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더 소울(The Soul) - 무신재림(武神再臨) [1]
@ 무신재림(武神再臨).
혈룡은 건에 대한 상당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백련김가에서는 그동안 자신들이 모은 건에 대한 모든 정보를 혈룡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혈룡은 당연히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건은 혈룡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암살자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고 굉장히 강하다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건은 혈룡이 어떤 스타일의 소울러인지도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무작정 달려들 수는 없었다.
“크하하하하, 자신감 하니만큼은 인정해줘야 하는 건가? 하지만 보통 그런 자신감을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부르지 않나?”
츠츠츠츳!
혈룡은 크게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서 붉은색 기운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렇게 솟아오른 붉은색 기운은 곧장 형태를 갖췄다.
순간 한 마리의 붉은색 용이 만들어지며 혈룡의 몸을 휘감았다.
“그 알량한 자신감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 잘 지켜보아라!”
파아앗!
혈룡은 건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붉은색 용이 건을 향해 날아왔다.
건은 이미 심안을 발동시켜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용이 일종의 혼강(魂罡)이란 걸 알고 있었다.
건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붉은 용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왼손을 들었다.
보통 이런 공격은 피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건은 그러지 않았다.
콰과과과과광!
건이 피하지 않자 붉은 용은 그대로 건을 집어삼키며 폭발했다.
폭발은 제법 컸지만 정작 붉은 용을 날린 혈룡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거 봐. 이게 어딜 봐서 골드 등급의 헌터냐고. 백련김가 이 새끼들…… 진짜…….”
혈룡은 서서히 사라지는 폭발의 여파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건은 최초 서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조금 전 폭발에 아무런 충격도 입지 않았다.
아무리 혈룡이 간단한 테스트를 위해 가볍게 던진 혈룡강기(血龍罡氣)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금강야차의 기운으로 강화된 육체에 강력한 호신강기인 금강의까지 더해져 나온 결과였지만 어쨌든 혈룡은 이것만으로도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정보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할게.”
혈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보가 틀렸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을 거야.”
츠츠츠츠츳!
혈룡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혈룡천살기(血龍天殺氣)를 몸 전체로 퍼트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붉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혈룡천살기를 끌어올린 혈룡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암살자들의 사냥은 헌터들의 사냥과는 달랐다.
그들은 괴물이 아닌 소울러를 사냥했다.
그렇기에 암살자들은 경계에서 가장 적이 많은 이들이었다.
적이 많다는 얘긴 곧 계속 살아남아 있으려면 무조건 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암살자로 무려 15년을 넘게 활동하고 있는 혈룡은 굉장한 강자일 수밖에 없었다.
혈룡천살기는 그를 강자로 만들어준 힘이었다.
피잉!
순간 혈룡이 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론 진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혈룡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건의 발밑에서 한 마리의 붉은 용이 땅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꽈과광!
건은 재빨리 몸을 비틀며 그 용을 피했다.
이번에도 역시 붉은 용은 최초 혈룡이 뿌렸던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오른쪽!’
그나마 건은 심안을 통해 혈룡의 위치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심안을 통해서도 완벽하게 혈룡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콰과과과!
건의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두 마리의 붉은 용.
이처럼 혈룡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서 꾸준히 혈룡강기를 건에게 날리고 있었다.
콰과과과광!
건은 이번 혈룡강기는 피하지 않고 막았다.
이로써 건은 상대방의 특기가 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각의 한계를 벗어난 엄청난 빠르기와 아주 간결하지만,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지닌 붉은 용처럼 생긴 혼강. 일단 이 두 가지가 혈룡이 가진 주요 능력인 건가?’
건이 그것을 파악한 그 순간에도 혈룡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혈룡강기를 날렸다.
일단 선수를 빼앗긴 건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혈룡강기를 막거나 피하며 대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혈룡이 가진 힘이 단순히 이 두 가지뿐인 건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건 역시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라 사실쯤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보여주지 않은 힘이 무엇인지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혈룡이 사용하고 있는 이 두 가지 힘을 제압할 방법을 찾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보는 게 먼저겠군.’
뭐가 됐건 혈룡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다면 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없었다.
결국, 심안마저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혈룡을 보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압!”
건은 가볍게 기합을 내지르며 전투본능-절대육감을 극성으로 펼쳤다.
절대육감이 펼쳐지자 건은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오십 미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안으로 들어온 혈룡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건은 혈룡을 파악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움직였다.
절대육감을 극성으로 펼치던 그 순간 이미 무쌍무한투기를 이용해 육체를 두 번이나 더 강화했었기 때문에 건의 움직임은 굉장히 빠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혈룡만큼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뒤처지더라도 힘겹게 따라붙을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는 되었다.
파파팟!
혈룡은 건이 자신을 따라잡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건의 실력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순간에 자신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건은 혈룡을 따라잡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따다다당!
건의 손과 혈룡의 손이 부딪치자 강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쩌정, 쩌저저저정!
그렇게 서로 몇 번 공격을 주고받던 혈룡과 건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주먹을 뻗었다.
꽈르릉, 꽈과광!
두 주먹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폭발은 두 사람 모두를 뒤로 밀어냈다.
주르르르륵.
누가 더 멀리 밀려났다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똑같은 거리를 밀려난 건과 혈룡.
두 사람은 그렇게 뒤로 밀려난 뒤 동시에 서로 바라보았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열 받네. 혈광신법(血光身法)을 이렇게 쉽게 따라오는 녀석을 겨우 골드 등급 수준의 헌터라고 얘기했단 거지. 이 새끼들 진짜…… 제대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겠어.”
혈룡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가는 내가 대신 치러준다고. 미안하지만 넌 직접 그 녀석들을 응징할 기회가 없을 거야.”
“크크크크크, 지금 혈광신법을 따라잡았다고 아주 기고만장해진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혈광신법은 내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능력일 뿐이다.”
“그럼 어서 그 잘난 다른 능력들을 보여줘 봐.”
웃으며 대답하는 건.
혈룡은 그런 건을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건방진 놈…… 넌 반드시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거다.”
츠츠츠츳!
혈룡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혈룡천살기를 잔뜩 끌어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수십 가닥의 아지랑이가 모조리 붉은 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혈룡이 자랑하는 혈룡천하(血龍天下)였다.
혈룡이 맹약을 맺은 영혼은 고려 천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끝을 낸 조선의 건국왕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였다.
역천(逆天)의 운명을 타고난 이성계가 그러했듯이 혈룡 역시 역천의 운명을 타고났었다.
흔히 역천의 인장이라 불리는 혈룡인(血龍印)이 그의 가슴에 찍혀 있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역천의 인장을 통해 역천의 운명을 부여받았고 그 결과 자신과 같은 역천의 운명을 타고난 태조 이성계의 영혼과 맹약을 맺을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자신이 타고난 역천의 운명을 통해 스스로 하늘(왕)이 되는 역천을 완성했다면 혈룡은 자신이 타고난 역천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혈살대법(血殺大法)을 완성했다.
혈룡은 소울러들의 피에 담긴 순수한 혼력을 직접 흡수하여 힘을 키웠다.
피를 마시는 건 물론이고 피부를 통해 흡수하기도 했다. 그걸 위해 그는 소울러들을 산채로 포획해 그들을 가둬놓고 아주 천천히 소울러들의 정혈(精血)을 모았다.
이 모든 건 정말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악행(惡行)이었지만 아직 이러한 혈룡의 악행은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어쨌든 이렇게 소울러들의 피를 통해 얻은 힘들은 고스란히 혈룡의 혼력에 흡수되었고 지금 혈룡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수십 마리의 붉은 용들이 바로 그 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혈룡이 지닌 혈룡인.
그것은 건이 지닌 삼족오의 인장과 같은 종류의 인장이었다.
건도 그리고 혈룡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등과 가슴에 새겨진 두 인장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인장을 지닌 두 사람의 싸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과!
혈룡이 만든 수십 마리의 붉은 용은 곧장 건을 향해 쏟아졌다.
건은 그 붉은 용들을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파천벽력파를 끌어올렸다.
비록 혼력 소모가 큰 파천벽력파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파천벽력파가 필요했다.
수십 마리의 붉은 용은 하나하나가 모두 마치 진짜 살아 있는 용처럼 움직였다.
그렇다고 또 붉은 용이 소환계열 소울러들이 부리는 소환수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혼강으로 만들어진 강기의 덩어리가 맞았지만 대신 그것을 조종하는 혈룡이 자신의 생각을 수십 개로 나눠서 수십 마리의 붉은 용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혈룡이 태조 이성계가 그에게 전해준 태왕분심공(太王分心功)이 있었기 가능한 일이었다.
태왕분심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무려 마흔네 조각으로 나눈 혈룡은 마흔네 마리의 붉은 용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꽈과과광!
파지지지지지직! 콰과과광!
붉은 용들은 사정없이 건을 물어뜯었다.
건은 파천벽력파를 이용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붉은 용들을 쳐냈지만 마흔네 마리나 되는 붉은 용들은 건을 완벽하게 포위한 후 집요하게 건을 공격했다.
‘망할 차라리 진짜 소환수라면 파천벽력파로 쓰러트리기라도 할 텐데…….’
붉은 용들은 모두 순수한 강기의 덩어리였다.
그러다 보니 파천벽력파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충격파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다 보니 충격파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기껏해야 뒤로 밀려 나거나 강기의 조각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뿐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이기어혼강(以氣御魂罡)을 펼칠 줄이야…….’
혈룡이 지금 펼치고 있는 이것은 일종의 이기어혼강이었다.
이것은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보다 한 단계 윗줄의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