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더 소울(The Soul) - 영혼투기장 [1]
@ 영혼투기장.
“뭐? 영혼투기장?”
연희는 건의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네, 영혼투기장이요. 듣기로는 프로 헌터들은 그곳에 선수로 등록할 자격을 준다는데…… 제가 거기에 도전하는 건 무리인가요?”
“너 영혼투기장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어?”
“아뇨, 사실 전에 누나가 지나가듯 이름만 언급해서 그런 곳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거기 얘길 꺼낸 거야?”
“사실은 만보당의 한 아저씨가…… 자기와 같이 영혼투기장에 도전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건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는 굳이 이 얘길 숨길 생각이 없었다.
“만보당의 한 아저씨? 블랙 마이더스 한병일을 말하는 거야?”
옆쪽에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연회와 건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철민이 만보당 얘기가 나오자 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맞아요.”
“호오, 너 언제 그와 친해진 거냐?”
철민은 흥미롭단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사실 알게 된 지는 하루밖에 안 됐어요. 그냥 마음이 좀 통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이 친해진 것뿐이고요.”
“그래? 뭐,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사람이니 잘 지내봐라. 그리고 영혼투기장은…… 난 찬성이다. 한 번 도전해 봐라.”
철민은 생각보다 훨씬 쿨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사장님, 그렇게 대책 없이 찬성만 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전에 제가 가보겠다고 하셨을 때는 반대 하셨으면서 이번엔 왜 또 갑자기 찬성하시는 거예요.”
“찬성할만하니까 했지. 너와 건은 전혀 다른 다르다. 넌 차분하게 벽돌을 쌓아올리듯 성장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영혼투기장에 가면 오히려 쌓아올리던 벽돌이 흐트러지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래서 반대했던 것이지. 하지만 건이는 마치 곤충이 허물을 벗듯 한순간에 껍질(脫殼)을 벗으며 쭉쭉 성장하는 스타일이지. 그렇기에 영혼투기장처럼 가혹하게 몸을 굴릴 수 있는 곳과 잘 어울린다. 내가 괜히 제주도에서 저 녀석을 그렇게 가혹하게 굴렸던 게 아니야.”
“그래도 영혼투기장은 좀…… 실전(實戰) 경험을 많이 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건의 실력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영혼투기장의 규칙으로는 상대방 소울러를 죽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기면 영혼투기장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것은 물론이고 거액의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규칙이 있다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었다.
또한, 설사 죽지 않더라도 아주 치명적인 부상 때문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그렇기에 연희는 아직 건에게 영혼투기장은 무리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는 곳이라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 그리고 어차피 그것에 대한 선택은 저 녀석이 하는 거지. 그러한 위험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보상은 확실히 크니까. 안 그래?”
철민은 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조용히 얘기만 듣고 있던 건은 철민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고위험 고수익…… 이란 건 가요?”
“그렇지. 우리가 너에게 해주는 건 그저 조언일 뿐이야.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이제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은 되거든. 참고로 영혼투기장은 연희가 얘기한 것처럼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야. 상위라운드로 가면 대단한 실력자들도 많이 있지. 특히 그곳은 전문적으로 소울러들끼리 싸우는데 특화된 소울러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라 괴물들과 싸우는 것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어. 그래서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선택은 너의 몫이야.”
“으음…….”
철민의 말을 들은 건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말대로 선택은 네 자유지만 넌 이미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 않아도 돼.”
여전히 연희는 건이 영혼투기장에 선수 등록을 하는 걸 살짝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사장님 말도 그리고 연희 누나 말도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위험한 걸 알면서도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드네.’
이것 역시 척준경의 영향일까?
아니면 원래 건이 가진 잠재적 성향이 그래했던 것일까?
건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좀 더 강한 상대와 싸워보고 싶어했다.
정확히 말해서는 강한 상대와 싸우며 느끼는 그 미묘한 떨림을 계속 느끼고 싶어 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전에 들으니까 영혼투기장에서 받는 승리 수당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돼요?”
“영혼투기장이야말로 모 아니면 도인 곳이지. 승리 수당은 아주 짭짤하지만 반대로 패배를 하면 아무것도 못 얻는 곳이거든. 내가 알기로 가장 최하급 경기라고 해도 승리 수당이 천만 원 정도는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승리 수당은 위로 갈수록 높아져서 거의 최상급 리그에서 이기면 몇억 단위의 받는다더라.”
철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었다.
“그렇지만 전투에 쓰이는 모든 장비는 물론이고 혹시라도 다쳤을 때 그 부상을 치료하는 것까지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해서 보상이 아주 크다고만 할 순 없어.”
연희는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을 얘기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건은 이미 철민이 말한 억이란 얘기에 마음이 완전히 기울어져 버린 상태였다.
가뜩이나 참가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는데 거기에 상당한 수준의 승리 수당이 더해진다고 하니 당연히 마음이 확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미 병일이 장비까지 모두 책임지겠다고 얘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연희가 얘기한 것처럼 장비의 부담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할게요. 선수 등록…… 비록 위험할지는 몰라도 제가 진정한 소울러가 되기 위해선 꼭 한 번쯤은 경험해 봐야 할 것 같은 곳이네요. 어차피 선수 등록을 하고 경기를 치른다고 해서 그곳에 매일 얽매어 있을 필요도 없다던데…… 그냥 아르바이트 하나를 더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결정을 내린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선택한 것이니까 존중은 해줄 생각이지만…… 난 개인적으로 네가 아직은 영혼투기장보다 다른 곳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
연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여전히 건의 선택에 반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정까지 내렸는데 뭘 그렇게 얘기해. 어차피 경계는 어디를 가도 위험이 넘치는 곳이야. 영혼투기장에서 종종 큰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결국 따지고 보면 경계에서 일어나는 사고 확률과 별반 차이가 없어. 그러니 너도 기분 좋게 건투를 빌어줘.”
“휴, 하긴 이미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얘길 해서 뭘 하겠어. 이왕 도전하는 거 열심히 잘 해봐.”
“네, 고마워요.”
철민은 연희와 철민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긴. 어차피 네가 고생해야 하는 건데…… 참고로 같은 경계라고 해도 유령들의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경험해 봐라. 그쪽이 어떻게 보면 아주 재미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지.”
“너무 재미만 찾다간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철민과 연희는 둘 다 유령들의 경계에 관해 얘기했지만, 얘기의 관점은 전혀 달라 보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건이 영혼투기장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사실과 철민과 연희가 그걸 인정했다는 사실이었다.
백건의 영혼투기장 진출.
적어도 지금까진 이 사실이 큰 화제가 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랬다.
* * * *
확실히 병일은 전에 영혼투기장 진출을 추진했었던 게 맞는 것 같았다.
건이 결정을 내리자 병일은 선수 등록부터 시작해서 모든 준비를 빠르게 끝내 놓았다.
덕분에 건은 별로 신경 쓸 것도 없이 영혼투기장의 9급 소울러가 될 수 있었다.
영혼투기장은 총 네 가지의 리그가 존재했다.
가장 최하급 리그인 브론즈(銅)급 리그부터 실버(銀)급 리그와 골드(金)급 리그를 거쳐 가장 상급의 리그인 플래티넘(白金)리그까지 이렇게 네 개의 리그가 있었다.
가끔 번외 경기처럼 열리는 특별한 소울러들의 대결을 다이아몬드급의 리그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정기적인 리그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리그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여전히 등급 자체는 브론즈급 헌터였던 건은 어쩔 수 없이 브론즈급 리그부터 시작해야 했다.
만약 건이 실버급 헌터라도 되었다면 실버급 리그 선수로 등록이 가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건은 브론즈급 헌터였다.
물론 건의 실제 실력은 브론즈급이 절대 아니었지만, 공식적인 등급이 브론즈급 헌터였기 때문에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건은 이걸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건에게 영혼투기장은 낯선 곳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혼투기장에 선수 등록을 했다고 해서 당장 몇 주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건에게 영혼투기장은 또 하나의 직장 같은 곳일 뿐이었다.
실제로 영혼투기장에서 활동하는 소울러들 역시 늘 영혼투기장에 얽매여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생활은 따로 있었고 경기 일정이 잡히면 그 일정에 따라 자신이 스스로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즉, 경기를 얼마나 준비하느냐는 경기를 치르는 소울러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제대로 영혼투기장에서 활약하려면 꾸준히 경기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상위 리그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지만 좋은 성과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긴 자가 모든 걸 가지는 곳.
그곳이 바로 영혼투기장이었기에 투기장에 선수 등록을 한 소울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승리하길 원했다.
“강화 전투복은 그냥 그대로 써도 될 것 같지?”
“네, 이게 딱 좋은 거 같아요.”
“그래, 그럼 다음은…… 권총도 그대로 써도 상관없을 것 같고…… 저번에 보여준 단검 세트는 어때? 괜찮을 거 같아?”
“그것도 괜찮고 그런 투척용 단검 말고 진짜 들고 쓸 수 있는 단검도 두 자루 정도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이걸 써보는 게 어때.”
철컥, 스르릉.
병일은 건이 단검이 필요하단 얘길 듣자마자 옆쪽 벽에서 한 자루의 단검을 꺼내 들곤 그 단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다.
“내구성과 절삭력을 극대화 시켜줄 수 있는 미스릴 코팅은 물론이고 추가로 충격흡수술법도 새겨넣은 단검이야. 어때? 괜찮을 거 같지?”
“오, 좋을 거 같네요. 혹시 이거랑 똑같은 거 한 자루 더 있나요?”
“흐흐, 세트로 세 자루를 만들어놨으니까 마음껏 가져다 써.”
“포션은 어떻게 할까요?”
“포션? 포션은 어차피 경기 중에 사용은 하지 못하긴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응급 치료가 필요할 때 무조건 사용해야 하니까 질 좋은 고급 포션을 몇 병 준비해 놔야 할 거야. 아무래도 언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 모르는 곳이니 대비는 철저히 해둬야지.”
병일은 포션을 팔진 않았지만, 건을 위해 그 정도는 준비해 줄 생각이었다.
“대충 장비는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브론즈급 리그인데…… 너무 많이 준비하는 것도 웃길 거 같아요.”
건은 들고 있던 장비 목록을 모두 확인한 후 병일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런가? 근데 이것만큼은 분명히 해줘야 해.”
한창 건과 함께 장비를 준비를 점검하던 병일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네? 뭐요?”
“무조건…… 내 장비를 최대한 활용해서 싸워줘. 그래야 사람들이 내 장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거 아냐.”
병일의 말을 들은 건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근데 상위 리그로 가면 좀 힘들 수도 있어요.”
“괜찮아. 어차피 네가 만약 상위 리그에 진출만 할 수 있다면 그저 네가 내 장비를 사용해 상위 리그에 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광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상위 리그가 그 정도로 인기가 있나요?”
“너 영혼투기장에 대해 생각보다 아는 게 없구나?”
“네, 사실 아주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어요.”
“허허, 그럼 안되지. 이제 정식으로 선수 활동을 할 건데…… 내가 예전에 모아놓은 영혼투기장에 관한 자료들을 전부 줄 테니까 한 번 쭉 살펴봐. 영혼투기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곳이야. 특히 상위 리그인 플래티넘 리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해. 심지어 외인(外人)들 중 일부는 오로지 그 플래티넘 리그를 관전하기 위해서 경계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 당연히 그런 만큼 대단히 치열하기도 한 곳이야.”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곳이군요.”
“현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스포츠들인 축구와 야구지? 경계에서의 영혼투기장은 그 두 가지 경기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기를 지니고 있어.”
“그렇게 예를 들어 주시니 완전 실감 나네요.”
“어쨌든 넌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 당장 다음 주에 데뷔전을 치를 건데 공부가 너무 부족하잖아.”
병일은 건을 나무라며 자신의 가게 자신이 모은 영혼투기장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혼투기장 데뷔전을 앞둔 건과 그를 후원하는 병일.
두 사람은 이렇듯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