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더 소울(The Soul) - 천원(天元) [2]
* * * *
예전의 건이었다면 마군급 혼마를 혼자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군급 혼마를 단독으로 사냥할 수 있는 헌터는 오로지 다이아몬드 등급의 헌터들뿐이었다.
당연히 건은 여전히 브론즈급 헌터였다.
하지만 이미 건에게 그 등급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콰과과광!
건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혼마의 머리에 달린 뿔을 붙잡고 녀석을 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지금의 건에게는 마군급 혼마도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차피 베이스는 마객급 혼마일 뿐이다. 단지 특수한 환경 때문에 지닌 혼력의 양만 뻥튀기된 것이기 때문에 진짜 마군급 혼마보다는 훨씬 약하다.’
건은 별로 어렵지 않게 고릴라를 닮은 덩치 큰 혼마를 상대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고릴라를 닮은 혼마는 원래 마객급 혼마였다. 하지만 ‘신의 흔적’ 안에 존재하는 막대한 양의 마이너스 에너지는 녀석의 혼력을 몇 배로 뻥튀기시켜주었다.
덕분에 녀석은 덩치가 거의 3배 가까이 커지면서 지닌 혼력의 양만 따지면 마군급 혼마와 같은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과 같은 상태라 할 수 있었다.
혼력의 양이 늘어나 지닌 힘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봤자 놈의 알맹이는 마객급 혼마였다.
이건 마치 고양이의 덩치가 호랑이의 수준까지 커져서 마치 호랑이처럼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고양이의 덩치가 호랑이만큼 커졌다고 고양이가 호랑이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나 마객급 혼마와 마군급 혼마의 차이는 단순히 고양이와 호랑이의 차이가 아닌 고양이와 날개 달린 호랑이의 차이와 비슷했기 때문에 아무리 혼력이 뻥튀기된다고 해도 절대 진짜로 마군급 혼마가 될 순 없었다.
그 얘긴 결국 기세 좋게 건에게 달려든 고릴라를 닮은 그 혼마는 건의 상대가 아니란 뜻이었다.
콰드드드드드득!
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이 녀석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걸로 끝이었다. 놈은 그대로 앞을 향해 꼬꾸라졌다.
쿠쿠쿠쿠쿵!
거대한 놈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으로 길지 않았던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시작부터 혼마가 튀어나올 줄은 전혀 몰랐네.”
놈을 쓰러트린 건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중얼거렸다.
“등장할 때의 존재감에 비해서는 너무 약하네요.”
백은 건과 혼마의 전투가 불과 5분 만에 끝나버리자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저 녀석이 약한 게 아니라 내가 강한 거야.”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놈이 잔뜩 거품이 낀 마군급 혼마였다고 해도 불과 5분 만에 이렇게 깔끔하게 쓰러트리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이상해…… 내가 제대로 ‘신의 흔적’에 들어온 게 맞는 거야? 아무리 ‘신의 흔적’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이 정도 수준의 괴물이 나온다는 게 이해가 안 가…….”
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살펴보기 시작하자 모든 게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다.
“백아, 아무래도 주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건은 연희와 철민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살피는 게 아니라 도대체 이곳이 어딘지 알아내기 위해서 주변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건은 한참 동안 백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세히 살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마객급 혼마 세 마리와 마군급 혼마 두 마리를 더 만났었다.
물론 다섯 모두 건에겐 별로 어렵지 않은 상대들이었기 때문에 건은 가볍게 놈들을 사냥하고 탐색을 계속했다.
그렇게 거의 온종일 주변을 돌아다닌 결과 건은 이곳이 절대 ‘신의 흔적’ 외곽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여긴 상당히 안쪽이다. 저쪽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끌림…… 어쩌면 이게 날 이런 엉뚱한 곳으로 끌어당겼을지도 모른다.’
건은 높은 나무에 올라가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느껴지는 희미한 끌림은 뭔가 상당히 특별했다.
그냥 단순하게 끌리는 게 아니라 영혼의 저 밑바닥에서 아주 미약하게 쪽으로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쪽으로 가보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워낙 이상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건은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쪽에 뭐가 있는 거지?”
건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의 영혼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는 별개로 자신이 보고 있는 방향에서 아주 위험해 보이는 기운들이 대거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주인님…… 지금 주인님이 바라보시고 있는 쪽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은 전에 암굴에서 느꼈던 기운들을 능가하는 것 같아요.”
백은 건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아. 나도 느끼고 있어. 그렇지만 아무래도 저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아무리 위험해 보이는 곳이라고 해도 지 느껴지는 이 끌림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가자.”
결정을 내린 건은 곧장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자신이 바라보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밥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뜸을 들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건은 여전히 이곳이 천원이라 불리는 곳이란 것은 모르고 있었다.
천원은 하늘의 중심이란 뜻이었다.
알려진 대로 ‘신의 흔적’에는 정말 많은 영혼보물이 존재했다.
고대의 영혼을 담고 있는 영혼주(靈魂珠)들도 최소 20개 이상 존재했고 그 함께 상당한 힘을 담고 있는 영혼유물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가 존재했다.
재수가 좋으면 4~7등급의 영혼이 담겨 있는 영혼주를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혼유물 같은 경우는 ‘신의 흔적’ 전체에 넓게 뿌려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신의 흔적’이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신의 흔적’에 존재하는 1등급 영혼보물.
그것은 영혼주일 수도 있었고 또는 영혼유물일 수도 있었다.
1945년, 가장 최근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신의 흔적’의 최종보물을 가져갔던 미국 같은 경우는 1등급 영혼유물인 ‘판도라의 상자’를 얻었었다.
그리고 소문에는 미국은 그 상자 안에 담겨 있는 어마어마한 영혼지식을 통해 다른 국가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수준의 영혼과학력을 얻었다고 알려졌었다.
결국 ‘신의 흔적’의 진정한 보물은 이 1등급 영혼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걸 모두 얻지 못한다고 해도 최후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1등급 영혼보물만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승리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1등급 영혼보물을 제외한 나머지 영혼보물들은 그저 ‘신의 흔적’이 만들어지며 딸려 들어온 부산물과 같은 것들이었다.
천원은 바로 그 1등급 영혼보물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이 지역에 나타나는 괴물들은 다른 지역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세계1, 2차 대전을 유발한 그 ‘신의 흔적’도 나타난 후에도 무려 몇십 년이 지나도록 완벽하게 공략당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천원의 존재 때문이었다.
당시 소울러들은 천원을 공략하며 아주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천원의 안쪽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은 당시 미국의 엄청난 물량공세로도 뚫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그때 아인슈타인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없었다면 아마 미국은 절대 ‘판도라의 상자’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천재 과학자인 동시에 천재 소울러였다.
그러한 엄청난 인재가 미국으로 망명했기에 미국이 ‘판도라의 상자’를 얻는 게 가능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천원이란 곳은 미국이라는 한 국가마저 힘들게 만들었던 장소였다.
물론 세월이 지나 경계의 힘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천원은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지금 대한민국에 나타난 ‘신의 흔적’이 어떠한 1등급 영혼보물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는 엄청난 양의 마이너스 에너지 파장은 순식간에 천원을 암굴의 블랙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 * * *
츠리릿!
건은 손에 들고 있는 흑룡아(창)를 힘껏 혼마의 머리에 꽂아 넣으며 동시에 그 혼마가 뿌린 강력한 에너지 충격파를 오른손으로 막았다.
콰드드드득!
콰과과과과과광!
흑룡아(창)는 정확하게 혼마의 머리를 꿰뚫며 계속 끈질기게 버티던 혼마의 마지막 저항을 깨버렸지만, 그와 동시에 쏟아진 그 혼마의 최후의 일격은 건의 몸 전체를 마구 뒤흔들었다.
“커억!”
아무리 방어기술들을 오른팔에 중첩해서 막았다고 해도 마공급 혼마가 죽음을 각오하고 뿌린 마지막 한 방에 담긴 힘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악, 퉷!”
건은 인상을 찡그리며 식도를 타고 역류해 올라온 핏덩어리 하나를 뱉어냈다.
“후우우…….”
핏덩어리를 뱉어낸 건은 가볍게 호흡을 정리하며 들끓는 혼력을 진정시켰다.
솔직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다만 순간적으로 강력한 충격이 몸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며 살짝 내상(內傷)을 입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의 내상은 건의 강력한 자체치유력으로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었다.
마공(魔公)급 혼마를 이 정도 수준의 상처만 입고 쓰러트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아무리 이번에도 역시 마군급 혼마가 마공급 혼마로 살짝 뻥튀기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거의 진짜 마공급 혼마에 근접한 제대로 된 혼마였다.
그렇기에 30분이 넘게 싸워서야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단순히 성과만 놓고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전투는 수많은 전투 중 하나일 뿐이란 사실이었다.
“주인님…….”
백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안쓰러운 표정으로 재빨리 건을 향해 날아왔다.
“아직은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건은 그런 백을 보며 애써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아직까진 그나마 버틸 만했다.
방금 또 하나의 마공급 혼마를 잡으며 벌써 마공급 혼마만 다섯 마리째 잡았지만, 아직까진 진짜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건이 천원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건은 이틀 동안 무려 15마리의 혼마를 상대했다.
틈틈이 쪽잠을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만 잔 걸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엔 거의 계속해서 혼마와 싸웠다.
사실 보통은 1년 동안 경계를 죽어라 헤집고 다녀도 마병급 혼마 한 마리와 만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천원에선 거의 대부분의 괴물이 혼마였다.
물론 암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건은 최상급 암괴도 거의 100마리에 가깝게 처리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최상급 암괴는 마치 보통 경계에서 수마가 등장하는 것처럼 너무나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혼마는 마치 암괴가 등장하는 것처럼 흔하게 등장했다.
천원은 정말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사실 건이 이틀 동안 혼마 15마리를 쓰러트린 것은 거의 비공인 세계 신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단독사냥으로 15마리를 쓰러트린 것이었기에 더욱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건이 이제 겨우 천원의 외곽지역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건은 열심히 달린다고 달렸지만, 여전히 천원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천본(天本)까지는 아직도 한참 더 가야 했다.
그 얘긴 더 많은 그리고 더 강한 혼마들을 계속해서 쓰러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인님 점점 위험한 기운이 강해지고 있어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너무 급격하게 강해지는 느낌이에요. 이건 정말 위험해요.”
백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알아…… 하지만 난 가야 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선명하게 들려와. 이젠 나도 날 멈출 수가 없을 것 같아.”
건은 그런 백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건은 자신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 버린 상태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대로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