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05화 (104/175)

# 105

더 소울(The Soul) - 암굴 생활 [1]

@ 암굴 생활.

크르르르르.

뚝, 뚝.

여섯 개의 다리로 바닥을 기고 있는 한 마리의 괴물. 놈의 커다란 입에서 떨어지는 끈적끈적한 녹색 침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이 녀석은 ‘가르디움’라 불리는 상급 암괴였다.

녀석은 상급 암괴답게 상당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더욱 무서운 것은 녀석이 사용하는 한 가지 특별한 능력이었다.

카르르르륵!

가르디움이 특유의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마구 흔들자 그의 몸에서 검은 빛깔의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투투투투툭.

어림잡아 세어봐도 족히 백 마리는 될 것 같은 벌레들.

벌레들은 대략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가르디움이 몸길이만 8m가 넘는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기 때문에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떨어진 벌레들의 숫자는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떨어진 벌레들은 마치 바퀴벌레를 키워놓은 것처럼 생겼었다.

다만 바퀴벌레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매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파파파팟!

가르디움의 몸에서 떨어진 백여 마리의 벌레들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놈들의 목표는 현재 가르디움과 싸우고 있는 적인 한 남자였다.

열흘 전에 암굴에 들어와 암굴이 왜 현세지옥이라 불리는지 너무나도 실감 나게 경험하고 있던 남자…… 하지만 꾸역꾸역 버티고 있던 남자.

백건, 바로 그가 바로 벌레들의 목표였다.

‘망할…… 또?’

건은 불과 십분 전에 자신을 향해 쏟아진 벌레 떼를 이제 겨우 전부 잡은 상태였다.

그런데 십 분이 지난 지금 가르디움은 다시 벌레 떼를 소환했다.

한 마디로 벌레 떼는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란 뜻이었다.

건은 어쩔 수 없이 양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미스릴 단검을 허리춤에 다시 찔러넣은 후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옥 같은 암굴에선 함부로 힘을 낭비하는 것은 자살하려고 목을 매는 행위와 똑같았기 때문에 건은 언제나 최소한의 힘으로 적을 쓰러트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흑룡아도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까지 흑룡아를 아끼다간 오히려 더 힘을 낭비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건은 과감히 흑룡아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츠리리릿!

오른팔에서 빠져나온 한 마리의 흑룡이 빠르게 한 자루의 창이되었다.

건은 흑룡아(창)를 잡으며 곧장 전방을 향해 창을 뻗었다.

파파파파파파팟!

그러자 창끝이 마구 분열되며 허공이 창영(槍影)으로 가득 채워졌다.

퍼퍼퍼퍼펑!

그것은 마치 하나의 벽(壁)과 같았기 때문에 건을 향해 날아오던 벌레들은 모두 그 벽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그 많던 벌레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벌레들은 머릿수가 많아 그냥 놔두면 귀찮아질 수 있었기 때문에 건은 전력을 다해 한 방에 벌레들을 쓸어버렸다.

“후우…….”

벌레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건은 살짝 호흡을 조절한 후 곧장 다시 창을 휘둘렀다.

흑룡아를 꺼낸 이상 속전속결(速戰速決)로 전투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드드드드드득!

흑룡아(창)가 허공을 꿰뚫자 허공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만들어졌다.

무신혼(武神魂) 구룡섬(九龍閃)이었다.

진짜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간 아홉 마리의 용은 곧장 가르디움의 몸에 꽂혔다.

키르에에에에에에엑!

생각지도 못한 역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가르디움은 몸속을 헤집는 아홉 마리의 용을 느끼며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특유의 녹색 침과 녹색 피를 분수처럼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쿠쿠쿵.

결국, 가르디움은 제대로 꽂힌 구룡섬 한 방에 정리되었다.

어떻게 보면 건이 굉장히 쉽게 쓰러트린 것 같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리 가르디움이 상급 암괴였다고 해도 만약 이곳이 암굴이 아닌 밖이었다면 건이 굳이 흑룡아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구룡섬은 건이 사용할 수 있는 척준경의 무공 중 가장 강력한 세 가지 중 하나였다.

당연히 혼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젠장 무슨 상급 암괴 한 마리를 상대하는데 혼마를 상대하는 것처럼 싸워야 하네.”

건은 절래 고개를 흔들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천천히 쓰러진 가르디움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암굴엔 가르디움과 같은 암괴들은 널리고 널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일상처럼 만나는 게 가르디움과 같은 암괴들이었다.

쓰러져 있는 가르디움에게 다가간 건은 들고 있던 흑룡아(창)를 쓰러진 가르디움의 몸에 꽂아넣었다.

푸욱!

그러자 놀랍게도 가르디움의 몸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지던 짙은 농도의 마이너스 에너지 중 일부가 흑룡아로 스며들었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분명 흑룡아가 마이너스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사실이었다.

건은 이런 식으로 사냥이 끝나면 늘 흑룡아에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주입해주었다.

이게 흑룡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건 건도 몰랐다.

다만 흑룡아가 마이너스 에너지를 간절히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게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 녀석을 만족하게 해줄 겸 해주는 것이었다.

어쨌든 가르디움은 그렇게 모든 마이너스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놈이 사라진 자리엔 한 개의 영혼의 조각이 남았다.

상급 암괴가 남긴 조각이라고 하기엔 다소 커 보이는 조각. 건이 암굴에 들어와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암굴에 존재하는 괴물들은 암굴 밖에 존재하는 다른 괴물들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보상을 남겼다.

지금 떨어진 조각만 해도 밖에선 최소 최상급 암괴 정도는 되어야 남길 수 있는 크기였다.

건은 조각을 챙긴 후 천천히 자신이 배낭을 벗어놓은 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선 백이 배낭을 지키고 서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

“어때? 주위에 다른 놈들은 안 보이지?”

“네, 아직은 조용합니다.”

“휴, 그럼 좀 쉬어야겠다. 쉬는 동안 주변 체크 잘해.”

츠리리릿.

건은 흑룡아를 다시 오른팔에 집어넣고 고개를 흔들며 배낭 위에 걸터앉았다.

“주인님, 탐색 범위를 좀 더 넓힐까요?”

“아냐, 그냥 명상이나 하면서 가볍게 쉴 거니까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할 거 같아.”

“넵!”

백의 명령을 받은 곧장 작은 날개를 더욱 열심히 파닥거리며 더 높게 떠올랐다.

암굴에 들어온 후 백은 주로 이렇게 주변을 감시하거나 건이 싸울 땐 배낭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역할은 겉으로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었다.

실제로 건이 열흘 동안 암굴에서 이렇게 준수하게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바로 백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대부분의 소울러들은 암굴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암굴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한시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건은 백의 탁월한 기감(氣感) 덕분에 짧은 시간을 쉬더라도 충분히 마음을 놓고 쉴 수 있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부분이 건이 암굴이 적응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건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백은 전신의 감각을 열고 사방을 살폈다.

최초 건이 암굴로 가겠다고 했을 때는 펄쩍 뛰면서 반대했던 백이었지만 사실상 그에게 의사결정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암굴에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끌려오긴 했지만 암굴에 들어온 뒤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적극 건을 돕기 시작했다.

백은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건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건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암굴은 분명 지하 동굴처럼 생긴 구조였지만 굴 자체의 크기가 워낙 컸고 또한 어디서 들어오는 빛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빛이 유입되어 마치 해가 거의 다진 저녁 수준 정도의 밝기가 24시간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야가 그리 답답하진 않았다.

물론 백은 시각으로 주변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특유의 감각을 이용해 아주 멀리까지 감시하는 것이었다.

흠칫!

바로 그때 백은 몇 마리의 괴물들이 거의 동시에 자신의 탐색범위 안에 들어온 걸 느낄 수 있었다.

‘두 마리? 아니 세 마리네.’

백은 괴물들이 나타나자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한 시간 동안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십오 분에서 삼십 분 사이에 무조건 괴물들이 나타났었다.

정확한 암굴의 넓이는 아무도 몰랐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소울러들이 암굴을 탐험해서 밝혀낸 바로는 암굴은 최소 제주도의 반 정도 넓이는 될 것이라고 알려졌었다.

그렇게 큰 암굴이었지만 워낙 암굴에 존재하는 괴물들 숫자가 많다 보니 삼십 분에 한 마리 정도는 무조건 만나곤 했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것은 무척 재수가 좋은 일이었다.

“주인님, 상급에서 최상급 사이의 암괴로 예상되는 괴물들 세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백은 괴물들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건에게 알렸다.

그러자 눈을 감고 쉬고 있던 건이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한 시간쯤 지났지? 그래도 이번엔 꽤 쉬었네.”

“아까 연속으로 십 분에 한 놈씩 계속 등장했었으니 이제는 이 정도는 쉴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어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젠 다시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전 또 여길 지킬까요?”

현재 건이 배낭을 놔둔 자리는 건이 겨우 찾은 아주 훌륭한 요충지였다.

암굴의 한쪽 벽면에 마치 거대한 도끼를 몇 번 찍어서 만든 것처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공간이 있었는데 건은 바로 그곳에 배낭을 놔뒀었다.

아무래도 뒤와 양옆이 막혀 있었고 트여 있는 앞쪽도 사람 한 명만 겨우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좁았기 때문에 암굴에 사는 대부분의 괴물은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기껏해야 덩치가 작은 하급 암괴들이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 정도는 건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건은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배낭과 백을 놔둔 후 이 근처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단은 지키고 있어. 알지? 혹시라도 다른 괴물이 이쪽으로 가까이 오면 최우선적으로 나에게 알려.”

지금 건에게 백과 백이 지키는 배낭은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떤 것보다 둘을 소중하게 다루는 중이었다.

“넵!”

“어디 보자…… 가장 가까운 놈이 어느 쪽이야?”

“이 방향에서 오는 놈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쪽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과 이쪽에서 느껴지는 놈들은 그냥 스쳐 지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침반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암굴이었기 때문에 백은 건에게 직접 손으로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며 설명해주었다.

“그럼 이쪽부터 정리해야겠군.”

백의 설명을 들은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벗어놓았던 조끼를 다시 걸쳤다.

이 조끼는 일종의 강화전투복의 외부장갑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블랙 마이더스 한병일이 암굴에 도전하는 건을 위해 특별히 제작해서 준 물건이었다.

방어력도 방어력이었지만 수많은 무기를 수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강화전투조끼였다.

“잘 지키고 있어.”

건은 백에게 다시 한 번 얘길 한 후 곧장 건이 제일 처음 가리켰던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연희가 단 일주일 만에 포기했던 암굴 생활. 하지만 건은 적어도 아직까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하루하루 버티는 게 아주 힘겨웠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간신히 버틸 수는 있었기에 계속 버텨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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