그대로 움켜지며 박살 냈다.

우지지직!

“크엉!”

당황하는 황진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콰아악, 주르르르륵!

건은 자신을 휘감고 있는 화염 촉수를 강하게 집어 당겨 황진기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황진기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건 쪽으로 끌려왔다.

괴력을 지니고 있던 황진기였지만 건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크아아아!”

깜짝 놀란 황진기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악했지만 이미 묵룡갑의 육체 각성에 이어 무쌍투기의 육체 강화 효과까지 더해진 건의 힘은 황진기가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주르르르륵.

결국, 황진기는 건의 앞까지 당겨져 왔다.

어쩔 수 없이 황진기는 급한 대로 양손을 건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마저 건의 양손에 막혔다.

콰광!

모든 게 황진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바로 그때 굳게 닫혀 있던 건의 입이 열렸다.

“……진짜 지옥의 겁화(劫火)도 뚫고 승천했다고 알려진 묵룡의 비늘로 만들어진 게 이 묵룡갑이다. 당연히 네놈의 하찮은 열기 따위는 내 몸에 닿지도 못하지.”

그 말과 함께 건은 황진기를 양팔로 황진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꽈과광!

흩어지는 불꽃들.

건은 황진기를 바닥에 내리꽂은 후 그 상태에서 그대로 몸을 띄우며 오른 주먹을 황진기의 명치에 박아넣었다.

콰지지직!

건의 오른팔이 황진기의 화염을 꿰뚫고 명치를 파고들었다.

“크어어어어어어엉!”

그러자 불꽃들은 더욱 흩어졌다.

이 불꽃은 바로 황진기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불꽃이 흩어진다는 건 결국 황진기의 기운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자, 이제 끝내자.”

대충 황진기를 제압한 건은 마무리 일격을 위해 흑룡아(장검)를 꺼내 들었다.

츠츠츠츠츳!

아직 건은 묵룡갑을 오랜 시간 착용하지 못했다.

지금은 기껏해야 십 분 정도가 한계였다.

그 이상 사용할 경우 강제로 각성이 된 육체에 영구적인 손상이 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건은 조금이라도 빨리 끝을 내려는 것이었다.

“잘 가라!”

콰득!

건은 미련없이 흑룡아(장검)를 황진기의 심장에 꽂아넣었다.

불꽃을 꿰뚫고 황진기의 영혼이 담겨 있는 하나의 정(情) 닿은 흑룡아(장검).

그것은 황진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것이 깨어지면 황진기는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쩌저정, 콰아아아아아!

황진기의 영혼이 담긴 정이 깨어지며 황진기가 소멸하는 것과 동시에 그 영혼이 담긴 정에서 검디검은 끈적한 기운이 쏟아져나와 흑룡아(장검)에 달라붙었다.

건은 살짝 당황하며 그 기운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것은 흑룡아(장검)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기운.

건은 이것이 아주 위험한 기운이란 걸 알아차렸지만, 기운이 흑룡아(장검)에 스며드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 기운을 흑룡아(장검)가 흡수한 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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