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16화 (115/175)

# 116

더 소울(The Soul) - 소울 마스터 [2]

* * * *

백련김가의 멸문은 당연히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아무리 몰락했다고 해도 백련김가는 한때 명문이라고 불렸던 가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느 정도의 세력은 유지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하루아침 만에 사라졌다.

더 놀라운 것은 백련김가를 세상에서 지워버린 존재가 단 한 명의 소울러라는 사실이었다.

몇 명의 소울러가 아니었다.

단 한 명의 소울러였다.

단 한 명의 소울러가 하나의 가문을 하루 만에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이 일은 경계의 세상에서 엄청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 사실이라면 명실상부 경계에는 새로운 소울마스터가 등장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울마스터는 소울러의 정점과 같은 것이었다.

소울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은 곧 경계의 세상에서 0.001%의 존재가 되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소울마스터는 총 27명이었다.

이제 건이 거기에 추가 된다면 28명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단순히 혼자 백련김가를 무너트렸다고 해서 소울마스터라고 확신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소울마스터에 근접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하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만약 건이 진짜 소울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면 정확히 5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소울마스터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경계의 수많은 사람이 건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건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인물이었다.

특히 건이 정식 소울러로 활동하기 시작한지는 불과 삼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사람들은 삼 년 만에 소울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을 쌓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분명 건은 누군가가 작정하고 키운 비밀 병기일 것이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건이 카페 헤븐 소속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모두 하나 같이 건은 결국 금강철벽 강철민이 비밀리에 키운 제자일 것이라고 얘기했다.

물론 건과 카페 헤븐 측은 그 소문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남들의 얘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당사자들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자 자연스럽게 소문은 진실로 변했다.

‘새로운 소울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젊은 소울러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백건이고 카페 헤븐 소속이다. 그는 금강철벽 강철민이 오랜 시간 키워온 비밀 제자다.’

이게 바로 진실로 변한 소문의 전말이었다.

당연히 이건 진짜 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경계에선 이게 명확한 진실이 되어 있었다.

“수호자 쪽에서 마지막 결정을 보내왔다. 결국 우리의 예상대로 그들은 이번 일을 자연스러운 소울러들간의 대결로 인정해줬다. 다만…… 너에겐 엄중 경고를 보내왔다. 또 한 번 이렇게 과하게 다른 소울러들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 그땐 분명한 제제를 가하겠단다.”

연희는 수호자 쪽에서 보내는 최정 결정을 건에게 전달해주었다.

“후후, 엄중 경고라…… 참, 그 녀석들도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놈들이에요.”

“수호자가 좀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경계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연희도 수호자를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역할만큼은 인정해주는 편이었다.

“저도 그건 확실히 인정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간섭이 심해요.”

“그렇긴 하지.”

“뭐, 어차피 전 수호자 눈치를 보고 살 생각은 없으니까 경고를 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어요.”

“오, 이젠 수호자 정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의 능력을 가졌는데 눈치를 보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요.”

“하긴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수호자들이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경계의 질서를 지키려고 한다고 해도 결국 경계는 힘이 곧 규칙이 되는 세상이니까.”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의 말에 동의를 했다.

현재 건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수호자의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련 한 번 할까요?”

“왜 날 상대로 또 스트레스라도 풀게?”

“워, 누나 절 어떻게 보고 그렇게 얘기하세요. 언제나 전 누나와 대련할 땐 조금이라도 누나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고요.”

“아, 그래서 어제는 그렇게 심하게 몰아 붙이셨어요? 내가 어제 두들겨 맞은 허리가 아직도 아프거든.”

연희는 이를 악물며 얘기했다.

“에이, 그게 모두 누날 위한 것이었잖아요. 그래서 결국 누나도 작게나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잖아요.”

“그 깨달음이라도 있었으니까 참은 거야. 아니었으면 이걸로 뒤통수를 한 대 시원하게 날려버렸을지도 몰라.”

연희는 손에 들고 있던 프라이팬을 들어 올리며 당장 풀스윙이라도 할 듯이 얘기했다.

“워워, 누나 참아요.”

건은 두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사장님이랑 대련하면서 풀어.”

“사장님은 아직도 힘겨워요.”

“사장님도 너만큼이나 힘겨워 한다.”

“진짜요?”

“당연하지. 네 앞에선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너 없을 땐 아주 죽겠단 말을 달고 산다.”

“하하하하, 사장님이 진짜 그랬어요?”

“요즘 사장님이 너 때문에 다시 수련을 시작하셨을 정도다. 참, 너 소울마스터가 됐다며?”

“소울마스터라고 하기에는 아직 좀 민망한 수준이에요.”

“일단 소울 피어(Soul Fear)를 발산할 수 있다면 무조건 소울마스터라고 할 수 있지.”

“소울 피어도 어설픈 수준일 뿐이에요.”

소울 피어는 소울마스터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표였다. 그것은 특별한 힘이라기 보단 소울러로서의 경지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깃드는 일종의 기세와 같은 것이었다.

소울 피어는 소울마스터가 혼력을 끌어올리면 자동으로 발현되었다.

그것은 주변의 혼력을 살짝 억제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주 대단한 효과는 아니었다.

정작 소울 피어의 가장 큰 장점은 따로 있었다.

소울러는 깨달음 얻어 하나의 큰 벽을 넘어 마스터가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소울 피어를 얻게 된다. 이 소울 피어가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바로 제혼력(制魂力)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소울 피어는 즉, 제혼력의 상승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소울마스터의 혼력 제어 능력이 일반 소울러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뜻이었다.

“어설프다고 해도 소울 피어는 소울 피어지.”

“하지만 전 여전히 사장님을 넘어서지 못했어요.”

“에라, 이제 겨우 날기 시작한 녀석이 이미 오래전부터 창공을 비행하고 있던 매와 똑같길 바라면 그게 잘못 된 거지. 사장님은 벌써 십오 년 전에 소울마스터가 된 분인데 당연히 힘들지.”

“헤헤헤, 욕심이 너무 과했나요?”

“사실 소울마스터들 끼린 서열이란 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러니 너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마도 다른 소울마스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야.”

“네, 더욱 노력할게요.”

“솔직히 말하면 좀 살살 노력해도 될 것 같아.”

“흐흐, 한계 따윈 존재하지 않는 천재의 성장에 너무 질리신 건가요?”

“약간이라도 틈이 보이면 여지없이 까부는 구나. 나 아직 이거 안 내려놨다.”

연희는 여전히 오른손에 들고 있던 프라이팬을 슬쩍 들어 올리며 또박또박 얘기했다.

“워워, 누나 진정해요!”

건은 크게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연희의 손에 들린 프라이팬만큼은 무서웠다.

* * * *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 무조건 죽을 거다. 한 시간? 아니, 아마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겨서 괴물들에게 잡아먹힐 거다.”

오랫동안 백련김가의 그림자로서 살아온 남자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얘기했다.

“맞습니다. 아마 전 죽겠죠.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을 겁니다. 사실 그래서 여길 찾아온 겁니다.”

“자살이라도 하려고 하는 건가?”

“자살이라면 자살일 수 있고 속죄라면 속죄라고 할 수 있겠죠. 저 때문에 가문이 사라졌으니…… 저 역시 가문과 함께 운명을 같이할 생각입니다.”

백련김가의 그림자가 데리고 온 남자. 그는 바로 김동철이었다.

“이제야 철인 든 건가? 하지만 너무 늦었군.”

백련김가의 그림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김동철을 싫어했다.

그는 가문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동철의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해 억지로 동철을 떠맡아 모처에서 그를 치료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련김가가 멸문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백련김가가 사라지는 바람에 오랫동안 백련김가의 그림자로 살아왔던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편 김동철은 백련김가가 백건의 손에 완벽하게 경계의 세상에서 지워졌다는 걸 듣고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아무리 쓰레기 같은 김동철이라고 해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큰 사건이었다.

“늦었죠. 그러니 늦은 만큼 더 큰 대가를 치러야겠죠.”

“흥, 그래서 선택한 게 이 건가? 하지만 넌 지금 굉장히 비겁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속죄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철의 선택은 간단했다.

그는 그림자에게 부탁해 지리산에 있는 마영암굴에 찾아온 상태였다.

그는 마영암굴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비록 이젠 맹약도 깨어졌고 심지어 혼력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그동안 백련김가에서 꾸준히 노력한 끝에 팔다리를 아주 힘겹게 움직일 수 있는 수준까지는 회복시켜놓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실상 동철은 완벽한 폐인이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겨우 몇 개의 외물만 가지고 암굴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살을 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 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비겁한 놈. 결국 넌 끝까지 도망치려는 거다. 애초에 너 따위를 후계자로 삼은 게 잘못이었다. 뭐, 차라리 난 잘 됐다. 숙명처럼 남아 있던 굴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랜 세월을 그림자로 살아왔지만 이젠 그 굴레를 씌운 근본적인 존재가 사라진 이상 앞으론 나도 내 인생을 살 생각이다.”

“떠나시는 건가요?”

“너는 죽음을 통해 도망치는 것이고 난 날 덮고 있던 백련김가의 그림자라는 장막을 걷어냄으로서 도망치는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도망치면서 너에게 도망친다고 나무라는 것은 좀 아니겠군.”

그림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저 때문에…….”

“쓰레기 같은 놈. 역겨우니까 이제 와서 회개하는 척 하지마라. 차라리 끝까지 쓰레기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워라. 이 타이밍에 무슨 회개를 하고 앉아 있는 게냐.”

그림자의 독설에 동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철은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회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여전히 백련김가는 멸문했고 자신은 자살을 하려고 암굴의 입구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질질 짜면서 후회라도 하면 폐인이 되어 흩어진 백련김가의 후예들이 널 용서해줄 것 같으냐?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소리다. 넌 영원히 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될 거다. 그들은 널 증오하고 또 증오하다가 아마 나중엔 상상 속에서 널 몇 번이고 찢어죽이고 있을 거다.”

그림자의 독설은 계속 되었다.

“퉷. 이제 이걸로 나도 백련김가와의 모든 인연을 끊겠다.”

그림자는 품속에서 영혼의 파편 하나를 꺼내서 동철에게 던져 주었다.

이 파편은 동철이 암굴로 들어갈 때 필요한 열쇠와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충고하는데 쓰레기 같은 네놈에게 독심(毒心)마저 없으면 넌 진짜 쓰레기도 아닌 먼지 같은 놈이 되는 거다.”

그림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철의 곁을 떠났다.

동철은 그림자가 떠난 후에도 한참동안 가만히 서서 암굴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동철이 특유의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크크크크, 그래. 모두 맞는 말이야. 왜 내가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해? 난 김동철이야. 난 김동철이라고!!”

동철은 발악하듯 소리치며 파편을 암굴의 입구를 향해 던졌다.

파아아앗!

그러자 파편에 담긴 영혼 에너지로 인해 잠시 동안 암굴의 입구가 열렸다.

동철은 그 입구가 열리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날 죽여라. 어서 와서 날 죽여!! 날 죽이라고!!!’

암굴로 빨려들어가던 김동철의 표정은 마치 악마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는 이제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대신 남은 모든 이성을 모조리 악(惡)으로 바꿔버렸다.

마지막 순간 스스로를 순수한 악으로 바꾼 김동철.

그는 그렇게 마영암굴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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