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더 소울(The Soul) - 황룡회(黃龍會) [1]
@황룡회(黃龍會).
“역시…… 그 녀석이 수작을 부렸던 것이군.”
철민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철민 앞에는 건이 있었다.
멋진 돌파로 적들을 완벽하게 따돌린 건은 결국 철민을 만날 수 있었다.
“도대체 그 녀석들은 뭐였나요?”
“흑객…… 황룡회(黃龍會)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인 외인(外人)들이다.”
“황룡회요? 그놈들이 사장님의 적인가요?”
“황룡회는 내 적이 아니다. 오히려 난 지금 황룡회를 돕고 있다.”
“네? 그게 무슨…….”
“간단하다. 황룡회는 중국의 경계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세력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몇 개의 파벌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파벌들은 서로 회의 권력을 놓고 싸운다. 넌 바로 그 권력다툼에 휘말린 거야.”
“아…….”
철민의 얘길 들은 건은 그제야 어떻게 황룡회가 아군인 동시에 적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돕고 있는 이들은 황룡회의 원로원(元老院)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이고 널 습격한 쪽은 황룡회의 차기 회주(會主)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면서 동시에 중국에서 천강십성(天强十星)이라 불리는 열 명의 절대자 중 한 명인 황룡패왕(黃龍覇王) 주백검(周白劍)이 이끄는 강경파다.”
“황룡패왕 주백검…… 이름만 들어도 평범해 보이질 않네요.”
“당연히 평범하지 않지. 그는 이 등급 영혼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조맹덕(曹孟德)과 맹약을 맺은 인물이다. 차기 회주라지만 사실상 현 회주가 활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기 때문에 황룡회에선 이미 그를 회주처럼 생각하고 있어.”
“그런 인물이 왜 절 노린 거죠? 아니, 왜 사장님에게 문곡삼보가 전해지는 걸 막으려고 한 거죠?”
“내가 돕는 원로원이 그의 성향을 우려하여 두 번째 회주 계승 자격을 가지고 있는 운중룡(雲中龍) 단천홍을 차기 회주에 앉히려는 중이거든. 물론 원로원의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주백검은 워낙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이번 기회에 자신의 차기 회주 계승을 확정 짓고 싶었던 거야.”
“확정을 짓는다고요? 그게 사장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요?”
“관계가 있지. 왜냐하면, 내가 원로원을 도와서 마군(魔君)급 혼마를 잡고 있었거든. 정확히는 마공(魔公)급에 근접한 마군급 혼마였지만 어쨌든 이번 사냥의 총 책임자가 운중룡 단천홍이야. 만약 단천홍이 이번 사냥을 무사히 끝낼 수만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단천홍의 차기 회주 승계 가능성이 올라갈 수 있었고 주백검은 그게 싫었던 거야.”
“헐…… 그것 때문에 절 죽이려고 했던 거예요? 단순히 약간의 가능성이 생기는 게 싫어서?”
“주백검은 원래 그런 남자야.”
“이거 좀 열 받는데요.”
“열 받아도 어쩔 수 없어.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황룡패왕 주백검에게 덤비는 건 자살 행위야.”
“네, 알아요.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 놈은 수틀리면 불가침협약도 무시하고 손을 쓰기도 하는데…… 이번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지 많이 참은 거 같더라.”
불가침협약이란 현실과 경계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일단 경계에 속하게 된 이들은 소울러건 외인이건 상관없이 서로 은원(恩怨)이 생겼을 때 무조건 그 은원을 경계에서 해결해야 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걸 어기고 경계가 아닌 현실에서 그 은원을 해결했다가 발각되면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규율을 지키는 자들에게 응징을 받게 되어 있었다.
한국을 예를 든다면 수호자가 바로 규율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이 협약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한 강제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에 속한 이들은 대부분 이 협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주 가끔 아주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협약을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비밀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는 게 그리 쉽진 않았다.
“설사 협약을 무시하고 덤벼도 쉽게 당할 생각은 없어요.”
아무리 힘의 제한을 받는다고 해도 소울러들은 현실에서 괴물과 같은 능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당연히 어설프게 소울러들을 공격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현실에선 경계에서 사용하는 힘의 십 퍼센트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게 맞았지만, 워낙 소울러들이 경계에서 가진 힘 자체가 상식을 한참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 십 퍼센트만으로도 흔히 말하는 초인(超人)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주백검이 현실에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니까 너무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만만하게 본 건 아니에요. 그나저나 문곡삼보만 있으면 이번 일을 해결하실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가능할 것 같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놈이라 나도 숨겨놓았던 밑천도 좀 꺼내야 할 것 같다.”
“그 정도예요?”
“그나마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어쩜 마공급 혼마로 성장했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지금은 우리를 방해하는 주백검도 두 팔 걷고 나섰어야 했을걸?”
“휴, 확실히 마공급에 가까운 혼마들은 무시무시하군요. 근데 왜 이 녀석들은 자기들 땅에 나타난 괴물을 굳이 다른 나라의 소울러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서 잡는 거예요?”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경계도 그만큼 넓다. 덕분에 괴물들을 사냥하는 이들의 숫자보다 괴물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졌지. 그래서 이렇게 종종 외국에 도움을 요청하곤 해. 아무래도 자신들만의 능력으로 모든 괴물을 처리하긴 힘들거든.”
“아, 그렇군요.”
철민의 대답에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넌 지금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라. 돌아가는 비행편은 내가 이미 준비해 뒀으니 출발만 하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명색이 첫 외국여행인데 계속 피만 봤더니 한국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래, 사실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별로 없다.”
철민은 슬쩍 웃으며 대답한 후 곧장 준비해두었던 비행기 표를 건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유령항공이었다.
“난 대충 사, 나흘 정도만 더 있으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연희한테는 그렇게 전해라.”
“네, 그럼 몸조심하세요.”
할 일을 끝낸 건은 미련없이 철민에게 인사를 하곤 공항을 향해 이동했다.
다행히 주백검도 더 이상 건을 노리진 않았다.
그는 철저히 효율을 강조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문곡삼보를 철민에게 건네준 건은 그에게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덕분에 건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목을 노렸던 이들을 그냥 놔두고 들어오는 게 조금은 찝찝한 건이었지만 어차피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 자체를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버렸다.
* * * *
한국으로 돌아온 건은 중국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잊고 다시 자신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왔다.
우선 20일 뒤로 미뤄놨던 영혼투기장의 일정을 다시 조종해 최대한 빨리 경기를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그 뒤엔 늘 그랬듯이 시간이 남을 때마다 계속 수련을 했다.
그리고 당연히 카페 헤븐에도 출근했다.
“사, 나흘?”
“네, 사장님이 그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뭐, 조금 더 있다 오셔도 상관은 없는데.”
연희는 철민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철민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어디 가서 곤란을 겪을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나저나 누나. 누나도 황룡회란 곳을 알아요?”
“황룡회? 당연히 알지. 중국 경계에 존재하는 네 개의 하늘 중 하나잖아.”
“네 개의 하늘요?”
“중국의 소울러들은 자신들이 속한 경계를 강호(江湖) 또는 무림(武林)이라고 부르거든. 무슨 무협소설에나 나오는 호칭 같지만 어쨌든 그들이 강호(무림)라고 부르는 경계의 세상은 정확히 넷으로 나뉘었는데 그걸 무림사천(武林四天)이라고 해.”
“무림사천…….”
“황룡회는 그 네 하늘 중 하나야. 일명 패천(覇天)이라고 불리지.”
“그럼 나머지 세 개의 하늘은 뭐예요?”
“정천(正天), 마천(魔天), 환천(幻天).”
연희는 아주 간단하게 세 하늘의 명칭을 얘기해주었다.
“이름만 들어도 대충 어떤 성향인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맞아. 이름 그대로의 성향을 지니고 있지. 대충 한국으로 따지면 정천이 수호자와 비슷하고 환천은 유령과 비슷하지. 그리고 마천은 많이 비슷하진 않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암살자들과 성향이 조금 과격한 유령들과 비슷하고 패천 역시 마천과 많이 틀리지 않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 중국도 중국 나름의 방식으로 경계가 구분되어 있군요.”
“응, 사실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도 이처럼 자신들의 방식으로 경계를 구분시켜놓고 있어. 물론 그 와중에 서로 비슷한 것들이 꽤 있긴 하자.”
“경계……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곳이네요.”
“대단한 곳이지.”
연희는 살짝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중국에서 황룡회 놈들 때문에 고생 좀 했었어요.”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건은 연희에게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얘기해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얘길 전부 들은 연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황룡회 내부의 권력다툼이 상당히 심각하다더니…… 네가 제대로 그 다툼에 휘말렸구나.”
“남의 집안싸움에 제대로 끼어서 괜스레 짜증만 잔뜩 나는 상황이었어요.”
“그나마 그 정도로 마무리 지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황룡회와 엮이고 흑객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도 멀쩡히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축하받을 일이야.”
“뭐, 집안싸움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한 것이겠죠. 하여튼 일단 중국에서 있었던 일은 그냥 잊기로 했어요.”
“그래, 내가 봐도 뭐 굳이 따로 신경 쓸 필요까진 없는 일인 거 같다.”
“일이나 해야겠네요. 오늘 바닥 청소하셨어요?”
“아직 안 했어.”
“그럼 제가 할게요.”
건은 그 말과 함께 구석에 놓여 있던 막대 걸레를 잡았다.
일상으로 돌아온 건은 영혼투기장으로부터 나흘 뒤 경기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대는 영수조련사(靈獸調練師) 김문수였다.
김문수는 상당히 특이한 소울러였다.
그는 겨우 9등급밖에 되지 않는 영혼과 맹약을 맺은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가 가진 힘은 그리 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골드 리그에서도 중상위권 서열을 유지하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가 그런 서열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맹약을 맺은 영혼의 힘과는 별개로 그가 또 하나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흔히 영수(靈獸)라 부르는 경계의 신비로운 동물들이 가진 힘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는 최초 경계에 들어왔을 때부터 영수와 손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걸 깨달은 그는 그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함께할 영수를 찾았다.
그렇게 돌아다니길 5년.
그는 드디어 자신고 함께할 세 마리의 영수를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영수는 흔히 우리가 백호(白虎)라 부르는 영수였다. 비록 완벽한 백호는 아니고 반쯤 백호의 영성을 가진 영수였지만 그 정도로도 굉장히 강한 힘을 지닐 수 있었다. 문수는 녀석을 대호(大虎)라고 불렀다.
두 번째 영수는 새였다.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얼음덩어리를 조각해 만든 것처럼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얼음 새였다. 문수는 녀석을 ‘청빙(靑氷)’이라고 불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영수는 뱀이었다.
그냥 뱀이 아니라 몸통은 그리 두껍지 않았지만, 그 길이가 무려 20m에 가까운 아주 긴 몸통을 지닌 신비로운 뱀이었다. 문수는 녀석을 ‘철갑(鐵甲)’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녀석의 몸을 뒤덮고 있는 얇은 비늘이 진짜 철갑처럼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문수는 이 세 마리의 영수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되자 곧장 영혼투기장에 도전했다.
그리곤 보란 듯이 골드리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절대 무시하지 못할 실력자.
건은 병일에게서 이번에 자신의 상대로 결정된 영수조련사 김문수에 대한 정보를 받아서 살펴보며 문득 자신이 데리고 있는 귀여운 아기돼지 백을 떠올렸다.
‘……그 녀석도 제대로 키우면 여기 나와 있는 이 영수들처럼 쓸모가 있을까?’
아직은 그저 살아있는 레이더 정도로밖에 쓰이지 않고 있는 백.
건은 이번 대결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백의 활용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