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더 소울(The Soul) - 암굴(暗窟) [1]
@ 암굴(暗窟).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건은 소울러 전용 치료 캡슐에서 빠져나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기운을 쓰러트리고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도 기운만큼이나 크게 다쳤었다.
특히 그가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사용한 묵룡갑은 사용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데미지를 입는 기술이었다.
묵룡갑은 강제로 건의 뼈에 강철 심을 꽂아 고정한 후 혼력을 강제로 몸 전체에 주입해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육체에 심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영혼백정 방기운…… 확실히 힘든 상대였어…….’
건도 기운처럼 몸을 치료하며 계속 어제 있었던 대결을 되새겼었다.
느낀 점이 상당히 많은 전투였기 때문에 이런 복기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좀 더 세밀하게 날 상대했다면 무조건 내가 먼저 쓰러졌을 게 분명했어.’
건이 생각하는 기운의 패인은 단 하나였다.
성급함.
바로 그것이었다.
‘약간은 그의 전투 성향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서둘렀어. 조금만이라도 페이스 조절을 했다면…… 난 아주 힘들어졌을 거야.’
“아직 부족해.”
어제 전투를 복기하던 건은 결국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건은 많은 성장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이 말이 딱 건의 지금 심정을 대변해주는 말이었다.
건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카페 헤븐 1층으로 올라왔다. 그는 투기장에서 다치면 늘 카페 헤븐 지하에 있는 치료 캡슐을 사용해 치료했었다.
사실 약간의 금액을 내고 자신이 사용할 영혼의 조각만 가져가면 영혼 투기장에서 제공하는 치료 캡슐을 이용할 수도 있긴 했지만, 건은 사용되는 영혼의 조각만 가져오면 언제든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카페 헤븐의 캡슐을 더 좋아했다.
“누나 매번 고마워요.”
“고맙긴. 그나저나 너 대단하다. 어떻게 영혼백정까지 이기냐.”
연희는 진짜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이번만큼은 진짜 재수가 좋았을 뿐이에요.”
“재수가 좋건 안 좋건 영혼백정을 이길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대단한 거야.”
“하하하하, 그럼 겸손 따윈 떨지 않겠습니다. 에헴! 이 정도쯤이야 껌이죠. 혹시 누난 영혼백정을 쓰러트릴 수 있으신가요?”
건은 연희가 계속해서 비행기를 태워주자 거기에 장단을 맞추며 즐겁게 웃었다.
“좀 띄어줬더니 또 기어오른다. 오늘 찐하게 대련 한 번 할까?”
“크윽, 아직 부상을 다 치료된 게 아니라서…….”
건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 연희를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었다.
연희도 말이 골드 등급의 헌터였지 실력 자체는 완벽하게 플래티넘 등급의 헌터였기 때문에 그녀가 전력을 다하면 아무리 건이라고 해도 함부로 까불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 오늘 사장님하고 대련하는 날 아니었어?”
“아…… 맞네.”
“그 몸으로 견딜 수 있겠어?”
철민과 건의 대련은 말이 대련이지 실상은 그 어떤 실전보다 더 위험한 대결이었다.
“으음…… 견뎌봐야죠.”
몸이 아프다고 대련을 건너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몸이 아프다고 하면 철민은 몸이 아플 때 평소보다 더 강한 적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알려주겠다고 얘기할 인물이었다.
“아직 돌아오시려면 시간이 좀 더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최대한 몸을 회복시켜봐.”
“그래야겠네요.”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참, 누나 오늘 카페 일 못 도와줘서 미안해요.”
“괜찮아. 너 몸 괜찮아지면 몇 배로 일 시킬 거니까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크윽.”
건은 연희의 말에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여실히 느끼며 다시 지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 * *
“뭘 하겠다고?”
철민은 대련이 끝난 후 언제나처럼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암굴(暗窟)에 도전해볼 생각이라고요.”
“너 암굴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는 거지?”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도전하려고?”
“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강해지고 싶어서요.”
“나와 대련을 하고 투기장에서 다른 소울러들과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건가?”
“아뇨.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굳이 왜 암굴에 도전하려는 거지?”
“조금 더 빨리 강해져야 할 이유가 생겨서요.”
“……혹시 그 녀석들이 움직인 건가?”
“네, 전부터 살짝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꾸준히 절 노리고 있었어요.”
“흐음…… 암굴이라…… 난 말릴 생각은 없다. 지금에 와서 얘기하는 거지만 사실 전부터 가끔 널 암굴에 던져놓으면 나쁘지 않겠단 생각은 했었다. 다만 자율 의지로 가지 않으면 상당히 괴로울 수 있는 곳이라 꾹 참았을 뿐이다.”
철민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 역시 암굴을 경험해봤었기 때문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암굴이었다.
“역시 사장님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네요.”
건은 철민의 말을 듣고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어느 암굴로 갈 생각이지?”
대한민국에는 총 세 개의 암굴이 존재했다.
그 중 하나는 수호자들이 철저히 봉인(封印)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두 개의 암굴이 존재한다고 봐야 했다.
암굴이란 건 일종의 유적과 비슷한 곳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암굴은 마치 만물상처럼 경계의 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경계의 틈에 마이너스 에너지가 과도하게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에 영구적인 유적이 생긴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마이너스 에너지가 계속 쌓이기만 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당연히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경계에 존재하는 암괴들 중 절반 정도는 그곳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대략 천 개에 가까운 암굴이 존재했는데 그 많은 숫자의 암굴들 중 모두 끝까지 완전히 정복된 암굴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암굴들도 그러했다.
아무리 대단한 소울러라고 해도 암굴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는 절대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
일단 암굴의 안쪽으로 갈수록 아주 지독할 정도로 고농도의 마이너스 에너지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혼력을 사용하지 못했고 거기에 추가로 암굴의 안쪽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보통 경계에서 만나는 괴물들과는 그 수준이 다를 뿐만 아니라 숫자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소울러들은 암굴에 들어가 봤자 가장 최외곽이라 할 수 있는 블루존(Blue Zone)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조금 실력 있는 소울러들은 블루존을 벗어나 그레이존(Gray Zone)까지 전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존재하는 블랙존(Black Zone)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블랙존까지 갈 수 있는 소울러들은 흔히 탑클래스라고 불리는 아주 특별한 소울러들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특별한 소울러들도 블랙존 너머에 존재하는 레드존(Red Zone)은 가지 못했다.
레드존은 아무리 대단한 소울러라고 해도 단 몇 초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소울러들이 들어갈 수 있는 한계는 블랙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암굴도 모두 똑같은 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암굴은 위험성을 토대로 총 네 등급으로 나뉘었는데 그중 가장 낮은 위험성을 지닌 암글은 C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암굴들 중 절반 정도는 모두 C급일 정도로 많은 암굴이 이 등급이었다.
그다음은 B등급. 이 등급의 암굴들 역시 꽤 많았는데 등급은 하나 차이였지만 위험성만 놓고 보면 C등급의 암굴보다 거의 몇 배는 더 위험한 암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 나머지 두 개가 A와 S등급이었다.
사실 A와 S등급의 암굴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 등급의 암굴들은 모조리 소울러들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워낙 위험성이 큰 곳이었기 때문에 주로 수호자들이 이 암굴들을 봉인한 후 그 봉인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세 개의 암굴 중 하나인 태백암굴(太白暗窟)도 이렇게 봉인된 암굴 중 하나였다.
태백암굴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암굴은 각각 C등급과 B등급의 암굴이었다.
지리산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암굴은 마영암굴(魔影暗窟)이라 불리는 C급 암굴이었고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 존재하는 암굴은 천공암굴(天空暗窟)이라 불리는 B급 암굴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영암…….”
건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철민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데 철민은 건의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건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천공암굴로 가라.”
“네? 전 그냥 무리하지 않…….”
“무조건 천공암굴로 가.”
철민은 이미 결정을 내린 표정이었다.
“……무리이지 않을까요?”
“내가 늘 하는 말을 잊은 건 않았겠지? 위험이 크면 그만큼 보상도 커지는 법. 이왕 암굴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천공암굴로 가라.”
“괜…… 찮을까요?”
“어차피 암굴을 갈 생각을 했다는 건 그만한 각오를 한 거 아니었어? 마영암굴을 가던지 천공암굴을 가던지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마영암굴에 간다고 해서 죽을 운명이 살 운명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마영암굴과 천공암굴의 차이는 살 수 있느냐 아니면 죽느냐의 차기 아니라 일주일을 견디고 죽느냐 아니면 하루를 견디고 죽느냐의 차이야.”
철민은 아주 정확하게 두 암굴의 차이를 건에게 설명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천공암굴로 가겠습니다.”
철민의 말을 들은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잘 생각했다. 그리고 경험자로서 한 가지 충고하자면……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마라. 거긴 진짜 지옥(地獄) 그 자체다.”
철민의 충고는 살벌했다.
세상 모든 일에 무덤덤한 그가 이렇게까지 얘기한다는 건 진짜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네…….”
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막상 암굴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철민의 이런 살벌한 충고를 듣고 나니 살짝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게 사실이었다.
“미리 말하는데 이미 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을 생각은 하지 마. 그땐 진짜 내가 강제로 암굴에 밀어 넣을 거야.”
철민은 건의 마음을 읽고 그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아예 미리 못을 박아버렸다.
“크윽.”
철민의 말을 들은 건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란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밖에 필요한 게 뭔지는 연희에게 물어봐. 참고로 연희도 암굴 경험자다.”
“네?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세세한 것들은 연희한테 물어보고 준비해라.”
철민은 거기까지 얘기한 후 평소처럼 철민을 대련장에 놔두고 먼저 위로 올라갔다.
‘헐…… 누나도 암굴을 경험했었다니…… 사장님은 진짜 언젠간 날 암굴에 밀어 넣을 생각이었겠구나.’
혼자 남은 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어차피 가야 할 암굴을 조금 일찍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