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08화 (107/175)

# 108

더 소울(The Soul) - 혈룡(血龍) [2]

* * * *

건은 다시 영혼투기장에 등록했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영혼투기장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가 영혼투기장에 등록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만보당도 이제는 광고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장사가 잘되는 상황이었고 이미 영혼투기장의 삼패왕 중 한 명인 영혼백정 방기운을 쓰러트린 상황에서는 더 큰 목표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게 아깝고 자신에게 분명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곳인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건은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경기를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지금 건에게 필요한 건 실전이 아니었다.

특히나 만인에게 공개되는 장소라 할 수 있는 영혼투기장에서 무신혼을 수련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이제 영혼투기장에서 얻으려고 했던 걸 충분히 얻은 건은 승리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영혼투기장 쪽을 정리한 건은 대신 그동안 소홀히 했던 사냥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스으으으.

사람들의 활동이 거의 없는 새벽 3시.

하지만 이 시간에 오히려 활동이 많아지는 녀석들도 존재했다.

새벽녘은 마이너스 에너지가 가장 커지는 때였기에 아무래도 경계가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부분의 헌터들은 새벽녘에 주로 사냥을 하곤 했다.

건도 그런 이유 때문에 요 며칠 새벽녘에 계속 사냥감을 찾아 돌아다녔었다.

하지만 문제는 건의 실력이 올라가면서 건의 성에 차는 사냥감이 거의 나타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암굴에서 엄청난 수준의 괴물들을 매일 같이 상대한 건이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만나는 괴물들은 다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여기도 꽝인 거 같은데요.”

건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아기 돼지 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건에게 얘기했다.

암굴에서 보낸 넉 달이란 시간은 건만 성장시킨 게 아니었다.

백은 암굴에서 상당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백의 성장은 단순히 백이 가진 힘이 세졌다기보단 경험이 매우 많이 늘어나면서 아주 노련해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어느 정도인데?”

“하급 암괴…… 그것도 두어 마리밖에 없어요. 시간 낭비일 거 같아요.”

“쳇, 또 꽝이네. 연속 세 개째인가? 오늘은 어째 경계가 많이 보여서 내심 기대했는데 어째 죄다 꽝이냐.”

“오늘이 마침 만월(滿月)이라 평소보다 더 많은 경계가 생겼지만, 내실은 영 좋지가 않네요.”

마이너스 에너지가 가장 커진다는 만월이었건만 사냥 실적은 아주 좋지 않았다.

“다음 경계를 찾아보자.”

하급 암괴 두어 마리를 잡는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그냥 다른 경계를 찾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기 때문에 건은 이번 경계도 그냥 빠져나가려고 했다.

어차피 오늘은 만월이라 여기저기에서 경계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만 돌아다니면 최상급 암괴 몇 마리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경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번쩍!

우르르르릉, 콰과광!

순간 경계를 쪼개버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한 줄기의 섬광이 경계의 중앙 부근에 떨어졌다.

드드드드드드득!

놀랍게도 그 섬광은 경계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대로 경계를 얼려버렸다.

‘……설마 이건…….’

건은 그걸 본 순간 언젠가 연희에게 들었던 얘기하나가 떠올랐다.

“헉, 주인님 이건 경계봉인술(境界封印術)인 것 같습니다!”

경계봉인술.

그것은 바로 경계를 봉인하여 출입을 제한하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여러 종류가 존재했기 때문에 정확한 효과가 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최소 앞으로 몇 시간 정도는 이 경계에서 빠져나갈 수도 그리고 반대로 이 경계로 들어올 수도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경계봉인술…… 이건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연희는 경계봉인술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었다.

경계봉인술은 워낙 희귀한 기술인데다가 아주 복잡한 구조의 술식이라 아무나 터득할 수가 없었다.

“일단 다시 한 번 경계를 탐색해봐.”

뭐가 어떻게 것인지 당장 확인할 수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이곳에 불청객이 들어온 건 확실했다.

‘선자불래 래자불선 (善者不來 來者不善)’이란 말처럼 좋은 뜻이 있는 자라면 이렇게 경계봉인술을 사용하면서 자신을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결국, 건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찾아온 이가 좋지 않은 뜻을 지닌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계봉인술을 사용하려면 최소 영혼의 파편 정도는 들어가는데…… 그걸 이렇게 무작정 사용했다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별거 아닌 암괴들 몇 마리밖에 없는 이 경계에서 분명한 목적과 연관이 있을 수 있는 것 나뿐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는 없었다.

‘백련김가겠지?’

그들 빼고 건에게 분명한 목적을 가질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단 얘긴 결국 지금 경계봉인술을 사용하며 난입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울러는 건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으으음……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기운이 나타났습니다. 암괴나 혼마는 아니고 소울러 같긴 한데…… 느껴지는 기운이 좀…… 무섭네요.”

백은 살짝 몸을 떨면서 건에게 얘기했다.

“응? 무섭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기운을 느끼는 순간 몸이 움츠러들면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보통 놈은 아니겠군.’

백이 이렇게까지 얘기할 정도라면 분명 평범한 소울러는 아니란 뜻이었다.

“일단은 어떤 녀석인지부터 봐야겠군. 넌 적당히 최대거리를 유지하면서 숨어있어라.”

건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백에게 얘기했다.

그리곤 천천히 경계를 얼려버린 하얀색 섬광이 떨어진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은 자신을 자신의 목을 노리고 이곳에 온 자객(?)을 금방 만날 수 있었다.

어차피 경계 자체가 그리 크질 않았기 때문에 별로 걸을 필요도 없었다.

190cm는 될 것 같은 큰 키에 옷 때문에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한눈에 봐도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눈.

건은 자신 앞에 나타난 남자의 눈이 보통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래서 백이 잔뜩 겁을 먹은 것이었군.’

건은 그의 눈빛 속 깊숙한 곳에 똬리를 트고 있는 한 줄기의 혈기(血氣)를 심안을 통해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극한의 살기(殺氣)와 광기(狂氣)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백련김가가 최후의 한 수를 동원한 것 같네.’

건은 만약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이 암굴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 앞에 나타났다면 절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흐음…… 이거 아무래도 속은 거 같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상을 잔뜩 구기는 남자.

그는 당연히 혈룡이었다.

그는 무려 넉 달 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이제야 겨우 건을 만날 수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나네. 갑자기 사라져서 넉 달 동안 귀찮게 한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정보도 잘못되었다니…… 이거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겠는데…….”

혈룡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별로 어렵지 않게 끝낼 것이라 예상했던 이번 의뢰 때문에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특히 건이 넉 달이란 시간 동안 암굴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혈룡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의뢰를 받는 즉시 일주일 안에 해결해주기로 유명한 혈룡이 넉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쌓일 수밖에 없었다.

“너 정체가 뭐야?”

혈룡은 건을 바라보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날 죽이러 온 놈이 그것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을 테고…… 백련김가에서 준 정보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맞아. 잘못됐어. 분명 그 녀석들은 나에게 브론즈급 헌터지만 실제론 골드 등급의 헌터인 백건이란 놈의 멱을 따달라고 했거든. 근데 넌 골드 등급의 헌터가 절대 아니잖아. 플래티넘…… 어쩜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뭐? 골드 등급? 이 새끼들을 날 너무 만만히 봤어.”

“화가 많이 났나 보네.”

“당연하지. 다른 건 몰라도 난 날 속이는 건 절대 못 참아.”

“그럼 어떻게 하려고?”

“날 속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꽤 심한 대가를 치르겠네?”

“아마도…….”

“나쁘지 않네. 하지만 아마도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겠지?”

건은 슬쩍 웃으며 혈룡을 바라보았다.

“잘 아네. 백련김가도 날 짜증 나게 했지만, 너도 만만치 않게 날 짜증 나게 했거든. 그러니까 일단 네 멱을 따고 그다음 백련김가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아쉽네. 살짝 네가 백련김가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못 볼 것 같네.”

건은 아쉽단 표정을 지었다.

“하하, 혹시 현실을 인정하고 얌전히 목이라도 내놓을 생각이냐?”

혈룡은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내가 내 목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럼 네가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기라도 하는 게냐?”

“그건 또 뭔 개소리야.”

건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어쭈 세게 나오네?”

혈룡 역시 그런 건을 바라보며 재미있단 표정으로 웃었다.

“내가 왜 못 본다고 했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 같은데…… 아주 간단한 거야. 난 너에게 내 목을 내줄 생각이 없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백련김가는 아마도…… 네가 물으려던 책임보다 훨씬 큰 책임을 져야 할 거야.”

“크크크크, 그러니까 넌 지금 날 죽이고 백련김가를 직접 응징하겠다는 것이구나?”

“이제야 이해했네.”

혈룡의 말에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크하하하하,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네가 날 죽인다고? 나 혈룡을 네가 죽이겠다고?”

드드드드드.

혈룡의 광소(狂笑)와 함께 경계 전체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혈룡…… 이 녀석이 바로 대한민국 삼대 암살자 중 하나인 혈룡이었구나.’

건은 이제야 눈앞에 있는 상대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내 목을 가져가 봐라!”

콰과광!

쩌저저저저저저적!

혈룡의 말이 끝나자 그의 주변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바닥엔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생겨났다.

혈룡의 전신에서 마구 피어오르는 살기.

그 살기는 유형의 기운으로 변형되며 칼날과 같은 예기(銳氣)를 가지게 되었다.

단지 맞서는 것만으로 몸이 수십 조각으로 잘릴 것 같은 예기였다.

하지만 건은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목…….”

콰과과과광!

건은 전투본능은 물론이고 금강야차의 기운까지 모두 끌어올리며 혈룡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따다다다당!

혈룡의 살기는 건의 몸에 닿자마자 모두 튕겨져나갔다.

단순히 살기를 유형화시킨 정도론 금강불괴를 완성한 건의 몸에 작은 상처조차 남길 수 없었다.

“내가 가져가 주마.”

상대가 대한민국 삼대 암살자건 뭐건 상관없었다.

결국, 둘 중 센 놈이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건은 무조건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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