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90화 (90/175)

# 90

더 소울(The Soul) - 선택과 집중 [1]

@ 황룡회(黃龍會).

건은 정말 관광을 했다.

사방이 적인 상황에서 관광한다는 게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건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했다.

당연히 건을 습격한 이들은 건이 관광한다고 해서 경계를 게을리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경계망은 너무 넓고 촘촘해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건은 마음 같아서는 자신을 감시하는 놈 몇 놈을 잡아서 경고라도 하고 싶었지만 감시하는 이들을 찾아내기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관광을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이렇게 하는 이유도 적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함부로 나서서 적을 쳤다가는 풀을 들쑤셔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憂)를 범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 일이 꼬일 수 있었기에 건은 일단은 답답하더라도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계속 기회를 엿봤다.

그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관광을 하며 그들의 반응을 꾸준히 살폈다.

물론 관광은 진짜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은 관광과는 별개로 한 가지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적들이 움직임이었다.

어차피 몇 겹의 감시망으로 건을 완벽하게 상해에 고립시켜놓은 이 상황에서는 건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감시망 몇 개를 뚫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적이 감시망을 더욱 철저하게 정비할 기회만 제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건은 감시망을 뚫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변화를 기다렸다.

뭐가 됐건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건은 관광을 하면서도 계속 주변을 살폈다.

특히 백은 건에게 몇 분 단위로 계속해서 주변의 기운들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백이 주변 감시자들을 모두 찾아내는 것이었겠지만 감시자들은 모두 소울러가 아니라 외인(外人)들이었기 때문에 경계의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이 그들을 완벽하게 골라낼 순 없었다.

“특별히 이상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요.”

백은 건의 어깨 위에 앉아서 작게 속삭이듯 보고했다.

며칠 전부터 24시간 감시 체제로 들어서 무지하게 피곤한 백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백은 군말 없이 5분 단위로 주변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백의 얘길 들은 건은 옆쪽의 관광 안내판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도 됐는데…….’

건이 상해에 온 지 벌써 사흘이 흘렀다.

이미 이틀이 지난 시점부터는 시간이 적이 아닌 건의 편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시간이 더 흐른다면 강철민이 건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었다.

어쩜 벌써 철민이 나섰을지도 몰랐다.

문곡삼보를 가지고 오기로 한 건이 오지 않았으니 철민이 움직이는 건 당연했다.

‘처음부터 적들은 사장님이 아닌 나를 노렸다. 그 얘긴 녀석들이 사장님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뜻이고…… 그건 곧 사장님이 움직이면 놈들도 곤란해진다는 것이지. 그렇기에 놈들은 무조건 오늘 아니면 내일 뭔가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게 건의 예상이었다.

애초에 건이 다소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예상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만약 자신이 조급한 마음에 먼저 뭔가 해결책을 내기 위해 움직였다면 오히려 적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결국 움직임의 예측에 대한 문제였다.

사람과 사람이 싸울 때도 가장 손쉽게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강제로 제한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게 한 후 그걸 받아치는 것이었다.

이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건이었기 때문에 적이 주먹을 날리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적이 주먹을 날리는 순간 건은 곧장 카운터 펀치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그걸 위해서 건은 지금 이렇게 가드도 풀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 방…… 한 방만 제대로 먹이면 된다. 어차피 내 임무는 적들을 섬멸하는 게 아니라 사장님을 만나 문곡삼보를 전해주는 것일 뿐이니까…….’

건은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넘어서는 건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할 일만 생각하는 건.

그렇기에 그는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건의 예상은 아주 정확했다.

처음부터 그들은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만약 철민이 건을 찾아 나선다면 그들로서는 철민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들의 힘이라면 철민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철민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이들이 그들과 같은 회(會)에 소속된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파벌이 다르다고 해도 철민을 불러들인 이들은 회의 고위인사들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이번 일을 알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철민이 나서기 전에 이번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움직였다.

건이 상해에 온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 건이 예상한 대로 그들은 조급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먼저 움직였다.

* * * *

“주인님, 아주 조금씩 주변에 수상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것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백의 레이더망을 피할 순 없었다.

특히 집중해서 5분 간격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던 백이었기 때문에 아주 정확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해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는 주변을 살피면서 놈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계속 나한테 얘기해줘.”

“넵!”

킁킁킁.

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큰 코를 벌렁거리며 열심히 주변의 기운을 살폈다.

‘이제 시작이군. 아마 전보다 더 철저히 준비해 왔겠지? 하지만 준비는 나도 했다.’

건은 슬쩍 웃으며 시켜놓은 띠싼씨엔(地三鮮)을 마저 먹었다.

띠싼씨엔은 가지 볶음 요리였는데 건은 간단하게 밥과 함께 그것을 먹었다.

‘저들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명 빈틈이 생긴다. 그 기회를 정확히 잡아내야 한다.’

그것은 마치 바늘구멍과 같이 작은 빈틈이었지만 건은 절대 그걸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건은 처음부터 그것만 생각했기에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계속 모여들고 있어. 전방에 신문 보는 남자. 멀리서 통화하는 남자. 오른쪽과 왼쪽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백은 정확한 적의 위치를 건에게 알려주었다.

건은 밥을 먹으며 백의 얘길 들었고 그걸 토대로 머릿속에서 하나의 평면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좀 더…… 아마도 놈들은 내 근처의 모든 사람을 자기 사람들로 바꾼 후에 작업을 시작할 거야.’

건은 띠싼씨엔을 깨끗하게 다 먹은 후 여유 있게 차까지 마시며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뒤쪽에 서성이는 남자까지…… 주인님, 이제 주변에 일반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건이 차를 거의 다 마셨을 때 즈음 드디어 백이 건이 기다리고 있던 얘길 해주었다.

‘됐다!’

백의 얘길 듣는 순간 건의 머릿속에 그려지던 평면도는 100% 완성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건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쨍그랑!

산산이 부서지는 찻잔.

그와 함께 건은 자신만의 경계를 열었다.

파아아아아아아!

건을 중심으로 반경 1km 안쪽의 공간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며 둘러 나뉘었다.

그렇게 현실과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론 전혀 다른 세상인 경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경계는 주변에 있는 모든 외인(外人)을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미 그들이 외인이 경계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자신이 연 경계를 끌려 들어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영혼의 파편은 소모성 물건인데다 가격까지 굉장히 비싸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첫 습격의 경우만 보아도 이들은 영혼의 파편 정도를 아까워하는 이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건은 이들이 모두 전에 한 번 만났던 그 복면인들과 비슷한 이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사 끌려들어 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건의 목적은 그들이 준비한 시간과 장소를 비틀어서 그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건이 경계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경계를 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존재했는데 첫 번째는 영혼의 파편을 모아 만든 ‘영혼의 거울’을 이용해 경계를 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뛰어난 제혼력(制魂力)과 일정 수준 이상의 혼력을 지닌 소울러가 자신의 혼력을 이용해 강제로 경계를 여는 것이었다.

첫 번째 방법은 워낙 자연스럽게 경계를 여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뛰어난 소울러라고 해도 자신의 근처에서 영혼의 거울로 경계가 열리면 당연히 경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건이 겪은 일이 이 경우에 해당되었다. 그때 건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계에 빨려 들어갔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는 실력만 있다면 경계로 끌려들어 가는 걸 거부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건은 두 번째 방법으로 경계를 열었다.

하지만 건의 주변에 있던 외인들은 건이 연 경계로 끌려들어 가는 걸 거부할 수 없었다.

그걸 거부하기엔 그들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들은 건이 경계를 열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지 예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건의 이러한 선제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었다.

순식간에 바뀌는 풍경들.

건을 포위하고 있던 흑객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 변화에 크게 당황하며 모두 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들이 눈을 돌린 그 순간 건은 그 자리에 없었다.

경계를 여는 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꾹 참고 기회를 기다리던 건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 기회의 실마리를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그 실마리를 끊어지지 않게 잡아당겨 빈틈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었다.

콰드득!

건의 옆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흑객의 머리가 날아갔다.

어느새 건은 흑룡아(대검)을 들고 가볍게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흑객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모두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시작된 건의 역습.

건은 그들이 제대로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최대한 큰 피해를 줄 생각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사흘 동안 답답함을 꾹 참고 기다렸던 것이었다.

“우선…… 하나.”

건은 가볍게 중얼거리며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촤아아!

그 순간 또 한 명의 흑객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둘.”

중얼거리듯 숫자를 세는 건.

그는 이미 머릿속에 자신을 포위한 흑객들이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총 72명.

백의 도움으로 그 72명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정확히 입력한 건은 경계를 여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향해 서슬 퍼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놈들이 준비한 것이 무엇이든지…… 일단 이곳에 있는 녀석들의 머릿수를 최대한 줄이면 그것 자체가 나에게 기회가 되는 것이다.’

건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빈틈이라는 것은 어떻게 후벼 파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건은 아주 제대로 후벼 파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후벼 파 빈틈을 최대한 크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 다음 일은 좀 더 쉬울 수밖에 없었다.

파파팟!

콰드득!

또다시 날아가는 한 개의 머리.

벌써 세 명의 흑객이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졌다.

심지어 흑객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힘이라 할 수 있는 소울 슈트(흑룡4호)도 꺼내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만큼 건의 기습은 빠르고 강력했다.

특히 망설이지 않고 끊임없이 대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저승의 명왕(冥王)이 현세에 강림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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