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더 소울(The Soul) - 천원(天元) [1]
@ 천원(天元).
스으으윽.
건은 심안을 이용해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선을 찾고 있었다.
백의 말에 따르면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생겼다고 했다.
물론 백은 단지 입구가 생겼다는 것만 알뿐 정확한 입구의 위치까지는 알지 못했다.
결국, 선을 찾는 것은 건과 철민 그리고 연희가 직접 해야 했다.
선이란 것은 무조건 경계에 진입하려는 사람이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선을 찾지 못하면 ‘신의 흔적’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게 바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신의 흔적’이 생겨난 충주호 근처에는 수많은 소울러가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선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미묘하게 느낌이 변하기는 했는데…….’
심안을 통해 ‘신의 흔적’이 있는 곳을 살피던 건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전과는 뭔가 다르긴 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선을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특히 그는 심안을 통해 선을 찾고 있었다.
심안은 경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능력보다 혼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심안을 사용하면 그 어떤 경계의 선이라도 불과 1초 만에 찾을 수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건은 계속 선을 찾으며 왜 아무도 선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와중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혼력의 흐름은…….’
건은 ‘신의 흔적’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미묘한 혼력의 흐름이 매우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고 그는 곧 그게 왜 익숙하게 느껴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암굴에서 마지막에 깨달은 흐름과 같잖아?”
놀랍게도 ‘신의 흔적’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혼력의 흐름은 건이 암굴 안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찾았을 때 느꼈던 마이너스 에너지의 흐름과 매우 유사했다.
‘아아! 그런 것이었나?’
그걸 깨닫는 순간 건은 왜 사람들이 선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선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건은 이미 암굴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밖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은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암굴에서 밖으로 통하는 통로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한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건은 그걸 알아내고 나서야 간신히 통로를 찾아 암굴 밖으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워낙 암굴에서 고생을 했던 덕분에 건은 누구보다 이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건은 그것을 깨닫자마자 곧장 철민과 연희를 향해 달려갔다.
그냥 평범한 경계의 선을 찾는 방식으로 찾으면 절대 선을 찾을 수 없기에 그들에게 요령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이게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런 거예요. 독수리가 하늘을 날다가 물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고기를 단번에 낚아채는 것처럼 일정한 지역을 설정한 후 그 지역에 선이 나타나길 기다려야 해요. 그렇게 기다리다가 선이 느껴지면 곧장 그 선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여기서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안 돼요. 선은 순식간에 사라지거든요. 물론 설정한 지역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지만, 너무 넓게 설정하면 아무래도 선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그 선을 넘는 게 힘들 수 있으니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설정해야겠죠.”
건은 대충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요령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었다.
“흐음…… 나도 암굴을 경험했지만 왜 이런 요령을 느끼지 못한 거지?”
건의 설명을 듣던 연희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암굴 같은 경우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밖으로 나가는 선을 찾는 게 더 힘들어지거든요. 아마 블루존에서 밖으로 나가는 선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그레이존에서 밖으로 나가는 선을 찾는 것 정도로는 이 정도로 심한 선의 움직임을 느낄 순 없을 거예요. 지금 ‘신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이 흐름은 블랙존에서 밖으로 나가는 선을 찾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수준이죠.”
“응? 뭐야? 너 블랙존까지 들어갔던 거였어?”
건의 얘길 듣던 연희는 깜짝 놀랐단 표정으로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하하…… 어쩌다 보니……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건은 애써 화제를 돌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휴, 어째 이상하더라.”
연희는 그런 건을 바라보며 진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단 표정을 지었다.
“자자, 그 얘긴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은 건의 말대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을 찾는 데 집중하도록 하자. 건이는 일단 연희가 선을 찾는 걸 먼저 도와라.”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선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건이었다. 그렇기에 철민은 일단 건에게 연희를 도우라고 얘기했다.
아무래도 세 사람 중 그나마 가장 경지가 낮은 사람이 연희였기 때문에 그녀를 먼저 ‘신의 흔적’에 입장시키면 남은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훨씬 더 수월할 수 있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건은 철민이 얘기하지 않았어도 연희가 선을 찾는 걸 먼저 도운 후 그다음 자신의 선을 찾을 생각이었다.
“뭐야…… 이거 마치 내가 짐이 된 거 같잖아.”
“짐이라뇨. 누난 우리의 보급창고인데 어떻게 짐이 될 수가 있어요!”
“짐은 아니고 짐꾼 정도는 된다는 거냐?”
“아니죠. 누난 짐꾼이 아니라 우리의 살아 움직이는 베이스캠프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네.”
건의 말에 연희는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실력도 어디 가서 절대 빠지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여기선 철민과 건을 철저히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 게 맞았다.
“자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른 소울러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면 분명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선을 찾는 요령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다른 소울러들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늘 그렇듯 선점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리고 결국 선점을 하려면 남보다 빨라야 했다. 그렇기에 철민은 지금은 1분, 1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보다 빠르게!
지금 세 사람에 필요한 것은 스피드였다.
* * * *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선을 찾아낸 사람은 철민이었다.
그는 건에게 들은 간단한 요령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결국 선을 찾아냈다.
물론 건에게 요령을 들은 후 꼬박 나흘 동안 고생을 해서 찾은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찾았다는 게 중요했다.
철민은 선을 찾자마자 곧장 ‘신의 흔적’으로 진입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선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먼저 진입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철민이 ‘신의 흔적’ 안으로 들어가고 사흘이 너 흐른 뒤 연희도 간신히 선을 찾을 수 있었다.
철민에 이어 연희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남은 것은 건뿐이었다.
건은 연희가 선을 찾는 걸 끝까지 도운 후 곧장 자신만의 선을 찾았다.
건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선을 찾았다.
확실한 요령을 알고 있던 건은 그 누구보다 빨리 선을 찾을 수 있었다.
철민과 연희에 이어 마지막으로 건도 ‘신의 흔적’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카페 헤븐의 세 사람은 모두 신의 흔적에 들어갔다.
그들이 그렇게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다른 소울러들은 여전히 그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물론 전부 헤매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무리는 이미 방법을 찾았거나 아니면 방법에 아주 근접해 있는 상태였다.
예를 들어 아이언마스터가 이끄는 미국의 소울러들은 그들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막강한 정보력을 통해 이미 들어가는 방법 자체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리는 방식이었고 혹시라도 다른 소울러들에게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더디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소울러들은 하나둘……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의 흔적’에 들어갈 수 있는 소울러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지간한 수준의 소울러가 아닌 이상 아무리 요령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고 해도 절대 ‘신의 흔적’으로 들어가는 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파아아앗!
하얀빛과 함께 건은 드디어 ‘신의 흔적’ 안으로 들어섰다.
건은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연희와 철민을 찾았다. 원래대로라면 거의 비슷한 곳에서 선을 찾아 들어왔기 때문에 이 근처에 그들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보통 유적과는 다른 건가?’
몇 시간 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며 철민과 연희를 찾던 건은 결국 그들을 찾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기감을 한계범위까지 뿌려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이 세상의 존재감뿐이었다.
시작부터 뭔가 꼬이는 느낌을 받은 건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이곳에서 두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겠네.’
한눈에 봐도 ‘신의 흔적’은 보통 유적과는 달라 보였다.
‘이건 정말 또 하나의 세상과 같은 느낌이네.’
보통의 경계가 현실을 복사해서 만들어낸 세상이라면 이곳은 그 자체로 대단히 큰 하나의 세상처럼 보였다.
실제로 건은 마치 자신이 몇몇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차원을 이동해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비슷한 곳에서 선을 넘었다고 해도 이 넓은 세상에선 전혀 다른 곳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던 건가?’
건은 무작정 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
현실에선 겨우 충주호 정도의 넓이에 만들어진 ‘신의 흔적’이었지만 들어와서는 마치 또 하나의 지구가 이 안에 펼쳐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 전에 경험했던 유적은 비교조차 불가능하겠구나.’
건은 이제야 확실히 왜 ‘신의 흔적’이 그토록 대단하게 여겨지는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두 사람을 어떻게 찾지?’
막연히 두 사람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각자 적당히 식량과 물을 챙겼으니 당장 문제가 되진 않겠지.’
물론 연희에게 여유분의 식량과 물이 있었지만, 철민과 건도 만약을 위해 석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을 챙긴 상태였다.
건은 그 정도라면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계속 움직이면서 누나와 사장님의 기운이 느껴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네.’
무작정 두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두 사람을 찾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정을 내린 건은 본격적으로 ‘신의 흔적’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신의 흔적’도 베이스 자체는 유적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건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몰랐다.
어차피 이곳에 어딘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건이었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내키는 방향으로 걸으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언제 어디서 괴물이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에 백과 함께 주변을 살피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건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건이 이상한 느낌을 받는 순간 백도 거의 동시에 아주 위험한 기운을 감지해 냈다.
“주, 주인님! 위…….”
백이 다급하게 입을 연 그 순간.
놀랍게도 하나의 거대한 발이 건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꽈과과과광!
순식간에 건을 찍어 누르는 거대한 발.
그 발의 주인은 몸 크기가 대략 30m는 될 것 같은 아주 큰 고릴라였다.
정확히는 고릴라와 유사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특히 머리에 삐쭉 솟아 있는 하나의 커다란 뿔은 마치 유니콘의 머리에 달린 그것처럼 보였다.
그 괴물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쿠쿠쿠쿵!
고릴라와 비슷하게 생긴 그 괴물은 한눈에 봐도 평범해 보이질 않았다.
“뭐야…… 시작부터 혼마(魂魔)인 거야?”
건은 괴물의 거대한 발에 짓눌리지 않았다. 그는 괴물의 기습과 함께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크어어어어엉!
고릴라 모습의 괴물은 그런 건을 보고 세상을 뒤흔드는 것 같은 괴성을 질렀다.
놈은 건의 말대로 혼마였다.
그것도 그냥 혼마가 아니라 무려 마군(魔君)급 혼마였다.
‘신의 흔적’에 들어서자마자 마군급 혼마를 만난 건.
확실한 사실 하나는 지금 그가 ‘신의 흔적’에 들어온 다른 소울러들과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장소에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이들은 기껏해야 ‘신의 흔적’의 가장 바깥쪽이라 할 수 있는 지역에 있었지만, 건은 무려 ‘신의 흔적’에서 가장 핵심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천원(天元)’에 있었다.
두 지역은 단순히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무려 1,000km의 차이가 났다.
하지만 정작 건은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신의 흔적’이 워낙 대단한 곳이라 들어오자마자 혼마가 등장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애초에 ‘신의 흔적’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그였기 때문에 ‘신의 흔적’이 어떤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천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