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89화 (89/175)

# 89

더 소울(The Soul) - 또 다른 경계의 세상 [2]

“방심하지 말고 놈을 확실히 제거해라!”

그들이 입고 있는 소울 슈트는 중국에서 흑룡4호라고 불리는 중급 혼갑(魂鉀)이었다.

흑룡4호는 전형적인 강화형 혼갑이었다.

착용자의 육체 능력과 방어력을 상승시켜주고 동시에 미약하게나마 혼갑에 저장된 혼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흑룡4호는 워낙 대중적인 혼갑이었기 때문에 성능 자체가 아주 뛰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중적이란 것 자체가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가 좋다는 뜻이었다.

또한, 건을 포위하고 있는 흑객들이 가진 대 소울러용 장비는 흑룡4호만 있는 게 아니었다.

흑룡4호는 그들이 가진 대 소울러용 장비 중 방어구에 속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그것과 함께 공격용 장비도 지니고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그들이 꺼내 든 한 자루의 총이었다.

철컥, 기이잉.

그들은 동시에 한 자루의 총을 꺼내 들어 건을 겨누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그 총은 보통의 총과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기본 베이스는 돌격소총과 유사했지만, 총구가 있어야 할 자리엔 푸른색으로 빛나는 긴 사각형 모양의 수정 같은 게 달려 있었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나 어울릴 것 같은 이 총은 바로 흔히 ‘소울 건(Soul Gun)’이라 불리는 오로지 경계에서만 작동하는 특수한 총이었다.

소울 건의 작동 원리는 간단했다.

소울 건의 앞쪽에 달린 긴 사각형 모양의 푸른 수정은 미스릴과 영혼의 조각을 혼합해 만든 것이었는데 이게 바로 소울 건의 핵심이었다.

마치 돋보기로 태양 빛을 한 점에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처럼 이 수정은 혼력을 한점으로 모아 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모인 혼력은 일정 수치가 넘으면 수정 밖으로 방출되는데 그때 방출되는 한 줄기의 혼력은 마치 SF 영화에 자주 나오는 레이저 총에서 발사된 레이저처럼 보였다.

이것은 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소울러에겐 보통 현실에서 사용하는 돌격 소총보다 몇 배는 더 위협적인 에너지 탄환이었다.

소울러들은 이 에너지 탄환을 ‘소울 플래쉬(Soul Flash)’이라고 불렀다.

물론 소울 건도 워낙 종류가 많고 성능도 천차만별이라 그것에서 쏘아지는 소울 플래쉬의 위력도 각양각색이었지만 아무리 저급의 소울 건에서 쏘아진 소울 플래쉬라고 해도 최소한 돌격 소총의 탄환보단 3배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울 슈트에 이어 소울 건까지…… 이 새끼들 그냥 단순한 강도들은 아니겠는걸?’

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시에 자신을 향해 곧 쏘아질 소울 플래쉬에 대비했다.

츠츠츳!

최대 출력으로 펼쳐지는 태극혼패.

그와 동시에 건은 금강의도 발동시켰다.

그 순간 백도 눈치껏 재빨리 건의 가방에서 뛰쳐나와 태극혼패가 있는 건의 오른팔에 바짝 붙어서 매달렸다.

드드드드드드드드!

그 순간 흑객들이 들고 있던 소울 건에서 차례대로 소울 플래쉬가 방출되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정!

이번에도 역시 피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기에 건은 태극혼패와 금강의를 이용해 그 소울 플래쉬를 모두 막아…… 아니, 버텨냈다.

“크윽.”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해도 지금 건은 모든 공격을 몸으로 버텨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온몸을 두들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소울 플래쉬를 이 정도 고통만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게 어쩜 더 대단한 것일지 몰랐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과 같은 소울 플래쉬 세례가 끝나고 나자 흑객들은 일제히 소울 건을 거두며 다음번 사격까지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소울 건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소울 플래쉬를 사용하기 위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선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최고급형 소울 건들은 그 시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인 돌격 소총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차라리 개량된 돌격 소총을 쓰는 게 소울 건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 때문에 소울 건은 한 번 사용했을 때 확실히 이득을 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

꽈광! 파파파팟!

다시 한 번 파천신법을 사용하며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간 건은 태극혼패를 다시 태극혼창을 변형시키며 가장 앞쪽에 있는 흑객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헉!”

흑객들은 모두 설마 그렇게 많은 소울 플래쉬를 맞은 건이 움직일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건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었다.

콰드득!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선두에 있던 흑객의 머리가 날아갔다.

건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흑객의 머리를 날렸다.

그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과거 척준경이 그랬듯이 손에 미련 같은 건 전혀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을 망설인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게 없었다.

“마, 막아!”

흑객들은 건의 역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훈련받은 대로 일단 재빨리 아직 재장전이 되지 않은 소울 건 대신 최초 사용했던 돌격 소총을 다시 꺼내 들어 건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다시 한 번 쏟아지는 총탄들.

하지만 건은 태극혼창을 들어 머리 부근을 방어하며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당!

일반 돌격 소총들이 쏘아낸 총탄들은 금강의를 절대 뚫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당황하는 것은 건이 아니라 흑객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소울러는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지옥 같은 훈련을 받은 후 현장에 투입된 정예 요원들이었다.

더욱이 소울 슈트까지 입고 소울 건으로 무장한 그들은 아무리 소울러라고 해도 함부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흑객이 20명 정도 모이면 삼성(三星)급 소울러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었다.

삼성급 소울러는 한국으로 따지면 대략 중상급 실버등급의 헌터 정도를 의미했다.

오늘 이곳에 투입된 흑객은 무려 40명.

삼성급 소울러와 상대가 가능하다는 20명의 두 배가 모여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브론즈급 헌터인 건을 아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너무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크게 빗나갔다.

휘리릭!

콰드드득!

건이 휘두른 창에 또 한 명의 흑객이 다리와 몸이 둘로 나뉘며 쓰러졌다.

머리가 날아가고…… 심장이 꿰뚫리고…… 몸이 양분(兩分)되는 흑객들.

건은 마치 양 떼 속에 뛰어든 한 마리의 늑대처럼 흑객들을 마구 짓밟았다.

단 몇 분 만에 40명의 흑객이 25명의 흑객으로 줄어들었다.

그 사이 흑객들은 소울 건의 충전이 끝나 다시 한 번 소울 건을 사용했지만 이번에 역시 건은 그걸 모조리 몸으로 견뎌내고 끊임없이 흑객을 쓰러트렸다.

이쯤 되자 흑객들의 우두머리인 단철홍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몰살당할 수도 있다.’

임무도 임무였지만 여기서 데려온 모든 흑객을 잃는다면 그건 더 큰 질책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15명의 흑객을 잃은 것만으로도 그는 어떤 처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정보가 잘못됐다. 뭐? 일성급 소울러? 저 정도라면…… 최소 오성(五星), 아니 육성(六星)급 소울러다.’

단철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후퇴한다. 어차피 상해는 우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저 녀석은 당분간 강철민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건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연락 가능한 수단을 수차례 이어진 공격으로 모두 망가트린 상태였다.

그렇기에 건이 철민에게 연락을 하려면 결국 다른 수단을 이용해야 했는데…… 단철홍은 그걸 막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벌고 상부에 지원요청을 하면 된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단철홍은 곧장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십칠 번 진형으로 변경한다! 십칠 번 진형으로 변경한다!”

단철홍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흑객들은 기다렸다는 모두 동시에 품에서 둥근 쇠 구슬 같은 걸 꺼내 앞쪽으로 던졌다.

콰과과과과광!

그들이 던진 그것은 땅바닥에 닿는 순간 폭발했는데 폭발과 함께 짙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우는 새카만 연기.

‘독탄(毒彈)?’

건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호흡을 차단하고 심안을 통해 연기의 성분을 살폈다.

‘……그냥 연막탄이었군.’

연막탄이란 걸 확인한 건은 다시 호흡을 시작하며 제자리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건은 이미 흑객들이 도망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연막탄이 모두 사라지자 역시나 건의 주변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역시…… 도망갔군.”

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건이 마음만 먹었다면 사방으로 산개하며 도망치는 흑객 중 몇 놈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조무래기 몇 놈을 잡아 죽인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놈들은 정확히 사장님이 나에게 가져오라고 시킨 문곡삼보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단 얘긴 놈들은 이 문곡삼보가 사장님에게 전해지는 걸 막으려 했단 뜻이고 그건 곧…… 놈들이 사장님과 대립하고 있는 녀석들이란 뜻이겠네.’

건은 대충 자신을 습격한 이들의 정체를 예상해 보았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놈들이 누구의 적인지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도대체 사장님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거지?”

복면을 쓴 노상강도(?)들에게 공격당하기 전까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던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사장님 연락처가 들어 있는 휴대폰이 이 꼴이라니…… 크으, 이걸 가장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건은 완전히 넝마가 되어 형체도 알 수 없게 변해버린 자신의 가방 속에서 역시나 형체를 알 수 없게 산산조각이 나버린 휴대폰의 잔해를 바라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가방 속에 있던 물건 중 멀쩡한 건 문곡삼보뿐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번호는 외우고 있으니까…… 일단 공중전화부터 찾아봐야겠다.”

건은 포기할 건 깔끔하게 포기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망가진 장비들은 모조리 버려버리고 문곡삼보만 따로 챙겨서 경계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철민과 연락만 되면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었기 때문에 걱정 같은 건 별로 하지 않았다.

“……놈들이군.”

건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손에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벌써 열여섯 번째.

건이 철민과 통화를 시도한 횟수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건은 전화할 수가 없었다.

멀쩡하던 전화도 건이 손을 대기만 하면 먹통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우연이 열여섯 번이 계속되자 건은 자신을 공격했던 그들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걸 확실히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해인데…… 그깟 전화 한 통을 하지 못해서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니…… 거참…….’

건은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놈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건은 이제 전화를 찾아다니는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놈들에게 감시받는 실정이라면 그냥 놈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관광이나 하자.”

원래는 일을 해결하고 하려고 했던 상해 관광.

건은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지금 관광을 해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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