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98화 (98/175)

# 98

더 소울(The Soul) - 영혼백정 방기운 [1]

@ 영혼백정 방기운.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쾅!

백련김가의 가주인 김동광은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는 하밖에 없었다.

백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백련김가의 총관인 김솔은 뭐라고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토록 자신했던 그였지만 이젠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미 네 명의 소울러들이 의뢰에 실패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의뢰는 단 한 개.

물론 남은 한 명의 소울러가 상당히 믿을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앞선 네 번의 실패가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크음…… 내일이라고 했나?”

“예, 내일입니다.”

“내일은 확실히 일을 끝낼 수 있는 게 맞나?”

“내일은 분명히 끝낼 수 있습니다. 그의 실력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할 겁니다.”

“그러다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그땐 ‘혈룡’에게 의뢰하는 걸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혈룡? 흐음……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나?”

“확실히 혈룡에게 의뢰하는 것은 양날의 검처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지는 게 사실이지만 만약 내일 있을 마지막 시도가 실패한다면 사실상 놈을 잡을 방법은 혈룡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혈룡은 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내일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백건이 어떻게 그 수준까지 강해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 놈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절대 내일 상대를 이길 순 없을 겁니다.”

“이번엔 틀림없는 것이겠지?”

“믿으셔도 됩니다. 그는…… 현재 영혼투기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소울러를 대표하는 세 정점 중 하나입니다. 영혼투기장의 삼패왕(三覇王) 중 하나인 영혼백정 방기운이라면 무조건 백건을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영혼백정 방기운.

그는 유령 출신의 소울러였다. 그가 영혼투기장의 삼패왕 중 하나로 분류되기 시작한 지는 이제 대략 2년 정도가 흘렀다.

그전까지의 영혼투기장은 두 명의 패왕이 양분하고 있는 구도였지만 갑자기 나타난 방기운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는 불과 일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혼투기장 경력 자체는 3년으로 아주 긴 편은 아니었지만 3년 동안 그가 보여준 경기력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영혼투기장 삼패왕 중 한 명으로 분류했다.

그는 아주 전형적인 강화계열 소울러였다. 소문엔 그가 조선시대에 소문난 의적(義賊) 중 하나인 임꺽정과 맹약을 맺었다고 알려졌었다.

임꺽정은 5등급 영혼이었다. 맹약을 맺은 영혼의 등급은 아주 높진 않았지만 방기운이 지닌 재능 자체가 워낙 출중해 그는 헌터로 따지면 플래티넘 등급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그가 내일 건과 경기를 치르기로 되어 있었다.

영혼투기장에선 한참 연승 행진 중엔 건에게 최악의 상대를 매치해 주었다.

사실 방기운은 영혼투기장의 삼패왕이었기에 당연히 골드 리그가 아닌 플래티넘 리그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방기운은 얼마 전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한 달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고 그 결과 등급이 플래티넘에서 골드로 강등되었다.

사실 방기운 정도의 실력자라면 대충 아무 이유라도 일단 말만 하면 영혼투기장측에선 아무리 한 달동안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고 해도 쉽게 등급을 강등시킬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는 방기운이 이미 영혼투기장측이 몇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종종 상대 소울러를 심각하게 다치게 하거나 자기 멋대로 경기 일정을 조종하는 짓을 했기 때문에 엄중 경고 차원에서 이루어진 강등이었다.

어쨌든 강등은 강등이었기 때문에 방기운은 골드 리그에서 경기를 최소한 한 번이라도 치러야 다시 플래티넘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방기운은 한 경기 정도만으로 다시 플래티넘 등급에 올라가길 원했다.

결국, 그 얘긴 현재 골드리그의 최상위권 서열에 올라 있는 소울러들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대략 3위권 안쪽의 상대와 싸워야 했다.

영혼투기장에선 방기운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한 경기만으로 플래티넘 리그로 다시 올라갈 수 있으면서 거기에 흥행도 보장될 수 있는 최고의 맞대결을 만들어주었다.

그게 바로 현재 골드 리그 서열 3위에 올라와 있던 건과의 매치였다.

건은 얼마 전 골드 리그의 최상위권 소울러들을 연파하면서 현재 서열 3위까지 수직으로 상승하여 있는 상태였다.

건은 현재 무려 22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으면서 미친 듯이 위로 올라가고 있는 영혼투기장의 새로운 강자 건.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는 영혼투기장의 절대 강자 중 한 명이었던 방기운.

이 둘의 대결은 당연히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영혼투기장에 걱정한 것은 건이 이번 대결을 결사반대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건은 이 매치를 거절하지 않았다.

물론 건이 무조건 매치를 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상대를 고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건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건은 누가 상대로 오던지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상대가 영혼투기장의 삼패왕 중 한 명이란 소식을 듣자 곧장 심장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상대가 영혼백정 방기운이라고 해서 전진을 멈추는 건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설사 눈앞에 벽이 나타난다고 해도 직진!

이게 바로 건의 스타일이었다.

“그런 대단한 실력자가 이런 의뢰를 받는다는 게 좀 이상하군. 영혼투기장의 함정 같은 건 아니겠지?”

한참을 영혼백정 방기운에 대해 생각하던 김동광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경로를 통해 확인까지 끝낸 상태입니다. 그가 이번 의뢰를 수락한 이유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천강혈부(天强血斧) 때문인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천강혈부…… 그렇군. 천강혈부는 과거 임꺽정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고대유물이었느니 놈이 그걸 왜 원하는지 이해가 되는군.”

김동광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임꺽정이 사용한 고대유물인 천강혈부라면 확실히 방기운을 움직일만했다.

“그래서 놈이 무리하게 등급까지 내려가면서 이번 대결을 성사시킨 건가?”

“네, 어지간히 천강혈부가 가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하겠다고 먼저 저에게 말을 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너무 티가 나지 않을까?”

“그런 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방기운은 평소에도 상대방을 심각하게 다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울러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가 백건을 죽인다고 해서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결국, 카페 헤븐은 심적으로는 우릴 의심하는 것만으로 이번 일을 마무리 짓게 될 겁니다.”

“뭐가 됐건 백건…… 그 녀석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 가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금강철벽 강철민의 눈에 들어 그에게 뭔가를 전수받은 덕분에 조금 강해진 거 같긴 한데…… 그래 봤자 하룻강아지일 뿐입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르고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될 겁니다.”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금강철벽 강철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가 놈에게 뭔가를 전수해줬다면 그것 역시 평범한 게 아닐 거다. 그러니 철저히 준비해서 기필코 놈을 죽여라.”

김동광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솔은 그런 김동광에게 더욱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 * * *

“준비는 됐지?”

건은 자신의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백은 단단히 각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와의 대련에서는 백을 활용해 본 건이었지만 실제 영혼투기장의 경기에서는 한 번도 백을 활용한 적이 없었다.

“상대는 영혼투기장에 존재하는 세 명의 패왕 중 한 명이다. 되도록 널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할 생각이지만…… 아마도 생각보단 빠른 타이밍에 널 활용할 것 같다.”

건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여유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일단은 최대한 내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기다려.”

“헤헤, 몸을 숨기는 것은 제 특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절대 방심하지 마. 자칫 광역 공격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제대로 활약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어.”

“네, 최대한 주의할게요.”

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한 그 순간.

드디어 아이언필드로 향하는 입구가 개방되었다.

철컹, 드르르르륵!

“가자.”

입구가 개방되자 건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오늘의 경기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솔직히 아직은 건에게 벅찬 상대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은 이 대결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이 대결을 피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언젠가는 싸워야 할 상대라면 조금 일찍 싸운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건이 놓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긴 했다.

상대방의 의도.

그걸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영혼투기장의 새로운 강자라…… 이거 어째 예전의 나를 보는 거 같잖아?’

방기운은 오늘 상대인 건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거 한창 자라나는 새싹을 밟으려니까 좀 미안해지네. 하지만…… 천강혈부를 얻으려면 어쩔 수가 없으니…… 백건이라고 했던가? 미리 사과하마.’

방기운은 아이언필드를 가로질러 경기장 건너편에 서 있는 건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무언의 사과를 했다.

사실 그는 이런 지저분한 일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굉장히 과격한 소울러라는 건 만인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러한 과격함 속에는 철저한 자기 자신만의 성향이 존재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도 강한 방기운.

그는 세상에 모든 일을 정면 승부로 해결하는 인물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변명과 후퇴였던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뒤로 물러나질 않았다.

물론 그러한 성향 때문에 손해를 본 적도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절대 타협 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이번 일은 진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천강혈부는 그에게 너무나 중요한 물건이었다.

처음엔 그게 백련김가에 있다는 걸 알고 그냥 무작정 백련김가에 쳐들어가 그것을 강탈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건 분명 무모한 짓이었다.

백련김가의 가세가 전과 다르게 많이 기울었다고 해도 한 명의 소울러에게 가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아끼는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를 빼앗길 정도로 엉망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게 아주 큰 돈을 주고 그것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천강혈부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모으는 것도 문제였지만 설사 그런 돈을 모았다고 해서 백련김가에서 쉽게 천강혈부를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결국, 방기운은 계속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 너무나 솔깃한 제안을 들고온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백련김가의 총관인 김솔이었다.

이건 배가 너무나도 고파서 미칠 것 같은 사자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떨어져 내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자는 무조건 그 고깃덩어리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자도 그 고깃덩어리에 아주 위험한 마취제가 잔뜩 묻어 있다는 것쯤은 얼마든지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안 먹을 순 없었다.

사자는 일단 배부르게 먹고…… 그 후에 다음 일을 걱정할 작정이었다.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후딱 해치우자.’

방기운은 사자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사자가 그랬듯이…… 그 역시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천강혈부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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