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96화 (96/175)

# 96

더 소울(The Soul) - 백(魄)의 진화(進化) [1]

@ 백(魄)의 진화(進化).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요?”

백은 심각한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날 믿어봐.”

“으음…… 주인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영력(靈力)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어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사실 억지로 명령을 내려서 받아들이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아. 난 순수하게 네 자율 의지로 이걸 받아들여야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으음…….”

“위험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 번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해보자.”

건이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백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순 없었다.

“알겠어요. 해볼게요.”

결국, 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백의 동의를 얻은 건은 곧장 자신의 침대 위에 앉아 있던 백의 작은 머리에 오른손을 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별로 어렵진 않아. 그냥 내 의지를 담은 혼력이 너에게 전해지면 그 혼력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혼력을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흐음…… 그냥 네가 영기를 흡수해 몸에 쌓듯이 똑같이 하면 될 거야.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강제적인 게 아니라 너의 의지로 행해야 한다는 점이야. 어떤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어요.”

건의 설명을 들은 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 그럼 시작한다.”

츠츠츳.

건은 자신의 혼력을 오른손에 집중시켰다.

물론 이 혼력은 단순한 혼력이 아니었다. 이 혼력에는 아주 강렬한 하나의 의지가 담겼다.

백의 성장을 바라는 건의 의지.

바로 그것이었다.

‘난 백의 성장을 간절히 바란다!’

건은 혼력에 자신의 염원을 가득 담은 후 그것을 조심스럽게 백에게 주입했다.

“으으으음.”

백은 자신의 몸에 조금씩 혼력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하자 살짝 굳은 표정으로 그 혼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혼력을 받아드리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은 건과 약속한 대로 전력을 기울여 그 혼력을 마치 영기처럼 자신의 몸에 쌓기 시작했다.

혼력은 기존에 백이 쌓아놓은 영기와 만나자 살짝 튕겨 나왔다.

하지만 튕겨 나오는 수준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은 계속 혼력을 영기를 쌓아놓은 곳으로 유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건은 대략 한 시간 정도 백에게 혼력을 계속 주입했다.

물론 건은 아주 정성을 들여 혼력에 염원을 담았기 때문에 시간은 한 시간이라고 해도 정작 백에게 넘어간 혼력의 양은 아주 크진 않았다.

그런데 그 크지 않은 혼력이…… 백의 몸속에 점점 정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던 혼력과 영기가 꾸준한 백의 노력 덕분에 아주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반신반의하던 백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기가 혼력이 뒤섞인단 뜻은 결국 영기를 혼력으로 대체 할 수 있단 뜻이었다.

백은 지금까지 영기를 매일매일 개미 눈물처럼 찔끔찔끔 쌓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진짜 성장 속도가 완벽히 달라질 것으로 보였다.

가능성을 확인한 백은 더욱 절실히 건이 전해주는 혼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좀 더 시간이 흘러갔다.

건이 백에게 혼력을 주입한 지 정확히 일곱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조금씩 주입했다고 해도 일곱 시간 동안 끊임없이 혼력을 주입했기 때문에 이젠 건도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냥 혼력을 주입한 것도 아니고 아주 강렬한 염원을 담은 혼력을 주입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피고한 상태였다.

그나마 건이 건식수련법을 통해 꾸준히 혼력에 의지를 담는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곱 시간 동안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사실 영수조련사 김문수라고 해도 이렇게 염원을 담은 혼력을 연속해서 주입하는 건 한 시간 정도가 한계였다.

일곱 시간 동안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건의 정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백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혼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 혼력이 영기와 완벽히 똑같을 순 없었지만 적어도 영기를 대신해 백을 성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지니고 있었다.

특히 건의 염원이 혼력에 가득 담겼기 때문에 혼력은 더욱 강력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푸하…….”

무려 일곱 시간 동안 계속해서 혼력을 주입했던 건은 결국 한계를 느끼며 백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여기서 더 혼력을 주입하려고 했다간 건이 가진 진원혼기(眞元魂氣)가 다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춘 것이었다.

손을 뗀 건은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조용히 백을 바라보았다.

건이 손을 뗐지만 백은 여전히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건의 혼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그런 백을 바라보던 건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오전 6시.

‘혼력 주입을 시작한 게 오후 열한 시였으니까 정확히 일곱 시간이 지난 건가?’

건 역시 혼력을 주입할 땐 거의 무아지경(無我之境) 상태였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곱 시간이라…… 이 정도면 적은 양은 아니겠지?’

정확한 기준이 없었던 건은 일단 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혼력을 주입하고 백의 변화를 지켜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확인한 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고 판단하고 조용히 백을 내려다보며 녀석이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보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분명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 할 텐데…….’

건은 당장 이 한 번의 주입으로 백이 폭풍 성장을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는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대략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백이 드디어 자신의 몸에 주입된 건의 모든 혼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백의 몸에선 약한 붉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변화한다!’

옆에서 계속 백을 지켜보던 건은 드디어 백이 변화하기 시작하자 더욱 집중해서 백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예 심안까지 발동시켜서 백이 정확히 어떤 변화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떻게 변하려나? 멧돼지라도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형태로?’

건은 나름 백의 진화된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물론 영수를 키워본 적이 없는 건이었기에 백이 성장했을 때 어떤 모습을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어쨌든 건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백은 여전히 붉은빛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붉은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츠츠츠츠츳!

점점 더 강해지던 붉은빛은 한순간 폭발하듯 터졌다.

번쩍!!

이 순간만큼은 건의 심안도 정확하게 백의 모습을 잡아내지 못했다.

“허어!”

폭발한 붉은빛 때문에 잠시 시야를 잃었던 건은 다시 놀란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흔들며 백을 바라보았다.

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달라진 건 눈처럼 하얗던 몸이 선홍빛에 가까운 붉은색을 띠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귀여운 아기 돼지의 모습에 작은 날개가 달린 그 모습 그대로였다.

“으음?”

백의 변화를 잔뜩 기대했던 건은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았다.

최소한 건은 덩치 정도는 커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마저 예상이 빗나갔다.

“오오오오오오!”

건이 잔뜩 실망하고 있던 그 순간 정신을 차린 백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공중으로 껑충 날아올랐다.

파닥파닥.

그래 봤자 거의 닭이 하늘을 나는 수준으로 낑낑 되며 날아오른 것이었지만 적어도 표정만큼은 굉장히 밝아 보였다.

“좋냐?”

건은 그런 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넵! 너무 좋습니다. 진짜 이건…… 혁명입니다!”

“하아…… 며칠 동안 골골 될 수 있을 정도로 무리해서 혼력을 쏟아부었는데 겨우 피부를 붉은색으로 염색해준 수준밖에 안 된다니…… 이거 생각보다 성장이 너무 느린 방법인 건가?”

건은 자책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주인님. 실망하시기엔 너무 이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백이 건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길 했다.

“실망하기엔 이르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제 겉모습이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실망하신 거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솔직히 실망했지. 내가 얼마나 정성껏 염원을 담아 혼력을 쏟아부었는데…… 겨우 이 정도 변화를 보자고 한 건 아니었다고.”

건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이 정도로 혼력을 쏟아부으면 며칠 동안은 진짜 혼력을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건은 무리하면서까지 혼력을 한계까지 쏟아부은 것이었다.

“하하하하, 주인님. 저에 대해 주인님이 잘 모르시는 게 한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전…… 변형 계열 영수입니다.”

“변형 계열 영수? 영수들도 계열이 존재했어?”

“당연하죠. 영수도 소울러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계열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님이 어제 싸우신 세 마리의 영수는 아주 전형적인 강화계열 영수들이었습니다. 강화계열의 특성상 지능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죠.”

건은 백의 설명을 듣자 김문수의 영수들이 왜 백과 달리 조금 수동적으로 행동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변형 계열 영수의 특징은 뭐야?”

“흐흐, 변형 계열 영수는 자신이 지닌 영력을 이용해 원하는 형태로 자신을 스스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변형시킨다고? 그 얘긴 그 어떤 것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얘기야?”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가진 힘이 크면 클수록 변할 수 있는 종류도 늘어나긴 하지만 그게 무한대가 되진 않습니다. 보통 아주 최상급의 변형 계열 영수라고 해도 다섯 가지 정도가 한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 그럼 넌 몇 가지 종류로 변할 수 있어?”

“주인님에게 혼력을 받기 전에는 아예 변형 자체를 할 힘이 없었지만, 주인님에게 혼력을 받고 드디어 일차 변형이 가능해졌습니다.”

백은 아주 기쁜 표정으로 얘길 했지만 정작 건은 아직 별로 실감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강화 계열의 영수들처럼 눈으로 성장이 확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얼마나 강해진 건데?”

“대충 예전에 가졌던 능력의 절반 정도는 회복한 거 같습니다.”

“절반? 그럼 예전엔 두 번 변형할 수 있었어?”

“네. 맞습니다. 주인님! 변형 계열 영수가 두 번 변형할 수 있으면 거의 상급 영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 정도라면 어제 주인님과 싸운 강화 계열 놈들 수준하고 비슷한 것이죠.”

백은 건이 너무 실감 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자 자세하게 예를 들어주며 설명해주었다.

“그렇단 말이지…….”

건은 백이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자 대충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실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안 되겠네요. 이럴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변형 계열 영수의 참모습을 보여드리죠!”

결국, 백은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게 가장 건을 확실히 이해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게 바로 제가 새롭게 얻은 일 단계 변형 형태입니다!”

츠츠츠츳, 번쩍!

백은 자신의 영기를 한 번에 폭발하듯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다시 한 번 강렬한 붉은빛이 폭발하면서 순식간의 그의 몸이 변형되었다.

촤아아아아!

덩치 자체는 그리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신 몸이 완벽하게 전과 다르게 변형되었다.

날개는 커지고 몸은 전혀 다르게 변화했다.

유일하게 아기 돼지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흔히 돼지코라고 부르는 그 부분뿐이었다.

놀랍게도 백은 한 마리의 붉은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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