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더 소울(The Soul) - 블랙 마이더스 [1]
@ 블랙 마이더스.
스윽.
건은 능숙하게 경계와 현실을 구분 짓는 선을 넘어 만물상(萬物商)으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연희가 알려줘야 간신히 그 선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건은 그냥 의식하는 것만으로 그 선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이 발전했다는 뜻이었다.
만물상에 들어온 건은 예전에 자신이 쇼핑하던 D 구역과 C 구역을 지나쳐 B 구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이동했다.
엘이베이터 앞에는 만물상의 관리자 중 한 명이 서 있었다.
건은 연희가 얘기해준 대로 그 관리자에게 자신이 프로 헌터임을 밝히고 손바닥을 스캔해서 그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프로 헌터가 되는 순간 건의 개인 정보가 헌터 협회에 등록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관리자는 건이 프로 헌터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B 구역까지 출입할 수 있으시겠네요.”
확인을 끝낸 관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B 구역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개방해주었다.
철컥, 위잉.
건은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띠잉, 위이잉.
얼마를 내려갔을까?
건은 드디어 구역 B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역 B는 앞선 구역 D와 구역 C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의 물건을 파는 곳이었다.
대신 훨씬 비쌌지만 비싼 값을 하는 물건들이었기 그 누구도 이곳에 물건에 대해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우선 강화 전투복부터 찾아볼까?’
건이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당연히 장비를 사기 위해서였다.
제주도에서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장비가 망가졌기 때문에 모든 장비를 전부 새로 사야 했다.
먼저 가장 베이스라 할 수 있는 강화 전투복을 사기로 마음먹은 건은 구역 B를 돌아다니며 강화 전투복을 파는 곳을 찾았다.
강화 전투복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팔았는데 건은 그중 가장 가게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는 예전부터 이렇게 뭔가 느낌이 오는 곳을 좋아했었다.
인연(因緣)이라는 걸 믿는 그에게 이런 느낌은 상당히 중요했다.
건이 뭔가 느낌을 받은 가게. 그곳의 이름은 ‘만보당(萬寶堂)’이었다.
“어서 오세요.”
오전 내내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한병일은 첫 손님이 들어오자 반가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강화 전투복 좀 보러 왔습니다.”
“오 강화 전투복이요! 진짜 제대로 오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만물상에서 최고의 전투복을 취급하는 곳입니다.”
“그런가요?”
건은 병일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잘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강화 전투복을 원하시나요? 스타일을 말씀해주시면 그에 딱 알맞은 물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흐음, 별건 없고 방어력이 뛰어나면서 동시에 착용감이 뛰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방어력과 착용감이라…… 그렇다면 이게 딱 맞겠네요.”
찰칵. 위이잉!
병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쪽 테이블 위를 살짝 눌렀다.
그러자 그곳에서 한 개의 옷걸이가 튀어나왔다.
“이 물건은 시중에 F-Z201이라고 알려진 가장 대중적인 강화 전투복을 제가 모조리 뜯어고쳐 만든 H-WA1입니다.”
병일이 보여준 전투복을 마치 잠수복처럼 전신을 감싸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너무 약해 보이는데요?”
“허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나요. 이래 봬도 경계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기술 중 하나인 소울 코팅(Soul Coating)을 통해 방어력을 극대화 시킨 놈입니다. 기본 재질 자체도 일반적이 고무의 성질을 지녔지만, 강도는 강철만큼 단단한 S004를 사용해 들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소울 슈트(혼갑)만큼 방어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착용감은 보시는 것처럼 당연히 뛰어나고요.”
병일은 H-WA1의 장점을 쉬지 않고 계속 얘기했다.
“거기에 최고급 강화 전투복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가복구 술법과 오행방어술법까지 세밀하게 새겨넣어 진 놈입니다. 제가 개조 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이건 진짜 경계의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놈입니다. 이런 물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못 구하십니다.”
건은 한참 동안 병일의 설명을 들으며 은근슬쩍 심안을 발동시켜 물건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건을 심안을 발동시켜도 황금색 눈동자가 되지 않게 만드는 요령까지 터득했기 때문에 병일은 건이 심안을 발동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스으으으.
심안을 통해 살핀 H-WA1은 병일의 설명만큼이나 상당히 괜찮았다.
특히 전투복 외부에 아주 얇게 흐르는 신비한 영혼의 힘은 마치 강력한 보호막처럼 전투복을 보호하고 있었다.
‘호오, 이거 진짜 괜찮네?’
별로 기대를 한 건 아니었는데 막상 심안을 통해 괜찮은 물건이란 걸 확인하자 건은 마음이 확 동했다.
“……그래서 얼만가요?”
마음이 동한 건은 곧장 병일의 말을 자르며 가격을 물어보았다.
“그게…… 가격이 조금…….”
“네? 가격이 왜요?”
“아무래도 소울 코팅이 워낙 최고급 기술이라…… 그래도 최대한 싸게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얼만 대요?”
“팔…… 아니, 칠천만 원! 진짜 싸게 드리는 겁니다.”
“네? 칠천이요?”
건은 가격을 듣곤 깜짝 놀랐다.
보통 비싼 최고급 강화 전투복들 가격이 이천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병일은 무려 그 가격에 세 배를 넘게 불렀다.
“진짜 최신 기술이 모두 집합된 물건입니다. 사시면 후회는 안 할 겁니다.”
“으음…….”
건은 다시 한 번 병일이 꺼내놓은 강화 전투복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마음이 확 동하는 물건이긴 했다.
하지만 너무 비쌌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솔직히 다른 것도 살 게 많아서 이걸 먼저 사버리기엔 무리가 조금 있네요.”
건은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지름의 욕구를 꾹 눌러서 다시 집어넣었다.
“이거 진짜 싸게 파는 건데…… 그럼 다른 거 뭐가 필요하신데요? 제가 취급하는 물건의 종류가 제법 많으니 말씀만 해보세요.”
“그래요? 그럼 혹시 여기 개인화기도 파나요?”
“당연하죠! 모두 제가 손수 개조한 수제 작품들입니다.
“그럼 또 비싼 거 아니에요?”
“에이, 그렇게 안 비싸요. 딱 보니 필요하신 게 많으신 거 같은데 물건을 많이 사주시면 그만큼 또 파격적으로 할인해 드릴게요.”
“그럼 도검류도 파나요?”
“도검류? 당연하죠. 여기가 바로 만물상에서 손꼽는 최고의 도검류를 취급하는 곳입니다.”
“아까는 최고의 강화 전투복을 취급하는 집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하하, 뭐 둘 다 최고라는 뜻입니다.”
병일은 은근슬쩍 웃으며 얼버무렸다.
건은 약간 병일의 허풍 끼가 느껴져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차피 심안이 있는 이상 물건의 질 때문에 사기를 당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뭐부터 보여드릴까요?”
“일단 개인화기부터 보죠.”
“네, 그럼 잠시…….”
병일은 이번에는 옆쪽에 있는 테이블 위를 살짝 몇 번 두들겼다.
철컥, 촤르륵.
그러자 그 테이블이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수많은 종류의 개인 화기들이 솟아올라 왔다.
“개인 화기 중에 뭘 원하시나요? 한 손에 딱 잡히는 소형 기관총? 아니면 무난하게 사용할만한 권총? 뭘 원하시나요?”
“권총 종류가 좋겠는데…… 그전에는 글록18(G18)을 사용했는데 그것처럼 가볍고 쓰기 편한 놈이 좋을 것 같네요.”
“아하, 그렇다면 이걸 써보시죠!”
병일은 건에게 G18과 유사하게 생긴 권총을 한 자루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건 그냥 글록18 아닌가요?”
“아니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여기 있는 물건들은 모두 제가 직접 개조한 수제품들이라니까요. 물론 베이스는 글록18이긴 하죠. 하지만 거기에 몇 가지 특별한 작업을 추가했습니다. 일단 권총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파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권총 안쪽 강선에 추가 회전력을 줄 수 있는 간단한 술법을 새겨넣었습니다. 거기다 약실에는 탄환의 폭발력을 증가시켜주는 화염 술법까지 새겨넣었기 때문에 파괴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죠. 거기에 마지막으로 위에 두 가지 술법 때문에 반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명중률이 떨어지는 걸 보완하기 위한 반동억제 술법까지 새겨넣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완벽한 권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것이었나요?”
“하하하하, 아무나 하진 못하죠. 저니까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이건 얼마인가요?”
“이건 음…… 한 자루에…… 칠백……만 원만 주시면 됩니다.”
건은 이번에도 역시 가격들 듣고 살짝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방금 심안을 통해 병일이 말한 얘기들이 모두 사실이란 걸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이 물건 역시 마음이 동할 만큼 마음에 들었지만 칠백만 원이란 가격은 확실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냥 글록18의 가격이 대략 6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병일이 그것에 10배가 넘는 가격을 불렀으니 당연히 비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칠천에 칠백…… 하아, 뭐 여기까지 봤으니 마지막으로 도검도 좀 보죠.”
건은 마치 자포자기라도 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도검류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럼 도검류는 어떤 종류로 보여드릴까요?”
“단검 같은 게 좋을 것 같고요. 되도록 던지기가 쉬웠으면 좋겠어요.”
“흐음…… 그럼 아예 제가 비검술(飛劍術)에 특화된 단검 세트를 하나 보여드릴까요?”
“그런 것도 있나요?”
“네, 당연히 있죠.”
병일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옆쪽 벽면을 살짝 두들겼다.
타탕, 지이이잉.
그러자 벽면이 옆으로 갈라지며 그 안쪽에서 수많은 종류의 도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겁니다.”
병일이 보여준 물건은 손잡이가 없지만, 충분히 잡아서 던질 수 있을 만큼 뒤쪽이 뭉툭한 열두 자루의 작은 단검들이었다.
그 단검들은 평범한 검은색 가죽띠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그 띠를 몸에 두르기만 하면 언제라도 뽑아서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보시면 알겠지만 오로지 비검술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놈들입니다. 뭐 강도나 날카로움 같은 건 다른 여타 단검들과 별로 다른 점은 없습니다. 재질은 아주 약간의 미스릴을 섞은 합금이죠. 하지만 이 열두 자루의 단검 세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던진 후 곧장 다시 회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단검 세트의 백미는 단검보다는 여기 이 가죽띠입니다. 이 가죽띠에는 진짜 고급 술법 중 하나인 공간좌표술법이 새겨져 있죠. 그리고 열두 자루의 단검들에는 그와 한 짝이 되는 공간복귀술법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검들은 저 띠에서 나와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저 띠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단검이 공간이동을 한단 말인가요?”
“네, 아주 고급 술법이기 때문에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술법이죠.”
“……그런 대단한 술법을 왜 겨우 저런 단검들에다가 새겨넣은 거죠?”
“네? 아…… 그건…… 뭐…… 그러면 괜찮은 물건이 나올 것 같아서…….”
건의 말에 병일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봐요. 이 단검 세트도 비싸죠?”
“아니, 뭐…… 조금…….”
“얼만데요?”
“……구천만 원입니다.”
“하아…… 생각해보세요. 누가 이런 단검 세트를 구천만 원이나 주고 사요?”
건은 심안을 통해 이 단검 세트가 진짜 대단한 물건이란 걸 확인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걸 사고 싶은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비쌌다.
진짜 쓸데없이 비쌌다.
“하지만 진짜 대단한 술법을 이용해서 만든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후우, 이걸 구천만 원 주고 살 바엔 그냥 매번 몇십만 원씩 내고 쓰고 버릴 단검들을 사는 게 나을 거 같지 않아요?”
“그, 그건…….”
“방금 보여준 권총도 그래요. 솔직히 파워가 세지는 건 좋은데…… 너무 비싸잖아요. 그 돈으로 차라리 원래 파워가 센 권총을 사고 말죠.”
칠백이면 명품 권총 중 하나인 데저트 이글을 네 자루 이상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크흠…….”
병일은 건의 말에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나은 게 제일 먼저 보았던 강화 전투복이네요. 물론 그것도 너무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그 비싼 가격을 고려하고도 살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 같으니까요.”
“하하, 그렇죠? 그건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이라니까요.”
조용히 있던 병일은 건이 하나라도 살 것처럼 얘기하자 대뜸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근데 이거 사장님이 전부 만들었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문득 사장님 능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전 한병일이라고 합니다. 뭐, 몇몇 사람들은 절 ‘블랙 마이더스’라고 부르죠.”
블랙 마이더스 한병일. 혹은 ‘저주받은 술법공학자’라고도 불리는 그가 운영하는 이 만보당은 만물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가게보다 장사가 안되는 최악의 상점이었다.
느낌이 좋아 만보당에 들어선 건.
오늘 그의 느낌은 최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인생이란 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비록 지금 건이 고른 그 동전의 면이 좋지 않은 뒷면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언제 다시 앞면으로 뒤집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