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02화 (101/175)

# 102

더 소울(The Soul) - 대제(大帝)의 힘 [2]

묵룡기마대를 소환하는데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일까?

건은 순식간에 혼력이 바닥나는 걸 느끼며 비틀거렸다.

당연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묵룡갑은 소환이 해제되어 사라졌다.

만약 이번 공격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 끝이었다.

대제의 힘은 강하긴 하지만 아직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하는 힘이었기 때문에 척준경의 힘보다 훨씬 효율이 떨어졌다.

원래 건이 생각하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과 싸울 때 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전투 시나리오는 척준경의 힘을 통해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한 후 대제의 힘으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것이었다.

이게 가장 깔끔하게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워낙 매우 급했기 때문에 효율 같은 걸 따질 수가 없었다.

콰과과과과광!

건이 비틀거리고 있던 그 사이 묵룡기마대는 기운을 휩쓸고 한참을 앞으로 더 나아간 후 천천히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쿠쿠쿠쿠쿠쿵.

묵룡기마대는 아이언필드에 자신들의 흔적을 명확하게 남겨놓았다.

아이언필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균열.

이것이 바로 묵룡기마대가 만든 흔적이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던 건은 묵룡기마대가 사라지자 전방을 바라보았다.

스으으으으.

조금씩 폭발의 여파가 사라지면서 묵룡기마대가 만든 커다란 균열 한 가운데 서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영혼백정 방기운.

그가 묵룡기마대를 버텨냈다.

“크으…….”

건은 그 모습을 보며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설마 기운이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제 건은 더 이상 꺼낼 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마저 버텨낸 건가?’

만약 기운이 진짜로 버텨낸 것이라면 승부는 여기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버텨낸 것으로 보이던 기운이 심하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으…….”

기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

그는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며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쿠쿵!

바닥에 쓰러진 방기운.

비록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상태처럼 보였다.

건은 그가 쓰러지는 걸 보고 그때야 살짝 안도할 수 있었다.

털썩!

긴장이 풀려서일까?

건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거침 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젓는 건.

확실히 이번 전투는 너무나 힘겨운 전투였다. 이번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두 사람이 경기를 치른 아이언필드의 상태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방어력을 자랑하던 아이언필드가 거의 걸레처럼 변해 있었다.

기둥들이 모두 박살 난 건 물론이고 가장 단단한 외벽에도 금이 잔뜩 가 있었다.

특히 경기장 내부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카메라가 박살 나면서 마지막 즈음엔 다른 사람들이 건과 기운이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으아아아아! 젠장!!”

바닥에 쓰러진 기운은 몸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자 크게 화를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이미 전신에서 느껴지는 큰 고통을 통해 온몸의 뼈가 전부 부러졌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상태에서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목숨이 끊기기 전까진 끊임없이 싸우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 싸움은 내가 이긴 것 같군.”

건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기운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네가 계속 내 위에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마라!”

“후후, 뭐 그건 나중 일이고. 그런데…… 백련김가에선 뭘 받기로 한 거지?”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건은 기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아주 갑작스럽게 물었다.

순간 기운은 뜨끔했지만, 재빨리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기운을 살피던 건은 그 찰나의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뭐,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어. 하지만 혹시 그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전해.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자꾸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일단 기운은 끝까지 모른척했다.

의뢰를 실패한 상황에서 의뢰를 받은 것까지 노출되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굳이 영혼투기장 운영회에 보고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어차피…… 증거도 찾을 수 없을 텐데 헛수고를 할 생각은 없거든.”

건의 말은 들은 기운은 살짝 안도했다.

하지만 표정은 끝까지 모른 척으로 일관했다.

“계속 혼자 헛소리를 하는군.”

“다 떠나서 오늘 싸움…… 즐거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싸워보자고. 물론 그땐 쓸데없는 외부의 개입 같은 것은 훌훌 털고 오고.”

건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운은 건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의뢰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한 상대에게 그 부분을 지적당하자 더욱 기분이 안 좋아졌다.

‘망할…… 역시 맞지 않는 옷은 아예 입지 않는 게 좋았던 건가?’

기운은 후회하고 있었다.

이런 상대와 싸우며 그런 추잡한 거래를 짊어지고 했다는 게 그의 자존심을 심하게 짓눌렀다.

삐이이이이이!

기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투기장에는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한쪽이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으니 당연히 경기는 끝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건의 승리였다.

거의 모든 사람, 심지어 건을 후원하는 만보당의 주인 한병일도 이번만큼은 건이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만큼 건의 승리 확률은 매우 낮았었다.

그런데도 건은 승리했다.

사실 그냥 무난하게 경기가 흘러갔다면 건이 끝까지 대제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기운이 이겼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척준경의 힘도 대단히 강한 건 사실이었지만 아무래도 건이 척준경의 힘을 100%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운에게 밀리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무난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기운이 짊어진 의뢰라는 외부의 개입 때문에 경기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기운은 건을 죽이려고 했고 건은 그걸 눈치채고 살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 과정에서 건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강력한 한방이라 할 수 있는 대제의 힘을 잘 활용해 결국 기운을 쓰러트렸다.

분명 경기에서 이긴 것은 건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한 번의 대결을 통해 건이 기운보다 강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만약 같은 조건에서 또 한 번 싸우게 된다면 그땐 건이 먼저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건과 기운의 싸움은 아주 치열했었다.

* * * *

“끄응…….”

온종일 소울러 전용 치료 캡슐에 들어가 포션을 잔뜩 흡수한 기운은 박살 났던 뼈들이 어느 정도 붙은 걸 느끼자마자 곧장 캡슐을 빠져나왔다.

아직 완벽하게 다 치료된 건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는 자신이 직접 혼력을 이용해 몸을 다스리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고통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네.”

그의 부상은 현실 세계였다면 죽을 수도 있었을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이 펼친 그 마지막 한 수는 이해가 안 되네…… 그 이상한 검은 갑옷도 그렇고 전과는 완벽히 다른 형태의 힘을 사용했어. 아무리 여러 종류의 힘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소울러들이 있다고 해도 그 녀석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단 말이지……’

기운은 치료를 받으면서도 계속 건과의 전투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마치 바둑을 다 둔 프로기사가 혼자 바둑판에 앉아 복기하듯 건과의 전투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브론즈 등급의 헌터라고?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겠네.’

애초에 건이 투기장에서 22연승을 거뒀다고 했을 때부터 그 등급을 믿지 않긴 했었지만, 막상 싸워보니 그 등급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조건 플래티넘 등급은 될 거 같다. 아무리 적게 쳐줘도 최소 골드 등급은 된다.’

기운은 투기장에서 수많은 헌터 출신 소울러들과 싸워봤기 때문에 그들의 수준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영혼강림을 선택한 게 치명적인 자충수였을 수도 있어. 내가 뽑은 양날의 검과 같은 영혼강림에 내가 다친 격이 된 거지.’

기운은 자신이 한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영혼강림이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는 차라리 꾸준히 놈을 괴롭히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갔어야 했다. 지구력 대결이었다면 아마 내가 좀 더 유리했을 거야.’

기운은 다시 한 번 건과 싸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엔 기필코 건을 쓰러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투기장의 규칙상 당장 다시 건과 싸울 수는 없었다.

‘젠장…… 최소 두 달 이상은 기다려야 싸울 수 있는 건가? 그것도 저쪽에서 피하면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는 거잖아.’

기운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기운은 건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상대라는 걸 알았으면 쓸데없는 의뢰를 받아 어제와 같은 어이없는 대결을 만드는 짓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대결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래서 기운은 더욱 다시 한번 싸우고 싶은 것이었다.

쓸데없는 의뢰 같은 것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진짜 제대로 싸운다면 훨씬 결과에 상관없이 엄청 즐거울 것만 같았다.

애초에 기운이 영혼투기장에 이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는 이유도 이러한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요즘엔 그 즐거움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사실 이번 의뢰도 그래서 받은 것이었다. 영혼투기장을 떠나고 싶은데 그냥 떠나긴 뭔가 아쉬워서 스스로 핑곗거리를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핑곗거리가 오히려 그의 즐거움을 방해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의뢰는 그냥 없던 걸로 해야겠어. 알겠지?”

스윽.

고개를 끄덕이던 기운은 갑자기 고개를 뒤로 돌리며 누군가에게 얘기했다.

분명 이곳에는 기운밖에 없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그러했었다.

스르르르.

기운의 뒤편 벽 쪽의 어두운 공간이 흔들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백련김가의 그림자였다.

그가 바로 백련김가로부터 내려온 명령을 받아 투기장의 소울러들을 직접 만나 이번 의뢰를 성사시킨 장본인이었다.

그가 어느새 이 공간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의뢰를 깨는 건 계약 위반입니다.”

“그래? 그럼 그냥 위반한 걸로 치자.”

그림자의 말에 기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냥 위반한 걸로 치는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의뢰를…… 끝까지 완수하셔야 합니다.”

“아니, 됐어. 의뢰는 그냥 없던 걸로 할 거야.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번 기회에 천강혈부를 좀 가져보려고 했는데…… 이젠 천강혈부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어.”

“그런 이유로 의뢰를 깨실 수는 없습니다.”

“아, 시끄럽네. 이해를 못 하는 거 같은데. 너희가 무슨 말을 해도 난 이 의뢰를 깰 거야.”

“정녕 그렇게 하시려는 건가요?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 후회는 이미 하고 있어.”

이미 기운은 건과 싸우던 중간쯤부터 이번 의뢰를 받은 것에 대해 계속 후회를 했었다.

“그렇게 나오시면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되는 그림자의 협박.

하지만 기운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손을 쓰든 발을 쓰든 너희 마음대로 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이미 내 머릿속에서 너희가 한 의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정말 후회하실…….”

꽝!

기운은 그림자가 앵무새처럼 계속 똑같은 말만 하자 인상을 확 구기며 오른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쩌저저저적!

사방으로 갈라지는 바닥.

그것은 기운이 그림자에게 하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만 떠들고 꺼져라. 지금 난 생각할 게 아주 많아서 바쁘다.”

“크흠.”

그림자는 기운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으며 등장했을 때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기운은 그림자가 사라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건과의 대결에 대해 생각했다.

확실히 그는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게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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