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20화 (119/175)

# 120

더 소울(The Soul) - 신의 흔적 [2]

* * * *

“이대로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담 버클리, 흔히 아이언마스터라고 불리는 그는 충주호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부대에 모든 병력을 대기 시켜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의 흔적’이라고 해도 결국 유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선을 찾을 수 없는 건지…….”

“그걸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나도 이해하진 못한다. 다만 ASA에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신의 흔적’은 스스로 원할 때만 선(線)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린 설치해놓은 소울 스캐너의 반응을 끊임없이 살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신의 흔적’에 대해 많은 분석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한낱 유적이 아니었군요.”

아담의 말에 콜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한낱 유적이었다면 이렇게 관심을 끌지 않았겠지. 어쨌든 언제 ‘신의 흔적’이 선을 드러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S-알파’팀은 각자의 ‘소울 머신(Soul Machine)’을 완전 무장시키고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해 놓으라고 얘기해라.”

“알겠습니다.”

아담의 명령을 받은 콜리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S-알파’팀은 총원은 16명이었다.

그 팀의 멤버들은 ASA의 최고 정예들이었다.

그들은 맹약을 맺은 소울러인 동시에 최고 수준의 영혼과학이 만들어낸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소울 머신’을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소울 머신은 소울 슈트(혼갑)의 개량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울 슈트가 갑옷과 비슷한 형태의 방어구였지만 소울 머신은 갑옷이라 표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소울 머신은 사용자가 입는 개념이 아님 탑승하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소울 머신의 크기는 대략 2.5m 정도 되었는데 그것은 사용자의 전심을 감싸고 있는 일종의 로봇 갑옷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소울 슈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고 특히 소울러의 맹약과도 끈끈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한 명의 소울러에게만 각인된 형태로 사용해야 하는 특별한 물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 머신을 사용하는 16명의 ‘S-알파’요원들은 ASA가 가장 아끼는 인재들이었다.

그들이 맹약을 맺은 영혼들은 겨우 8~9등급밖에 되지 않는 낮은 등급의 영혼들이었지만 그 맹약의 과정에 얽힌 소울 머신 덕분에 실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일반적인 기준과는 완벽히 달랐다.

특히 소울 머신은 영혼과학으로 만들어진 각종 외물(外物)로 무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담은 이들을 데리고 ‘신의 흔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ASA의 기록에 따르면 ‘신의 흔적’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명확한 기준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그는 ASA에서 데리고 온 네 부대 중 가장 특별한 ‘S-알파’만 데리고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 ‘소울 몬스터’는 내가 직접 준비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네, 알겠습니다.”

아담은 소울마스터인 동시에 최고의 영혼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소울마스터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만든 자신만의 외물을 즐겨 사용했다.

‘소울 몬스터’도 그런 것 중 하나였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언제 ‘신의 흔적’이 길을 열어줄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소울 스캐너의 반응을 한시도 놓치지 말고 살펴라.”

“명심하겠습니다.”

‘신의 흔적’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미국. 그들은 그들이 가진 정보를 토대로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미국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일단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계속해서 ‘신의 흔적’의 선을 찾는 중이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어요.”

백은 완벽하게 확신에 찬 표정으로 건과 철민 그리고 연희에게 얘기했다.

“확실한 거야?”

건은 다시 한 번 확인하듯이 백을 향해 물었다.

“사흘 내내 계속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에요. 적어도 지금은 그 어디에도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존재하지 않아요. 마치…… ‘신의 흔적’이 스스로 입구를 모두 차단한 느낌이에요.”

“그 얘긴 지금 ‘신의 흔적’이 자아라도 가지고 있단 얘기야?”

연희는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정확한 것은 저도 몰라요. 다만 제가 사흘 동안 전력을 다해 살핀 결과가 그렇다는 것뿐이에요.”

백은 그 누구보다 혼력에 민감했다.

그렇기에 그는 ‘신의 흔적’이 내뿜는 신기루 같은 기운을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분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자아가 있을 수도 있다. ‘신의 흔적’을 그냥 단순히 유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오래전 괜히 그것을 두고 몇십 년이 넘게 분쟁이 계속되었던 게 아니다.”

철민은 백의 분석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가 알기로 ‘신의 흔적’은 쉽게 정복되는 곳이 아니었다. 만약 ‘신의 흔적’이 평범한 유적이었다면 아무리 소울러들끼리 심각하게 얽혀 싸웠다고 해도 몇십 년 동안 정복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럼 진짜 이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제쯤 ‘신의 흔적’이 입구를 열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철민의 말처럼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와, 이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막혔네요.”

건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겠네…… 대충 낚시라고 생각해야겠어. 아주 큰 대어(大魚)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계속 밑밥이나 던지며 바다를 바라보고 기회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그렇게 때를 기다려야겠네.”

“연희의 말처럼 우린 이제부터 대어를 기다리는 낚시꾼이 되어야 한다. 그 낚시꾼이 대어를 낚기 위해 다른 물고기들은 모두 포기했듯이 우리도 당분간은 모든 활동을 접고 여기서 때를 기다리자.”

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희의 말에 동의했다.

“과연 그 대어가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까요?”

“그건 모르지. 당장 내일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이제부턴 인내심 싸움이 될 거다.”

철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건의 물음에 대답했다.

“워낙 기다리는 대어가 대단한지라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오진 않겠네요.”

연희는 앞으로의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는 표정으로 얘길 했다.

“그렇겠지. 특히 국가단위에서 투입된 이들은 아마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다. ‘신의 흔적’은경계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을 단번에 바꿔버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니까…… 우리야 뭐, ‘신의 흔적’에 존재하는 가장 큰 대박을 바라기보단 그것과 함께 있을 여러 부수적인 대박을 바라는 것이니까 그들보다는 사정이 좀 낫지.”

“문제는 그런 부수적인 대박을 노리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는 거 아니겠어요?”

연희의 말처럼 지금 이곳에는 국가단위에서 투입된 이들 말고도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세력의 소울러들이 와 있는 상태였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그들이 노리는 것은 모두 같았다.

“뭐 어차피 ‘신의 흔적’은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하니까 아무리 서로 경쟁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나눠가질 수 있을 거야.”

철민이 알기엔 ‘신의 흔적’은 보통의 유적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렇단 얘긴 나눠 가질 것들도 많단 뜻이었다.

“어쨌든 결론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면…… 결국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수련밖에 없겠네요.”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건이 연희와 철민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얘길 했다.

“넌 정말…… 수련 중독자 같아.”

건의 말을 들은 연희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여기서 사냥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수련밖에 없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더욱이 ‘신의 흔적’이 나타나면서 대한민국 전체에 생성되는 경계 숫자가 상당히 줄었다. 헌터들은 싫든 좋든 이 ‘신의 흔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휴우, 두 수련 중독자들 사이에서 저만 죽어나겠네요.”

연희는 벌써 매일매일 힘에 겨워할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물론 그녀 역시 수련을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건과 철민처럼 수련에 완벽하게 미쳐있지 않을 뿐이었다.

* * * *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철민의 예상대로 상황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 달, 두 달, 석 달……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신의 흔적’이 열리길 기다리는 소울러들은 지쳐만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의 흔적’을 포기하는 소울러들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그만큼 ‘신의 흔적’이 가진 매력이 크단 뜻이었다.

시간은 그 뒤로도 또 계속 흘러갔다.

넉 달, 다섯 달…… 열 달, 열한 달, 일 년.

대한민국에 ‘신의 흔적’이 나타나고 정확히 일 년이 지났다.

이쯤 되자 당장은 ‘신의 흔적’을 포기하고 추후 다른 변화가 있을 때 최대한 빨리 달려오자고 생각하게 된 소울러들이 많이 늘어났다.

물론 국가단위에서 투입된 소울러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국가단위가 아닌 개별적인 세력에 소속된 소울러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아무리 ‘신의 흔적’이 매력적이라고 해도 일 년이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고만 있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일 년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많은 소울러들이 작전상 후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카페 헤븐의 세 사람은 여전히 ‘신의 흔적’ 근처에서 때를 기다리며 수련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미 그들은 기다리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지 않았다.

그들을 대신해 백이 매일 같이 ‘신의 흔적’을 살펴줬기 때문에 그들은 일 년 동안 미친 듯이 수련에만 집중했다.

특히 건은 마치 수련을 하지 못해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잠을 자는 시간마저 최대한 줄여가며 수련만 계속했다.

수련을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임시경계를 만드는 결계석까지 사들인 그들은 수련에 모든 신경을 쏟아 부었다.

언뜻 보기엔 ‘신의 흔적’이 열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수련을 위해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련에 집중한 덕분일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기다림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일 년간의 집중적인 수련을 통해 상당히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건은 암굴에서의 경험과 혈룡과의 생사결. 그리고 백련김가를 응징한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했었지만 정작 그때 얻었던 것들을 모두 정리할 시간은 부족했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집중적으로 일 년이란 시간을 수련에만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가 또 한 번 크게 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건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그래서 그는 매일 같이 자기 자신을 한계 이상까지 혹독하게 단련했다.

오죽하면 건과 똑같은 수련광(修練狂)이었던 철민마저 살짝 질릴 정도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계를 넘나드는 지옥 같은 수련을 소화하는 건.

확실히 그는 정상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지옥수련날짜가 일 년하고도 한 달을 더 기록했던 그때.

수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변화가 감지되었다.

‘신의 흔적’의 변화.

그것은 이곳에서 13개월을 버틴 모든 이들의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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