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더 소울(The Soul) - 인장의 변화 [2]
건은 깜짝 놀라며 그 그림자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림자는 건의 몸속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헉!”
순간 건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아주 이질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질적인 기운이 몸에 들어온 순간 거의 동시에 심안의 봉인(封印)이 갑자기 풀려버렸다.
번쩍!!
이건 건이 의도한 봉인 해제가 절대 아니었다.
마치 몸속으로 들어온 기운이 열쇠라도 된 것처럼 간단하게 심안의 봉인을 풀어버렸다.
고오오오오오오!
심안의 봉인이 풀리자 건의 오른쪽 눈동자에서 황금색 빛이 마구 쏟아져 나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게 대체…….’
건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안의 봉인이 풀려버리자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영혼의 울림이 들려왔다.
‘하늘을 거스르는 붉은 용과 용을 잡아먹는 신조(神鳥)의 싸움이 끝났다. 신조는 역천(逆天)의 적룡(赤龍)을 잡아먹고 또 하나의 문(門)을 열었으니. 이를 역천의 문(門)이라 부른다!’
콰광!
그 울림과 함께 건의 영혼에 ‘역천의 술(術)’이라 불리는 태곳적부터 내려온 절대 법칙이 각인되었다.
이 역천의 술은 역천의 인장이 가진 가장 중심이 되는 원리였다.
역천의 인장을 가진 이들이 얻은 모든 역천의 능력은 바로 이 역천의 술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었다.
혈룡이 만든 혈살대법도 그리고 이성계가 만든 패왕도(霸王道)도 모두 이 역천의 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건이 이 역천의 술을 얻었다는 건 곧 그가 역천의 인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미 삼족오의 인장을 지닌 그였기 때문에 역천의 인장이 지닌 다른 힘들은 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에게 전해진 건 오로지 ‘역천의 술’ 뿐이었다.
‘아아아…….’
건은 자신의 영혼에 각인되는 역천의 술을 또렷하게 느끼며 수많은 깨달음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역천의 힘이 동반되지 않은 역천의 술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지닌 가능성은 너무나 무궁무진했다.
과거 광개토대제가 수많은 ‘용의 인장’들을 잡아먹고 절대자가 되었던 것처럼 건도 처음으로 인장을 흡수하며 또 하나의 벽(壁)을 넘었다.
지금 당장 건이 이 역천의 술로 뭔가 확실한 힘을 얻은 건 아니었지만 그는 역천의 술을 얻는 것만으로 자신의 경지 자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문(門)을 연 너에게 나의 힘을 허(許) 한다.’
번쩍!!
역천의 술을 얻으며 역천의 문을 열어서일까? 한동안 전혀 진전이 없던 광개토대제와의 맹약에도 변화가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세 번째 문이 열리며 광개토대제의 세 번째 힘이 그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묵룡갑과 묵룡기마대에 이은 세 번째 힘은 군림언(君臨言)이었다.
묵룡갑이나 묵룡기마대와는 또 다른 종류의 절대적인 힘. 이로써 건은 광개토대제가 지닌 네 가지 힘 중 세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삼족의 세 다리에 해당되는 삼문(三門)을 모두 개방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삼족오의 머리라 할 수 있는 천원일문(天元一門) 뿐이었다.
물론 천원일문은 절대 쉽게 열 수 없는 것이었기에 언제 열 수 있을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영혼사문(靈魂四門)인 묵룡갑과 인중삼문(人中三門)인 묵룡기마대에 이어 지통이문(地通二門)인 군림언까지 개방했다는 것은 이제 건이 대제의 힘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후우…….”
역천의 문을 개방하고 역천의 술과 군림언을 동시에 얻은 건은 몸을 휘감은 황금빛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우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큰 변화였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정리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건이 혈룡을 쓰러트리고 그의 인장을 흡수했다는 사실이었다.
‘인장의 주인들끼리 싸운다는 게 이런 것이었나…….’
건은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
건은 혈룡의 시신을 오행발현술로 만든 화염을 이용해 깔끔하게 태워버렸다.
그냥 놔둘 경우 자칫 잘못하면 마이너스 에너지가 시신에 깃들어 암괴가 될 수도 있었기에 깔끔하게 처리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뒤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건은 곧장 카페로 돌아와 지하 수련장에 틀어박혔다.
깨달음을 얻어 다시 한 번 벽을 넘었지만 아직 세부적인 것들은 좀 더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건은 꼬박 일주일 동안 수련장에 틀어박혀서 그것들을 정리했다.
연희와 철민은 건이 뭔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눈치 채고 그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예 지하로 내려가질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후 그는 초췌한 몰골로 카페로 올라왔다.
그런 그를 발견한 연희는 진심으로 질렸단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너 같은 괴물은 처음 봤다. 거기서 또 벽을 넘다니…… 대단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근데 누나…… 배가 너무 고파요.”
“으이구, 기다려봐. 그렇지 않아도 슬슬 올라올 때가 된 것 같아서 준비해 놓은 게 있어.”
일주일동안 사실상 물만 먹으며 수련에 집중한 건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역시 누나밖에 없어요!”
연희의 말에 건은 기분 좋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고마우면 네가 밥 먹듯이 하는 그 깨달음을 나한테도 좀 나눠줘라. 이젠 슬슬 너의 그 무지막지한 천재성이 겁날 지경이다.”
건은 이미 연희를 뛰어넘었다. 연희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깨달음을 나눠주는 방법은 모르지만 적어도 누나에게 도움이 되는 대련을 해줄 순 있을 거 같아요.”
“그래? 좋아, 그럼 이제부턴 내가 너한테 배워봐야겠다.”
“헤헤, 이거 정말 감개무량하네요. 제가 누나에게 도움이 되다니! 이거야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 아닌가요?”
“내가 네 스승이었던 적이 있긴 했냐? 어쨌든 너의 성장 속도는…… 정말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명심해. 아무리 하늘이 높다고 해도 언제나 그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도 존재하는 법이야.”
“알고 있어요. 전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하늘 위에 하늘을 계속 뛰어넘어서 정말 제 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전 만족하지 않고 계속 올라갈 생각이에요.”
“그래, 나도 네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지켜볼 생각이니까 게으름피지 말고 열심히 해!”
“넵!”
연희의 말에 건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겠어?”
연희는 무려 김치볶음밥 2인분과 스파게티 3인분을 먹어치운 후 그릇을 설거지 하고 있는 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이번 일이 없었어도 해결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건은 연희가 해준 음식을 먹으며 그녀에게 혈룡이 자신을 암습한 얘기와 함께 그동안 백련김가가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을 노렸는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제는 이 지겨운 악연(惡緣)의 끈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잘라버리겠다고 얘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집단이야, 예전의 위세는 잃어버렸겠지만 한때는 명문이라 불렸던 곳이라고.”
아무리 백련김가가 몰락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백련김가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강함의 비교가 세력들 간의 비교로 간다면 겨우 중하위권에 턱걸이 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력들이 아닌 개인과 비교를 한다면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피한다고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내가 싸움을 피해봤자 그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다시 손을 쓰겠죠. 결국 이 싸움은 둘 중 한쪽이 끝장나기 전까진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어요.”
“으음…… 도와줄까?”
“아뇨, 이건 제 싸움일 뿐이에요. 누나나 사장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훨씬 편한 싸움이 되겠죠. 하지만 전 이 싸움을 혼자 끝낼 생각이에요. 그리고 모두에게 보여줄 생각이에요.”
건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또박또박 얘길 이어나갔다.
“내가 누군지. 날 건들이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줄 거예요.”
건은 무모한 도전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싸움이 무모한 싸움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암굴에 들어갔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혈룡까지 꺾으며 한 단계 더 발전한 지금.
그는 분명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긴 지금의 너라면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연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미 암굴에서 돌아온 건이 얼마나 강해진지 몸으로 직접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발전했으니 건의 강함은 더 이상 얘기 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건은 철민에게도 그다지 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철민이 누구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소울러를 나열하면 무조건 서열 30위안에는 들어가는 인물이었다.
사실상 상위 30명 안쪽의 소울러들은 직접 붙어서 싸우지 않는 이상 비교가 힘든 이들이란 걸 감안하면 건은 확실히 탑클래스의 소울러라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그러면 언제 가려고?”
“지금요,”
“응? 지금 당장?”
“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얘기처럼 굳이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요. 특히 저들은 아마 아직 혈룡이 당했다는 걸 모를 테니 더욱 지금이 적기죠.”
“준비는?”
“뭐, 대충 기존에 쓰던 장비들이면 충분할 거 같아요.”
“본가(本家)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어?”
“네, 전에 미리 알아놨어요, 어차피 놈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전부 결계석으로 만든 경계에 넣어놨을 테니 그걸 공략하면 알아서 다 기어 나오겠죠,”
“나름 명문이었던 곳이니까 모아놓은 외물(外物)들이 꽤 될 거야, 이왕 싸우기로 한 거라면 아예 그것들을 다 털어버려,”
“흐흐, 네, 저도 그렇게 하려는 중이었어요, 이왕 싸우는 거 좀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는 게 맞죠. 아직도 매일 저번에 암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포기했던 그 많던 영혼의 조각들이 눈앞에서 아른 거리는데…… 이번 기회에 그때 입은 손해들을 좀 매워보려고요.”
건은 암굴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의 영혼의 조각을 모았었다.
하지만 그는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그것들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그가 암굴에서 가지고 나온 영혼의 조각은 자신이 모은 영혼의 조각들 중 극히 일부분밖에 되지 않았다.
극히 일부분밖에 되지 않는 양이었음에도 암굴에서 나와 돈으로 바꾸니 무려 2억이나 나왔었다.
만약 제대로 가지고 나올 수만 있었다면 거의 40억 정도는 챙길 수 있었다,
40억과 2억의 차이는 컸다.
그렇기에 건은 매일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던 38억의 값어치를 지닌 영혼의 조각들이 생각났었다.
“백련김가의 보고들이라면 털어볼만하지. 어차피 너한텐 명분도 있으니까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제대로 박살내버려.”
“네, 그럴게요.”
“대신 살인(殺人)은 최소화 해.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해도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면 뒷감당이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당연히 그럴 생각이에요. 애초에 누굴 죽일 생각이 없어요. 대신…… 죽는 것보다 더 괴롭게 만들어줄 생각은 있죠.”
아무리 경계의 세상이 현실과는 전혀 다른 비상식의 세계라고 해도 무분별한 살인은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박살낼 수 있지. 잘 생각했어,”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들이 걸어온 이 싸움…… 이제는 끝내야겠죠,”
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중얼거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싸움의 그의 싸움이었다.
백련김과와 건.
최초 건이 백련김가의 후계자인 김동철을 폐인으로 만든 그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이렇게 마무리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