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더 소울(The Soul) - 골드 리그 [1]
@ 골드 리그.
그나마 이 기세를 최한종이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실력이 된다는 뜻이었다.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는 것처럼 최한종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지 않았다면 건의 기세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만약 최한종의 능력이 부족했다면 오히려 이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건을 향해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게 바로 하수(下手)의 패턴이었다.
그나마 중수(中手) 정도는 되는 최한종이었기에 그 패턴에 말려들지 않고 일단 멈춰 설 수 있었다.
‘이 녀석…… 강하다. 이건 절대 허세가 아니다.’
건의 기세에 눌린 최한종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건은 양손을 벌리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최한종이 바람을 다루는 걸 보고 싶은 눈빛이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요즘도 꾸준히 수련하고 있는 오행발현법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최한종이 바람을 다루는 방식이 최근 그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 중인 전혀 새로운 오행의 기운을 다루는 방법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바람은 오행의 기운 중 하나가 아니지만 결국 오행의 기운과 비슷한 자연의 기운 중 하나다. 그렇단 얘긴…… 그걸 다루는 방법도 유사할 수 있다는 뜻이지.’
옛말에 배움에는 한계가 없다고 했다.
건은 그 말처럼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상대인 최한종에게 배울 건 배우려는 중이었다.
한편 최한종은 건의 기세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었지만, 겨우 원래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기회는 놈이 나를 얕잡아 보는 지금뿐이다.’
어차피 그가 서 있는 이 아이언필드는 승리와 패배로 단순하게 나뉘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최한종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츠리릿!
그걸 깨달은 최한종은 주변의 바람을 있는 힘껏 모두 잡아당기며 자신이 가진 힘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한 줄기의 돌풍이 그의 몸을 휘감으며 마차 보호막처럼 그를 보호했다.
이게 바로 월풍무 ‘바람 갑옷’이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법이다. 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에 서 있는 놈이 승자가 되는 거다.’
건이 강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기권을 하고 패배를 인정할 순 없었다.
“기세에서 밀렸다고 실력도 밀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최한종은 자신에게 스스로 외치듯 큰 소리로 소리치며 두 줄기의 빠른 바람을 양다리 쪽으로 보냈다.
그러자 최한종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두 배 이상 빨라졌다.
월풍무 쾌속풍(快速風)은 최한종의 스피드를 최대 4배까지도 상승시켜주는 굉장한 기술이었다.
최한종은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며 동시에 바람 칼날을 계속해서 건에게 날렸다.
아까 날린 두 개의 바람 칼날 같은 수준이 아니라 마치 기관총에서 쏟아져 나오는 탄환처럼 빠른 속도로 바람 칼날을 쏘아냈다.
파파파파파파파팟!
수십 개의 바람 칼날이 아주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건에게 쏟아졌다.
이쯤 되면 투척용 단검을 던져서 막아낼 수준이 아니었다.
분명 피하든지 아니면 막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건은 최한종의 움직임을 똑바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심안까지 최대 파워로 발동시켜놓고 그가 살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최한종이 바람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바람을 강제로 휘어잡고 제 뜻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바람에게 자율 의지를 부유하되 그 자율 의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거였어. 그렇지! 저게 바로 자연의 기운을 다루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지. 내가 배운 오행발현술은 역시 그 시작부터 잘못된 거였어. 불의 의지, 물의 의지, 나무의 의지, 땅의 의지, 쇠의 의지…… 오행의 의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의지만으로 오행을 지배하려고 했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오행의 힘이 나올 수가 없었지!’
건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최한종이 바람을 부리는 방법에 빠져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바람 칼날을 피할 수도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꽈광!
첫 번째 바람 칼날이 건의 가슴에 정확히 명중되었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수십 개의 바람 칼날이 차례대로 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꽈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최한종은 기대도 안 하고 던진 바람 칼날이 너무나 쉽게 명중하자 오히려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놀라는 것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바람 칼날을 건을 향해 쏟아냈다.
파파파팟.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양손.
이대로라면 정말 건을 쓰러트리는 건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역시 기세가 곧 실력은 아니란 건가?’
최한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주 잠깐 자신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아주 잠깐의 망상일 뿐이었다.
스으윽.
바람 칼날이 만들어낸 폭발을 천천히 뚫고 나오는 한 사람.
건은 아주 천천히 폭발의 영향에서 걸어나왔다.
그가 바람 칼날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금강야차(金剛夜叉)의 힘 덕분이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금강야차의 힘을 이용해 만든 강력한 호신강기(護身罡氣) 덕분이었다.
원래 금강야차는 육체를 직접 강화시키는 힘이었지만 건은 계속된 노력 끝에 이 힘을 육체가 아닌 자신이 입고 있는 강화 전투복에 주입 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비록 유지시간이 짧다는 단점이 존재했지만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일종의 호신강기 같은 힘을 지니게 되었다.
강화 전투복 자체가 호신강기처럼 변해 몸을 보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투복이 감싸지 않은 부분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과 한번 주입하면 대략 10분밖에 유지되지 않고 강화 전투복의 내구성 문제로 두 시간에 한 번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효과 자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건은 이걸 ‘금강의(金剛衣)’라고 부르며 열심히 수련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이 금강의 덕분에 최한종이 연속해서 날린 바람 칼날을 가볍게 막아낸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다는 아니지?”
그는 좀 더 최한종이 바람을 다루는 걸 보고 싶었다.
“건방진 놈!”
최한종은 바람 칼날을 너무나 쉽게 막아낸 건을 보며 큰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걸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대신 그는 다음 공격을 곧바로 날리며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지금 기회를 잡으려고 했다.
츠리리릿!
이번엔 좀 더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의 양팔을 몇 줄기의 강력한 바람이 휘감으면서 동시에 그 바람들이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최한종은 곧장 양손 가슴으로 모으며 그 바람들을 다시 하나로 뭉쳤다.
그러자 대략 열 개의 강력한 바람이 꽈배기 모양으로 마구 엉키면서 한 줄기의 강력한 바람이 되었다.
월풍무 용권승천풍룡(龍卷昇天風龍).
이 기술은 최한종이 가진 기술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위력을 지닌 기술이었다.
“가랏!”
콰아아아아!
서로 마주 잡아서 깍지를 낀 최한종의 팔에서 한 줄기의 강력한 바람이 전방을 향해 폭사 되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용(龍)처럼 보였다.
실제로 최한종은 이 바람을 풍룡(風龍)이라고 불렀다.
그 풍룡은 허리케인을 옆으로 눕혀놓은 것처럼 앞으로 날아가며 주변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을 끌어당겼다.
이것만 보아도 그 풍룡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닌 지 알 수 있었다.
최한종은 견제용으로 쓰이는 바람 칼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닌 풍룡을 믿었다.
‘저놈을 집어삼켜라!’
최한종은 자신의 의지를 풍룡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며 풍룡과 이어진 양팔에 더욱 많은 혼력을 밀어 넣었다.
한편 건은 최한종이 풍룡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게 바로 자연의 기운이 지닌 힘을 극대화 시키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야.’
건은 최한종이 바람을 다루는 방법을 보곤 적어도 그것만큼은 완벽하게 인정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아무래도 저건 그냥 무시할 수 없겠네.’
정말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맞았다.
지금 최한종이 만들어낸 풍룡은 아무리 건이라고 해도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건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바람의 용.
건은 그 용을 바라보며 천천히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화르륵!
그렇게 들어 올린 건의 팔에 화염이 맺혔다.
그 순간 주변을 모두 집어삼킨 풍룡이 건의 바로 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모든 정신과 힘을 자신의 팔에 맺혀 있는 화염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화르르륵!
갑자기 건의 오른팔에 맺혀 있던 화염이 허공으로 크게 치솟으며 하나의 형태를 갖추었다.
화염이 마구 뒤엉키며 나타나는 하나의 거대한 머리.
호랑이? 사자?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개의 머리와 유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옥의 불꽃에서 태어난다는 헬하운드의 머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헬하운드도 개는 개였다.
어쨌든 그렇게 거대한 개의 머리가 된 화염은 곧장 건을 향해 날아오던 한 마리의 풍룡과 허공에서 충돌했다.
캬아아아아아!
크어어어어엉!
화염으로 만들어진 개의 머리를 휘감는 풍룡과 그런 풍룡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개의 머리.
그 모습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콰과과과과과광!
하지만 그것은 그림처럼 오랫동안 남아있을 순 없었다.
폭발과 함께 사라지는 풍룡과 개의 머리.
그렇게 최한종이 날린 회심의 일격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이, 이게…….”
최한종은 어처구니가 없단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건이 화염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개의 머리가 뭔지 알고 있었다.
‘나랑 똑같은 자연지기(自然之氣)를 다루는 녀석이었어?’
최한종은 설마 건이 자신과 같은 자연지기를 다루는 소울러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최한종이 모르는 진짜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건이 방금 만들어낸 헬하운드의 머리는 아주 즉흥적인 시도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계속 최한종이 바람을 다루는 방법을 지켜보고 보던 건은 그 방법을 응용해 자신이 그동안 연구하던 새로운 방식의 오행발현법을 시도했고 그 결과 놀랍게도 화염으로 거대한 헬하운드의 머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와, 이게 정말 되네?’
건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화염이 자율 의지에 따라 하나의 형태를 갖추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건도 정확히 화염이 어떤 형태를 갖출 것이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건이 한 일은 그저 화염에게 자율 의지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지닌 혼력을 화염에게 나눠준 것뿐이었다.
그랬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라면 대성공이었다.
원래 건은 대충 화염의 힘을 조금이나마 강화해 풍룡의 힘을 약화시킨 후 아직 효과가 남아 있는 금강의의 힘으로 나머지 풍룡의 힘을 막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오로지 화염의 힘만으로 풍룡을 막아냈다.
화염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개의 머리가 풍룡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그 장면은 건이 보기에도 아주 장관이었었다.
“지금까지 이런 능력을 숨기고도 칠 연승을 거뒀다니…… 도대체 네 정체는 뭐냐?”
최한종은 잠시 전투를 멈추고 건을 향해 진심으로 궁금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굳이 숨긴 건 아닌데…….”
건은 살짝 민망한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실제로 이건 숨겼다고 얘기하긴 좀 그런 상황이었다.
“자연지기를 다루는 소울러들은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너 같은 녀석이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더 이해가 안 된다.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도 없고 땅에서 솟았을 리도 없을 텐데…… 넌 어디서 온 거지?”
“흐음, 그냥 경계에 등장한 새로운 별 정도로 해두죠.”
스스로를 경계의 신성(新星)이라 소개하는 건.
최한종은 그런 건을 보며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건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건의 말처럼 건은 정말 경계의 세상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강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