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더 소울(The Soul) - 소울 마스터 [1]
@ 소울 마스터.
건은 혈룡을 쓰러트리고 얻은 군림언을 실전에서 처음 사용해 보았다.
그 결과 그는 군림언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도 건은 지금 엄청나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력도 상당히 많이 소모하고 있었다.
군림언은 말에 절대적인 힘을 싣는 능력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소모되는 혼력의 양이 대단히 컸다.
‘실전에서 무작정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겠군.’
조금 전만 해도 백련김가의 가주인 김동광이 군림언의 기운을 극복하고 오른팔을 들어 올렸었다.
이는 아직 건이 군림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힘이 좀 떨어지는 다수의 적에게는 아주 효율이 높은 능력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 좀 더 완성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군림언은 자신보다 약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으으윽.”
어쨌든 지금 당장은 계속 군림언의 힘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의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건이 계속 집중한다고 해도 군림언의 효과는 1분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건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곧장 몸을 움직였다.
파팟!
건이 움직이는 순간 군림언의 힘도 살짝 약해졌다.
아무래도 움직이면서까지 계속 군림언의 힘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림언의 힘이 살짝 약해지자 가주인 김동광과 여섯 명의 백련용객은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직 완벽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건이 자신들을 지나쳐 뒤에 있는 백련대의 무인들에게 달려드는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스스스슷!
건은 여전히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백련대의 무인들 사이로 뛰어들며 가볍게 손을 뻗었다.
물론 가볍다는 기준은 건의 기준에서 얘기한 것이었다.
“크아아악!”
“커어억!”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백련대의 무인들.
건의 손은 그들의 몸을 한 번씩 두들겼고 그것만으로 그들의 몸속에 치명적인 혼력을 한 줄기씩 주입할 수 있었다.
아직 맹약도 맺지 못한 백련대의 무인들은 그 치명적인 한 줄기의 혼력이 주입된 그 순간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왔던 혼력이 단번에 소멸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까지 느꼈다.
이것이 바로 ‘무신혼-영혼심독(靈魂心毒)’의 위력이었다.
순식간에 19명의 백련대 무인들은 모두 이 영혼심독에 중독되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건이 영혼심독을 사용하자 군림언의 힘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하지만 군림언이 풀려도 김동광이나 백련용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19명의 백련대 무인들이 모두 쓰러졌고 하나 남은 백련대주마저 건이 날린 무영수에 적중되어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크아아악!”
콰과광!
건은 순식간에 백련대를 완전히 박살 냈다.
백련대의 무인들은 모두 설사 의식을 회복한다고 해도 더 이상 경계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건이 그들에게 주입한 영혼심독은 그들의 혼력을 완전히 소멸시켰고 그들의 육체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일반인들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이, 이게…….”
동광은 잔뜩 굳은 표정을 지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너흰 볼 수 없다.”
고오오오오.
다시 한 번 군림언이 사용되었다.
건이 말을 하는 순간 그의 말에는 아주 강력한 혼력의 의지가 담겼고 그 의지는 곧 힘이 되었다.
파파팟!
백련용객들과 김동광은 건의 말을 듣는 순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확히는 군림언에 깃든 언령의 힘이 그들의 시각을 차단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으으.”
그나마 김동광은 전력을 다해 시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 시각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모든 사물이 완전히 뭉개져 보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 주변에 섬광이 번쩍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섬광이 번쩍이자 조금씩 자신의 시각을 차단하고 있던 기운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김동광은 고개를 흔들며 최대한 빨리 시각을 회복시켰다.
군림언의 힘이 희미해져서일까?
동광은 생각보다 빨리 시각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헉!”
그렇지만 그가 시각을 회복했을 땐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백련용객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영혼심독에 당한 상태였다.
시각을 차단당한 상태에서 건의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이곳에 온전히 서 있는 사람은 동광과 총관 김솔 뿐이었다.
“도, 도…… 대체 넌 누구냐!”
동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건은 그의 말에 대답하기에 앞서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파팟!
건은 가볍게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어느새 그는 총관 김솔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허억!”
누군가 옆에 나타난 걸 느낀 김솔은 매우 놀라며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애초에 그는 정식 소울러라고 할 수도 없는 심약한 외인(外人)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군림언의 효과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움직일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건은 그런 김솔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콰드득.
“크아아아아악!”
가볍게 손을 올렸을 뿐이지만 김솔의 어깨뼈는 가루가 되며 박살이 났다.
김솔을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본 김동광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대체 우린 어떤 괴물을 건드린 건가…….’
동광은 좌절했다.
가문을 미래를 위해 복수를 선택했었는데 오히려 그게 가문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느낌이었다.
콰드득. 우드드득.
건은 김솔의 두 다리와 두 팔의 뼈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트렸다.
쿵.
김솔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렇게 되자 이제 남은 것은 동광뿐이었다.
건은 천천히 동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광은 백련대는 물론이고 백련용객과 김솔까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망가트린 건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거지……?”
동광은 자조 섞인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판단은 없었다.
충분히 복수를 생각할 수 있었고 복수를 하는 데 별문제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 판단의 결과는 너무나 예상과 다르게 나와 버렸다.
흑련대, 청련대, 홍련대는 물론이고 백련대와 백련용객까지 모두 강제로 폐기당했다.
이 인원은 사실상 백련김가의 모든 것이었다.
이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라고 해봤자 원로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원로원은 이미 모든 걸 내려놓고 은퇴한 늙은이들이 전부였다.
그들은 맹약을 맺었던 영혼들마저 후세에게 넘겨주기 위해 가문의 비술을 통해 비혼당에 영혼을 봉인해두었다.
그 얘긴 사실상 그들은 아무런 힘이 없단 뜻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간단해. 첫 번째는…….”
파지지직, 콰과과과광!
건은 가볍게 웃으며 오른쪽 끝에 있던 비혼당을 파천벽력파를 이용해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이로써 백련김가의 회생 가능성이 완벽하게 0(제로)이 되었다.
비혼당에 봉인된 수많은 고대의 영혼들은 비혼당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온 세상으로 흩어졌다.
그 얘긴 이제 백련김가는 맹약을 세습할 수 없단 뜻이었다.
“아, 안돼!”
동광은 비혼당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지만 이미 비혼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후계자를 잘못 선택했어. 김동철 같은 쓰레기를 후계자로 선택한 순간 이미 이 가문에 망조가 든 것이야.”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아무리 우리가 너를 먼저 공격했다고 해도 네놈의 대처는 과해도 너무 과하다. 이렇게까지 날뛰면 수호자들이 널 가만히 놔둘 것 같으냐?”
동광은 크게 분노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건은 별로 상관없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 번째는 바로 그 썩어빠진 자존심이야. 분명한 건 너희는 날 몇 번이고 죽이려고 했어. 특히 경계의 세상에서 금기(禁忌)로 삼고 있는 암살자까지 고용해서 날 죽이려고 했지. 그것도 무려 대한민국 삼대암살자 중 하나인 혈룡을 고용해서 말이야. 이래놓고도 너희가 정당했다고 얘기하려는 건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이곳에 와서 단 한 놈도 죽이지 않았어.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한 줌의 혈수로 만들어버리고 싶었지만…… 많이 참았지.”
“그, 그건…….”
건의 말을 들은 동광은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건의 말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혈룡을 고용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정당성을 잃은 상태였다.
거기에 다른 소울러들마저 고용한 사실까지 공개된다면 오히려 경계의 세상에서 매장당하는 것은 건이 아니라 백련김가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너흰 날 몰라도 너무 몰랐어. 너흰 그저 내 성장이 빠르다고 생각했을 거야. 뭐 대충 고양이가 살쾡이 정도가 됐을 것이라고 예상했겠지. 아무리 많이 쳐줘도 호랑이 정도가 됐을 것이라 예상했을 거야. 그래서 적당히 용을 이용하면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살쾡이도 호랑이도 아닌 용을 잡아먹는 신조(神鳥)가 되었다. 그래서 너흰 이 꼴을 당하고 있는 거야.”
건의 신랄한 비판을 들은 동광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 말 역시 모두 맞았다.
그들의 예상은 너무나 뻔했고 그 결과 그들은 최악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결국 내 잘못이었구나…….”
동광은 크게 자책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김동철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도 자신이었고 복수를 결정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건을 얕잡아 본 것도 역시 자신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 과정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판단을 했다면 이런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혹시 여기서 끝내줄 순 없나? 내가 내 목숨을 내놓을 테니 저기 남아 있는 삼보고(三寶庫)와 저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은 가문의 일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줄 수는 없는 건가?”
동광은 사정하듯 얘기했다.
하지만 건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가주라고 해서 특별히 당신에게 큰 감정이 있는 게 아니야. 난 백련김가 그 자체에 감정이 있을 뿐이야. 애초에 내 목표는 백련김가의 멸문이었어. 그러니 저기 저 삼보고와 밖에서 기다리는 나머지 가문의 일원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어.”
현재 건에게는 척준경의 힘에 대제의 힘까지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느 때보다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감정을 통한 호소는 당연히 먹히지 않았다.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내가 자비를 베풀면 모든 게 좋게 끝날 것으로 생각하는 건가? 내가 백련김가가 회생할 가능성을 남긴 그 순간 난 언제라도 내 등 뒤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적을 남겨두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내가 그걸 용납할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복수 같은 건 하지 않겠다! 내가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당신의 이름 따위를 건다고 바뀔 건 없다. 좋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하지만 대신 이건 약속하지. 밖에 있는 남은 가문의 일원들은 아마 별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혼력만 잃은 폐인이 될 거다. 어때 이 정도라면 아주 자비로운 건가?”
“악마 같은 놈!!”
빠드득.
건의 말에 동광은 이를 꽉 물며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날 악마로 만든 것은 너희다.”
건은 그 말과 함께 조용히 동광을 향해 움직였다.
이걸로 모든 건 끝났다.
이젠 단 한 명의 소울러도 남지 않게 된 백련김가.
그것만으로 그들은 영원히 경계의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 백련김가는 완전히 경계의 세상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