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06화 (105/175)

# 106

더 소울(The Soul) - 암굴 생활 [2]

* * * *

암굴 14일 차.

-오늘부터 난 간단하게나마 암굴 생활을 정리하는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현재 난 암굴의 가장 외곽지역인 블루존에 있다. 이제 슬슬 블루존을 넘어 그레이존에 들어가 볼 생각이다. 물론 서두를 생각은 없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암굴 17일 차.

-블루존을 벗어나 그레이존에 들어왔다. 가장 아까웠던 것은 베이스캠프로 쓰던 장소를 버린 것이었다. 그레이존에서도 그런 지형의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 그게 좀 걱정이긴 하다.

암굴 19일 차.

-그레이존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아쉽게도 전에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그 장소만큼 완벽한 지형의 장소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장소를 하나 찾아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확실히 그레이존에 들어오니 마이너스 에너지가 전신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당연히 괴물들도 블루존보다 더 강해졌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곳이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워낙 공기중의 마이너스 에너지 농도가 짙어서일까? 단순히 흑룡아를 소환해 놓아도 흑룡아가 아주 조금씩 공기 중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흡수했다. 앞으론 시간이 날 때마다 흑룡아를 소환해 놓아야겠다.

암굴 23일 차.

-어제 위험한 상황을 맞이했었다. 하필 베이스캠프로 두 마리의 최상급 암괴가 동시에 다가와 그 두 녀석을 동시에 상대하다가 자칫 베이스캠프에 놔뒀던 내 물과 식량들을 모두 잃을 뻔했다. 다행히 백이 전력을 다해 막은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앞으론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암굴 24일 차.

-내가 하루에 상대하는 괴물들의 숫자는 평균 열다섯 마리 정도다. 많을 때는 스무 마리를 넘길 때도 있었고 적을 땐 열 마리 안쪽으로 상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상대하는 괴물들의 숫자가 아니었다. 내가 상대하는 괴물들은 하급 암괴부터 최상급 암괴까지 아주 다양했지만 정말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그레이존에 넘어오고 나니 하급 암괴를 상대하는 것도 마치 상급 암괴를 상대하는 느낌으로 싸워야 할 정도였다. 당연히 최상급 암괴 정도가 되면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난 요즘 내가 가진 힘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있다.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느낌이다.

암굴 28일 차.

-내가 가진 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오행발현술을 중심으로 한 맹약과 관계없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고 두 번째는 첫 번째 맹약의 대상인 척준경으로부터 받아 쓰는 힘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두 번째 맹약의 대상인 대제(大帝)로부터 받아 쓰는 힘이었다. 이 중 세 번째 힘인 대제의 힘은 사실상 암굴에서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래서 난 이곳에 들어와 계속 첫 번째 힘과 두 번째 힘만 사용 중이다. 그런데…… 얼마 전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척준경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제의 힘을 얻은 이후 난 위기상황이 닥치면 무조건 대제의 힘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뒷수습이 힘든 대제의 힘을 봉인할 수밖에 없게 되자 확실히 그동안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지금까지 척준경의 힘 중 극히 일부분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래놓고 위험한 순간이 오면 제대로 통제도 하지 못하는 대제의 힘을 끌어다 쓴 것이었다. 이걸 깨달은 난 최대한 빨리 내 착각을 수정할 생각이다.

암굴 33일 차.

-일단 난 척준경이 지닌 힘을 모두 사용할 줄은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전투본능, 무쌍투기, 금강야차, 파천신력, 무신혼…… 이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척준경의 힘이었는데 이 중 가장 효율이 높은 기술은 대략 80% 정도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전투본능이었다. 나머지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뒤늦게 얻은 금강야차나 파천신력은 겨우 30% 수준에 머물고 있었고 무신혼은 여전히 20%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난 먼저 이것들을 완성할 생각이다. 얼마나 걸릴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끊임없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 암굴에서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암굴 44일 차.

-그레이존을 벗어나 블랙존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 결정은 정말 제대로 미친 짓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미친 짓을 결행할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이유는 엄청난 가능성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난 며칠 전에 드디어 80%대에 머물던 전투본능의 완성도를 100%까지 끌어올렸다. 이제 적어도 전투본능만큼은 과거 척준경이 사용했던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었다. 전투본능을 완벽하게 완성한 후 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전투본능을 100% 완벽하게 터득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99%까지의 전투본능과 100% 전투본능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때야 난 척준경의 진정한 힘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난 수박의 겉만 핥아 먹고 그 수박의 맛을 평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수박의 맛은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이걸로 하나 확실해진 것은 척준경의 힘을 제대로 쓰려면 척준경의 다섯 가지 힘을 모두 100% 완벽하게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이걸 위해…… 진짜 목숨을 걸고 블랙존으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아마 쉽진 않을 거다. 어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도전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목숨을 걸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완성해 볼 생각이다.

암굴 46일 차.

-여기가 진짜 지옥이다.

암굴 50일 차.

-내가 과연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암굴 59일 차.

-무쌍투기를 완성했다. 이제는 기록을 남기는 이 간단한 행위조차도 너무나 힘겹다.

암굴 65일 차.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몇 번씩 목이 날아갈 뻔한 위험을 경험한다. 신경을 매일 너무 팽팽하게 당기고 있어서일까? 이젠 진짜 팔 하나 정도는 잘려나간다고 해도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암굴 72일 차.

-금강야차를 완성했다. 파천신력은 조금만 더 하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무신혼이다. 무신혼은 여전히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암굴 80일 차.

-파천신력도 완성했다. 이젠 블랙존도 많이 익숙해졌다. 마음 같아선 레드존에도 도전하고 싶지만…… 이 이상 무리를 하는 건 진짜 자살을 하는 것 같아서 참았다.

암굴 85일 차.

-나름 식량을 아껴먹어서 아직 이십일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연희 누나의 충고대로 이젠 슬슬 암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현재 무신혼의 완성도는 70%…… 암혈을 찾으며 계속 수련하면 최소 90% 수준까지는 올라갈 것이라 믿는다. 어지간하면 이 안에서 완벽하게 완성해서 나가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암굴 90일 차.

-암혈을 찾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암혈을 찾는 게 생가보다 쉽진 않다. 물과 식량은 더욱 아끼는 중이다.

암굴 100일 차.

-물과 식량이 떨어져 간다. 이제 진짜 하루, 이틀 사이에 완전히 바닥날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암혈은 찾지 못했다. 점점 조급함이 느껴지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무신혼의 완성도는 현재 90%를 넘어섰다.

암굴 110일 차.

-물과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지 이틀이 지났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정말 죽을 것만 같다. 그나마 희소식은 열악한 상황을 잊으려고 수련에 더욱 집중했더니 드디어 무신혼을 100% 완성할 수 있었다.

암굴 111일 차.

-힘들다. 암혈은 어디에…….

암굴 113일 차

-정신이 혼미해진다.

암굴 114일 차.

-암혈을…….

* * * *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지?”

철민은 살짝 초조한 표정으로 연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휴우…….”

대답하는 연희의 표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그들은 열흘 정도 전까지만 해도 기필코 건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삼 개월 치 물과 식량을 챙겼다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여유 있게 챙겼기 때문에 백 일은 넘게 버틸 수 있었을 거다. 거기에 건이 작정하고 아껴 먹었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백일 하고도 보름이 더 지났잖아요.”

“흐음……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녀석을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철민과 연희, 두 사람 모두 건을 매우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건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블루존에서 삼 개월을 버티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었을 텐데…….”

“그레이존까지 갔을 수도 있지.”

“에휴, 내가 그렇게 잔뜩 겁을 줬는데 정말 그레이존까지 간 건가?”

“녀석이라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철민은 거의 100% 건이 그레이존까지 들어갔다고 확신했다.

“어쩐지 정말 그랬을 것 같아서 더 걱정이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라. 녀석이라면…… 설사 그레이존까지 들어갔다고 해도 돌아올 거다.”

철민은 건의 실력을 믿었다.

그는 설사 건이 그레이존까지 들어갔다고 해도 충분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 돌아왔는데 일부러 우리 골려주려고 늦게 나타나는 거 아니에요?”

암굴은 유적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밖으로 나오는 암혈이 어디로 통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기에 건이 암혈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 어디로 갈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럴 거 같진 않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만 갈 수밖에 없는 걱정.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용인에 있는 한 놀이공원.

새벽 시간이라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불빛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의 공간에 묘한 일그러짐이 나타났다.

지이이잉.

그리곤 그 공간의 일그러짐에서 한 남자가 밖으로 쓰러지며 튀어나왔다.

스르르, 쿵!

걸레가 된 강화 전투복을 입은 상태로 간신히 경계의 선을 넘은 남자.

그는 바로 건이었다.

“헉…… 헉…….”

건은 거침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놀이기구? 어디 놀이공원인가?’

건은 멀리 보이는 몇 개의 놀이기구를 발견하곤 이곳이 놀이공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백은 쓰러진 건에게 날아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크으…… 솔직히 상태가 많이 안 좋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다.”

“휴, 진짜 마지막에는 정말 아찔했네요.”

“아찔? 난 그냥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게요. 그 타이밍에 암혈을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어요.”

“후우…… 그쯤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딱 그 타이밍에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 어쨌든 기적이건 뭐건 살았으니까 됐다.”

“주인님, 진심으로 다시는 암굴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백은 정말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내뱉었다.

건만 암굴에서 고생한 게 아니었다.

백 역시 암굴에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덕분에 건만큼은 아니라도 백도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백은 다시는 암굴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후우, 그나저나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까 지금 몸을 좀 회복해야겠다.”

“네, 제가 주변을 살필게요.”

파드드득!

백은 그 말과 함께 허공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건은 그 자리에 대충 앉아서 거의 바닥난 혼력을 이용해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켰다.

거의 넉 달 동안의 암굴 생활.

그것은 건에게 정말 잊고 싶을 정도로 처절한 고통의 기억이었지만 역시나 감당했던 위험만큼이나 큰 성과를 이뤄낸 것도 사실이었다.

척준경의 모든 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

4개월 전의 건과 지금의 건은 진짜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