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더 소울(The Soul) - 선택과 집중 [2]
“대, 대응해라!”
흑객들은 갑작스러운 건의 기습에 대응하기 위해 곧장 흑룡4호를 소환했다.
하지만 그들이 흑룡4호를 꺼내려는 그 순간에도 건은 거침없이 그들을 쓰러트렸다.
두 명의 흑객이 더 쓰러졌다.
흑객들은 총 5명의 동료를 잃고 나서야 겨우 흑룡4호를 소환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건은 흑객들이 흑룡4호를 소환시키는 순간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권총을 뽑았다.
그는 오래전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결투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권총을 뽑았다.
그가 뽑은 권총은 마이더스 한병일이 만들어준 GX(글록X)였다.
베이스는 글록이었지만 위력은 글록을 훨씬 벗어나 있는 두 자루의 GX가 뽑히는 것과 동시에 불꽃을 내뿜었다.
타다다다다당!
건은 순식간에 한 자루당 세 발씩 총 여섯 발을 쏘았다.
그리고 그 여섯 발은 각기 다른 6명의 흑객을 향해 날아갔다.
보기엔 그냥 대충 마구 쏜 것 같았지만, 건은 그 짧은 순간에 미리 봐둔 6명의 흑객을 노리고 정확히 조준사격을 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이 노린 목표였다.
건은 단순히 그들을 노리고 쏜 게 아니었다.
그는 정확하게 한 곳을 노렸다. 아직 흑룡4호가 완벽하게 소환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인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작은 틈.
건은 바로 그곳을 노렸다.
퍼퍼퍼퍼퍼퍽!
“커억!”
“크아악!”
“끄르륵.”
여섯 발의 강력한 강화 탄환이 여섯 명의 흑객들 목을 관통했다.
예외는 없었다.
여섯 명 모두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목이 관통되며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인 흑객들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사실 평상시의 그들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은 특수한 약물의 힘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육체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건이 총을 꺼내 드는 순간 이미 반응을 하고 피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질 못했다.
그 이유는 흑룡4호를 소환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소울 슈트를 소환하는 시간이 불과 몇 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그 몇 초간은 움직일 수 없었다.
건은 그 순간을 노렸다.
워낙 짧은 시간이었고 소울 슈트가 그 몇 초 동안 몸 전체로 퍼져 나가며 소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노릴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건은 아주 훌륭하게 공격을 성공시켰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가 한 번 흑룡4호가 소환되는 것을 직접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만 보았을 뿐이었지만 그 한 번만으로 건은 정확한 공격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쓰러진 흑객의 숫자를 11명으로 늘렸다.
72명이 61명으로 바뀌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이, 이런 개 같은…….”
흑객들은 너무나 쉽게 쓰러지는 동료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11명이 쓰러졌다고 해도 아직 61명의 흑객이 남아 있었다.
비록 그 중 14명이 소울 슈트를 가지지 못한 흑객들이었지만 대신 그들은 대 소울러 무기 중 하나인 저격용 소울 건을 가지고 있었다.
14명 모두 건과 최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곧장 건을 향해 저격용 소울 건을 겨누고 언제라도 건을 날려버릴 준비를 끝냈다.
“보통 놈이 아니라고 보고받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군. 어떻게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거지?”
스윽.
건을 포위한 흑객들 뒤쪽에서 걸어나오는 한 남자.
그는 흑룡4호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몸 주변으론 농도 짙은 혼력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는 딱 봐도 소울러였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소울러가 확실해 보였다.
‘저 녀석이 놈들이 준비한 한 수인 건가?’
건은 잠시 심안을 최고 수준으로 발동시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심안을 통해 본 그는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정도 밝기는 건이 영혼투기장에서 상대했던 최지만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성급 소울러일줄 알았는데…… 정말 육성급 소울러일 수도 있겠군.”
남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오성급 소울러이자 회에서 별거 아닌 단주(團主)직을 맞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실 회에는 그 정도 되는 인물은 널리고 널렸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보는 눈들 때문이었다.
그보다 윗줄의 소울러가 움직이거나 혹은 그의 수준의 소울러들이 다수 움직이면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끌지 않으면서 파견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 할 수 있는 남자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 옛날 양산박의 72지살(地殺) 영웅 중 한 명인 지벽성(地闢星) 마운금시(摩雲金翅) 구붕(歐鵬)의 영혼을 품고 있던 그는 자신 정확히 오성급 소울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전혀 걱정없는 표정이었다.
지금 그와 함께 있는 61명의 흑객.
이 정도라면 설사 상대가 7성급 소울러라고 해도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후후후, 이 정도의 흑객이라면 두려울 게 없지. 소문대로 정말 회의 알짜 베기 세력들이 모두 그분의 아래로 들어갔구나!’
남자는 내심 자신을 돕고 있는 흑객들을 돌아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동안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가졌던 그였지만 이제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흑객은 회가 가진 주요전력 중 하나였다.
이런 흑객을 며칠 만에 70명이 넘게 모이게 할 수 있다는 얘긴 곧 회의 진정한 실력자란 뜻이었다.
“확실히 며칠 동안 보여준 너의 그 어처구니없는 여유가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겠다. 하지만 네가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여긴 한국이 아니다. 왜 중국이 경계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나라인지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남자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건을 행해 얘기했다.
그는 한국의 소울러는 등급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 전형적인 중국의 소울러가 가지는 의식이었다.
중국의 소울러들은 전통적으로 중화사상이 굉장히 강해 경계의 세상 역시 중국이 온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다른 나라의 소울러들을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았다.
사실 소울러의 숫자만 놓고 본다면 중국을 따라올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다른 나라의 소울러들을 깎아내리는 것은 중국이 가장 심했다.
하지만 정작 건은 남자가 떠드는 말은 아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는 남자의 말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소울 슈트를 입은 놈들과 저 녀석…… 전혀 조화롭지가 않아.’
심안을 통해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던 건은 자신을 향해 뭐라 뭐라 계속 떠드는 남자와 주변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는 흑객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얘긴 결국 남자와 흑객들이 손발을 맞춘 적이 전혀 없단 뜻이었다.
‘빈틈은…… 저 녀석이다!’
결국, 건은 빈틈을 찾았다.
빈틈을 찾은 건은 망설이지 않고 파천신법을 통해 앞쪽으로 뛰쳐나갔다.
꽈릉, 파파파팟!
굉장한 속도로 돌진하는 건.
순간 쓸데없는 잡소리만 계속 떠들던 남자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혼력을 자신의 양손에 집중시켰다.
그와 동시에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흑객들도 상황에 맞춰 움직이며 건을 막아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뒤쪽에 대기하던 흑객들은 모두 저격용 소울 건의 방아쇠를 당기며 건을 향해 강력한 소울 플래쉬를 날렸다.
모든 적이 건의 움직임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건이 최근에 파천신력의 두 번째 버전을 완성했다는 것이었다.
파천신력…… 순간가속(瞬間加速)!!
꽈과과광!
다시 한 번 강력한 충격파가 건 발밑에서 폭발했다.
그 순간 건은 튀어나온 속도보다 정확히 두 배 더 빠른 속도로 앞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건 거의 달려나간다고 표현하기보단 그냥 튕겨져나간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이게 바로 파천신력의 두 번째 버전인 순간가속이었다.
물론 이게 장점만 가지곤 있는 건 아니었다.
너무 빠르기만 강조하다 보니 이건 정말 말 그대로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가야 했다.
그냥 파천신력이라면 건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지만 이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는 신법이었다.
하지만 대신 속도만큼은 정말 대단했다.
한줄기의 바람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버린 건.
덕분에 그는 자신을 막으려던 흑객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향해 쏟아진 소울 플래쉬까지 모두 피할 수 있었다.
꽈과과광! 꽈과광!
건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그 경로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공격.
만약 건이 이 공격들을 모조리 몸으로 받았다면 아무리 건이라고 해도 꽤 충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건을 그 공격들을 모두 피했다.
그리고 이 순간 건은 새롭게 등장한 소울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흠!”
조금 전까지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건에게 쓸데없는 훈계까지 하던 남자는 잠깐 눈을 깜짝한 사이에 거의 300m 정도 앞에 있던 건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표정을 계속 짓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건이 그의 앞에 나타난 그 순간 이미 흑룡아(대검)를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쩌저저저정!
사정없이 남자의 목 쪽으로 파고드는 흑룡아(대검).
남자는 간신히 자신의 손에 모인 금시영기(金翅靈氣)를 이용해 흑룡아를 막았다.
순간 남자의 신형이 휘청하며 옆으로 확 쏠렸다.
이 상태에서 건의 두 번째 공격이 들어온다면 남자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었다.
‘위, 위험하다!’
그걸 느낀 남자는 곧장 자신이 가장 아끼는 힘이었던 마운강기(摩雲罡氣)까지 끌어올리며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마운강기라면 이 위기를 넘겨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남자의 판단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선택이 되어버렸다.
파팟!
두 번째 공격은 없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건도 없었다.
남자의 신형을 휘청하는 순간 건은 그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애초에 건의 목표는 적의 섬멸이 아니었다.
탈출.
그것이 바로 건의 목표였다.
꽈릉, 파파파팟!
다시 한 번 발동된 파천신력.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순간가속!
꽈과과광!
그렇게 건은 찰나의 순간에 이미 남자를 한참 지나쳐 자신이 만든 경계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이 순간 건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61명의 흑객 중 대부분은 이미 건을 막겠다고 앞쪽으로 달려나가 있었고 그나마 뒤쪽에 남아 있던 저격수 역할의 흑객들은 아직 재충전도 되지 않은 저격용 소울 건을 건에게 겨누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방아쇠를 당겨도 어차피 격발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저 멀뚱히 건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이 만든 경계를 벗어나는 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건은 이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최초 마치 도살자(屠殺者)처럼 흑객들을 쓰러트린 것은 모두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 그린 밑그림일 뿐이었다.
흑객들이 건의 목숨을 노린 건 사실이었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무모하게 그들 모두를 상대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얻을 것은 얻고 포기할 것은 포기한다.
이게 건의 생각이었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한 건. 그 결과 그는 너무나도 깔끔하게 회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