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더 소울(The Soul) - 암흑마신(暗黑魔神) 탄생 [2]
* * * *
암흑마신의 탄생과 함께 대한민국의 삼대암굴 중 하나인 마영암굴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원래 암굴이란 것은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었다.
암굴에서 흘러나오는 마이너스 에너지는 경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암굴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당연히 경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마영암굴이 사라지면서 마이너스 에너지의 공백이 생겨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다른 곳의 마이너스 에너지들이 그쪽으로 이동했다.
사실 경계에서 마이너스 에너지의 이동은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암굴이 가지고 있는 마이너스 에너지의 양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여파는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영암굴이 소멸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가 불안정해졌다.
그와 함께 모든 지역에서 마이너스 에너지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평소보다 대략 4배 정도 많은 숫자의 경계가 만들어졌다.
전형적인 마이너스 에너지의 폭주 현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호자들은 재빨리 폭주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자칫 이 폭주가 오래가게 되면 마이너스 에너지가 경계를 넘어 현실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마이너스 에너지가 폭주해도 현실에 수마나 암괴가 나타날 일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것들보다 운신(運身) 자유로운 잡귀(雜鬼)들은 마이너스의 폭주를 통해 경계를 넘어 현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실제로 평상시에도 간혹 그런 일이 일어나곤 했었다.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얘기하는 게 모두 이런 식으로 경계에 존재하는 잡귀들이 마이너스 에너지의 폭주를 틈타 현실로 넘어가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하지만 보통 그런 폭주는 일정 지역에서 아주 가끔 일이었지 지금처럼 대한민국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나진 않았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수호자는 빨리 이 폭주를 막지 않으면 어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귀신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인터넷에 마구 폭주하고 있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 귀신소동은 순식간에 대형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이슈가 되어있었다.
쿠쿠쿠쿵!
마지막 하나의 결계석(結界石)이 설치되면서 급한 대로 일단 봉인(封印)이 완성되었다.
지이이이이이잉!
워낙 급하게 만든 봉인이라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일단 찢겨진 경계의 선을 영혼차단결계(靈魂遮斷結界)로 막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마이너스 에너지가 계속 유입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휴, 끝났습니다.”
이현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길 했다.
그는 6등급 수호자였다. 수호자에서 5등급 수호자라면 등급이 낮은 게 결코 아니었다.
수호자는 간단하게 1에서 9까지의 등급으로 직위를 나눴는데 사실 6등급 정도만 돼도 상당히 높은 등급이라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수호자가 1~4등급이었고 5등급만 되어도 상급 관리자로 구분되었다.
그러니 6등급 수호자라면 당연히 수호자 쪽에서 꽤 인정을 받는 소울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직접 결계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일이 위급한 일이었단 뜻이었다.
그를 데리고 이곳에 영혼차단결계를 설치하기 위해 달려온 인물은 대한민국 수호자에서도 가장 특별한 수호자로 불리는 수호칠성(守護七星) 중 한 명인 백승룡(白昇龍)이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7명의 9등급 수호자 중 한 명인 백승룡은 현 백호가문의 가주이기도 했다.
그가 직접 이곳에 올 정도였으니 6등급 수호자인 이현호가 결계를 만드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폭주가 얼마나 이어진 거지?”
백승룡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백유천(白柳川)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백유천은 백승룡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는 7등급의 수호자였는데 이정도 등급은 헌터로 따지면 플래티넘 등급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확히 일곱 시간 사십 분 동안 이어졌습니다.”
백유천은 시간을 정확하게 체크하며 백승룡의 물음에 답했다.
“으음…… 생각보단 더 길었군.”
백승룡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마영암굴이 통째로 사라졌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하긴 누가 이 폭주가 암굴이 사라져 일어난 폭주라고 예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도대체 왜 암굴이 사라진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나?”
“그건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경계의 틀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암굴 안쪽으로부터 붕괴가 시작된 것으로 보아 외부적인 원인이 아니라 내부의 원인 때문에 자연소멸 된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암굴의 자연소멸이라…… 지금까지 경계의 세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단 것이지?”
“네…… 일단 예상만 그렇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조사는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할 생각입니다.”
“회(會)에서 조사단을 파견하겠지만, 그전까지는 네가 계속 살펴보아라.”
“네, 알겠습니다.”
백승룡의 명령에 백유천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백유천의 특기 중 하나가 바로 ‘혼력 추적’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작정하고 조사하면 뭔가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참, 이번 폭주로 인한 피해규모는 얼마나 되는 거지?”
“정확한 피해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마이너스 에너지가 폭주한 일곱 시간 정도 동안 대략 전국에서 수천 건의 귀신소동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수의 잡귀가 현실 세상으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흐음…… 수습은 시작했겠지?”
원래 현실 세상으로 빠져나간 잡귀들은 기껏해야 하루 정도밖에 버티질 못했다.
마이너스의 폭주를 틈타 본능에 따라 현실로 나가긴 했지만 정작 현실에는 그들이 몸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마이너스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껏 버텨봤자 하루가 한계였다.
아주 간혹 며칠 이상을 버티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래 봤자 결국은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수의 잡귀가 세상으로 튀어 나갔을 경우는 그 하루라는 시간 동안 온갖 일들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호자가 나서서 잡귀들을 강제로 소멸시켜야 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호자들이 나서서 수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에서 직접 헌터 협회에도 도움을 요청했으니 아마도 오늘 안에 모든 게 정리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런데…… 정말 피해가 그것뿐인가?”
“아직까진 그 정도가 다인 것 같습니다. 다른 두 개의 암굴이나 다른 영구경계들도 큰 이상이 있진 않습니다.”
“암굴 하나가 갑자기 소멸한 것치고는 피해가 작은 편이군.”
이 정도라면 경계에 마이너스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요한 존재인 암굴이 소멸한 것치고는 정말 별거 아닌 피해였다.
사실 수호자들이 암굴의 존재를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암굴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워낙 막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암굴일 사라졌는데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백승룡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뭔가 불안한 마음은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큰 위기는 넘겼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암굴의 소멸과 마이너스 에너지의 폭주로 일어난 아주 중요한 변화.
적어도 아직까진 그것이 명확하게 느껴지진 않고 있었다.
* * * *
드드드드득.
수호자 측의 빠른 대처로 마이너스 에너지의 폭주는 막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마이너스 에너지는 불안정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숫자의 경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경계와 경계들이 무수히 많이 겹쳤다가 다시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일어났다.
본래 경계는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도 만들어질 수 있었고 또 반대로 언제 어디에서도 소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예외가 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예를 들어 만물상이나 암굴 같은 곳은 이 생성과 소멸에서 자유로운 영구적인 경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들도 완벽히 생성과 소멸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만물상 같은 경우는 일명 경계의 틈이라고 하는 아주 예외적인 공간에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경계의 법칙에서 비켜나 있는 것뿐이었고 암굴은 단지 소멸되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이지 지금처럼 충분히 조건이 성립되면 소멸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암굴과 아주 유사한 특성이 있는 경계가 있었다.
생성되면 어지간해서는 소멸하지 않는 경계.
그것은 바로 ‘유적’이었다.
그런데 이 유적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유적이 하나 있었다.
일명 ‘신의 흔적’이라 불리는 유적.
그것은 1등급 이상의 유적인 전설급 유적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유적이었다.
보통의 유적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암굴에 존재하는 괴물들만큼 위험한 괴물들이 등장하는 유적.
사실상 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는 유적 중 가장 최고 등급의 유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경계에서도 지금까지 딱 세 번밖에 등장하지 않은 유적.
그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 어렴풋이 기록에만 남아 있었기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뒤에 마지막으로 나타났었던 한 번의 ‘신의 흔적’은 또렷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전쟁을 일으켰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그 두 세계대전은 ‘신의 흔적’과 관계가 있었다.
‘신의 흔적’을 차지하기 위해 국가 단위에서 충돌하다 보니 경계의 세상을 벗어난 현실의 세상에서도 큰 분쟁이 일어났고 그것이 곧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충돌로 끝난 게 아니라 무려 두 번이나 그것 때문에 전 세계가 충돌했었다.
물론 그렇게 엄청난 분쟁을 겪은 소울러들은 이제부터는 경계의 분쟁에 현실의 세상까지 휘말리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로 합의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협약이 바로 ‘경계분쟁확산방지조약’이었다.
이 조약 때문에 경계의 수호자들은 더욱 강력한 강제력을 지니게 되었고 적어도 수호자들의 힘이 경계에 존재하는 어떤 세력의 힘보다 강한 현재에는 ‘신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다시 세계 대전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과거 조약도 존재하지 않고 수호자의 세력이 조금 약할 땐 여지없이 세계 대전을 일으켰을 정도로 엄청난 분쟁의 씨앗이 되었던 ‘신의 흔적’이 다시 나타난다면 세계 대전은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도 경계의 세상에서는 엄청난 분쟁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신의 흔적’은 그만큼 굉장한 파급력을 지닌 유적이었다.
또한 ‘신의 흔적’은 워낙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그것의 기운을 숨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제로 조금만 노력한다면 ‘신의 흔적’이 나타난 곳과 지구 반대편에 해당되는 지역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신의 흔적’이 만들어지면 아무리 국가 단위로 나선다고 해도 그것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단 뜻이었다.
‘신의 흔적’보다 아래 등급인 몇몇 전설급 유적만 등장해도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소란이 일어났는데 ‘신의 흔적’이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건 너무나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콰과과과과과!
경계의 생성과 소멸이 너무나 빠르게 자주 일어나면서 조금씩 경계를 뒤덮고 있던 마이너스 에너지의 두꺼운 층이 깎여 나갔고 그 결과 오랜 세월 쌓여 있던 마이너스 에너지의 층 아래 깊숙한 곳에 존재하던 미지의 영역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원래는 더 오랜 세월 동안 그 아래 잠들어 있어야 했던 영역이었지만 암굴의 소멸과 함께 찾아온 급격한 마이너스 에너지의 이동 때문에 생각지도 않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쩌저저저저저적!
그것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경계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그 균열 속에서 무한한 확장을 하며 공간 자체를 왜곡시켰다.
번쩍!!
과거 우주가 생겼다는 빅뱅(Big Bang)이 이러했을까?
순간적인 폭발과 함께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왜곡된 공간에 가득 찼다.
그리고 그것은 찰나의 순간 하나의 또렷한 세상이 되었다.
키이이이이잉!
그 세상이 완성되는 순간 그것에서 내뿜어진 강력한 힘의 존재감은 순식간에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아버렸다.
그 세상은 바로 ‘신의 흔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최소 오백 년은 더 흘러야 등장할 가능성이 있었던 그것이…… 암굴의 소멸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며 불과 백 년 만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난 그 순간.
일정 수준 이상의 모든 소울러들은 그것의 출현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아프리카, 남미…… 예외는 없었다.
모두가 느꼈고.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모두가 움직였다.
그렇게 ‘신의 흔적’은 단번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울러의 관심을 대한민국으로 향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