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더 소울(The Soul) - 흑룡아의 변화 [2]
‘도의 날에서 상당히 강력한 흡인력(吸引力)이 느껴진다. 이건…… 마이너스 에너지를 잡아당기는 흡인력이다.’
놀랍게도 흑룡아는 전과 다르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잡아당기는 흡인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어둠의 핵들을 흡수하면서 흑룡아의 잠들어있던 본능이 깨어나 이런 식으로 진화된 것만 같았다.
“어디 보자…….”
건은 흑룡아(대도)를 들고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어설픈 잡귀 한 마리.
건은 잡귀를 발견하자마자 가볍게 흑룡아(대도)를 휘둘렀다.
파팟!
그러자 흑룡아(대도)가 마치 길쭉하게 늘어난 것처럼 휘둘러지며 잡귀의 몸을 갈라버렸다.
정확히는 건이 빠르게 잡귀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었지만 워낙 빠른 움직임이라 그저 흑룡아(대도)만 쭉 늘어났던 것처럼 보였었다.
크륵!
잡귀는 당연히 소멸했다.
그런데 그냥 소멸한 게 아니라 흑룡아에게 흡수되며 소멸하였다.
‘호오, 이거 생각보다 흡인력이 강하잖아?’
건은 예상보다 강력한 흑룡아의 흡인력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면…… 꽤 쓸만하겠는걸?’
이 정도 흡인력이라면 경계에 존재하는 온갖 괴물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며칠 전 임무에서 만났던 그 괴상한 괴물들에게는 진짜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겠네.’
건은 흑룡아의 이러한 변화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흑룡아가 마이너스 에너지를 어디까지 흡수할 수 있을진 몰랐지만 적어도 흑룡아를 이용해 계속해서 괴물들을 잡으면 흑룡아가 조금씩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건에게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쩜 이 녀석이 이렇게 변한 건 정해진 한계 안에서 스스로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향을 찾다가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군.’
건은 천천히 흑룡아(대도)를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흑룡아의 이런 변화는 건에게 나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흑룡아는 흑룡아 나름대로 마이너스 에너지를 조금씩이라도 흡수하면서 만족을 할 수 있었고 건은 그 덕분에 적들이 더 충격을 입는 것도 좋고 거기에 흑룡아 자체가 성장하는 것도 좋았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거 맞나?” 건은 미소와 함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다시 몇 걸음을 걸어 경계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흑룡아의 변화까지 확인했으니 이젠 조금 더 쉰 다음 사냥을 하든지 수련을 하든지 할 생각이었다.
* * * *
폭풍과 같았던 격변급 임무가 끝난 이후의 일상은 아무래도 좀 더 평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은 이 평온함 속에서 나름 아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기에 건은 매일매일 자신의 실력을 확인도 하고 돈도 벌 목적으로 사냥을 계속했다.
물론 수마 같은 어설픈 녀석들이 아니라 최소 상급 암괴 이상만 추적해서 사냥했다.
그에겐 고성능 레이더라고 할 수 있는 백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쉽게 암괴를 찾을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는 다른 헌터들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암괴를 사냥했다.
그가 하루에 사냥하는 양이 거의 하나의 대형 헌터 그룹이 하루에 사냥하는 양과 비슷했을 정도였다.
이제 건에게 상급 암괴 정도는 식후 간식거리 정도밖에 안 되는 사냥감이었다.
“주인님, 열한 시 방향에 사냥감이 출현했어요.”
“응? 또? 이거 참 우연히 들어온 경계치고는 너무 짭짤한데.”
건은 방금 잡은 상급 암괴에서 떨어진 영혼의 조각을 거둬들이다가 백의 말을 듣곤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을 봐서는 녀석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이쪽 경계로 방금 유입된 거 같아요.”
“자연 발생한 경계치고는 살짝 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래서 그런지 인력(引力)이 상당한가 보다.”
보통 소울러들이 임의로 만들어내는 경계보다 자연 발생한 경계의 인력이 더 강했다.
거기다 경계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인력이 더 강해져서 더 많은 경계의 존재들을 끌어당겼다.
“바로 가실 거죠?”
“당연하지. 이게 다 돈인데……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지.”
“그럼 정확히 방향을 알려드릴게요.”
백은 빼꼼히 어깨 위로 머리를 들어 올린 후 흔히 우리가 족발이라 부리는 자신의 발로 한쪽을 가리켰다.
건은 백이 방향을 가리키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파파팟!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건의 신형.
건은 이제 파천신력의 충격파를 교묘하게 이용해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요령을 터득한 상태였다.
건은 이것을 파천신법(破天身法)이라고 불렀는데 이 신법의 단점 중 하나는 강력한 충격파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어서 움직이는 신법이라 건이 지나간 길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된다는 점이었다.
드드드드드드득!
당연히 은밀함이나 정숙함 이런 단어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대신 이게 장점으로 발휘되는 때도 있었는데 그건 단순히 움직이는 것만으로 광역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발아래 짓밟히는 놈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지만 어쨌든 잘만 이용하면 나쁘지 않은 공격 방법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파천신력의 빠르기는 연희와 철민도 인정했을 만큼 빨랐다.
다만 빠르기는 아주 빠른데 방향 전환이 쉽지가 않아 유연한 움직임이 어렵다는 게 또 하나의 단점이었다.
아예 방향 전환을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거의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치고 나가는 식으로 방향 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실상 방향 전환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런 단점들이 존재했지만, 그 빠르기 하나만으로도 파천신력은 훌륭한 신법이었다.
건은 파천신력의 놀라운 추진력 덕분에 순식간에 백이 말한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백의 말처럼 한 마리의 암괴가 있었다.
그 암괴는 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머리에 커다란 두 개의 어금니가 나 있고 몸에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인 헐크처럼 근육 덩어리들이 마구 붙어 있었다.
거기다 피부는 마치 악어의 그것과 비슷했고 색은 짙은 회색을 띠고 있었다.
놈은 바로 상급 암괴 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암괴 중 하나인 ‘타오칭’이었다.
특히 놈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주 나타났는데 워낙 자주 나타나는 상급 암괴라 매우 다양하고 효율적인 대처 방법들이 여러 개 알려져 있었다.
“겨우 타오칭이었어? 아쉽네. 좀 싸울 맛이 나는 놈이길 바랐는데.”
건은 자신의 사냥감이 타오칭이란 걸 확인하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르릉!
타오칭은 건을 발견하자마자 잔뜩 흥분하기 시작했다.
놈은 ‘붉은 돌격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흥분을 잘하고 아주 저돌적인 놈이었다.
“빨리 정리하자.”
츠츠츳.
건은 겨우 타오칭을 상대하면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그의 무기는 한 자루의 창이었다.
흑룡아(창)를 꺼내 든 건은 곧바로 타오칭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타오칭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놈 역시 건에게 질세라 건을 향해 미친 듯이 돌격했다.
건은 그런 타오칭의 반응을 너무나도 뻔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몸을 아주 살짝 비틀며 타오칭의 돌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버렸다.
파밧!
건을 스치고 지나가는 타오칭.
내심 타오칭은 아깝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건은 더 확실히 피하거나 혹은 막을 수도 있었음에도 그냥 이렇게 피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건을 스치고 지나간 타오칭의 뒷목을 관통한 한 자루의 창.
흑룡아(창)가 바로 거기 꽂혀 있었다.
키으으으엉!
타오칭은 자신의 목을 꿰뚫은 흑룡아를 발견하곤 몸을 부르르 떨며 갈라진 목소리로 한껏 울부짖었다.
하지만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흑룡아(창)는 특유의 흡인력으로 아주 서서히 타오칭의 몸에 잔뜩 흐르고 있는 마이너스 에너지를 흡수했다.
물론 흡수하는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오칭은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마이너스 에너지가 흡수되는 것도 상당한 충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붉은 돌격돼지를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러한 투우(鬪牛) 스타일이지.”
건은 슬쩍 웃으며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타오칭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곤 여전히 타오칭에게 꽂혀 있던 흑룡아(창)를 붙잡고 천천히 창을 비틀었다.
키으으어엉!
타오칭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놈이 버틸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놈은 천천히 소멸하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르.
타오칭은 깔끔하게 소멸하며 영혼의 조각 하나만 남겼다.
건은 그 영혼의 조각을 거둬들인 후 흑룡아도 다시 회수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사냥을 끝낸 건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현재 시각 새벽 3시 40분.
거의 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사냥을 한 건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걸 고려해 오늘의 사냥을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 * * *
“확실한 건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내력을 지닌 것 같은 인물.
최소한 일가(一家)를 대표하는 인물 정도는 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老人)이 앞쪽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확실합니다.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시신까지 확인한 건가?”
“전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백련사웅 중 한 명인 동명 장로님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그때 그 계획이 실행되었던 장소에서 대략 이십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암초에서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죽어 있었지?”
“워낙 바닷속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시신의 손상이 매우 심했습니다. 저희도 유전자 감식까지 동원한 끝에 아주 간신히 그 시신이 동명 장로님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백련사웅…… 그 아이들이 물고기 밥이 되어 있었던 건가?”
백말의 노인, 아니 백련김가의 현(現) 가주(家主)인 김동광이었다.
그는 올해 나이가 90살이었지만 여전히 가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아들들은 소울러로서의 자질을 전혀 타고나지 못했고 심지어 손자들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양자를 들여왔는데 그게 바로 김동철이었다.
이래저래 그는 나이가 상당함에도 가주 자리에서 물러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90세에 나이에도 가주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가주님, 이제 대충 모든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제 더는 복수를 미룰 수 없습니다.”
김동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리는 남자는 백련김과의 총관인 김솔이었다.
그는 몇 안 되는 본가 혈통의 소울러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워낙 소울러로서의 능력이 떨어져 정식으로 고대의 영혼과 계약을 못 한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었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능력은 아주 뛰어난 인재였다.
“흐음…….”
“만약 여기서 우리가 물러서면 백련김가는 정말 더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이미 우린 호랑이 등에 올라탔고…… 이젠 거기서 내려올 방법도 없습니다. 아무리 카페 헤븐이 신경 쓰인다고 해도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밀어붙여야 합니다.”
김솔은 강력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김동광은 그런 김솔을 바라보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김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미 상황은 기호지세(騎虎之勢)였기 때문에 여기서 물러나면 오히려 호랑이한테 물려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복수를 준비해라.”
결국 김동광은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걸리는 게 참 많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건 진짜 복수를 위한 복수가 아니라 아직 백련김가가 죽지 않았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그런 복수였다.
그렇기에 다소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