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13화 (112/175)

# 113

더 소울(The Soul) - 군림언(君臨言) [1]

@ 군림언(君臨言).

보통 백련김가와 같은 경계의 세력들은 현실에 본거지를 두는 대신 중요한 것들은 결계석을 이용해 인공적인 경계를 만들어 그 안에 넣어두었다.

백련김가의 본가도 그러한 구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가문의 보물들을 모아둔 세 개의 보고(寶庫)와 백련김가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가문에 종속된 고대의 영혼들이 모여 있는 ‘비혼당(秘魂堂)’은 당연히 결계 안에 존재했다.

그리고 워낙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경계가 삼엄한 것은 당연했다.

백련김가에서는 그곳을 ‘백련혼계(白蓮魂界)’라고 부르며 가문의 일원이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단속했다.

그곳을 출입하려면 무조건 가주(家主)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곳을 지키고 있는 백련무사(白蓮武士)들이 일말의 경고도 없이 공격을 하게 되어 있었다.

백련혼계를 지키는 백련무사는 서열이 최소 홍련(紅蓮) 이상은 되는 소울러들이었다.

백련무사들의 서열은 흑련(黑蓮)부터 청련(靑蓮), 홍련, 백련(白蓮) 순으로 나뉘었는데 당연히 백련 등급의 소울러들이 백련김가의 정예였다.

비록 백련혼계를 지키는 소울러들은 홍련 등급이었지만 홍련 등급만 되어도 맹약을 맺지 못한 소울러들 중에서는 꽤 실력이 좋은 소울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은 맹약을 맺지 못한 대신 백련김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몇 가지 특별한 술법을 익히고 동시에 영혼과학으로 만들어진 몇 가지 외물로 무장하고 있었다.

백련혼계는 서른 명의 홍련급 백련무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또한 백련혼계 내부에는 자체적으로 결계를 보호하는 몇 가지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백련무사부터 진법까지…… 이처럼 백련김가는 나름 철저하게 백련혼계를 보호했다.

이것은 그만큼 그들이 백련혼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보호 한다고 해도 모든 걸 지킬 수 없었다.

백련김가는 적어도 지금까진 백련혼계를 완벽하게 지켜냈지만…… 그 완벽함은 아무래도 오늘로 끝날 것 같았다.

콰과과광!

폭발과 함께 두 명의 홍련급 백련무사가 정신을 잃고 뒤로 튕겨나갔다.

몇 분전 갑작스럽게 등장한 남자가 백련결계를 지키는 서른 명의 백련무사를 전부 쓰러트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분뿐이었다.

딱, 5분 만에 서른 명의 백련무사가 모조리 쓰러졌다.

모두 죽진 않았지만 최소한 반 년 정도는 치료를 받아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중상을 입었다.

당연히 그들을 쓰러트린 남자는 건이었다.

“끄으…….”

백련무사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은 백련혼계를 지키던 홍련대(紅蓮隊)의 대주인 김인수였다.

물론 그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스윽.

건은 마지막까지 버티며 백련혼계를 지키려 하는 김인수를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꽈광!

그러자 김인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나갔다.

‘무신혼-무영수(無影手)’는 그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마지막 남은 백련무사를 쓰러트린 건은 천천히 백련혼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련혼계는 특이하게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지금 건이 들어와 있는 곳은 1차 경계라 할 수 있는 백련외계(白蓮外界)였다.

건은 그곳을 지키던 백련무사들은 모조리 정리했지만 아직 백련혼계 2차 경계라 할 수 있는 백련내계(白蓮內界)를 보호하는 진법은 남아 있었다.

“진법이라…….”

건은 진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지형지물을 이용해 일정 지역에 펼치는 일종의 특수한 술법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것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진법을 파훼할 지식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건은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진법이 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스르륵.

건은 다시 한 번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길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다.”

파지지지직!

그 말과 함께 건의 오른팔에서 파천벽력파가 방출되었다.

우르르르릉, 콰과과과과광!

예전에는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로밖에 방출하지 못하던 파천벽력파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정말로 하늘을 깨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벽력이 건의 오른손에서 방출되어 백련내계를 보호하고 있는 진법과 충돌했다.

쩌저저저저적!

백련내계를 보호는 진법은 상당한 수준의 진법이었지만 건이 뿌린 벽력은 그것을 통째로 뒤흔들어 금이 가게 만들었다.

건은 이미 심안을 발동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 한 방으로 백련내계를 보호는 진법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뚫려라!”

건은 다시 한 번 파천벽력파를 오른손에 집중시켰다.

우르르르릉, 번쩍!!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첫 번째 보다 더 큰 벽력이 건의 오른손에서 튀어나와 백련혼계를 휘감으며 폭발했다.

쿠쿠쿠쿠쿠쿵!

결국 백련내계를 보호하던 진법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강력한 진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외부에서 통째로 뒤흔들면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단 두 번의 손짓으로 진법마저 무너트린 건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진법이 무너져 내리자 백련내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선(線)이 드러났다.

건은 그 선을 넘어 백련내계로 진입했다.

이 정도의 소란이라면 필시 몇 분 안에 백련김가에서 사람들이 달려올 게 분명했다.

건은 그들을 이 백련내계 안에서 모두 상대할 생각이었다.

건의 예상대로 백련김가의 사람들은 건이 백련내계로 들어가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우르르 백련외계로 몰려왔다.

당연히 그들 중에는 현 가주인 김동광도 있었다.

“아직 침입자의 정체를 알아내진 못했나?”

동광은 옆에 있던 총관 김솔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죄송합니다. 쓰러진 백련무사들의 부상이 워낙 심각해 아무리 포션을 사용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내계로 들어가 파악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단 몇 분 만에 홍련대를 모조리 쓰러트리고 백련철벽진(白蓮鐵壁陳)마저 깨버린 녀석이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네, 당연히 방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백련대 전원을 호출했습니다. 거기에 청련대와 흑련대도 모조리 데리고 들어갈 생각입니다.”

“백련용객(白蓮龍客)들도 호출해라. 다른 일도 아니고 백련내계의 일이다.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동원하는 게 맞다.”

동광은 백련용객을 더 추가했다.

백련용객은 백련김가의 최정예 소울러들이었다.

비록 숫자는 일곱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동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백련김가의 모든 전력을 동원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련용객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요?”

“난 이번 일만큼은 설마란 말을 아예 지워버리고 싶다. 그러니 어서 백련용객도 호출해라.”

백련내계는 백련김가의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동광은 모든 안 좋은 가능성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김솔도 가주인 동광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얘기할 순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호출을 받은 모든 이들이 백련외계에 모였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진입하라!”

동광의 한 마디에 대기하고 있던 흑련대 50명, 청련대 40명, 백련대 20명은 물론이고 백련용객 7명까지 동시에 백련내계로 진입했다.

모두 합치면 1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이 정도의 머릿수라면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아주 벅찰 수 있는 규모였다,

적어도……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러했다.

콰과과과과과광!

100여명의 백련김가 소울러들이 내계로 진입하는 순간…… 한 줄기의 벼락이 주변을 휩쓸며 폭발했다.

잔뜩 각오를 하고 모두 동시에 백려내계로 뛰어든 그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기분으로 그 벼락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악!”

그나마 실력이 있는 백련대나 백련용객들은 간신히 그 폭발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흑련대와 청련대는 고스란히 폭발에 휘말리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결과 대다수의 흑련대와 청련대는 큰 부상을 입고 그 자리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건은 단 한 번의 출수로 흑련대와 청련대 무사 90명 중 80명에 가까운 숫자를 쓰러트렸다.

그나마 남은 10명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한 번의 공격으로 흑련대와 청련대를 괴멸시켰다고 할 수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쏟아진 강력한 공격은 이처럼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애초에 건은 백련김가에서 이렇게 한 번에 다수의 인원이 내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파천벽력파의 기운을 잔뜩 모으고 기다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건은 그들이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양손을 뻗으며 모아놨던 파천벽력파를 방출했고 그 결과 흑련대와 청련대가 괴멸됐다.

이렇게 되자 백련김가 쪽에선 시작부터 완전히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험도 가장 많고 실력도 뛰어난 백련용객들은 그 상황에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통혼을 통해 혼력을 끌어모았다.

백련용객들은 모두 정식으로 맹약을 맺은 소울러들이었다.

그리고 백련대의 소울러들은 백련대주인 김인호만 맹약을 맺고 나머지는 소울아머(혼갑)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27명.

여전히 머릿수는 백련김가 쪽이 훨씬 많았다.

그렇게 머릿수가 많아서일까?

비록 시작부터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도 백련김가의 소울러들은 아직 자신감까지 잃은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스윽.

뒤늦게 백련내계로 들어온 가주와 총관 일행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흑련대와 청련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백련대와 백련용객이 포위하고 있는 침입자를 본 순간 훨씬 더 깜짝 놀랐다.

“헉!”

“으음…….”

총관과 가주는 동시에 건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 건을 주시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건을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총관 김솔은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건은 분명 죽었어야 했다.

그는 보름 전쯤 혈룡에게 건을 처리할 모든 준비가 끝났고 조만간 의뢰를 마무리 짓겠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혈룡의 성격은 아주 지랄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약속을 어기는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 의뢰에 관한 약속은 정말 칼 같은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김솔은 슬슬 혈룡이 건의 목을 들고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찾아온 건 혈룡이 아니라 건이었다.

이 얘긴 혈룡이 건을 처리한 게 아니라 건이 혈룡을 처리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왜? 기다렸던 손님이 아닌 다른 손님이 찾아와서 놀란 건가?”

건은 김솔과 동광을 바라보며 웃었다.

“네놈이 간이 부었구나!”

단번에 얼굴이 붉어진 동광은 굉장히 노한 표정으로 건을 향해 소리쳤다.“

“간이 부었다…… 뭐, 간이 좀 붓는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니고…… 이왕 간이 부은 거 한번쯤 미쳐 날뛰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네.”

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김솔과 동광의 굳은 표정과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표정이었다.

“이노오오옴!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르고 까분다더니 딱 그 꼴이구나!”

동광은 건이 백련김가를 아주 크게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범은 언제까지나 범이고 강아지는 언제까지나 강아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윽.

건은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흑룡이 솟아올랐다.

츠츠츠츳!

“오늘 난 이빨이 죄다 빠져버린 힘없는 늙은 범을 잡으러온 용을 잡아먹은 사냥개가 될 생각이거든.”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그 말과 함께 건은 자신이 가진 척준경의 모든 힘을 일시에 개방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그의 몸 주변에서 검은색 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포위하고 있던 적들을 오히려 압박하는 강력한 무신의 기세.

이것이 바로 머릿수 따윈 개의치 않는 무신의 패기(覇氣)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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